[할로윈 자캐 커플] Trick Or Treat. To 수박.
[할로윈 자캐 커플] Trick Or Treat.
10월 31일, 세상이 흑빛으로 물들어 고요할 때 한 집 두 집. 그렇게 점 같은 수많은 집들이 잭 오 랜턴으로 불을 밝히자 어두운 밤거리는 그세 다시 환하게 물들었다.
10월 31일은 본래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아내는 날이지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날로, 그 의미가 점점 축제처럼 되어 지금의 할로윈을 만들게 되었다. 그들은 할로윈에 괴기하게 분장을 하며 하나의 ‘놀이’로 자리를 매웠지만, 정말 그들의 ‘놀이’에 불과한 것일까?
“어쩌면, 그 기괴한 분장 속에, 정말 나 같은 기괴한 유령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깨어난 시간 치고는 굉장히 어둡고 시끄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황할 내가 아니었다. 이 날이 어떤 날인지, 무엇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잖아? 때문에 뼈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내 의상착의가 이상해 보일지라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밤에 그 유명한 ‘Trick or Treat’을 안 외치면 나의 정체가 들킬지도 모르는 흉흉한 때였기에, 본능에 가깝게 그저 근처의 아무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 머릿속 어딘가 둥둥 떠다니는 기억이 시키는 대로 그 아무 집을 손으로 크게 두드렸다. 그러자 나오는 인간은 보통 나의 눈높이보다 더 내려다 봐야 해야 했던 그저 아주 작은 남자 인간.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솔직히 랜덤으로 뽑은 집에서 작은 인간이 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그래도 당황한 척 안 하며 작은 인간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Uh... Trick or Treat-?”
내 무릎 정도밖에 안 오는 이 작은 인간이 내 말을 알아들을지 걱정했는데 역시나, 못 알아들었다. 문을 두드렸을 때 ‘작은’ 인간이 나왔다는 것은 집에 부모가 없는 상황일 확률이 높다는 뜻. 게다가 이렇게 작은 인간이 나왔다는 것은 이 작은 인간은 외동이거나 이 보다 더 어린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된다. 원인이 어찌 됐건, 결론 적으로 이 작은 인간의 부모는 부재중. 게다가 이 시간 까지 안 자고 있거나 문을 두드렸을 때 서슴없이 문을 열었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고, 그 ‘무언가’를 미루어 짐작할 때 아마 부재중인 작은 인간의 부모일 수 있다. 즉, 내가 문 두드렸을 때 작은 인간의 부모가 온 줄 알고 문을 열어줬지만 그의 부모가 아니고 좀 흉측하게 생긴 녀석이 이상한 말을 지껄이니, 작은 인간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 잠, 잠깐...”
물론 내가 잠깐이라고 말한다고 울음을 그칠 작은 인간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 처음이라 당황할 수밖에. 내 모자에 눈알 녀석도 처음 보는 상황에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눈만 굴리고 있었다. 작은 인간 달래는 일 따위 기억 속에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를 뒤진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물건이 하나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저기, 이거 줄 테니까 제발 그만...”
내가 꺼낸 건 언제 샀는지 받았는지도 모를 할로윈 기념 주황색 롤-캔디였다. 작년에 샀는지 아까 산건지도 모를 것은 적어도 상한 건 아니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작은 인간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처음엔 롤-캔디의 효능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막막해졌었는데 다행히도 작은 인간은 조금씩 이것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조금씩 멈추고 몸이 경련이라도 온 듯 훌쩍이며 차차 진정되어갈 때 작은 인간은 내가 준 롤-캔디를 두 손으로 꼭 쥐어 받았다.
“...맛있게 먹어, 작은 인간.”
롤-캔디의 효능은 뛰어났다. 시끄럽게 울어 재끼던 작은 인간을 이렇게나 조용히 시키다니, 효능이야 다 말하고도 남은거지.
“그나저나 내가 받으러 온 건데. 오히려 주는 상황이 돼버렸네...”
조금 억울한 상황이 되긴 했지만 나는 천천히 롤-캔디를 핥는 작은 인간을 보며 대답했다.
“내년에는 정말 사탕 받으러 올 테니까 제대로 준비해 두라고.”
내 손이 작은 인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Happy Halloween.”
잠에서 깨어보니 1년이 지나있었다. 물론 1년 동안 잤다는 느낌은 없고, 하루 자고 일어나니 1년이 되버린 느낌. 또 자면 그렇게 오래 잘 것을 알기에 1년에 한 번씩 눈 뜬 김에 기지개를 펴고 바깥세상을 보기로 했다. 내가 자기 전의 그 시간대와 똑같을 걸 알면서도 세상은 참 흥미롭고도 요란한 밤을 즐기고 있었다.
난 어김없이 그 아무 집을 찾아갔다. 이번엔 꼭 사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작은 인간이 문을 열어 날 맞이했다.
“Hello? Trick or Treat-?”
싱긋 웃으며 그렇게 묻자 작은 인간은 그저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오늘도 우는 걸까 싶었는데 그저 날 바라만 보고 있는 작은 인간. 얼마나 눈 맞히기만 하던 침묵이 지났을까.
“그거 무슨 말이야?”
“...응? 뭐가?”
“그거 말야. ‘Trick or Treat’.”
“아... 뜻을 모르는 거야? 뭐 그냥... 사탕 안주면 장난칠 거야, 란 뜻인데.”
“아, 그럼 사탕 줘야해?”
“결론은 그런 거지.”
“음... 근데 지금은 사탕이 없어. 다음에 오면 줄게.”
“아? 다음까지 기다려야 해?”
“응.”
당당한 대답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1년 이란 하룻밤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듯 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사탕 대신 다른 거 줄래?”
“다른 거? ...어떤 거...?”
“알고 싶은 게 있으니 그걸 주면 돼.”
“...뭔데...?”
“바로, 네 이름.”
작은 인간은 조금 망설이는 듯이 보였다. 뭐 그런 거 아닐까? 엄마가 일러주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 알려주는 거 아니라던가.
“...일렌트.”
결국 작은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말해줬다. 이름을 안다고 영혼을 빼앗아간다거나 그런 일은 없으니 나는 작게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헤-, 멋진 이름이네.”
“너는...?”
“응? 내 이름?”
작인 인간 일렌트는 내 질문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흠,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으니 이제 내 이름도 말해라 이 소리인가? 흠, 내 이름. 내 이름...
“잭이야.”
“잭?”
“응. 사실 양옆으로 더 길긴 한데, 어떻게 불리든 상관은 없으니까.”
솔직히 이름이란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그런 하찮음조차도 의미를 부여하면 가치가 있어진다는 거... 누군가 말해줬던 거 같긴 한데, 기억이 안 나는 명언 같은 문구에 갑자기 온몸이 감정으로 싸여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헤-...”
감정...? 내게 감정이란 게 있던가...?
“멋진 이름이네에-”
작은 인간 일렌트 의 말 한마디에 나는 느껴본 적이 너무 오래돼서 생각도 안 날 감정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그리고 표현한다.
“그래? 고마워.”
내 몸속에서 무려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잭, 또 와. 그 땐 사탕 줄 테니까-”
해맑게 웃는-해 맑은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 였더라-작은 아이의 미소가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미소가 꿈에도 나와 나의 하룻밤 같은 1년을 가득 채워줄 것만 같았다.
“...응. 또 올게. Happy Halloween.”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짙게 느껴졌다. 이 느낌, 만일 틀리지 않는 다면 분명 비이다. 비가 내린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셔라. 유령도 맑게 게인 하늘을 좋아한단 말이다-나 한정으로 좋아하는 거일지는 모르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소 눈 따가울 정도로 밝았던 길거리가 조금은 횅해 보이니 역시 조금 더 으스스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비를 싫어한다고 이런 분위기까지 싫어하지는 않았다. 으스스한 거리, 나 같은 유령에게 훠얼씬 잘 어울리지 않는가. 어차피 젖지도 않을 몸이니 이 으스스함은 내게 상관없었다.
어쨌든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나는 오늘도 아무 집... 아니, 일렌트의 집을 찾아갔다. 물론 맞이하는 이는.
“잭...?”
어젯밤-물론 1년 전이다-에 본 것보다 조금 더 컸다. 정말 조금.
“Hello? Trick or Treat-?”
“...안 올 줄 알았는데...”
“...응?”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맨날 사탕 준비했는데 오지 않고...”
“......”
아아, 일렌트는 내가 1년이란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날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제길. 아쉽게도 그 기다림은 공감이 안 됐다. 난 공감이 안 될 정도로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본 적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잊혀 졌다고 믿는 감정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흐음, 우선 내 잘못인 거 같으니, 미안 사과. 하지만 너는 알아둬야 할 것이 있어. 나는 특별한 몸이라서 할로윈 데이만 움직일 수 있거든.”
“에...? 무슨 말이야?”
“즉, 난 1년에 한 번씩만 널 보러 올 수 있다는 말씀.”
“...어째서...?”
“신님이 그렇게 하래. 아무래도 날 싫어하나봐-”
일렌트는 그 작은 고개를 푹 숙여 자신이 기분 나쁘다는 것을 표현했다. 마음 속 숨기는 감정이라면 알아차리지도 못했겠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여 지면 기분 상태정도는 파악 가능하다고. 하아-... 한 숨을 한 번 내쉬고 나는 조금은 기대했다는 목소리로 톤을 바꿨다.
“저기, 그래서 오늘은 사탕 있어?”
난 3번째 방문이지만, 이미 3년이 지나버렸을 이곳에서 드디어 사탕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크든 작든 받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응 있어. 전부 녹아서 끈적하지만.”
“...? ‘끈적’해...?”
해명의 기회를 주기도 전에 일렌트는 집안으로 도도도도- 달려 들어가 곧 도도도도- 하고 달려 나왔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주는 정체 불명한 일명 ‘녹아서 끈적한’ 사탕.
“엄마가 오늘은 비 오니까 오는 유령 없을 거라고 사탕이나 쿠키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았어, 그래서 남은 게 그거야. 내가 잭 주려고 예전부터 갖고 있던 사탕...”
“아... 그래...”
그래도 내 전용 사탕이었다는 거네. 나는 씩 웃고는 일렌트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그리고 다음 할로윈 때도 올게. 그 땐 너무 일찍 사탕 준비해 놓지 말고 그냥 당일 날 준비해서 줘. 그러면 나 조금 더 기쁠지도-”
“헤... 응! 그럴게!”
내 말에 일렌트는 어젯밤 같은 해맑은 미소를-이름 바꿔야 한다. 해맑은 말고 달맑은 으로-내게 지어주었다. 아, 저 미소가 나를 부른다. 이렇게 나는 또 감정이란 소용돌이를 헤쳐야만 했다.
“그럼, Happy Halloween.”
“응. Happy Halloween-...!”
일렌트가 준 끈적한 사탕을 입에 넣어보았다. 달았다. 달고 맛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끈적한 그 맛은 내게 다음을 기대하게 해주는 강한 무언 가였다. 어쩌면 그 옛날 누군가가 말해준 자석 같은 이끌림, 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몇 번째 만남일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은 만났다. 발가락까지 쓴다면 셀 수는 있을 정도로 만났다. 그렇게 우리는 많이 만났다. 그렇게 안 믿겨져도 이젠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일렌트가 문을 열어줄 수 있을 정도니 정말 많이 만난 것이다.
“잭!”
“워어- 아직 문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내가 피식 웃어 보이자 일렌트도 피시식 웃는다. 저 미소, 어젯밤에도 본 그 미소. 난 저 미소를 보려고 이 발걸음이 끊기지 않나 보다.
“So-, Trick or Treat-?”
이젠 내 눈높이까지 눈을 마주칠 수 있어서 고개를 굳이 숙이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날이 갈수록-정확히는 해가 갈수록-키가 커지는데 혹 나를 앞지르고 나보다 더 크게 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이 되곤 한다. 나보다 일렌트가 더 커진다면... 흠, 앞으론 사탕 받으러 오지 못하는 건가.
“잭 사탕, 없는데?”
“음? 어째서?”
어제-일 년 전-까지만 해도 있던 사탕이 오늘 돼서 없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거지?
“잭을 위해 300개의 사탕을 준비했는데, 잭이 올 때까지 하나씩 먹고 나니 다 사라졌어.”
“내건데 왜 일렌트가 먹어.”
“내가 먹으면 사라지는 걸 알고 안절부절 하다가 일찍 오지 않을까 하고.”
순진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그렇구나 하고 말거 같나. 일 년에 딱 한 번만 맛볼 수 있는 단맛을 못 즐기는 것은 첫 만남과 두번째 만남으로 족하다고, 정말. 내가 어이없어서 킬킬 웃어보이자 일렌트는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 속에선 의기양양이란 반짝임이 쏟아져 내리는 듯 보였으니, 어찌할 바 모르는 눈알 녀석은 그저 눈동자만 도르륵 도르륵.
“그래-... 그랬단 말이지. 그럼 사탕이 없으니 장난을 쳐야겠네. Trick or Treat- 이니까.”
“무슨 장난...?”
“글쎄. 장난의 종류야 많지.”
그런데 장난을 쳐본지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 난다. 솔직히 나정도 살았으면 장난이 그냥 작은 인간들이 하는 장난이 아니게 되어버리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사고는 ‘일렌트는 더 이상 작은 인간이 아냐.’정도로 밖에 굴러가지 않는다. 이정도로 컸으니 더 이상 작은 인간이 아닌 건 맞잖아?
“결정했어. 내 장난은 악몽이야.”
“...악몽이라니?”
“어떤 악몽의 장난일지는 비밀. 하지만 장난이야. 그리고 다음에는 꼭 사탕 준비해 놔야해. 알았지?”
“......”
일렌트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건 다음엔 사탕을 준비해 놓지 않겠다는 건가? 음, 그건 좀 곤란한데. 뭐 상관없나. 어차피 내 악몽의 이름은...
“그럼, Happy Halloween.”
난 언제나 하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서 그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기나긴 잠을 청하기 위해 꿈나라로 쫓기듯 도망쳤다. 내가 그에게 장난치는 악몽의 이름은, 「There’s no next meet.」
자고 일어났지만 다시 잤다. 그리고 순식간에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물론 나는 하루 더 무리해서 잔 기분이지만, 하루 더 잤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었으니 난 상관없었다. 아, 나만 상관없지 세상은 2년 동안 상관 많았을지도. 어쨌든 나는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보았다. 너무 오래 잤는지 몸이 뻐근하게 느껴졌었다. 물론 느낌만. 다행히 몸은 금방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일어나서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그의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엊그제 밤이랑 다를 게 없었다. 오늘도 잭 오 랜턴은 어느 집이나 환하게 비추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많고 밝은 잭 오 랜턴 집들 사이에서 그의 집을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어두웠으니까.
“...일렌트?”
난 그의 집을 조심히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그러자 조금은 느린 반응으로 그가 집 문을 열어 재꼈다.
“...잭...?”
문을 열어 보인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초췌해 보였다. 워어, 엊그제는 이렇게 늙어 보이진 않았는데.
“...장난...끝났어...?”
“어? 어- 어! 안 끝났으면 안 왔을걸.”
그렇지. 장난이 단순히 안 만나기였으니, 안 왔으면 당연히 안 끝났겠지. 그리고 이것 보다 더 오래 잠드는 건 역시 당 부족이라서 나도 힘들고. 결국 장난 아닌 장난이 초췌란 단어로 막을 내린 거라고 해야 할까...
“다행이다...”
그 말을 한 일렌트는 갑자기 내게 달라 들어 나를 와락 껴안았다. ...어라?
“또 안 올까봐... 또 오지 않을까 무서웠었어... 보고 싶었다고...”
나에게 매달려서 하는 말들은 점점 울음소리에 묻혀서 불분명하게 들려왔다. 보고 싶었다는 소리인 거 같긴 한데. 음, 나는 그가 나를 왜 보고 싶어 한건 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저기 일렌트...?”
나는 그를 잠시 떼어놓고자 그의 어깨를 붙잡고 살짝 떨어뜨렸는데 이미 눈물 범벅이가 된 그의 얼굴 이였기에 나는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어라라, 이 비슷한 기분 어디서 느껴본 거 같은데... 이런, 오늘은 사탕 없는데...!
“작년에... 안 와서... 히끅... 올해도... 안 올까봐... 흐끅... 일부러... 잭 오 랜턴... 안 켜놓고.... 흐끅...”
“......”
“내가... 기다렸다고... 흑... 하루 하루... 기다리면서... 하루에 사탕 하나씩... 흐윽... 흐끅...”
“......”
“그래서... 사탕 600개... 흐끅... 아 아니, 730개... 많으니까... 말해줘...”
“...어떤 거.”
“...나 볼 때마다 하는 말...”
“Like a... ‘Trick or Treat-?’”
“그래 그거...”
그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잊고 있던 기억 중에서 ‘통보하지 않은 이별’은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잔인함을 악몽으로 포장하고 장난이라고 속여 선물해줬다. 그래서 장난이 그 장난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던 거 같다. 즉 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잔인하게 흔들어 놓고 장난이라고 대답한 꼴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가슴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일렌트가 왜 우는지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저 이유가 그러니 결과라고만 생각할 뿐.
그래 단지 그것뿐.
“So, Trick or Treat-...?”
하지만 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와서 사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왜 또 내 몸속에서는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일까.
“22번째, Trick or Treat!”
“그거 내 대사라고. 멋대로 하지 말란 말이야.”
“뭐 어때-”
그와 만난 지 스물두 번째-내가 안 왔던 날 뒤로 그는 우리의 만남을 첫 만남부터 일일이 세고 있었다.-밤이다. 스물두 번째... 아직 한 달도 채 안된 밤인데 어느 세 그는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참, 세월 빠르구나.
“오늘은 잭이랑 밖에 나가고 싶어.”
“응?”
“한 번도 안 나갔잖아. 나 매년 잭만 기다리다가 사탕 받은 적 없다고?”
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좀 놀라웠다. 그거 나한테 욕하는 거야 칭찬하는 거야.
“같이 나가자.”
결국 나는 계속 같이 나가자고 말하는 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뭐 나쁠 건 없겠지. 그것이 내 대답이었다.
밖은 언제나처럼 다를 게 없었다. 하늘은 어두운데 거리는 휘황찬란하고. 그 거리에서는 나와 닮은 유령들이 득실거리며 어슬렁 어슬렁 배회하고 있고. 참 볼거 없는 이 밤에 일렌트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사탕 받고 싶다고 달려갔다가 말도 못 꺼내고 내게 부탁해 버리고 마는 게 벌써 열 번째이다.
“헤헤- 잭은 정말 잘하네.”
“항상 너에게 하는 거였는걸.”
“그것도 그렀네-...”
그렇게 사탕을 잔뜩 받고 난 후 적막한 공원 벤치에 앉아 우리는 조용히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 있었다. 사탕 맛있지만 일렌트가 주는 것보단 조금 못 할지도.
“저기, 잭.”
“응?”
사탕을 맛있게 먹고 있던 중에 그가 나를 불렀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나도 너처럼 1년에 한 번만 깨어나서 돌아다닌다면 어떨까?”
“...하아?”
어이없는 질문에 나는 그저 다시 묻기만을 할 뿐이었다. 그 질문에 대답할 이유를 못 느끼겠는걸.
“그러니까... 너랑 같이 단 하루만 깨어나서...”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거야.”
그 질문이 어리석다는 거, 왜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묻는 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거야... 하루만 일어난다면... 잭을 매일 볼 수 있잖아...”
“...뭐?”
“난... 잭을 보기 위해 364일을 기다려야 해... 그런데 잭은 날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라며... 그러니까 나도 일 년에 한 번만 일어난다면, 나도 잭을 매일 볼 수 있는 거잖아...!”
“...이론상 그렇긴 한데... 어째서?”
“잭을 매일 보기 위해서.”
“......”
그의 이유는 너무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물론 대답이 된다. 1년에 한 번 깨어나는 유령이 된다, 왜? 일 년이란 시간의 기다림을 보내기 싫어서! 그럼 왜 일 년이란 시간의 기다림을 보내기 싫은가? 그건 하루라는 일 년을 매일같이 보내고 싶어서! 그렇다면 왜 하루라는 일 년을 매일같이 보내고 싶은가? 그건 날 보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날 보고 싶은가?
왜 그것에 대한 대답은 못 하는가?
“날... 왜 ‘매일’ 보고 싶은데?”
“...그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하니까.”
“...응?”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널.”
그렇게 말한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렇게 달려갔다. 나는 그를 붙잡지도 못 한 채, 대답도 해주지 못 한 채... 그렇게 스물두 번째 만남이 끝나고 말았다.
어쩌면 스물세 번째 만남이 되어야 하는 날 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짙게 느껴졌다. 이 느낌, 분명 비일 텐데 왜 기분이 더 찝찝하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그의 집을 가기 위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가는 그곳으로 향했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는 고백을 받으면 확실히 답해주라는 명령아가 남겨져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일 년이 넘어서야 그에게 답을 줄 수 있게 되어 참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물론 답은 정확히 결정했다. 그것이 그에게 잘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Trick or Treat-”
그의 집을 찾아가 말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그가 아닌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사탕 받으러 온 건가요?”
다른 사람의 상냥함에 나는 어버버 거리며 얼결에 사탕을 받아버렸다. 그러다가 내가 물어야 하는 단어를 잡아 입 밖으로 간신히 끄집어내었다.
“저기, 일렌트는 어디에...”
“일렌트요...? 그게 누구죠?”
“...매년 이 집으로 사탕 받으러 왔는데... 항상 이 집에 있던...”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줘야 하는 사람.
“아-, 저희는 올해 여기로 이사 왔어요. 아무래도 작년까지 이 집에서 살던 사람을 찾나 본데, 그 집 아들이... 세상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갔어요.”
“......”
일렌트가 죽었다. 어째서? 내가 대답을 제대로 주지 못해서? 아니면 정말 일 년에 한번만 깨어나고 싶어서...? 나는 터덜터덜 그 집을 등 뒤로 돌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말았다.
“나도 네가 좋지만... 그래도 인간으로 살아달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이미 죽은 목숨이라니. 이미 떠도는 유령이 되어버렸다니. 대체 유령이 된 그를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세상은 넓고 유령의 세계는 깊은데 도대체 어디에 가서 어떻게 찾으라고.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속은 왜인지 불에 데는 듯 뜨거웠다. 계속 자꾸만 뭔가가 북받쳐 오르는 것 마냥 답답했다. 또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아니, 날뛰면서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단지 그 말로 밖에 형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 머릿속과 내 뱃속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알지 못할 감정 때문에 손등에 차가운 무언가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밤공기는 차갑고 축축하고 질었으니까. 하지만 손등 위로 떨어지는 것들은 멈출 기미를 안 보였고, 나는 이미 손등 위로 떨어지는 그것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것의 이름은 바로, 눈물이었다.
얼마나 지났나.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세보자면 겨우 2일정도. 겨우 이틀? 난 처음으로 2년이란 시간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하루가 이렇게 길지? 난 왜 이리도 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일렌트는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 날 기다린 거지...?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입이 달렸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인 것일까.
“...보고 싶어.”
나는 대답했다.
“더 이상... 이렇게 기다리는 건 싫어...”
넌 지금껏 날 얼마나 기다려 온 걸까.
“말해주고 싶어...”
나도 눈물을 흘렸었고.
“대답해 주고 싶어...”
널 이렇게 그리워 한다는 것을.
“나도... 악몽을 꾸는 걸까.”
내 장난이 너에게 심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잔혹하고 정말 잔인한 짓이다.
“...이 악몽에서 얼른 벗어나게 해줘...”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이것이 답은 아니었지만, 이러면 기분이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혹시 이 손을 거두고 나면 네가 보일까란 일말의 희망인 것일까.
“......?”
일말의 희망...
“일렌트...?”
그것은 소위 기적이라 말하는...
“잠깐...!”
장난의 끝인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장난의 시작일까.
“일렌트...!!!”
나는 내 얼굴을 가리던 손 틈 사이로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내리고 그가 간 것 같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렌트...! 잠깐...!”
그가 보인다.
“일렌트!”
그를 붙잡아.
“......”
그를 세워서.
“일렌트...”
그를 부른다.
그러면 그는 날 바라볼까?
“...누구세요.”
“누구냐니...”
“누구신데 왜 절 잡으신 거죠?”
“...일렌트 아니야...?”
“누군데 제 이름을 아시죠?”
“...나 모르겠어...?”
“...네,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어째서, 라뇨.”
“어째서 날 몰라... 네가 날 알아야 내가...”
“......”
“...내가 제대로 답을 해줄 수 있는데...”
“......”
“난 이렇게 네가 보고 싶어서 달려오고...”
“......”
“네가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
“네가 보고... 싶어서...”
“......”
“보고 싶어서... 울고... 계속 울었는데...”
“......”
“...너는...”
“...절 좋아하시는 거예요?”
“...어?”
“절 사랑하시는 거냐고요.”
“...응.”
“......”
“널 좋아해...”
“......”
“널 사랑해...”
“......”
“처음엔 나도 네가 좋지만 너는 살아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어...“
“......”
“그런데... 내가 직접 기다림을 겪고 나니까...”
“......”
“말 그대로 악몽이야...”
“......”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줘...”
“......”
“네가 비록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난...”
“누구신데 내 마음을 훔쳐간 거예요.”
“어...?”
“누구신데 왜 날 그렇게 기다리게 했냐고.”
“...난...”
“잭, 정말로 날 사랑해요?”
“...응. 정말로...”
“날 얼마나 곁에 두고 싶은데.”
“...이 세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러면 이 세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있어줘야겠네. 일 년을 매일같이.”
“......”
“매일 사탕 받으러 다니면서, 매일 데이트 하면서, 매일 같이 있어야겠네.”
“응... 맞아 그래야 해.”
“그럼 가야지. 오늘부터 매일 해야 하니까.”
그가 내밀어 준 손을 살며시 잡아 보였다. 그 손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지만 따뜻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내가 잊고 있던 감정 중 가장 중요한 감정인 그것은.
“Trick or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