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단편] 그것의 이름은 '운명'
[1차/단편] 그것의 이름은 '운명'
※ 충청도 사람은 충청도 사투리밖에 몰라서 재현이 말투 어색주의
그날은 평범하게 길을 거니던 날이었다. 수능전에는 이런 오후시간의 산책같은거 꿈도 못꿨는데 수능이 끝나니 이런 자유시간은 더이상 사치가 아니게 되었다. 마이 프리덤이랄까!
"헉...!"
그렇게 길을 걷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나의 운명을...
뚜르르르르르르르-
딸깍.
"와 전화했나 가스나야."
"야야 리재현이 내 말 좀 들어봐."
"뭔디."
"내가 아까 겁나 잘생긴 남자를 봤어...!"
"...니 남자본거 자랑할라고 내한테 전화했나."
"아냐, 옆에 여자도 있어. 너도 보면 반할걸??"
"나가 와 반하는데."
"겁나 예쁘니까."
"이쁜지 안 이쁜지를 와 니가 판단하는데."
"그거야... 그 남자랑 여자가 나한테 뭘 줬거든."
"뭐 받았는데."
"내가 사진으로 보내줄게. 한 번 봐봐."
뚝.
[사진 전송중]
[전송완료]
따르르르르르르릉-
딸깍.
"니 어디냐. 퍼뜩 불어라."
운명을 만난 곳으로 그를 불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임청아...!!!"
"넘어지겠다 천천히 좀 와."
그래도 기어코 달려오는 그는 내 앞에 서서 헉헉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다 고개를 휙휙 돌리다가 손가락으로 누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여자가... 그 겁나 억수로 이쁜 여자가..."
"그래 맞아. 가서 '그거' 받아와."
"알았다... 내 받아 와주지."
숨을 돌린 그는 내가 말한 여자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자신도 하나 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그것을 받아왔다.
"겁나 이쁘더라..."
"그치? 나 순간 운명 만난 줄 알았다니까."
그는 그녀가 준 그걸 손에 꼭 쥐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갈끄가."
"언제가 좋겠어?"
"내는 지금 당장도 상관없는디..."
"음...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야."
"그럼 가자. 돈은 임청아가 내주겄지."
"...내가 내는거야?!"
내가 놀라서 바라보자 그가 아주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누님, 내가 이쁜짓 많이 할게요."
그가 써버린 어색한 표준어가 너무 웃겨서 순간 웃을 뻔했다. 하지만 간신히 웃음을 참고 정색을 깔고 바라봤는데 오히려 꽃받침하고 날 바라보는게 아니었나. 표정은 비장한데 말투는 웃기고 거기에 꽃받침까지 한걸 보니 어떻게 안 웃을 수가 있었을까. 결국 나는 그의 '이쁜짓'에 지고 말았다.
"알았다 알았어. 리재현이 예뻐예뻐. 이 누나가 졌다. 가자."
아 맞다, 우리가 받은 운명이 뭐냐면, 바로.
[초콜릿 뷔페카페 신규 OPNE. 50%세일 쿠폰]
이런걸 받았는데 어떻게 운명이 아닐 수가 있을까. 이런걸 준 사람이 어떻게 못 생길 수가 있을까.
결국 나와 그는 또 마음이 맞은 것이다.
* * *
"바로... 여기다."
신규 오픈 초콜릿 뷔페카페에 도착했다. 벌써 여기는 우리의 성지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지, 이미 성지지. 문 앞에서 세번 돌고 절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가 날 끌고 들어가 버려서 할 틈이 없었다.
"야야 봐라. 한시간 이용료 만원인디 쿠폰갖고 있는 사람은 오천원이라칸다."
이벤트가 적혀있는 칠판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너무 반짝거렸다. 나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한시간으로 족하는가 리재현."
"니는 어떤데."
"내 지갑사정을 보아하니 세종대왕님이 두분 계신다. 그럼 어째야할까."
"두시간 동안 이 썩도록 먹겠습니다."
"옳지."
내가 끄덕이자 그는 초코 디저트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자리부터 맡고 난 뒤에 진열되있는 초코 앞으로 갔다.
와... 진짜 대박. 초코로 안 되어있는게 없었다. 초코케이크, 초코과자, 초코아이스크림, 초코볼, 초코빵, 초코푸딩... 설마 음료수로 초코탄산같은 것도 있을까 조금 두려워졌...
"임청아 이거 좀 봐라!!!"
"ㅇ...왜...!!! 초코탄산이 진짜 있는거야...???"
"초코탄산? 그게 뭔디. 어쨌든 이봐라. 초코분수다!"
초코분수.
그 네 글자를 듣자마자 난 날아가다시피 다가가 그 실체를 확인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초코가 위에서 뿜어져 내려오며 얇은 막이 형성되는 이 분수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분수옆에 딸기와 마쉬멜로, 그걸 꽂아먹을 수 있는 꼬치가 있었다.
"초코딸기다!"
딸기 세개를 꽂고 초코막 사이로 돌돌 돌리니 갈빛이 딸기의 홍붉은 색 위로 사르르 흘러내렸다.
"세상에..."
언빌리버블. 정말. 이것은. 너무도. 환상적이잖아.
"와 겁나 대박이다..."
"진짜 최고아이가..."
그렇게 우리는 초코분수에 한참 눈을 못 떼었다고 한다...
"야야 큰일났다...! 우리 한시간 밖에 안 남았다 아이가!"
"헐...!"
초코분수만 바라보는데 한시간을 쓰고 말았다. 그런데 보고 보고 또 봐도 안 질리는 걸 어떡해...
"최대한 많이 담아. 뭘 담든 전부 초코니까."
"라져."
우리는 10분도 안 돼서 접시에 한 가득 담고는 자리에 앉았다.
"억수로 여는 천국아이가."
"천국뿐이겠냐. 여기가 바로 지상의 별이지."
"맞다 맞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초코 뷔페인 만큼 퀄리티도 대단했다. 만화나 광고에서 나오는 디저트만큼이나 예뻤고, 맛도 매우 좋았다. 초코케이크는 적당히 달았고, 초코볼은 진하게 달았고, 초코과자들은 고소하게 달았고, 초코아이스크림은 차갑게 달았다. 입 안에서 초코의 단맛이 부드럽게 녹아내려 아름다운 무도회를 자아내고 우아한 파티가 시작되는 환상적인 맛... 이건... 한 마디로...
"녹아내릴 거 같은 맛이야..."
"네말이 맞다... 억수로 환상적이네..."
이 천국에서 뼈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채 안 남았었다.
"뭐했다고 30분밖에 안 남았다카나."
"디저트 먹느라고 그렇지... 아, 뭐 마실래? 저기 보니까 핫초코랑 아이스초코랑 커피랑 우유 등등 있던데."
"그럼 내는 우유."
"초코 우유도 있을텐데 우유면 괜찮겠어?"
"초코 우유도 좋은데, 쿠키는 우유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제."
"아, 인정."
휘핑크림도 마음대로 올릴 수 있어서 잔뜩 올리고는 우유와 핫초코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가져와 줘서 고맙다. 자 봐라, 과자 맛있게 먹는 법."
"오, 어떻게?"
"과자를 비틀어 초코를 맛보고 우유에 퐁당."
"뭐야 광고 찍어?"
"잘 생긴만큼 제의도 많이 들어왔었는데 내 학교생활이 너무 바빠 다 거절했었다."
"으응, 네 접시 위에 디저트 내가 다 먹어버리기 전에 헛소리 그만하고 먹기나 해."
"네 누님."
그렇게 꿈만같은 30분이 지나고 뱃속은 초코로 달게 물들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 나와 그는 우리의 성지에 아쉬움만을 잔뜩 남긴 채 그곳에 세종대왕 두 분을 고이 모셔드린 다음에야 문 밖으로 간신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 * *
"억수로 최고였다."
"맞아. 다음에 또 올까?"
"오면 내야 좋지. 그때도 임청아가 내는 기라믄."
"야 리재현이, 너도 한번쯤 쏘지 그래? 내가 지금까지 쓴 돈이 얼마야!"
"니 돈 많다아이가."
"바닥날 지경입니다."
"그러믄 더치페이."
"...좋아. 더치페이 콜."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내민 그의 손을 보다가 마지못해 피식 웃으며 손을 마주쳐 줬다.
"역시 임청아가 최고다."
"그것도 맞는 말, 이지만 최고는 역시 초코지."
"내도 최고라 말해줄줄 알았는디 니말 반박할게 없네. 그래 초코가 최고다."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인정인정~"
즐겁고 달콤한 하루가 지나간다. 내일도 이런 아름다운 운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