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첫사랑 - 정우 시점
[진우] 첫사랑
중간고사가 저번 주로 끝이 났다. 끝났다고 너부러지는 것들이 한심하여 혀를 차고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자 책을 폈다. 시험이 끝났다고 흐트러지면 안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큰 짐을 짊은 우리에게 선조들은 공부의 끝은 없다고 하는데 어찌 연필 들기를 마다하는가.
...어쩌면 마지막으로 본 시험이 고전문학이라 나도 머리가 어떻게 된 걸지도 모른다. 조금의 휴식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안 쉬고 싶어도 쉬게 될 것을 굳이 난 왜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웃음이 흘러나와 아무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렸다.
아, 진우 보고 싶다.
* * *
수업 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칠판에 무언가를 적으시는데, 응...? ‘자습’?
“오늘 선생님이 회의일로 바쁘니까 이 시간만 자습 좀 할게. 어차피 시험 끝났으니까 한 번 정도는 쉬게 해주려고 했고. 영화보고 싶으면 영화보고 자고 싶으면 자고 공부하고 싶으면 해도 돼. 반장은 애들 조용히 시키고.”
저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교실을 유유히 떠나셨다.
‘자습’. 자습이라니. 차라리 수업을 하면 좋았을 것을 자습이란 이름으로 얼버무리게 되었다. 배운 게 있어야 복습이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으므로 예습을 하고자 다시 책을 폈다. 지금 잠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영화는 별로 보기 싫다. 내 눈앞에 있는 글자에 집중하며, 학습지도 펴서 문제도 풀어보았다.
응, 살맛나네. 누구는 미쳤다한들 내가 살 거 같은데 그 누가 트집 잡고 늘어지는가. 음, 한 명 정도 있으려나.
어쨌든 이 시간만 끝나면 점심시간이 온다. 오늘 점심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종이 치자마자 아마 볼 수 있는 얼굴에 머릿속에선 벌써 함박웃음이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자습시간에 좋은 점이 있다면 선생님이 안 계실시 종이 치기 전에 조금 일찍 반에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5분 정도는 눈 감아 주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됐달까. 그전에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나쁘지 않네.’로 생각이 바뀌었다.
저번 주까지는 시험이라서 내 부탁으로 같이 점심 먹는 것이 금지-점심시간에도 공부해야 하는 게 이유였다.-였었다. 시험 끝나고 오늘은 꼭 점심 같이 먹자고 매달렸던 그였기에, 나도 얼굴 마주보며 밥 먹고 싶은 마음이 태산만큼이나 부풀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종이 치고 나서 지나는 시간조차도 아까워 미칠 거 같았다.
종치기 1분 전까지는 가만히 있는 편이다. 그래도 곧 종칠 거 같을 때 쯤 일어나 살며시 교실을 나갔다.
몇 걸음만, 몇 초만. 그렇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울리자마자 반에서 뛰쳐나온 너.
“이쪽인데.”
급식실과 우리 반은 완전 다른 방향에 있어서 그는 역시나 반대 반향으로 가려고 했었다. 내가 불러 세우지 않았으면 달려가고도 남았을 것을.
“신난 얼굴이네.”
“어, 조금?”
“왜 신났는데?”
“음.. 아까 첫사랑, 아니. 아까 수학시간에 - 첫사랑 얘기더라.”
너를 만나면 꺼낼 첫말을 뭐로 해야 할지 몰라 평상시보다 더 신나 보이는 너의 표정을 주제로 잡았다. 당연히 너무 오랜만에 밥 먹는 게 너무 좋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주제 선정을 잘못한 듯하다.
첫사랑. 첫사랑이라...
“...누구였는데?”
“어?”
“누구였냐고.”
“누구긴, 수학선생님이지. 저기 계시네.”
아아, 그래 그랬구나.
둘이 눈을 마주치고 뭐라 뭐라 대화하는데 그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지칭하지 않은 듯.
이미 나도 다 알고 있는 듯.
“ - 또 우리 둘끼리 볼 것 같지만.”
대화가 끝난 거 같다.
“정우야, 가자.”
네가 부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
기분이 나빠졌다. 왜 기분이 나빠졌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잘 모르고 있다고. 상상이 내 마음을 저울질 하고 있다.
“정ㅇ...”
“나 선도부 회의 있어, 너 혼자 먹어.”
있지도 않은 회의를 변명으로 꾸며대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얼굴 보면서 웃으며 같이 밥 먹는 거,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이 먼저 행동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분명히 붙잡힐 것이라는 것을.
“정우야, 회의 공지 안 했잖아. 방송으로 너네 부르지도 않았고. 그리고 오늘은 처리할 일 없..”
“회의 있다고.”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있지도 않은 회의가 열리는 곳으로 사라졌다.
* * *
점심은 매점에서 사먹는 걸로 하였다. 회의 있다고 거짓말까지 쳤는데 급식실에서 마주치면 큰일 나니까, 동선이 겹치지 않은 선에서.
생각에 잠겼다. 왜 ‘첫사랑’ 이야기를 내게 한 걸까. 언제부터 첫사랑이었을까. 고등학교 들어와서 부터? 첫사랑, 왜 첫사랑이라고 지칭한 것일까.
“신경 쓰이게 진짜...”
그럼 첫사랑은 남겨두고 나보고 좋아한다고 저러는 거야? 좋아만 하니까 좋아한다고 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파편이 되어 머리를 긁어 어지럽히는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그러질 못하겠다. 이제 어떻게 마주보지... 어쩌면 당분간은 만나지 말던가... 아니면 정리를 하던가...
머리가 혼란스럽다.
당연한 거였을까, 그 날 점심을 먹은 후로 학교가 끝날 때까지 마주치지 않았다. 문자도 전화도. 그 무엇도.
그냥 그렇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였다. 어딘가 허전한 등교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침 조회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은 기분전환을 해볼 겸 자리를 바꿀 거야.”
선생님의 한 마디에 교실은 떠들썩해졌다. 기분전환 겸 자리바꾸기라. 별 의미 없는 거 같았다. 자리가 거기서 거기지...
거기서 거기인거 취소. 넷째 줄은 칠판이 좀 안 보이네.
어쨌건, 자리를 바꾸고 나서 지금은 점심시간 전 교시였다. 오늘 점심은 또 어떡하지. 매점에서 사먹을까. 종 치기 30분정도 남았네. 또 회의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지, 오기 전에 안 보이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되지...
아마 앞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도망갈 용기가 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니?”
활짝 열린 문에 서있는.
“물리 선생님이 연정우 학생 찾고 계세요.”
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물리 선생님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저 말은 분명히...
“선생님, 저는...”
“네, 저한테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펼쳐보였다. 당당하면 오히려 의심하기 어려운 사람의 심리란, 당황스러움에 가까울지도.
“...그래, 정우야 가봐라.”
“...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네가 있는 문 까지 걸어갔다. 나는 보이지 않을 불편함은 가득 담은 채로.
* * *
교실에서 나온 뒤, 우리 둘 사이에는 그저 침묵만 흘렀다. 당연히 물리 선생님이 날 불렀다는 건 거짓말이었는지, 나는 너를 따라 복도 끝에 있는 계단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계속 침묵만을 지켰다. 무슨 말을 꺼내야하는지 몰랐고, 어떤 말이 내게 올지 몰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우야.”
“...”
계단에 도착해서야 들리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또 답이 없었다. 나는 너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이 상황은 지금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너 지금 장난해?”
결국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한 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장난일리 없겠지. 그런데 장난 보다 더한 상황인 것을. 거짓말까지 치며. 너는 나를 이곳에.
“이게 뭐하는 건데.”
정말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나는 너에게 물었다.
“너가 날 피하잖아.”
“...”
너의 말에 나는 정곡이 찔렸다. 피하려던 거 사실이니까. 네 눈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서 그런가. 더 감성에 젖어 들기 전에 네가 말을 꺼냈다.
“정우야, 너가 날 자꾸 피하잖아. 이러면 너가 안 좋아하는 거 아는데 너가 자꾸 날 피하는 거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어. 미안해,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
잘못한 거...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지? 너는 그저 네 생각을 말한 거고. 그거 때문에 피하려고 했던 건 나고. 그래서 오히려 잘못하고 있는 건 난데?
“진짜 미안해. 너무 미안한데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 피하지 말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
“너 잘못한 거 없어.”
“...어?”
“너 잘못한 거 없다고.”
“정우야, 그게 무슨...”
“내가 혼자 너무 짜증이 나서 그랬어.”
“어?”
아 그래. 나 짜증났구나. 그랬구나.
이제 나도 몰라. 생각나는 대로 내뱉을 테야.
“너가 수학 선생님 얘기를 하는데 내가 너무 짜증이 났다고, 그 얘기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둘이 희희덕 거려서 더 화가 났다고. 내가 왜 짜증나게 너 첫사랑 얘기에.. 이래야 하냐고...”
“아니, 여기서 수학 선생님 얘기가 왜...”
“너 진짜 장난해? 왜 자꾸 말 꺼내게 해, 너가 그 쌤이 첫사랑이라며. 너가 영화 얘기하길래 내가 첫사랑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그 선생님이라며!”
아, 또 그 때 일 기억나 버렸어.
나 혼자 자폭해버리고 또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마, 그 다음에 네가 다시 날 부르지 않았다면, 내가 다시 너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을 고하는 말을 했었을 지도 모른다.
“정우야, 있잖아..”
“...”
“수학 선생님은 내 첫사랑이 아니라 그날 그 영화를 보여줬던 분이야.”
“...뭐?”
“너가 누구냐고 물었었잖아, 나는 너가 영화 보여준 사람 누구냐고 묻는 줄 알았어. 근데 우리 정우가... 오해를 한 거 같네?”
“...”
오해? 내가 ‘오해’를 한 거라고...?
나 혼자 별의별 생각을 하며 나 혼자 마음 접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 오해였다고? 아 잠깐, 잠깐만...
“정우,”
“말 하지 마, 너 조용히 해...”
급격하게 밀려오는 오만가지 감정 때문에 천천히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갈 곳 없는 걸 알면서도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할 수만 있다면 달려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 결국 뒤에 있던 벽에 등이 닿았다.
아 제기랄. 얼굴 못 보여줘. 죽어도.
“정우야, 왜 등을 돌려."”
“...오지 마.”
“싫어, 정우야.”
“오지 말라고...”
제길. 오지 말라고 해도 뒤에서 들려오는 저벅거리는 소리가 내 앞에서 멈추었다. 오지 말라 해도 안 올 거라는 것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차라리 죽고 싶은데. 나 혼자 쪽팔리게 생각하던 거 전부 감싸 안고 여기서 자살하고 싶은데. 여긴 왜 창문이 없는 거야... 혀라도 깨물어야 하나...
나를 보고 싶은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근데 난 보여주기 싫거든. 나는 있는 힘껏 벽에 붙었다. 마치 벽에 일부가 되고 싶기라도 하는 것처럼 달라붙었다.
그런데 손길대신 목에 닿은 낯선 간지러움에 놀라 힘이 풀어져버렸다. 내가 풀어지자마자 놓치지 않겠다는 손의 느낌이 날 잡아챘다. 그러자 보이는 그의 얼굴.
그리고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
“정우야.”
“...”
내가 대답이 없자 너는 다른 물음대신 내 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다가 두 손가락으로 내 턱을 올려 시선을 마주치게끔 한 거 같지만 나는 너를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잘한 거 하나 없는데 무슨 배짱으로 어떻게 너를 바라보는가.
“우리 정우가 혼자 오해를 했네. 그래놓고 나를 피하면 어떡해, 응? 선도부 회의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얼굴이 더 가까워지자 피하던 시야 안에 네가 들어와 더 이상 다른 곳도 못 보게 되었다. 이마가 맞닿아 앞머리의 느낌이 왔다. 코끝이 닿았다. 뭐가 좋은지 계속 웃고 있는 너의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
“...하지만 너가,”
“쉬이...”
뭔 말을 하려고 해도 네가 먼저 내 입을 너의 검지로 막아버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부끄러워 죽겠는데, 그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쉿, 정우야.. 미안해, 안 미안해?”
내게서 대답을 듣고 싶은지 잠깐의 여유를 준 그였기에 나는 짧게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미안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마음은 없었다. 내가 오해를 했다는 걸 알고 나자 나도 내 잘못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 잘못을 인정하자 그의 온기가 아랫입술에 맺혔다. 그 감각은 언제나 눈이 자연스레 감기면서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다. 언제나처럼 사고가 정지되어 그저 그가 당기는 대로 움직여버린다. 따뜻함과 상냥함에 지배당하면 숨도 쉴 수가 없다. 뒷머리가 감싸져서 그대로 또 그대로.
정말 마법 같은 그의 입맞춤은, 키스는. 내게 마약과 같은 달콤함이었다.
“정우, 하아.. 정우야..”
네가 나를 부른다. 나는 눈을 떠 너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제발 말해줘, 정우야.”
내가 멋대로 오해하고 만 것인걸, 내 잘못에 네가 더 매달리는 이유를, 알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해, 정우야. 좋아하는 만큼 걱정이 됐어. 그러니까 제발 앞으로는 말로 해주라. 제발 나 피하지마...”
나는 너의 말만 멍하니 듣고 있다가 너의 간절함에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의 간절함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지,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말할지를 몰라 그저 바라보기만.
“걱정 시켰으니까 내 소원 들어줘야 돼.”
“...어떤...”
“종 칠 때까지 나랑 있어.”
어차피 두고 갈 생각도 없었어.
잠시 떨어졌던 입술은 5분도 채우지 못한 채 다시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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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오님.... 저는 이제 죽으면 될거 같습니다...키히힣.... 연성이 너무 늦었네요.... 저번주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주에 또 개강이라...((사망))
감히 뭐라 할말이 없...없....(((((자살))))
글도 참....(((((죽자)))))))
쓸거 참 많은데 하하하하하하ㅏ하하하하하ㅏ하하핳하 늦어서 죄..죄...((죽음으로 사죄하자))
쿨쩍....앤오님제가마니조아해요....///하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