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종교마츠] 당신을 위하여

글쟁이문어 2019. 3. 28. 20:27

※ 미마님(@MIMA_castlavie2)의 종교마츠로 쓴 글입니다.

※ 주제 - 악마에게 현혹된 여신을 믿는 신부

※ 출처 - https://twitter.com/MIMA_cestlavie/status/1100368317858996224

 

 

[종교마츠] 당신을 위하여

 

 

 

 나의 여신님이시여.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넓은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감사함을 믿음으로 모아 이 한 몸 바쳐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한 줌의 흙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그 날까지도 나는 당신께 기도드릴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니 여신님이여. 부디 오래도록 이곳을 살피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귓가에 닿자 정신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눈이 천천히 뜨이자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밤이네. 다시 눈을 감기도 애매하여 간만에 달이나 볼까, 하고 팔을 휘적거리며 물 위로 올라가보았다.

 , 아름답다. 나는 까만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얼마 만에 보는 달인건지, 금세 저 하늘에 마음을 빼앗겨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마 다른 누군가의 방해만 없었더라면 이미 달을 향한 시 한 편을 적어 올려 보냈으리라.

 "~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면 좋을 텐데~"

 "...그럴 일 없습니다."

 "그런가~ 근데 여신님.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원래 밤에는 잘 안 나타나잖아!"

 ", 그게. 아무래도 누군가의 기도가 들려온 거 같...아서 랄까, 악마가 왜 여기 있는 거죠."

 "~ 기도라는 거 그렇게 큰 소리로 하는 거? 랄까, ? 나야 뭐~ 여신님 계신 곳은 어디든 있을 테니까?"

 "스토컵니까?"

 "꽤나 로맨틱한 대사였던 거 같은데?!"

 "전혀 아니었으니 돌아가 주시죠."

 "에에- 모처럼 여신님을 이 야심한 밤에 만났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 안됩니다. 근데 이리 말씀드려도 안 돌아가실 거잖습니까."

 "크으~ 역시 우리 여신님. 내가 여신님 좋아하는 걸 이리도 잘 알아요~"

 코를 손가락으로 슥슥 문질러 대는 이 요물은 흔히들 말하는 악마다. 하지만 악마치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신의 신성한 힘과 성수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 있기론 신의 힘이 먹혀들지 않는 악마는 힘이 아주 강하거나 아님 힘이 아예 없거나 인데, 내 생각에 녀석은 후자라 진작에 녀석을 막지 않았다. 녀석에게 힘을 쓰는 건 힘 낭비, 시간 낭비라 생각했다. 그래서 놔뒀거니 녀석은 시시때때로 나를 만나러 찾아왔다. 이 밤에 만남도 그런 연유이겠지.

 "여신님 있잖아."

 "?"

 "저 달 갖고 싶어?"

 녀석은 자신의 손끝으로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달을 가리켜보였다. 저 녀석이 참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달은 만물의 것이니 저 하늘에 있는 것이 마땅합니다."

 "- 그런가... 그래서 포기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자면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애초에 갖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습니다."

 "흐응..."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녀석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바라보지 싶어 나도 녀석과 눈이 마주쳤는데 녀석의 감정이 어린 눈빛이 보였다. 저 눈빛은 마치.

 "나는 욕심나는데."

 "?"

 "나는 달이 갖고 싶어."

 "..."

 "포기할 마음도 없고."

 그렇게 말하며 내게 가까이 날아온 녀석을 난 그저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차, 왜 피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깨달았던 건 녀석이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싸와 눈을 마주쳤을 때였다

 "여신님, 당신의 눈에 비친 그 달이 참으로 아름다워..."

 "악마..."

 "부디 나만의 달이 되어줘, 여신님..."

 그 때 녀석의 눈빛은 마치, 한순간 달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던 나의 감정이 담긴 눈빛과 똑같아 보였다.

 

  오전 예배시간이 다가오자 성당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있는 연못에서는 성당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내가 성당으로 갈 수도 없기에, 나는 이곳에서만 성당 사람들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를 하면 내 귓가에 간절함이 닿는다. 진심이 담긴 간절함이 닿으면 신의 신성한 힘을 조금씩 나누어줄 수 있었다.

 "기도한다고 전부 들어주지는 않아요."

 손을 모아잡고 눈을 감아 오늘도 부디 진심이 담긴 기도가 빌어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예배시간 인가봐?"

 기도와 달리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기분이었다. 기도가 닿길 바라는 마음과 방해받는 건 별개의 일이었나.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고 있어서 눈을 뜨지 않고 대답했다.

 "신성한 시간에는 악마와 상종하지 않습니다."

 "흐응- 그럼 좀 이따 올게?"

 오지 마세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녀석의 기척이 사라졌다. 갔구나. 이 시간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없는 편이 훨씬 좋았다. 그리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기도가 시작됐는지 허울 좋은 말들이 귀에 닿을 듯 말 듯 희미하기 들렸다. 오늘도 글렀구나. 지난밤의 기도는 그리도 선명하게 들려서 잠을 깨웠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선명하게 들리는 기도 듣기가 참 어려웠다.

 "...그 기도는 신부님 것이었나."

 신에게 몸을 바친 인간은 그냥 인간보다 신에게 한 발짝 더 가깝기 때문에 훨씬 더 선명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부님의 기도가 남들보다 훨씬 진심인 것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신부님의 기도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기도가 내게 닿기를 바라고 있다. 더 많은 간절함이 내게 닿아 더 많은 이들의 바람을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정말 평화롭고 안온한 세상이 만들어 질 텐데. 내 힘이 모자란 건지, 아니면 진심이 흑심으로 덮인 건지. 기도를 들을 수 없는 이유를 알지 못해 이렇게 답답해하고만 있다. 귀를 더욱 바짝 기울여 내게 진심이 닿는 이들에게 신의 신성한 힘을 조금씩 나누어 주고 난 뒤에야 예배시간이 끝났다.

 "여신님- 예배시간 끝났어?"

 녀석이 끝나는 건 귀신같이 알아서 찾아왔다. 천천히 오거나 아예 안 오면 더 좋았을 텐데.

 ", ... 오전 시간은 끝났습니다."

 "- 있잖아 여신님."

 "?"

 "기도, 안 들리지?"

 갑작스럽게 허점을 찌르는 물음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이런. 속내를 쉽게 들키면 약점 잡히는 건 어렵지도 않을 텐데. 재빨리 눈을 감고 평정을 찾고자 애썼다.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신이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 마음을 진정시키자마자 재빨리 미소를 찾아 지었다.

 "요즘 희미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나 그리 큰일은 아닙니다. 근데 그건 왜 물으시죠."

 "그냥. 직접 성당으로 가서 들으면 훨씬 잘 들리지 않을까하고."

 "...글쎄요. 저는 이곳을 빠져나가 본 적이 없고 또 빠져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거야 여신님의 힘의 근원지가 이 연못의 성수라 그런 거지. 근원지가 끊기면 신성한 힘을 못 쓰잖아."

 "물론 그렇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저리도 나불거리는 걸 듣고 있자니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알 수 없는 채로 바라보기만을 줄곧, 한참이 지나자 녀석의 입이 열렸다.

 "그럼 있지~ 힘의 근원을 바꾼다면?"

 "...?"

 "알잖아 여신님. 내가 신성한 힘에 면역이 있다는 거. 사실 정확히는 안이 텅텅 비어있어서 막을 힘이 없는 거지만~ 이건 성수에도 해당된다고?"

 "그래서요...?"

 "내가 성수를 텅텅 빈 안쪽에 가득 채워 넣을게. 그럼 나도 성수와 비슷한 파장을 낼 거 아냐? 그럼 나로 인해 여신님 움직일 수 있는 거 아님?"

 이상한 이론을 떠들어대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녀석을 보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성수로 가득 채운다고? 악마가?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고...! 물론 녀석에게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 알고는 있지만. 굳이 어째서 이렇게 까지...?

 "...해본 적 없는 일이에요."

 "그야 도전해 본적이 없으니까 그렇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몰라요."

 "그러니까 해보자는 거고~"

 "왜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그야-..."

 녀석이 내게 다가와 지난밤처럼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싸와 눈을 마주쳤다.

 "여신님은... 내 달이잖아?"

 "..."

 "물론 만물을 위해 그 자리에 있어줘야 하지만. 가끔은 괜찮잖아? 원하는데 있어도. ?"

 악마의 유혹이란 건 이런 걸까. 듣는다거나 하는 것이 안 된다는 것을 이리도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마음이 끌릴 수 있을까. 마음 속 깊이 묻어두어 자각도 못했는데 녀석은 어떻게 내 열망을 이리도 자극할 수 있었을까.

 "밑져야 본전이잖아~ 솔직히 여신님께 손해 가는 것도 없고! 어때?"

 녀석이 내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그 손을 잡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내 마음은 결정된 사항이었다.

 나는 녀석이 내민 손에 살며시 손을 포개어 올렸다.

 

 녀석에게 성수를 주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방어를 위한 공격이 아니라 종이에 물 스며들듯이 주입하니 온전히 그 힘이 다 들어갔다.

 "어떠신가요...?"

 "으음- 잠깐만..."

 녀석은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펼치더니 연못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나는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헤에... 이런 느낌인가?"

 "뭘 하고 계신건가요...?"

 "? - 어떤 파장이 맞는지 제어보고 있었어."

 저걸 저런 행동으로 알 수 있을까. 반복하고만 있는 동작을 몇 번 하다가 녀석이 갑자기 활짝 웃어보이곤 내게 손을 내밀어보였다.

 "뭡니까?"

 "이제 여신님이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서!"

 그 말에 머뭇거리다 호기심 반 긴장 반으로 손을 올렸더니 녀석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품에 안아들게 했다. ...! 안긴 게 놀라서 버둥거리자 녀석이 두 팔로 꼭 안아 진정시켜주었다.

 ", 여신님. 이 느낌이지?"

 ".... 확실히..."

 녀석이 품은 성수의 힘 때문인지 잔잔한 연못 속에 있는 거처럼 안정되고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힘의 근원이 옮겨졌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인 걸까.

 "오후 예배시간은 언제지?"

 "곧 시작되긴 합니다만..."

 "그럼 바로 성당으로 가야하는거지?"

 ".... 가고 싶습니다."

 "그럼 예배 끝나고 나랑 데이트하면 안 될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뭐어- 여신님 이제 나한테 이렇게 안기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쟌?"

 그 말에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니 녀석은 오히려 여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녀석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걸까. 작게 숨을 내뱉곤 대답했다.

 "마음대로 돌아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원하는 곳에 한 번 쯤 발을 들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흐응- 그 마음을 좀 더 키우면 이곳저곳 갈 수 있을 텐데."

 "헛소리 말고 가기나 하죠."

 "네이 네이-"

 내 말을 잘 알아듣긴 한 건지 녀석은 나의 어깨와 다리를 두 팔로 단단히 감싸고 안아들어 하늘을 날았다. 처음 맞는 하늘의 바람은 연못에서 맞던 바람보다 훨씬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늘 올려다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니. 마치 하늘을 마주하는 신이 된 기분이었다.

 "하늘을 처음 날아본 소감은 어때?"

 "...나쁘진 않네요."

 "그럴 땐 좋다, 라고 표현하는 거지~"

 "...당신은 어떤데요?"

 "나는 엄청 좋아~!"

 "그러신가요..."

 "! 나의 달과 함께 있어서 너무 행복해..."

 "..."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녀석에게 일일이 대꾸하면 왠지 내가 나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성당에 도착할 때까지 묵묵히 그 하늘을 즐기기만 했다. 언제까지고 즐길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지금을 만끽하고 싶었다.

 얼마나 만끽하고 있었을까, 녀석이 고도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 거의 다 왔나보다. 궁금해 하지 않아도 성당 근처에 도착했다는 것을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도착했어."

 "고맙습니다..."

 녀석에게서 내리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성당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처음 마주한 성당의 모습은 굉장히 거대하고 화려했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보이지도 않는 신께 기도를 드리고, 신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겠지. 어쩌면 서로가 미련했을지도. 또 어쩌면...

 "여신님."

 "?"

 "이제 강림할 시간이야."

 생각이 흩어지자 녀석이 내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망설일 이유도 명분도 없던 나는 녀석이 내민 손을 꼭 잡았다.

 

 녀석을 따라 성당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 쪽 정면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보였다. 우리는 그 곳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우리 모습은 안 보일거야."

 "그런가요?"

 ". 대신에 여신님의 힘을 조금 쓴다면 여신님은 보일지도 모르지?"

 녀석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런가. 신의 신성한 힘을 쓴다면 보일 수도 있구나. 나는 녀석과 함께 그들이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는 십자가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았다. 이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기를. 그렇게 눈을 감고 빌고 있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신님...?"

 그 목소리는 지난 밤 간절히 기도했던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아아, 누군지 알거 같아. 눈을 살며시 뜨고 바라보자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그 분.

 "신부님!"

 당신을 이곳에서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줄 몰랐다. 나는 기쁜 마음에 모았던 두 손과 두 팔을 넓게 펼쳐 신의 신성한 힘을 넓게 퍼뜨렸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내 모습이 보이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욱 큰 소리로 나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그들의 기도를 듣고자 하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주기 위해 나는 내 선택과 의지로 여기에 왔다.

 그런데 어째서 왜 아직도 기도가 들리지 않는 거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이렇게 모두가 보이는데. 나는 여전히 귀가 뚫리지 않은 것처럼, 누군가 귀를 막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기도가 잘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내 귓가에 들려오는 건.

 "아아- 즐거워라-"

 내 뒤에 서있는 악마의 목소리.

 "..."

 ", 여신님- 신의 신성한 힘을 뿌려야지 않아?"

 "그렇죠... 하지만..."

 "아아- 아직도 안 들려?"

 "그게..."

 "괜찮아. 내가 여신님 대신 기도를 들어줄게."

 "...?"

 "몰랐어? 나 여신님이랑 계약해서 여신님과 같은 힘을 쓸 수 있거든."

 녀석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하던 사이, 녀석은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나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뿔과 꼬리를 숨기고 내가 입은 하얀 옷으로 바뀌자 영락없이 내 모습이었다.

  무슨 말이던 녀석을 향해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신부님을 바라보자 내게 향했던 시선이 녀석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설마 내 모습이 안 보이는 거야...? 움직이려고 하자 힘이 점점 빠져나가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녀석이 내 입과 힘을 봉인시켜 놓고, 나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서 활짝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여."

 그 입 닫아줘.

 "여신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구제해주겠노라."

 제발 그만해.

 "그러니 원하는 것은 모두 지금 말하라."

 그만 말해줘.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   *   *

 

 

여신님이 쓰러졌다. 그렇게 충격 받을 일이었나. , 신의 신성한 힘을 빌려 쓴 것에 대한 결과겠지.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여신님의 모습을 똑같이 복제했는데 여신님이 쓰러진 탓에 내가 힘을 못 받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네?

 "악마..."

 "~ 신부님!"

 내 모습이 보이자 신부님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인자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더니, 저 순진한 눈에 증오를 심고 계셨네. , 당연한 일인가?

 "지금은 보는 눈도 있고- 어차피 여신님이 쓰러져서 신부님 외에는 날 보지 못할걸? 감정 흐트러지기 전에 어서 예배부터 끝내시지?"

 그래, 아마 저 인간들 눈에는 여신이 강림했다가 사라진 걸로 보일걸? -, 하고 콧방귀를 뀌어 보이니 신부님은 다시 평정을 찾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하, 보이지 않던 신의 등장에 이렇게나 열렬해질 줄이야. 재밌네, 보기 좋아. 나는 여기서 친히 기다려줄게. 신부님께 하고 싶은 말이 좀 있어서 말이지.

 열렬했던 예배시간이 끝나니 인간들은 성당을 하나 둘 나갔다. 그렇게 텅텅 비자 신부님과 나, 그리고 아직도 쓰러져 있는 여신님 셋만 남았다.

 "신부님~"

 "악마... 여기 뭣 하러..."

 "뭐하긴! 당연히~..."

 "이곳은 네가 못 들어오는 곳인데 어떻게 들어온 것인가..."

 "..."

 그래, 나는 이곳에 못 들어왔다. 들어 오려하면 신성한 곳이란 이유로 튕겨져 나가진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나 이곳 엄청 좋아하는데! 근데 저 신부님은 날 여기 못 들어오게 막아 놓기나 하고!

 "당연히 여신님의 힘으로 들어왔지~ 믿음으로 힘을 얻는 걸 여신님 혼자 독점하는 건 이기적이쟌? 나도 힘 얻고 싶다구~"

 "말 같잖은 소리를..."

 '신의 신성한 힘' 100퍼센트 완벽한 신의 힘이 아니란 말이야! 신 혼자는 절대 못 써! 인간들의 기도와 믿음을 빙자한 간절함이 50퍼센트 정도는 있어야 신의 계급을 받은 녀석들은 다 쓸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대량의 믿음과 간절함만 받는다면 그까짓 힘은 충분히 쓸 수 있는데...!

  나 같은 악마는 인간들을 하나씩 일일이 꼬셔야 하지만, 이런 커다란 성당은 인간들이 알아서 대량의 믿음을 가져와 준다. 그래서 이렇게 커다란 성당에는 서있기만 해도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는데, 저 망할 신부님 때문에 내가...

 "하지만 말야- 내가 이곳에 이렇게 들어 올 수 있게 된 거 신부님 덕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너는 여신님의 힘으로 들어온 것이라 말하지 않았나."

 "하하- 그 도움도 있었지만- 애초에 난 원래 여신님께 다가갈 수도 없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옆에..."

 "그거, 신부님이 기도 드렸잖아."

 "...내가?"

 "- 간밤에 신부님이 기도드렸던 거. 나도 듣고 있었으니까-"

 헬쭉- 웃어보이곤 쓰러진 여신님께 다가갔다. 역시 내가 여신님의 힘을 많이 가져가서 쓰러지셨네. 지금 이곳에 믿음을 줄 인간들도 없기도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성수의 힘으로 그 분을 깨우는 건 턱없이 부족한 일이었다. 하긴 나는 성수의 힘을 무한대로 낼 수도 없을 뿐더러, 근원을 바꾼다는 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그 분을 안아들고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계속 계시면 분명 소멸당할 거니까. 더 얘기 나누고 싶다면 연못으로 와, 신부님~"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못 참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좋아서 손이 떨렸다. 아아, 죽여 버리고 싶은데 그럼 여신님께 미움을 사겠지? 신부님도 보아하니 나를 죽이고 싶나 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신부님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나약해빠진 십자가를 두 손에 꼭 쥐고 기도를 드리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에 상종할 이유 따위 없었다.

 

 여신님을 연못으로 데려가 담갔더니 저절로 잠식하였다.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처음 여신님을 만났던 것이 기억났다.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우연찮게 여신님이 계신 연못을 바라보았다. 기도를 듣고 있던 여신님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범접할 수 없는 하늘의 달과도 같았기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큰 용기 먹고 다가가면 그 멀리서도 성수의 힘이 사정없이 공격해왔다. 그래서 여신님을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정말 만족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 최대의 행복이라 생각하며 바라보기만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여신님께 다가가도 공격당하지 않을 거 같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갔다. 예상대로 성수의 힘이 나한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성수가 공격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내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천천히 여신님께 다가갔다.

 "안녕 여신님?"

  "...악마?"

 내가 악마란 이유로 잔뜩 경계심 받아버렸지만 어째서인지 여신님의 직접적인 공격에도 전혀 다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열심히 공격당했지만 전혀 아프지도 않았다. 결국 여신님은 날 공격하는 걸 포기하시고 내가 나타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신님~"

 "또 오셨습니까."

 "! 여신님 보고 싶어서!"

 "아무래도 당신은 텅텅 빈 것 같습니다."

 "텅텅?"

 ". 당신이 제게 올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은 신의 신성한 힘을 막을 힘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흐응..."

 여신님은 내가 공격당하지 않는 걸 '텅텅 비었다.'라고 표현하셨지만, 글쎄. 과연 나는 텅텅 비었을까. 성수가 저항하지 않는 힘. 여신님께 다가오기 전에는 분명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내 힘이 정말 전부 텅텅 빈 것일까?

 텅텅 비었다면 채워야지. 명색에 악마인데 무언가를 이루어줄 힘도 없이 누군가를 유혹하여 계약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중에 힘을 채우기에 아주 적절한 분이 내 옆에 있었다. 계약을 이용하여 그 분의 힘을 얻는다면 나는 그 분도 갖는 것이 되는 거 아닌가. 다가갈 수도 없던 시절보다야 지금이 훨씬 행복하지만, 이보다 더한 욕심이 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나의 달을 가질 수 있다는데. 이 기회를 놓치는 건 정말 멍청한 이의 짓이 아닐까.

 그래, 여신님과 계약하자. 계약해서 여신님의 영혼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자. 솔직히 여신님을 상대로 계약하는 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한 평생 누군가를 유혹하는 일을 해왔었으니 걱정은 없었다. 여신님과 계약하기, 그것을 최종 목표로 삼자 낯익은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여신님께 다가올 수 있었던 아주 결정적인 이유가 담긴 그 신부님의 기도가.

 「 나의 여신님이시여.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넓은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감사함을 믿음으로 모아 이 한 몸 바쳐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한 줌의 흙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그 날까지도 나는 당신께 기도드릴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니 여신님이여. 부디 오래도록 이곳을 살피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라니."

 웃겼다. 그 기도가 내게도 들리던 그 날 밤, 나는 너무 웃겨서 배꼽잡고 웃었다. 난 내가 텅텅 빈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텅텅 비어있던 건 신부님이던데? 아하하- 저런 기도를 매 밤마다 하고 있었으니 내 힘이 무효화될 수밖에.

 "내 힘을 악의 힘이라고 인지하고 없앤 거잖아!"

 하하- 나를 성당으로 들이는 일은 그렇게 혐오하더니 그런 기도를 드리며 여신님 옆에 나를 두게 하였단 말이지. 그건 어리석은 신부님이 자초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걸 있는 그대로 이용해드려야죠. 나도 머리 굴릴 줄은 안단 말이지?

 

 회상에 잠겨있다 보니 누군가가 오는 것을 몰랐었나보다. 그러나 누가 왔는지는 눈감고도 알 수 있었다.

 "- 와주셨네, 신부님?"

 "...여신님은 어디계시지."

 "회복하러 가셨어. 걱정 마, 해를 끼치진 않았으니-"

 "..."

 "워워-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지으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날라 간다구?"

 "나는 대화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럼 뭐 하러 온 건데."

 "악마를 처단하러 온 것이다."

 "- 나를?"

 "이 이상으로 여신님을 흉내 내는 짓은 없어야하지 않겠나."

 "흐응-... 근데 이를 어쩌나? 나 이미 여신님이랑 계약했는데?"

 "...?"

 "뭘 그리 놀라? 내가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아까는 나 때문이라 하더니..."

 "그것도 맞고."

 "..."

 "자자, 이 몸이 친히 고해성사해 줄 테니 잘 들어. 한 번 밖에 안 말할 거니까 딴 짓하면 안돼요~"

 신부님께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의 기도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부터 내가 여신님과 계약했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여신님이 내 손을 잡았던 그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계약이 성립되었다. 아무리 내가 텅텅 비었다지만 본래 악마라서 계약정도는 눈감고도 할 수 있단 말이지. 원래는 소원 같은 걸 이루어주거나 그럴만한 힘이 필요하지만, 뭐 어때. 여신님이 원하는 소원은 그런 무지막지한 힘이 없어도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소소한 거였는걸.

 진실을 숨기고 오로지 당신만을 위하듯이 아름답게 덮어 말하자 안타깝게도 세상 물정 모르는 가여운 여신님은 나의 달콤한 꼬임에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성수의 힘을 내 안에 가득 주입해주었다. 텅텅 비었다는 걸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성수의 힘이 들어오자 확실히 속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묘한 쾌감에 기분이 아찔했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여신님이 의존할 수 있는 힘의 파장을 찾아내었다. 성수의 힘은 여신님 힘의 근원지이며 여신님의 생명줄이기도 하니까 여신님은 온전히 나한테만 의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때?"

 "무엇이..."

 "여신님이 나한테만 의존할 수 있게 되었다니까?"

 "..."

 "~? 당신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고 따르던 분이 이제 나없인 못 산다니까?"

 "그래서... 널 처단하면 안 된다는 건가..."

 "그렇지~ 이제야 말이 통하는 거야?"

 "..."

 내 이야기를 드디어 이해해준 신부님이 아득바득 이를 갈고 있는 게 보였지만 눈감고 무시했다. 하하- 이보다도 합리적인 계약이 또 어디 있을까. 신부님 덕에 힘은 사라졌지만, 잃은 것에 비해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여신님을 옆에서 볼 수 있고 여신님의 힘을 빌려 쓸 수 있고 여신님은 이제 내가 없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저 망할 신부님은 내 털끝하나 건들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여신님은 내 것이다. 그 분의 영혼까지도 모두, 내 것인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 신부님."

 "..."

 "돌아가서 지금까지처럼 여신님 믿는 인간들을 잘..."

 "여신님..."

 "...?"

 신부님이 그 분의 이름을 부르며 시선이 향하는 곳은 나보다 더 뒤 쪽이었다. 그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어느 세 여신님이 수면 위로 올라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드디어 일어나셨구나. 당신을 보고 있자니 설레는 감정이 어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여신님~ 이제 일어났어? 보고 싶었어!"

 나는 해맑게 웃어보였지만 여신님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리고 여신님의 시선조차도 내게 향하지 않았다. 나를 두고 어딜 보는 건지. 기분이 나빠져서 당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 끝에는 신부님이 있었다.

 "...여신님." "돌아가 주세요, 신부님."

 "하지만..."

 "나중에 신의 부름을 이용해 부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돌아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여신님의 말에 망부석 같았던 신부님은 끝내 발길을 돌렸다. 그제 서야 여신님의 시선이 오롯이 나에게 닿았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악마..."

 "! 여신님~"

 "저는 왜 쓰러졌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씨익 웃어 보였다.

 

 누군가의 기도가 귓가에 닿자 시선이 한 곳을 가리켰다. 눈을 천천히 옮기자 보이는 것은 한 줄기의 빛이었다. 밤인데. 다시 눈을 부벼 보았지만 간만에 빛이 보여 날개를 펄럭거리며 빛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 아름답다. 나는 까만 연못에 떠 있는 커다란 달을 보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달인건지, 금세 저 연못에 마음을 빼앗겨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마 다가갈 용기가 없었더라면 이미 어둠뿐만 있는 저 하늘로 도망가 버렸으리라.

 "좋아해, 여신님."

 신부님께 고해성사 했듯이 당신께도 지금까지의 내 모든 걸 고백했다. 당신을 처음 본 그 날부터 지금까지. 설사 미움을 받더라도 나는 눈앞에 있는 당신을 이렇게나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

 "나를 바라봐줘."

 "바라볼 수 없습니다."

 "어째서?"

 "저는 이제 당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신뢰 안 해도 돼."

 "믿음은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걸 져버리라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계약했잖아. 그런 거, 우리 사이엔 쓸모없는 걸."

 "그래도 신뢰하지 않겠습니다."

  한 없이 단호하게 굴지만 나를 내치지 못 하고 있는 여신님의 마음은 여리게 보였다. 근데 그게 더 매력적인 걸! 아아, 사랑스러워라. 당신은 내 것이 된 지금조차도 나는 당신이 내 것이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

 "왜 저를... 바라신건가요..."

 "그거야 아름다웠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였습니까.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취해 제 행세를 계속 하시지 그러셨나요."

 "~ 그거랑은 또 다른 문제지. 그건 오랜만에 얻은 힘에 취한 것이었고."

 "오랜만이요...?"

 ". 여신님이 나한테 '텅텅 비었다'고 말했었잖아. 말 그대로 난 텅텅 비어있었는데 성수로 힘을 얻었지? 근데 그건 여신님을 위한 힘이었어. 나는 오히려 성수에서 힘을 얻은 여신님의 신성한 힘을 쓸 수 있었어."

 "고작 그런 이유로..."

 "게다가 여신님은 안 들렸던 기도들, 내게는 다 들렸었으니까. 악마는 좋은 기도 나쁜 기도 안 가린다고? 그래서 여신님 대신 내가 모습 바꾼 거였다고. 신의 신성한 힘을 쓰면 모든 기도들을 들어줄 수 있잖아?"

 "...그건 함부로 쓰는 힘이 아닙니다. 간절함이 닿아야만 쓸 수 있는..."

 "여신님이라면 성당을 가도 안 들릴 건 안 들린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

 내 말에 여신님은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욕망이 앞섰다는 걸 알고도 왜 가만히만 계시는 건지. 설마 죄책감 같은 걸 느끼시는 걸까? 하하, 그건 너무 우스운데?

 "후회하고 있어도 계약을 무를 수는 없어."

 "계약은... 절대적임을 압니다."

 "! 잘 알고 있네!"

 "악마..."

 "여신님, 내 이름 오소마츠인데, 그렇게 불러주면 안될까?"

 이름 없이 계약을 한 상태는 사실 엄청 불안전한 상태이다. 이름을 알면 서로에게 각인이 되어 몸까지도 전부 갖게 되는데, 이름을 안 불렀으니 아직 여신님의 영혼만 내 것인 거다. 몸까지 한 번에 갖는 것도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손잡는 걸로 계약하는 거에 이름까지 넣었다면 바로 계약이란 거 들켰을 테니까. 다 된 밥에 재 뿌려서 계약 무르는 것보다 이름 안 부르는 게 낫지. 어차피 이름 정도는 나중에 알려도 괜찮겠지 싶었다.

 쵸로마츠. 당신에게 반한 이래 그리도 아껴 부르려고 쟁여두었던 당신의 이름.

 당신 없이 살아가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이젠 당신도 나 없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아하하, 이런 결말을 얼마나 바라왔는지! 나도 당신도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을 이 상황을!

 "...제 이름은 아시나요."

 "물론이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름인데!"

 "...어리석으시군요."

 "차마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었다고 표현해줄래?"

 "말 같잖은..."

 나는 그저 씨익 웃어 보이기만 했다. 그것이 나의 최선의 방어였으니까. 아아, 이젠 무를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어.

 "약속할게. 신뢰가 없는 일방적인 약속이지만, 여신님을 위해 약속할게. 내가 여신님에게 빌려 쓰는 이 힘은 이제 절대 나쁜 곳에 쓰지 않아."

 "믿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지켜보기는 하죠." "이제 평생 지켜봐야 하는데 무슨 걱정이람?"

 "그런가요..."

 씁쓸한 미소가 걸린 저 낯빛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 내가 역시 잘못된 걸까? 아냐, 이건 당연한 거다. 지독한 콩깍지가 쓰인 나에겐 당연한 것이다. 당신이 나를 바라본다. 아아,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 눈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부르려고 저 작은 입이 나를 위해 사랑스럽게 달싹인다.

 "오소마츠."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에 황홀감에 젖어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 사랑해 나의 쵸로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