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로 키우는 글

[1차] 여장 - 3. 내꺼

글쟁이문어 2019. 8. 30. 10:25

[1차] 여장 - 3. 내꺼

 

 

 


 "...이게 뭐라고?"
 "정우가 입을 옷."
 그가 내게 생글생글 웃으며 준 옷은 굉장히 단정하고 아름답고 단아해 보이는 하늘색 옷이었다. 하늘색 배경인 것이 색깔은 곱네... 그 위이 수놓아져 있는 우아한 흰꽃은 나랑 그리 어울려 보이지도 않는데.
 "기모노...인거야?"
 "시내 구경하다가 발견해 버려서. 생활 한복처럼 편하고 가볍게 입을 수 있다나봐. 원피스같기도 하고."
 여장을 아껴둔다더니 그대로 잊길 원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옷까지 사와서 나를 당황시킨다.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다... 애초에 나 혼자할 수 있는 여장기술은 지금 주어진 옷을 입는 거 뿐인데... 아, 그러고보니 옷 말고는 있는게 하나도 없었다.
 "나... 가발 없는데..."
 "없어도 상관없어. 난 이 머리가 더 좋으니까."
 그와중에도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사락사락 넘겨주는 그 손길이 좋았다. 그래서 괜히 더 거절하기 힘든가보다. 나는 큰 용기를 얻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리고 네가 준 옷을 꼬옥 잡고는 말했다.
 "갈아입고 올게."
 "응. 기다리고 있을게."
 그가 기다린다며 내 이마에 입을 맞추어주었다. 그런데도 부족했는지 빨리 다녀오라며 귓가에서 속삭여주기까지 했다. 이런 너를 두고 내가 무슨 핑계를 더 대어 이겨야 하는가. 그냥 내가 완패인거지.
 생활한복 같다더니 확실히 입기는 쉬웠다. 일본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기모노 입는 과정은 정말 길고 섬세하였지만 그만큼 어렵지 않게, 그저 안쪽 지퍼만 위로 올려주면 끝이었으니 정말 순식간에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볼 때에는 정말 나랑 안 어울리는데... 안경이 어울리지 않은 거 같아 벗어났더니 안경이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그냥 내가 안 어울리는 거였어.
 실망하겠네, 김진우. 실망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 돼도 않는 내 여장 때문이겠지. 앞서 했던 여장은 전부 나름 전문가의 손길이 거쳤지만, 지금은 나 혼자니까 옷 입는게 전부였다.
 악세사리같은 것도 없고, 꾸밀것도 없고. 차라리 안 어울린다고 빨리 벗으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 나을거 같았다. 그럼 당장에 나가드려야지.

 

*   *   *

 


 왜 이렇게 되었지.
 "...김진우."
 "응?"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거야?"
 "내가 만족할 때 까지."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자세는 날 안아서 자기 무릎에 앉히고 어깨에 파묻고 있는 자세인데, 이거 너무 치사하지 않나.
 입고 나가자 그는 잠깐 아무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돌렸더니 나에게 다가와 내 얼굴을 제 시선에 고정시키고는.
 "너무 예쁘다..."
 그의 눈에 거울처럼 비친 내 모습이, 마치 그의 눈동자가 오롯이 나만을 담아낸 듯한 모습이었다.
 "진짜. 진짜, 예뻐."
 "예쁘긴... 하나도 안 어울리던데..."
 거울을 보고 또 보아도 어울리지 않았던게 당연했다.
 "연정우 정말 너무하네."
 "뭐...?"
 "예쁘단 소리 계속 듣고 싶어서 겸손한 척 하는 거 봐."
 "..."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란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말 목구멍 넘어로 나오게 할까보냐... 표정을 찡그리고 있자 그가 내 머리에 제머리를 맞대었다.
 "키스할까...?"
 네 질문에 그저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좋다고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게 보이는데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아니, 지금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거... 내가 지금 여자같아서 하자는 거야?"
 "아니. 네가 너무 예뻐서 가만히 두질 못하겠어..."
 "가만히 두지 못하는건 뭔데. 그냥 가만히 둬도 되는데."
 "아니, 키스하고 싶고. 뽀뽀도 하고 싶어."
 그 말을 끝내고 내게 다가와 쪽쪽 입을 맞추었다. 볼에도 쪽쪽. 콧등에도 쪽쪽. 입술 닳겠네.
 "여자 같아서 이러는 거 아냐. 연정우라서 이러는 거지."
 "예뻐서 가만 못둔다 말해놓고는..."
 "몰랐어? 정우는 학교에서도 예쁘고, 그냥 있어도 예뻐. 지금은 내 앞에서 예쁜 옷 입은 거고."
 "참나..."
 네가 다시 어깨에 파고들어 얼굴을 부빗거렸다. 간지러우면서도 짙게 남는 너의 여운이 좋았다.
 "이렇게 예쁜데. 나한테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시내를 당당하게 돌아다니기나하고."
 "윽...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여장을 했든 안 했든 정우는 나만 볼거야! 내꺼야!"
 "그래... 네꺼해. 다른 사람은 줘도 안 받을테니까."
 "다른 사람을 왜 줘. 내가 있는데."
 네가 나를 안 놔줄듯이 꼬옥 끌어안았다. 마치 빈틈을 없애려는듯 그렇게 가까이에서 너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동글아."
 "응?"
 "우리 키스는?"
 "......"
 침묵을 지키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 듣고 무시한 건 아니니까 그런 눈빛 보내지마... 나는 네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하던가..."
 네가 다시 내게 다가와 입을 맞췄다. 너의 부드러운 혀가 입술을 살짝이자 입이 열리고 혀가 얽히기 시작했다. 네가 가는 방향대로 천천히 움직여 입안을 헤집었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훑는 너에게 나를 맡겼다. 한참을 움직이고 숨이 차오를 때 쯤, 네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좋다..."
 "...좋아?"
 "응. 정우 너무 예뻐서 좋아."
 너는 나를 끊임없이 눈에 담았다. 하나라도 놓칠새라 열심히 나를 바라봐주었다. 나도 온전히 너만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정우는 어때?"
 "응.. 나도 좋아."
 "그래? 나 때문에?"
 "당연히 너 때문이지."
 "응. 하아.. 이 모습은 제발 나에게만 보여줘."
 "욕심쟁이. 베짱이 성격 어디 안 가나봐."
 "베짱이가 왜 욕심쟁이야! 아냐. 난 그저 우리 정우를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서 그래."
 "그래서 욕심쟁이라는 거다. 너만 나를 독점하고 싶어하잖아."
 "사랑하니까."
 "용서되는 변명이군."
 "정우는? 나 어때?"
 "나도.. 사랑해."
 "응. 그거면 충분해. 정우는 내꺼야!"
 "그래. 그리고 진우는 내꺼고."
 "충분히 가져줘. 전부 다 줄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는 미소는 정말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옷을 입든 무엇을 하고 있든 정말 다 용서되는 저 미소가 나는 정말 좋았다.
 "그래. 내가 다 가질게. 너도 가져가."
 "내꺼니까 당연하지."
 네가 내 손을 꼬옥 잡고 올려서 도장찍듯 손등에도 입을 쪽쪽 맞춰주었다. 참 간지럽고도 예쁜 서약처럼 보였다. 아마 그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네가 내 입가를 손으로 매만져주면 예쁘다-, 라고 말해줬기 때문에, 나는 또 너때문에 웃음이 났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 네꺼니까. 나 계속 여기 있을래. 어디 가지 않게 잘 잡아주는 손처럼 네가 날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만큼 널 사랑하니까.

 "다음에 또 옷 입어줄거야?"
 "안 입을거야."
 "입어줘."
 "무슨 옷."
 "웨딩드레스."
 "결혼해?"
 "할건데?"
 "정말 대책없네..."
 "신혼여행도 가고. 응? 정우야. 응?"
 "몰라... 나중에 해. 나중에."
 "너 나중에 하자고 한거다? 나 안 잊을거야."
 "프러포즈 마음에 안 들면 안하고."
 "너의 마음에 들게 할게.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 꼭 보고 싶어."
 "입어도 별로일텐데."
 "아니, 우리 정우라면 분명 예쁠걸."
 "너 수트입은 것도 멋지겠네."
 "정말? 좋아. 우리 결혼하자."
 너의 진지한 모습에 다시 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진지한 모습은 보기 드물어서 그런지 기대고 싶은 심리감이 치솟은 듯 하였다.
 "멋지네 김진우."
 "에쁘다 연정우!"
 네가 나를 꼬옥 안아서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몇번이나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사랑해. 내게 이런 기대감과 설렘을 준 너를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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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을 2년 전에 쓴다 하고 그대로 놔뒀는데, 다행히 쓴 건 있어서 조금 수정하고 이어 썼어요! 흑역 투성이네요ㅜㅜ 이제 또 다른 썰 풀어봐야겠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