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로 키우는 글

[진우정우/대학생] 감정

글쟁이문어 2019. 11. 20. 21:13

[진우정우/대학생] 감정

 

 

 

 "그거 들었어?"

 "어떤 거?"

 "학교 앞에 카페 있잖아. 거기 새 알바가 왔다는 거!"

 "그래?"

 "가볼까? 그 알바생 무지 잘생겼데!"

 소란스럽다. 강의 시간이 아니면 소란스러움은 진정되지 않은 거 같다. 특히 교양시간은 사람이 더 모여서 더욱... 머리가 아파지면 조용한 곳에 가면 된다. 다음 강의 전까지 시간이 남으니 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려고 할 때 쯤 전화가 왔다.

 "연정우!"

 "...뭐야 임청아 왜."

 "톡으로 선물 보냈으니까 즐기고 와!"

 "선물? 뭔 선물."

 "무려 너희 학교 앞에 있는 카페 새 알바생이 잘 생겼다는 제보라고! 그 카페 기프티콘 보냈으니까 알바생 얼굴 좀 보고 와줘~"

 알바생? 뭔 알바생을.. , 그러고 보니 아까 있었던 소란스러움 중에 그런 말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생각을 되짚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근데 잠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벌써 SNS에 다 떴단 말야. 내가 가기엔 조금 머니까 부탁할게! 그럼 나 다음 강의 들어간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전화종료 화면을 바꾸고 선물 줬다는 사촌의 말을 확인해보았다.

 "핫초코랑 초코케이크 기프티콘."

 사촌의 취향이 꾹꾹 담긴 메뉴였지만 만인이 거부안 할 디저트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카페를 가더라도 소란스러움이 사그라지진 않을 텐데. 그럼 지금은 도서관을 가고 집에 갈 때 쯤 한 번 들리는 건 괜찮겠지. 이왕 선물 받은 것이니 거부할 이유는 없고, 잠깐 그 카페에 들려서 빠르게 포장해서 가도 괜찮을 거 같고...

 

 "월요일도 아닌데 도서관 휴관이라니..."

 가벼웠던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어떡하지, 생각하다가 기프티콘이 생각났다. 카페... 백색소음으로 오히려 공부가 잘 된다고도 들은 거 같은데.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무거워진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딸랑- 학교 앞에 있는 카페의 문을 열어 재꼈다.

 "어서 오세요-"

 인사로 시작하는 카운터에는 여자 분이 계셨다. 분명 새로 온 알바생이 잘 생겼다고 했는데...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다가 이 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빠르게 주문을 시작했다.

 "핫초코 한 잔과 초코케이크 주문 받았습니다. 진동벨 울리면 가지러 와주세요."

 카페를 둘러보아 적당히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잔잔히 들려오는 음악이랑 간간히 부딪히는 찻잔 소리. 그리고 강의가 끝났을 때만큼이나 크지 않은 이야기소리. 이 정도를 백색 소음이라고 할까. 도서관보다는 아니지만 책 읽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지이이잉- 책보다가 울린 진동벨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픽업부스로 갔다. 그곳에서 핫초코와 초코케이크가 담긴 쟁반을 봤는데, 그 쟁반 위에 마카롱 몇 개가 더 올려 져있었다. , 이건 안 시켰는데?

 "저기, 주문 잘못 받으신 거 같은데..."

 ", 그거 서비스에요."

 서비스라고 말해주는 목소리는 카운터에 있던 여자 분의 목소리와 달리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그 말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눈이 마주치는 곳에 익숙한 미소를 지어주는 그가 서있었다.

 "손님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주는 나의 서비스."

 

 "얼마나 있다가 갈 거야?"

 "... 다음 강의가 한 시간 뒤에 있으니까 그 전까진 있을 거 같아."

 "그래? 그럼 30분 뒤에 네 자리로 갈게. 지금은, 갑자기 주문이 많이 들어와 버려서...!"

 ". 천천히 하고 와."

 아까 주문할 때는 분명 보이지 않았는데, 그럼 그 사이에 온 건가? 만약 그 사이에 왔다면 내가 못 봤을 게 분명하다. 책 읽고 있었을 뿐더러 출입구와 등지고 앉았었으니까. 나는 케이크를 한 입씩 먹기 시작했다.

 그럼 언제부터 일 한 거지? 전에 무언가를 하고 싶다며 준비 중이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그게 알바였을까? 그럼 그거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된 건가?

 "정우야, 오래 기다렸어?"

 "? ... 왔어?"

 ". 너무 보고 싶어서 주문 받은 거 빨리 끝내고 왔지. 조금 이따가 다시 가야할 거 같지만-"

 네가 내 맞은편에 앉음과 동시에 내 모든 생각이 중단되었다. 계속 생각하는 것보다 너에게 듣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여기 언제부터 일 한 거야?"

 "일 한지는 별로 안 됐어. 아직 배우는 중이라."

 "그래? 그럼 뭐 준비한다고 한 게 알바였어?"

 ", . 알바는 맞긴 한데, 바리스타를 해보고 싶었거든."

 너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다. 바리스타...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전문직. 그것도 너에겐 분명 잘 어울려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정우 놀래켜 주고 싶었단 말이야."

 "뭘 놀래켜 주려고."

 "내가 이 카페에 와서 일하려고 고생 좀 했거든. 왜 이 카페로 왔는지 알아?"

 "?"

 "정우가 다니는 대학교랑 가깝잖아. 여기서 널 기다리고 같이 집에 가고 싶어서."

 생글생글 웃는 너의 모습을 바라봤다. 같은 학교로 진학하지 못해서 전보다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든 건 맞지. 그런 이유로 이곳에 와서 나를 보며 웃는 건 조금...

 "정우야."

 "...?"

 "마음껏 공부하고 와도 돼. 나 야간타임 있어서 늦게까지 여기 있을 거니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와. 알았지?"

 "... 그럴게."

 조금... 조금 많이 설렌다.

 

 "그런데 카페엔 왜 왔어? 원래 비어있는 시간엔 도서관가지 않아?"

 "... 오늘 도서관 휴관이더라고. 마침 이 카페 기프티콘을 받게 되어서 온 거 뿐이야."

 "그래? 나 사실 아까 들어오면서 너 봤을 때 많이 놀랐어. 여기에 올 리가 없는데 너무 보고 싶어서 헛것이 보이나 했지."

 "헛것일리가..."

 ", 진동벨로 확인하기 전까지 정말 믿을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볼 수 있고 너무 좋다."

 "... 나도 좋아.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여기 새로 들어왔다는 알바생이 누군지 알아?"

 "알바생? 최근에 들어온 사람은 나뿐인데?"

 "그래? ...소문이 틀린 건 없네."

 "소문? 어떤 소문?"

 "새로 온 알바생이 잘생겼데."

 "?"

 "강의 끝나고 나면 그 얘기로 소란스러워. 기프티콘 준 애도 그 소문 확인해달라고 준 거였거든. 소문은 맞다고 얘기 해줘야겠어."

 "그런 소문이 돌았다고?"

 "몰랐어?"

 ", 난 정우한테 커피 만들어 줄 생각만 했거든. 그러고 보니 여학생들이 더 많아졌다고 들은 거 같긴 한데. 난 잘 모르겠어서."

 "그렇구나... 일 그만둘 생각은 없지?"

 ", 당장은 그만둘 생각 없어. 난 여기가 가장 좋아. 정우도 이렇게 볼 수 있고."

 ", 그건 나도 좋아. 좋은데..."

 "좋은데?"

 "... , 나 강의 시간 다 됐다. 가볼게."

 "? , . 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다 끝나면 여기로 와."

 "...그럴게."

 너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카페를 나왔다. 강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 가야했다. , 생각났을 때 문자해줘야지.

 「 그 카페 알바생 잘생겼더라. 그런데 가지는 마. 이미 임자 있는 사람이거든.

 이 문자를 모든 여대생들에게 보내주고 싶다. 이미 임자 있는 사람이니까 눈독 들이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러면 카페에 갈 손님들이 조금은 줄어들까. 그러면 나도 카페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강의가 끝난 뒤에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책을 폈다. 역시 카페보다 조용한 공간이라 생각하던 차에 문자가 왔다. 아마도 강의 전에 보낸 문자의 답이겠지.

 「 이미 임자 있다니! 아 역시... 잘생긴 남자들은 이미 짝이 있나봐!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면전에 대고 물어봤어? 아니면 아는 사람이야?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애인이거든.

 그렇게 말할까 하다가 답장은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 답 안하면 분명 뭐라 하겠지만, 답해서 귀찮은 거나 답 안 해서 귀찮은 건 똑같을 거 같았다. 그러나 귀찮게 또 문자가 왔다.

 「 뭐야! 답을 안 하다니. 그렇다면 선택지에 없다는 말이잖아? ~ 선택지에는 없는데 임자 있는 건 안다? 답은 하나네~ 모르는 사람이지만 임자 있다고 말해주었다!

 완전 틀렸거든.

 「 아 잠깐 잠깐. 모르는 사람인데 갑자기 그걸 말할 리가 없잖아. 연정우가 모르는 사람한테 고백했을 리는 없고... 그럼 그 사람이 '나 애인 있어요.'라고 팻말이라도 들고 다니나?!

 차라리 그러면 좋겠다.

 「 팻말을 들고 다니면 SNS에 그게 안 뜰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묻는 걸 들었어? 엿들었어?

 「 아니. 그런 걸 누가 물어.

 「 ? 잘생겼다며. 여자들이 가만히 안 놔둘 텐데? 애인 있냐 번호는 뭐냐 묻는 사람이 하루에 한 두 명은 꼭 있을 걸? 내 초콜릿을 걸게!

 뭐? 뭘 묻는다고?

 「 그나저나 내가 문자 5개 보낼 때 연정우 답장이 하나왔다니! 평소에는 씹으면 계속 씹을 텐데, 하나라도 보낸 거 보니 아무래도 보통 사람은 아닌 거 같아 보이는 걸~ 혹시 그 사람이, 그 질문을 받는 거에 네가 신경 쓰인다면 얼른 가서 지켜보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임청아 말에 잘 휘둘리지 않는 편인데...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신경 쓰이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누가 묻는다면... 친절하게 성실히 대답할 네 모습이 싫은 게 아니다. 그냥 누가 묻는 거 자체가 싫게 느껴졌다. 그런 느낌이 들자마자 가방을 챙겨들고 곧바로 카페로 향했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카페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여대생들이. 정신없다. 아까보다 훨씬 시끄럽고 소란스러울 거 같은데 그냥 다시 돌아갈까...

 "나보러 왔어?"

 "?"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금세 카운터 앞으로 왔다. 카운터에 있는 사람의 물음에 눈을 마주쳤다. 아까는 여자 분이 서있었더니 지금 서있는 사람은.

 "나 오늘 일생동안 쓸 행운 다 쓰는 거 아니지?"

 "진우..."

 "? , 주문받아야지. 우리 정우는 뭐 마실래?"

 "...나 그냥 아메리카노."

 "그래? 라떼도 맛있는데. 나중에 내가 맛있게 만들어줄게."

 너는 내게 함박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진동벨을 주며 좀 이따 갈 테니 앉아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작게 끄덕이고는 적당히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카운터에서 그리 멀지 않아 네가 잘 보이는 곳에. 개인 독서대를 놓고 노트북도 열어서 시선이 최대한 정면에 닿도록 하였다.

 "... ...?"

 나 지금 뭐하는 짓이지...? 왜 전혀 집중이 안 되는 곳에서 전혀 집중이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턱을 괴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누가 너에게 뭔갈 묻는 건 정말 싫을 거 같은데, 내가 그걸 들어서 어떡할 거지. 누가 애인 있냐고 물으면 내가 가서 그 애인이 전데요, 라고 할 건가. 절레절레- 그건 아닌 거 같다. 그럼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난 왜 여기에 온 거지.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 진동벨 안 울렸는데?"

 "내가 먼저 가져왔지."

 "...근데 서빙은 원래 안 되지 않아?"

 "너에게 오는 김에 같이 가져온 거야. 휴식 시간도 받아오고 케이크도 가져왔어. 같이 먹자."

 "그래..."

 펼쳐두었던 책과 노트북을 잠시 접어두고 널 마주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오라고 했지만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몰랐어. 이 시간은 사람 진짜 많거든. 그래서 이 시간에 볼 줄 몰랐는데, 정말 나 보러 온 거 아냐?"

 ". 너 보러 왔어."

 "?"

 네 눈이 빠르게 깜빡거린다. 물음에 대답한 거뿐인데 저렇게 놀랄 일인가?

 "너 보러 온 거 맞아.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럼 여기서 공부하려고?"

 ". 그러려고."

 아메리카노를 들어 한 입 마셨다. 뜨거웠다. 조금 식히고 마셔야겠네.

 

 "정우야."

 "."

 "나보러 온 건 정말 기쁜데, 너 공부까지 방해하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늦게 와도 괜찮아."

 "그래? 그럼 가볼게."

 "...? 이렇게 빨리?"

 "괜찮다며."

 "...찮은데. 지금은 안 괜찮아. 나보러 왔다며. 조금 더 보고가."

 가방을 집으려던 내 손 끝에 네 손이 닿았다. 가지 말라며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반짝이는 거처럼 보였다.

 "그래. 너 퇴근할 때까지 있을 거니까."

 ". ... 나 휴식시간 끝났다. 공부하고 있어-"

 네가 내게 손을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살짝 손 흔들어 주고 시선을 다시 노트북으로 옮겼다. 아메리카노는 조금 식었을까.

 "주문 받겠습니다."

 아까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소란스러움이 많이 잦아들었다. 덕분에 카운터에 서있는 네 목소리가 훨씬 잘 들려왔다.

 "진우야? 안녕! 여기서 일한다고 듣긴 했는데, 학교 말고 이렇게 만나니까 되게 반갑다!"

 ", 안녕. 뭐 마시려고 왔어?"

 "나 딸기 쉐이크랑 치즈 케이크 부탁할게."

 "네네, 주문 받았습니다."

 "근데 진우야."

 "?"

 "너 여자 소개 받을 생각 없어?"

 "없어."

 ", 그러지 말고~ 다른 과에 내 친구 있는데 완전 과여신 소리 듣는다니까? 근데 네가 여기에서 일하는 거 SNS에 뜬 거보고 되게 관심 있다고 했단 말이야. 한 번만 만나봐~ ?"

 "손님, 생각 없다는 사람 그만 설득하시고 여기 알람 울리면 주문하신 거나 받으러 오... 정우야?"

 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고작 한다는 게 저런 말을 듣기 싫어서 도망 나온 게 전부잖아.

 

 카페에서 도망치듯 나와 걷다보니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 내 가방. 가방까지 모두 정리해서 나올 여유가 없었다. 좀 이따... 조금 걷고 후에 진정되면 다시 들어가자. 그럼 될 거다. 그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정우야...!"

 들릴 리 없을 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고 살짝 돌아보니 언제 따라온 건지 네 모습이 아른거리며 보였다. 내게 다가온 너에 의해 내 발은 바닥에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

 "갑자기 나가니까 걱정되잖아."

 "이렇게 막 나와도 되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해?"

 ", 그건 중요해. 네가 선택한 네 일이잖아."

 "정우야... 내 일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지만, 난 너를 언제든 선택할 수 없어. 난 그 어느 순간도 너를 놓치지 않을 거야."

 "..."

 "일하고 있지만 네가 와줘서 기뻤어. 일하는 중간 중간에 널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근데 갑자기 그렇게 나가니까 너무 걱정되어서... 괜찮아?"

 "...미안."

 고개를 떨군 채 작게 사과를 하자 너는 그 두 팔로 내 몸을 천천히 감싸 안아주었다.

 "정우가 사과할 일 없어. 오히려 내가 해야지. 미안해... 널 안 괜찮게 만들어서... 아까 대화 들은 거지?"

 네 어깨에 얼굴을 파묻힌 채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너는 내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걔는 그냥 같은 과 동기일 뿐이야. 저런 식으로 주선하려고 말 붙이고 다녀서 나도 피하려고 해. 아까는 운이 좀 나빴어."

 "...진우야."

 "?"

 "... 일할 때도 그런 소리 많이 들어?"

 "여자 소개 받겠냐는 말? 나한테는 정우뿐인데?"

 "아니... 그런 말 많이 듣냐고."

 "많이는 아닌데, 가끔 듣긴 해. 근데 나 정말 다 무시하고 있어. 나한텐 너뿐이거든."

 네 말이 진심인 것도 안다. 네 말에 거짓이 없음도 안다. 네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네가 어떻게 그것을 거부할지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이 안 내려졌다. 다 알고 있으면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데 마음이 그걸 원치 않았다.

 "네가 그런 말 듣는 거 싫어..."

 "?"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네가 그런 말 듣는 거 싫어서 왔었어. 근데 막상 그런 말 듣는 너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거 안 듣겠다고 뛰쳐나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되게 한심하더라."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 싶었는데 난 여전히 네 품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넌 내 말을 듣고 한참을 토닥거려주었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던 채로 토닥임을 한참 동안 받은 후였나, 네가 나를 불렀다.

 "정우야."

 "...."

 "카페에 가방도 두고 나왔었지? 일단 돌아가자."

 "..."

 네가 손을 꼭 잡고 돌아가는 내내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카페에 돌아와 보니 그 여자 분도 없었고 카페의 소란스러움도 아까보다 많이 잦아들어있었다. 나는 자리로 가서 가방을 챙겼다.

 "정우야 갈 거야?"

 "있어봤자 득 될 게 없을 거 같아."

 "왜 없어? 나 있잖아."

 너는 분명 나의 득이지만, 장소도 그렇고 너에게 붙을 질 나쁜 손님도 그렇고 내게 득 될 것은 변변치 않았다.

 "... 그래도 다녀올게."

 "어디로 갈 거야?"

 "도서관 가려고. 두 시간 정도는 더.. 있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럼 나올 때 연락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이 상황을 얼버무릴 생각은 없었지만, 어떻게 다시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지 모르겠다. 언제 꺼내든 어색해질 거 같아서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버렸다. 또 내 감정이 이성보다 먼저 움직일까봐. 그러기 전에 이성을 먼저 잡아두는 쪽이 나았다.

 도서관에 가자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아직 시험기간이 아니라서 자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생각을 안 하려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수학공식을 가지고 응용문제를 33개쯤 만들고 별자리를 이루는 별을 67개쯤 외우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원래는 이렇게 공부 안 하는데... 사색에 빠질 틈 없이 계속 머리를 써야만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비워진 머리로 너를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

 자리를 정리하고 그곳을 나와 카페가 있는 곳으로 갔다. 마감시간이 다 된 카페는 밖에서 봐도 한가해보였다. 밖에서 기다릴지 안에서 기다릴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안에 있던 네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나도 살짝 손을 흔들고 카페로 들어갔다. 발견 당했는데 밖에 있으면 네가 걱정할까봐.

 "정우야 왔어?"

 ". 카페도 마감 인가봐."

 "10시까지니까. 이제 마무리해야해. 이것만 설거지하면 되니까 조금만 앉아있어."

 비어있는 자리에 아무데나 앉았다. 지금은 어느 곳에 앉아도 상관없겠지. 조용하고 한가하고, 지금은 둘이 있기 딱 좋으니까.

 "다 됐다. 정우야 이제 가자."

 "."

 너와 카페를 나와서 같이 밤길을 걸었다. 밤 산책이 아닌 함께 걷는 하굣길. 생각보다 좋은 기분이 들었다.

 

 "궁금한 게 생겼어."

 "뭔데?"

 "내가 나간 뒤로 그런 질문 받았어?"

 "아니? 전혀. 그거 신경 쓰였어?"

 "...신경 안 쓰려고 노력했어."

 "공부 열심히 했나보다. 난 정우가 내 생각해주면 좋겠는데."

 "안 하진 않아."

 "무슨 생각 하는데?"

 "알바 하는데 공부에 지장은 없을까..."

 "없어! 전혀! 나도 공강 날짜에 맞춰서 조정하고 일하는 거니까!"

 "그건 다행이네."

 "다른 건? 다른 건 생각 안 해?"

 "다른 건... 글쎄. 오늘 내내 그 질문 들었나 생각밖에 안 해본 거 같아."

 "그거 말인데."

 "?"

 "신경 쓰였다고 했잖아."

 "... ."

 "네가 신경 쓰인 이유가 혹시 질투가 아닐까?"

 "...?"

 "정우가 질투하는 건가 생각했었어. 본 적 없는 모습이라 조금 놀랐지만, 정우가 내 생각 많이 해주는 거 같아서 기뻤거든."

 "..."

 "그런데 정말 걱정할 거 하나 없어! 난 정말 정우뿐이거든!"

 "..."

 "나 못 믿어?"

 대답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없으니까. 네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이렇게나 잘 알고 있는데도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네 말대로 이건 질투의 감정일까.

 내 감정조차도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할 때 네가 내 손을 잡아왔다. 따뜻한 온기가 닿자 손을 잡아준 너를 바라보았다.

 "그치? 나는 정말 정우뿐인걸."

 "... 믿고 있어."

 "다음부터 그런 질문 받으면 확실히 애인 있다고 말할 거야."

 "...그것도 좋고."

 "그러니까 카페에 자주와."

 "그건 생각해볼게."

 "저녁시간 말고! 9시쯤에서 마감시간 전까지면 사람도 적단 말이야."

 "..."

 "자주 올 거지?"

 "...그럴게. 시험기간만 제외하고."

 ". 그거면 충분해."

 네가 내 손을 어루만져주었다. 그 어루만짐이 느리고도 조심스러워서 애정이 담겼다는 게 느껴졌다.

 "사랑해 정우야."

 그 순간 무언가가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걱정하고 있던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카페에서 공부한 지 일주일이 지날 때 쯤 나한테 전화가 한 통 왔다.

 "연정우!"

 "왜 임청아."

 "그 카페 알바생 말야. 요즘 애인 있다고 말하고 다닌다더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SNS에 떴었으니까, 이래볼까 저래볼까 글 올라온단 말이야? 근데 거기 댓글로 그 알바생이 애인 있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고! 분명 너랑 관련 있는 사람인 게 틀림없는데."

 "맞아. 내 애인이거든."

 "애인이었어?! 왜 나한테 안 말했어??"

 "너한테 굳이 말할 이유가 없어서."

 "내가 기프티콘도 줬는데...!"

 ". 잘 먹었어. 또 먹고 싶어."

 "말이 그거뿐이야?!"

 "할 말이 더 있어?"

 "아니. 사실 없어."

 "그럼 끊어도 되지? 나 카페가야 해."

 "그래? 음~ 그래~ 나중에 또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 카페에 들어섰다. 문을 열 때마다 딸랑- 거리며 울리는 종소리가 이젠 익숙하고 반갑기만 했다.

 "정우 왔어?"

 네가 반기는 그 목소리에 손을 흔들어 인사하곤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은 뭐 마실래?"

 "네가 주고 싶은 거."

 "내가 주고 싶은 거? 십첩 밥상?"

 "...여기서 가능해?"

 "케이크 열 개는 가능할 거 같아."

 "...아냐. 라떼 마실게."

 "그래. 내가 예쁘게 아트해서 줄게."

 자리에 앉고 봐야할 논문을 찾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한참을 문서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을 잠시 문서에서 뗄 때마다 너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우연인가 했지만, 우연일리가.

 '일 해.'

 노트북을 살짝 내려 너만 보이게 속삭였다. 그러자 너는 내게 방긋 웃어 보인 뒤 시선을 밑으로 향하게 했다. 내가 일하라고 해서 하는 행동이겠지만, 아마 내가 논문을 다시 보면 또 어느 순간 눈이 맞겠지. 네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건 우연이 아니라 네가 나만 바라보기 때문인 걸 안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하라고 말해도 한 눈 팔 걸 알면서도 내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네가 나를 봐서 좋은 걸 알기 때문이고, 그래서 나도 좋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내 일에도 네 일에도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선 내가 방향을 바꾸는 게 더 좋을 거 같았다. 그렇게 자리를 반대편으로 옮겨 앉고 다시 노트북을 열자마자 지이이이잉- 진동벨이 울렸다.

 

 "왜 돌려 앉았어?"

 "일하라고 했잖아."

 "일했잖아!"

 "일했어?"

 "했어! 정우꺼 열심히 만들었다고!"

 "하트모양이네. , 고마워."

 "다른 말은?"

 "라떼 아트 예쁘다."

 "다른 말은?"

 "...오늘은 질문 받았어?"

 "그거 묻는 거야? 질문을 받긴 했는데 애인 있다고 분명히 말했어."

 "소문을 듣긴 했는데, 직접 들으니까 훨씬 낫네."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듣는 거야?"

 "원하지 않는데도 말해주는 정보통이 있거든."

 "그렇구나. 근데 다른 할 말 없어?"

 "일 열심히 해. 나 계속 저 자리에 앉아있을 거니까."

 "손님도 없어서 조금 한가해도 되는데... 난 정우 보고 싶은데..."

 "손님 몰려오면 어쩌려고. 어제도 한 눈 팔다가 갑자기 손님이 10명이나 들어왔잖아."

 "그랬지... 괜찮아. 정우는 뒷통수도 예뻐."

 "그렇게 예쁜 편은 아닌..."

 "내 눈엔 예뻐. 그래서 정우야. 나 듣고 싶은 말 있는데."

 "손님 오신 거 같은데."

 때마침 들려오는 종소리에 말을 돌리고 주문한 커피를 가져갔다. 자리에 앉아 마감시간까지 논문을 볼 생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왠지 뒤쪽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이지만, 커피에서 새어나오는 열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조금 들이켰다. 한참 동안 논문을 바라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정우야, 마감시간인데."

 ", 벌써?"

 "너 그렇게 논문에만 빠져있으니까 몰랐지."

 ". 이 내용이 재밌어서."

 "난 개미와 베짱이 책이 재밌던데."

 "개미와 베짱이 책을 바탕으로 쓴 논문이 있는지 찾아볼게."

 "아냐 아냐 괜찮아. 나 여기 청소하는 것 만해도 바빠. 다 했으니까 이제 가자."

 네 말에 노트북을 닫고 가방을 정리하여 등에 맨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방 들어주려고?"

 "동글아, 이 손은 손잡고 가자는 손이야. 물론 가방도 들어줄 수 있지만, 난 정우 손을 더 잡아주고 싶어."

 네 말에 손을 살포시 올려놓자 너는 활짝 웃으며 손가락 사이사이를 꼭 잡아 손깍지를 꼈다. 그리고 밤길을 걸어가며 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우야, 나 아직도 듣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까부터 계속 듣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한 너였다. 의도치 않게 무시한 거처럼 말하고 말았지만, 계속 듣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하는 걸 보니 듣는 걸 포기하기 싫은 말인가 싶었다.

 "어떤 말?"

 "정우가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

 "... 오늘은 언제 잘 거야?"

 "정우 잘 때 쯤."

 "그럼 같이 자면 되겠네."

 "내가 재워줄 거니까. 그래서 정우야, 나한테 할 말은?"

 다른 말로 주제를 바꿔보려 한 건데 쳇바퀴 돌 듯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내가 너에게 할 말은...

 "오늘 교수님이 새로운 주제로 강의를 하셨어."

 "그래? 그 주제가 재밌었어?"

 ". 흥미로웠거든. 요즘 내 관심사이기도 하고."

 "관심사? 어떤 거?"

 "감정에 대해서..."

 내가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해진 규칙에 맞추어 살아왔었다. 희노애락의 감정을 이성에 묶어둔 채 내 일에 충실하며 고등학교까지 갔는데, 너를 만나 처음으로 감정의 요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요동이 낯설어서 내가 잘못하고 있는 중인건가 생각하며 감정에 솔직해 지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너를 보면 이 감정을 놓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표현하기를 더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은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고, 또 그 감정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인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감정이 나타난 원인이 무엇이며 결과가 어떤지, 나는 이 감정으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러면 그 감정으로 그 다음에 할 일을 정하여 딛고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새로운 주제로 강의해주시던 교수님의 수업내용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갔지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대답처럼 들렸었다. 내 감정이 일어난 원인이 너라면 그 결과로 나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으니까. 단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어서 처음으로 쩔쩔맸던 그 경험이 내겐 너를 바라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할 말이 있는데."

 그 말과 함께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너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너와 눈을 맞췄다.

 "진우야."

 "."

 "사랑해."

 

 내가 그 말을 건네자 너는 만족하며 기쁜 듯 나를 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러다 잡지 않은 손을 올려 내 얼굴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정우야 그거 알아?"

 "어떤 거?"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너도 웃고 있는 거."

 "...난 잘 모르겠는데."

 "난 알아. 이 예쁜 입술 끝이 호선을 그리며 싱긋 웃고 있어. 정말 예뻐."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자 네가 내 입꼬리를 살살 쓰다듬다가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놀랄 틈도 없이 겹쳐져 있던 입술이 떨어지고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가까움에서 네가 보였다.

 "입 맞추고 싶을 정도로 예뻤는데, 이래도 못 믿겠어?"

 "모르... 몰라. 모르는 걸로 할래..."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정우니까!"

 네가 잡은 손을 끌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야하니까 나도 네 걸음에 맞추어 걸어갔다.

 "정우야."

 "?"

 "나 나중에 카페하나 차릴 거야."

 ", 그거 좋네."

 "그리고 팻말을 달 거야. '정우 외 출입금지'."

 "...나 지금 회계는 나한테 맡겨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회계보다는 내 손님 돼주라. 너만 받을 거니까."

 "그럼 카페 차린 이유가 없잖아."

 "왜 없어? 정우가 오는데."

 "장사 적자 날지도..."

 "건물을 사서 건물주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좀 나으려나..."

 "그치? 그러니까 정우는 걱정 말고 나만 바라봐. 내 눈엔 너만 보이니까."

 나에게 확신을 주는 네가 고맙게 느껴졌다. 누군가와 함께 라는 이 감정이 주는 안정과 안도에 따뜻한 기쁨이 흐르는 듯 했다.

 "너에게 꼭 사랑한다는 말 듣고 싶었어. 정우야, 나도 사랑해."

 네가 내게 전하는 진심 어린 고백이 내 마음을 잔잔히 적시는 듯 다가왔다. 너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면 네가 듣고 싶고 내가 해주고 싶을 때 그 말을 많이, 많이 해주어야겠다.

 나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