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속도] 은혜 갚은 학

글쟁이문어 2019. 12. 13. 20:11

[속도/학오소×쵸로스케] 은혜 갚은 학

 

 

 

 

 “혼인 하지 않겠느냐.”

 “좋아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소리만 10년째인 건 아느냐. 하기 싫으면 그냥 하기 싫다고 말해라.”

 싫은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말하진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꼿꼿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가 보거라, 한숨과 함께 나를 방 밖으로 밀어내는 말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방을 나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 때를 잊을 수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게 잊을 수 없는 그 때는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이 나의 14살 때로부터 시작된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의범절을 배워온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꽃꽂이를 배워왔었다. 풍류를 즐길 취미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내가 선택한 것은 꽃꽂이였다. 다른 취미도 있었겠지만, 나는 실물을 두고 바라보는 것이 그 어린 시절부터 참 좋았다.

 색색의 꽃 중에서 가장 눈을 끌었던 색은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노란색, 분홍색이었다. 이 색들의 조합은 그 어릴 적에도 지금에도 참 재미있었다. 마치 꽃들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 같아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상을 할 때면, 꽃꽂이란 일이 얌전히 앉아서 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빙긋 지어지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도련님은 정말 꽃꽂이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그래 보이나요?”

 “꽃들에게 생기가 보이잖습니까. 정말 아름다워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보며 칭찬을 해주었고, 나는 꽃꽂이를 취미로 삼은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련님다운 취미라거나, 사내가 하기엔 너무 조용한 취미가 아니냐는 소리를 주변에서 듣곤 했지만, 나는 그와 별개로 꽃꽂이를 할 때가 가장 마음이 놓였다.

 “궁금한 게 있어요. 꽃꽂이를 할 때는 꼭 놓여 진 꽃만 해야 하나요?”

 “준비된 꽃으로 하면 편하긴 하죠. 그건 왜 물어보시나요, 도련님?”

 “제가 직접 꽃을 준비해보고 싶어서요.”

 “필요한 꽃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셔도 되세요.”

 “물론 그게 더 편하겠지만, 직접 꽃들을 보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여 허락된 공간은 숲 가까운 곳에 있는 넓은 뜰에 놓여있는 화원이 전부였다. 분명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느낌은 없었다. 어쩌면 그 꽃들이 너무 형식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꽃을 보던 그 때의 나는 '항상 보던 꽃'과 화원에 피어진 꽃들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꾸준히 다섯 색깔의 꽃을 준비해서 꽃꽂이를 했다.

 꽃꽂이를 할 때마다 매번 비슷한 꽃들로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내며 무의식적으로 진부함을 느끼고 있었던 때, 내 발걸음은 화원이 아닌 그보다 더 넓은 곳으로 향하고자 했다. 가본 적 없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숲 속,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할아버지가 숲으로 가서 나무를 베던 어느 날, 저 나무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숲 속 그곳은 가본 적 없었고 갈 시도조차 안했던 곳이었다. 애초에 그곳에 가려는 내 마음을 헤아리고 허락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들어간 그곳은 온통 궁금한 것뿐이었고, 그곳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신비로웠다.

 초록색은 그저 줄기와 잎의 색인 줄 알았는데 이곳엔 차고도 넘칠 만큼의 초록색이 가득했다.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새는 그 틈을 따라 조금씩 발을 들였다. 본적 없는 아름다움이 어린 시절의 눈엔 찬란하고도 신선하게 보였었다. 그리고 곳곳에 보이던 야생화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크고 화려한 꽃들이 아닌 작고 수수한 꽃들. 그것을 하나씩 구경하며 나도 모르는 새에 깊이 깊이 들어갔다.

 “이 꽃 정말 예쁘다...”

 그 깊은 곳에서 보게 된 한 송이의 빨간 꽃이 내 눈길을 끌었다. 처음 보는 생소한 꽃이라 집에 이 꽃을 준비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때문에 직접 가져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한 송이를 따고나면 한 걸음, 또 한 송이를 따고나면 또 한 걸음.

 “여기 어디야...?”

 그렇게 한 다발의 꽃을 꺾어올 때까지 걸어갔다. 수많이 따온 꽃만큼 걸어왔으니, 내가 얼마나 많이 걸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봐도 길을 알 수 없어서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누군가 와줄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나를 누군가 찾으러 와줄까? 내가 이곳까지 온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말도 없이 나왔으니 알 수가 있을까.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갈까?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내가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찬란하게 반짝이던 햇빛들이 자취를 감추자 그 자리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의 처음 본 숲의 어둠은 점점 두려움이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저녁바람에 사르륵 부딪히는 나뭇잎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다른 곳에서는 무언가가 나타날 듯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발 걸음소리까지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거기 누구 있냐?”

 그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기모노에 하얀 면사포를 쓴 누군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사람이잖아? 그것도 어려 보이는데. 여기서 뭐해?”

 난 그곳에서 그 분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마치 어느 동화의 속 이야기처럼.

 

 

그곳에는 학 한마리가 덫에 걸려 날아오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학에게 걸려있는 덫을 풀어주고 학이 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했지? 일단 나는 길을 아니까 마을입구까지는 같이 가줄 수 있어. 거기까지 가면 길은 알 수 있을 거야. 걸을 수 있겠어?”

 “, 걸을 수 있어요.”

 “,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할 텐데 씩씩한 도련님이네- 포부가 좋아~ 그런데 도련님은 여기 처음 와본 거야?”

 “, 처음이에요...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 난 이 숲의 모든 걸 꿰고 있거든! 그나저나 여기까지 오는데 초행길이라니, 대단한데? 여기 꽤나 높은 곳인데!”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혹시 손에 들린 그 꽃 때문에?”

 “, ...”

 “꽃 보는 눈이 좋나봐? 그 꽃 정말 예쁘지?”

 “, 꽃꽂이 하면 좋을 거 같아서...”

 “꽃꽂이? 고상한 도련님인가 봐~ 꽃꽂이도 할 줄 알고?”

 “그냥 집 안에 있을 때 취미로 하곤 해요.”

 “재밌어?”

 “저는 재밌어요.”

 “도련님이 재밌으면 됐지~ 나도 꽃꽂이 하는 거 보고 싶다-”

 “저희 집에 놀러 오실래요? 보여드릴 수 있는데.”

 “? - 나 아마 못 갈걸?”

 “? 왜요?”

 “그으-? 글쎄, 사람들이 날 잘 안 반겨주더라고.”

 “그런가요?”

 “으응- 뭐 괜찮아. 난 숲에서 살거든. 그래서 이곳을 훤히 알고 있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즐거운 걸? , 덕분에 길 잃은 도련님도 찾았잖아.”

 “그렇네요...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 사람들 인연이야 얽히고설킨 거라, 도련님이 착하게 살았나보지. 날 만났으니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지? -, 저기 마을 입구가 보여!”

 “벌써요?”

 “으응- 빨리 왔지? 크으- 내가 지름길을 알고 있었거든. 어서 가봐. 도련님의 엄마 아빠가 걱정 많이 하시겠다.”

 “...저 또 와도 돼요?”

 “? 또 길 잃으려고?”

 “아뇨... 꽃꽂이. 꽃꽂이 보여드리러 올게요.”

 “그럴래? , 오늘처럼 깊이만 안 갈 거라고 약속한다면.”

 “약속할게요! 약속의 의미로 이 꽃 드릴게요.”

 “꽤나 낭만적인 도련님이잖아? 좋아, 받아줄게. 그럼 다음에 봐-!”

 

 

그 날 밤, 노부부의 집에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도련님 왔어?”

 왜 그 때의 나는 꽃꽂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 때 헤어지기 싫은 그 마음이 무의식 속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덕분에 그 분을 만나기 위해 종종 숲 속을 놀러갔다.

 “, 저 왔어요. 이건 선물.”

 비밀스러운 만남은 나에게 즐거운 재미가 되었고, 그 분은 나에게 숲의 신비를 하나씩 알려주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던 숲은 그리 멀지 않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 화과자네? 나 매일 이렇게 선물만 받아도 되는 거야?”

 “보답하고 싶으면 마을에 와주세요.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으니까.”

 “으음- 무리 무리. 역시 사람들이랑 부대끼며 있는 건 좀 힘들단 말이지.”

 나는 그 분의 이름도, 정확히 사는 곳도, 직업도 모르지만 굳이 알아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분이 내게 이름도, 정확히 사는 곳도, 직업도 안 물어본 거처럼. 그런 뒷배경 없이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집에서 어느 가문의 사람을 만나는 것밖에 안하는 내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저는 만나주시잖아요.”

 “도련님이 나한테 꽃 줬잖아.”

 “옛날 일을...”

 “그게 뭐 옛날 일이라고- , 그 때 도련님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그 때보다 도련님 키가 많이 컸네? 아직 나보단 작지만!”

 “많이 컸죠. 앞으로 더 클 거지만.”

 “네네- 무럭무럭 크세요.”

 이런 평범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분밖에 없었다.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 시간만큼은 마음이 편해졌고. 잠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지 않아도 됐으며. 그 분과 있는 이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그 분과 있는 이 시간이 멈추어 영원하기를 감히 바라봤다.

 그러나 그 꿈이 헛된 희망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실례지만 하룻밤만 묵을 수 있을까요?” 아리따운 소녀가 물었습니다.

 

 

 “우리 가문에 어울리는 아이다. 이제부터 만나서 정이라도 쌓아보려무나.”

 내가 18살이 되던 해, 내게 한 여인의 사진이 왔었다.

 “이제 숲도 그만 가라. 흙장난하며 놀 나이는 지나지 않았느냐.”

 나의 즐거움을 빼앗으려는 아버지가 이렇게 원망스럽게 느껴진 적이 또 있을까. 그곳에 가서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분을 만나는 거만큼은 저지당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생각해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방을 나왔다. 이미 해가 진 깜깜한 하늘이 보였다. 방으로 돌아갈 발길을 돌려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올 줄 알았어.”

 숲에 다다르자 그 분이 그 앞에 서계셨다. 갈 곳이 한 곳 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곳에 있어줄 분을 지금 이 시간에 만나게 될 줄이야. 꿈인가? 꿈이 아닌가? 내가 헛것을 보는지 명확히 분간을 못하고 있었을 때, 안심하라는 듯 그 분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셨다.

 “고마워요. 정말 계실 줄 몰랐지만...”

 “나도 올 줄 몰랐네. 하지만 긴말 안 할게. 도련님, 돌아가.”

 “...왜요?”

 “왜긴, 여긴 왜 왔어. , 그 나이에 반항이라도 하는 거야? 이 밤에?”

 “하지만...”

 “돌아갈 마음 있다고 얼른 말해.”

 “...그런 마음 없습니다. 안 돌아갈 거예요.”

 “그럼 이 밤은 어떻게 지내려고.”

 “...재워주세요.”

 “당돌하네, 정말.”

 그 분이 잡은 손을 내가 먼저 놓을 생각이 없었다. 길을 잃지 않을 생각으로, 그 분을 놓치지 않을 생각으로 더욱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그 분이 한숨을 작게 내쉬더니 자신이 졌다는 듯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알았어, 알았어- 돌아갈 생각이 없다면 나도 혼자 둘 생각은 없으니까. 따라와.”

 그렇게 나는 그 분을 따라 숲 속을 걷게 되었다.

 

 

제가 베를 짜는 밤 동안은 절대 들어오지 말아주세요.”

 

 

여기가 내가 묵는 신사야. 좀 허름하지만 제법 넓어서 방도 많고... 사람들이 쓰던 물건도 있어. 하룻밤 자기는 괜찮을 거야.”

 “, 감사합니다.”

 “난 이 방에서 있을 거니까, ...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알았지?”

 “, 그럴게요.”

 비어 있는 방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잠잘만한 자리를 마련해두고 그 분의 방으로 향했다. 발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필요한 거 있어?”

 “, 있어요.”

 “어떤 거?”

 “당신이요.”

 “? 난 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잠시 괜찮을까요.”

 “... 그 정도야. 잠깐만- 정리할 게 있어서... , 됐다. 이제 들어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분은 이불 위에 앉아계셨다. 내가 들어온 걸 보고 히죽 웃으시더니 옆 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셨다. 그곳에 앉으라는 이야기겠지. 나는 조용히 다가가서 그 옆에 앉았다.

 “뭐어- 사람들 사정이야 대충 알고 있어. 곱상한 도련님이 나이 찼겠다, 혼기 찼겠다... 뭐 그런 이유였겠지?”

 “맞아요. 그런 이유입니다.”

 “흐응- , 결혼 싫어?”

 “...싫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본 적도 없는 여인의 사진을 보여줄뿐더러, 더 이상 숲에 가지 말라고 말하셔서...”

 “, 집에 있으면서 더 고상하길 바랐나보네. 도련님은 그게 싫어 뛰쳐나온 거고.”

 “...”

 “근데 왜 숲으로 왔어?”

 “그냥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닿는 곳으로 갔다면 마을 아무대나가 더 가깝지 않나? 여긴 멀잖아.”

 “그렇지만 저는 여기에 오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왜?”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왜, 나는 이곳에 오고 싶었더라. 숲에 가지 말란 소리를 듣고 반항심에? 내가 기댈 곳은 이곳밖에 없다는 생각에? 아니다. 난 왜 이곳에 오고 싶었는지 알고 있었다.

 “당신을 보고 싶었어요.”

 “결론 참 재밌네!”

 “보고 싶어 해서 이렇게 왔어요. 그리고 그곳엔 당신이 있었고.”

 “도련님이 올 걸 알았거든. 난 이 숲에 모든 걸 꿰고 있으니까.”

 “모르시는 게 없으셨죠.”

 “그럼- 그리고 지금 도련님 마음속도 훤히 보여.”

 “제 마음이요?”

 “날 좋아하잖아.”

 “?”

 “맞을 텐데? 난 도련님이 날 좋아하는 거. , 도련님은 나랑 있고 싶고, 나랑 있는 게 즐겁고 또 행복하잖아. 날 보고 싶어 하잖아. 그거 사람들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불리는 거 아냐?”

 “...”

 “그런데 도련님이 부정하면 부정되는 감정이니까 무시해도 돼.”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말 그대로야. 난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과 나누는 감정은 이루어지지 못해.”

 “사람이 아니라고요...?”

 “, ... 설명하면 긴데. 백문이 불여일견. 조금 이따 내 방에 와봐. 그럼 알게 될 거야.”

 

 

노부부는 호기심에 소녀의 방을 열어보았습니다.

 

 

 “어서와.”

 눈앞에서 어서 오라고 인사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눈엔 그저 한 마리의 커다랗고 하얀 학처럼 보였다.

 “어때,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이해하겠어?”

 “하지만... 하지만...”

 “낮에는 사람으로 둔갑하기가 좀 편해서 그 모습으로 만나고 있었어. 밤에는 힘들고.”

 “...”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니 커다란 학은 날개를 펼쳐 제 몸을 감쌌다가 다시 펼쳐보였다. 그러자 내가 알고 있던 그 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분은 날 보며 씨익- 미소 지어보였다.

 “나를 좋아해줘서 고마워, 도련님. 나도 도련님 많이 좋아했어.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만나는 건 힘들잖아. 이제 숲에도 그만 와. 나도 떠날 거니까.”

 “떠나실 거라고요...?”

 “본 모습 보여주고 좋은 꼴 본 적이 없었거든. 도련님은 사람이니까 사람이랑 사는 게 좋잖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곱상한 도련님으로 살아가면 되잖아.”

 그렇지? 라며 내게 다가온 그 분은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고 숲을 모두 꿰고 계시는 분. 그렇기에 이리 들통 난 내 마음은 당신께 속일 수 없었을 것이다.

 “도련님이 내게 꽃을 주고, 꽃꽂이도 보여주고, 항상 놀러와 주고, 선물도 줘서 특별히 도련님에게만 내 마음 열어 준거야. 나도 도련님을 이만큼 좋아한다고.”

 그 분이 다시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그 손을 또 놓지 않고 싶었다.

 “...고마워요.”

 “천만에. 하지만 아침엔 정말 돌아가야 해. 알았지?”

 “정말 떠나실 건가요...?”

 “. 도련님이 마을에 가는 거 보고 갈 생각이야.”

 “제가 보고 싶다고 해도요?”

 “말했잖아, 사람은 사람이랑 사는 게 좋다고. 그러니 사람 아닌 나는 그냥 우정으로 남겨두고 좋은 추억으로 생각해. 알았지?”

 당신이 지어주는 미소가 내 마음에 새겨지고 있는데 그걸 그저 남겨두라니, 이만큼 견디기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다시 만날 수는 없을까요?”

 “글쎄, 내가 다시 온다면야 만날 수 있겠지? 근데 내가 올 때까지 도련님이 있을 수 있을까?”

 “기다릴게요.”

 “얼마나 걸릴 줄 알고.”

 “얼마가 걸리든 기다릴 테니, 꼭 오셔야 해요.”

 이 손을 놓으면 바로 날아가실 거 같아서 밤새 손을 잡았던 거 같다. 이 밤은 어디 안 간다며 날 다독거려 주셨는데, 그 손길이 여전히 선하게 느껴졌다.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감히 바라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해가 뜬 아침에 그 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자신이 학인 걸 들킨 소녀는 지금까지 짜놓은 베를 놔두고 집을 떠났습니다.

 

 

 “좋아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말만 하며 혼사를 파기한 것이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아직 서른 전의 나이라 아버지는 계속 나를 설득하시려고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내가 좋아하는 그 분을 잊을 수가 없어서 혼인을 거부하고 있었다. 참 대단하지, 고집을 안 꺾으시는 아버지도, 여전히 일편단심인 나도.

 “...추워.”

 가 보거라, 한숨과 함께 나를 방 밖으로 밀어내는 말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방을 나오자 급격히 추워진 날씨가 입김을 하얗게 만들었다. 어쩌면 눈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거 같다. 하지만 추운 건 추운 거니 얼른 방에 들어가서 하다 말은 꽃꽂이를 할 생각이었다.

 “도련님, 방 따뜻하게 데워놨습니다.”

 “고마워요.”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자리에 앉아 꽃을 다듬으며 차 한 잔을 여유로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안정되면 꽃꽂이도 정성스레 되는 법이니까.

 “도련님, 차 가져왔습니다. 밖에 눈이 내리는데 보셨나요?”

 “아까는 오지 않아서 못 봤습니다.”

 “, 지금 내리고 있어요. 그런데 도련님, 저기 마루에 꽃 한 송이가 떨어져 있는 거 같던데 가져다 드릴까요?”

 “옮기는 중에 떨어졌나 보군요. 눈 내리는 것도 볼 겸, 제가 가지러 가겠습니다. 차는 옆에 둬주세요.”

 방밖으로 나와 보니 아까는 내리지 않았던 눈이 정말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춥지만 눈 내리는 걸 보는 건 참 편안한 일이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떨어졌다는 꽃을 찾고 있었다. 어떤 꽃이 떨어졌을까.

 “, 저기 있다.”

 꽃잎이 빨간색의 꽃이었다. 덕분에 찾기 쉽다며 꽃을 주우러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꽃이 꽃꽂이 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겨울에 피어날 꽃이 아님도 알 수 있었다. 그 꽃은, 그 빨간 꽃은...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에 밖을 내다보고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이미 눈밭으로 덮인 길은 하얗게 보였지만, 그곳에 내 눈에 띈 하나의 발자국이 보였다. 사람의 발자국이 아닌 한 마리의 새가 있다간 흔적처럼 남겨진 발자국이었다.

 나는 숲을 바라보았다. 이미 하얗게 덮여버린 산 속에서 하얀 새를 찾기는 어려울 듯 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구해 준 학이 바로 그 소녀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