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마님(@MIMA_castlavie2)의 종교마츠로 쓴 글입니다.

※ 주제 - 악마에게 현혹된 여신을 믿는 신부

※ 출처 - https://twitter.com/MIMA_cestlavie/status/1100368317858996224

 

 

[종교마츠] 당신을 위하여

 

 

 

 나의 여신님이시여.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넓은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감사함을 믿음으로 모아 이 한 몸 바쳐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한 줌의 흙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그 날까지도 나는 당신께 기도드릴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니 여신님이여. 부디 오래도록 이곳을 살피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귓가에 닿자 정신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눈이 천천히 뜨이자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밤이네. 다시 눈을 감기도 애매하여 간만에 달이나 볼까, 하고 팔을 휘적거리며 물 위로 올라가보았다.

 , 아름답다. 나는 까만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얼마 만에 보는 달인건지, 금세 저 하늘에 마음을 빼앗겨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마 다른 누군가의 방해만 없었더라면 이미 달을 향한 시 한 편을 적어 올려 보냈으리라.

 "~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면 좋을 텐데~"

 "...그럴 일 없습니다."

 "그런가~ 근데 여신님.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원래 밤에는 잘 안 나타나잖아!"

 ", 그게. 아무래도 누군가의 기도가 들려온 거 같...아서 랄까, 악마가 왜 여기 있는 거죠."

 "~ 기도라는 거 그렇게 큰 소리로 하는 거? 랄까, ? 나야 뭐~ 여신님 계신 곳은 어디든 있을 테니까?"

 "스토컵니까?"

 "꽤나 로맨틱한 대사였던 거 같은데?!"

 "전혀 아니었으니 돌아가 주시죠."

 "에에- 모처럼 여신님을 이 야심한 밤에 만났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 안됩니다. 근데 이리 말씀드려도 안 돌아가실 거잖습니까."

 "크으~ 역시 우리 여신님. 내가 여신님 좋아하는 걸 이리도 잘 알아요~"

 코를 손가락으로 슥슥 문질러 대는 이 요물은 흔히들 말하는 악마다. 하지만 악마치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신의 신성한 힘과 성수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고 있기론 신의 힘이 먹혀들지 않는 악마는 힘이 아주 강하거나 아님 힘이 아예 없거나 인데, 내 생각에 녀석은 후자라 진작에 녀석을 막지 않았다. 녀석에게 힘을 쓰는 건 힘 낭비, 시간 낭비라 생각했다. 그래서 놔뒀거니 녀석은 시시때때로 나를 만나러 찾아왔다. 이 밤에 만남도 그런 연유이겠지.

 "여신님 있잖아."

 "?"

 "저 달 갖고 싶어?"

 녀석은 자신의 손끝으로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달을 가리켜보였다. 저 녀석이 참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달은 만물의 것이니 저 하늘에 있는 것이 마땅합니다."

 "- 그런가... 그래서 포기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자면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애초에 갖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습니다."

 "흐응..."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녀석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바라보지 싶어 나도 녀석과 눈이 마주쳤는데 녀석의 감정이 어린 눈빛이 보였다. 저 눈빛은 마치.

 "나는 욕심나는데."

 "?"

 "나는 달이 갖고 싶어."

 "..."

 "포기할 마음도 없고."

 그렇게 말하며 내게 가까이 날아온 녀석을 난 그저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차, 왜 피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깨달았던 건 녀석이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싸와 눈을 마주쳤을 때였다

 "여신님, 당신의 눈에 비친 그 달이 참으로 아름다워..."

 "악마..."

 "부디 나만의 달이 되어줘, 여신님..."

 그 때 녀석의 눈빛은 마치, 한순간 달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던 나의 감정이 담긴 눈빛과 똑같아 보였다.

 

  오전 예배시간이 다가오자 성당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있는 연못에서는 성당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내가 성당으로 갈 수도 없기에, 나는 이곳에서만 성당 사람들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를 하면 내 귓가에 간절함이 닿는다. 진심이 담긴 간절함이 닿으면 신의 신성한 힘을 조금씩 나누어줄 수 있었다.

 "기도한다고 전부 들어주지는 않아요."

 손을 모아잡고 눈을 감아 오늘도 부디 진심이 담긴 기도가 빌어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예배시간 인가봐?"

 기도와 달리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기분이었다. 기도가 닿길 바라는 마음과 방해받는 건 별개의 일이었나.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고 있어서 눈을 뜨지 않고 대답했다.

 "신성한 시간에는 악마와 상종하지 않습니다."

 "흐응- 그럼 좀 이따 올게?"

 오지 마세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녀석의 기척이 사라졌다. 갔구나. 이 시간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없는 편이 훨씬 좋았다. 그리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기도가 시작됐는지 허울 좋은 말들이 귀에 닿을 듯 말 듯 희미하기 들렸다. 오늘도 글렀구나. 지난밤의 기도는 그리도 선명하게 들려서 잠을 깨웠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선명하게 들리는 기도 듣기가 참 어려웠다.

 "...그 기도는 신부님 것이었나."

 신에게 몸을 바친 인간은 그냥 인간보다 신에게 한 발짝 더 가깝기 때문에 훨씬 더 선명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부님의 기도가 남들보다 훨씬 진심인 것도 배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신부님의 기도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기도가 내게 닿기를 바라고 있다. 더 많은 간절함이 내게 닿아 더 많은 이들의 바람을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정말 평화롭고 안온한 세상이 만들어 질 텐데. 내 힘이 모자란 건지, 아니면 진심이 흑심으로 덮인 건지. 기도를 들을 수 없는 이유를 알지 못해 이렇게 답답해하고만 있다. 귀를 더욱 바짝 기울여 내게 진심이 닿는 이들에게 신의 신성한 힘을 조금씩 나누어 주고 난 뒤에야 예배시간이 끝났다.

 "여신님- 예배시간 끝났어?"

 녀석이 끝나는 건 귀신같이 알아서 찾아왔다. 천천히 오거나 아예 안 오면 더 좋았을 텐데.

 ", ... 오전 시간은 끝났습니다."

 "- 있잖아 여신님."

 "?"

 "기도, 안 들리지?"

 갑작스럽게 허점을 찌르는 물음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이런. 속내를 쉽게 들키면 약점 잡히는 건 어렵지도 않을 텐데. 재빨리 눈을 감고 평정을 찾고자 애썼다.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신이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 마음을 진정시키자마자 재빨리 미소를 찾아 지었다.

 "요즘 희미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나 그리 큰일은 아닙니다. 근데 그건 왜 물으시죠."

 "그냥. 직접 성당으로 가서 들으면 훨씬 잘 들리지 않을까하고."

 "...글쎄요. 저는 이곳을 빠져나가 본 적이 없고 또 빠져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거야 여신님의 힘의 근원지가 이 연못의 성수라 그런 거지. 근원지가 끊기면 신성한 힘을 못 쓰잖아."

 "물론 그렇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저리도 나불거리는 걸 듣고 있자니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알 수 없는 채로 바라보기만을 줄곧, 한참이 지나자 녀석의 입이 열렸다.

 "그럼 있지~ 힘의 근원을 바꾼다면?"

 "...?"

 "알잖아 여신님. 내가 신성한 힘에 면역이 있다는 거. 사실 정확히는 안이 텅텅 비어있어서 막을 힘이 없는 거지만~ 이건 성수에도 해당된다고?"

 "그래서요...?"

 "내가 성수를 텅텅 빈 안쪽에 가득 채워 넣을게. 그럼 나도 성수와 비슷한 파장을 낼 거 아냐? 그럼 나로 인해 여신님 움직일 수 있는 거 아님?"

 이상한 이론을 떠들어대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녀석을 보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성수로 가득 채운다고? 악마가?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고...! 물론 녀석에게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 알고는 있지만. 굳이 어째서 이렇게 까지...?

 "...해본 적 없는 일이에요."

 "그야 도전해 본적이 없으니까 그렇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몰라요."

 "그러니까 해보자는 거고~"

 "왜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그야-..."

 녀석이 내게 다가와 지난밤처럼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싸와 눈을 마주쳤다.

 "여신님은... 내 달이잖아?"

 "..."

 "물론 만물을 위해 그 자리에 있어줘야 하지만. 가끔은 괜찮잖아? 원하는데 있어도. ?"

 악마의 유혹이란 건 이런 걸까. 듣는다거나 하는 것이 안 된다는 것을 이리도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마음이 끌릴 수 있을까. 마음 속 깊이 묻어두어 자각도 못했는데 녀석은 어떻게 내 열망을 이리도 자극할 수 있었을까.

 "밑져야 본전이잖아~ 솔직히 여신님께 손해 가는 것도 없고! 어때?"

 녀석이 내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그 손을 잡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내 마음은 결정된 사항이었다.

 나는 녀석이 내민 손에 살며시 손을 포개어 올렸다.

 

 녀석에게 성수를 주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방어를 위한 공격이 아니라 종이에 물 스며들듯이 주입하니 온전히 그 힘이 다 들어갔다.

 "어떠신가요...?"

 "으음- 잠깐만..."

 녀석은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펼치더니 연못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나는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헤에... 이런 느낌인가?"

 "뭘 하고 계신건가요...?"

 "? - 어떤 파장이 맞는지 제어보고 있었어."

 저걸 저런 행동으로 알 수 있을까. 반복하고만 있는 동작을 몇 번 하다가 녀석이 갑자기 활짝 웃어보이곤 내게 손을 내밀어보였다.

 "뭡니까?"

 "이제 여신님이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서!"

 그 말에 머뭇거리다 호기심 반 긴장 반으로 손을 올렸더니 녀석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품에 안아들게 했다. ...! 안긴 게 놀라서 버둥거리자 녀석이 두 팔로 꼭 안아 진정시켜주었다.

 ", 여신님. 이 느낌이지?"

 ".... 확실히..."

 녀석이 품은 성수의 힘 때문인지 잔잔한 연못 속에 있는 거처럼 안정되고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힘의 근원이 옮겨졌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인 걸까.

 "오후 예배시간은 언제지?"

 "곧 시작되긴 합니다만..."

 "그럼 바로 성당으로 가야하는거지?"

 ".... 가고 싶습니다."

 "그럼 예배 끝나고 나랑 데이트하면 안 될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뭐어- 여신님 이제 나한테 이렇게 안기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쟌?"

 그 말에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니 녀석은 오히려 여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녀석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걸까. 작게 숨을 내뱉곤 대답했다.

 "마음대로 돌아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원하는 곳에 한 번 쯤 발을 들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흐응- 그 마음을 좀 더 키우면 이곳저곳 갈 수 있을 텐데."

 "헛소리 말고 가기나 하죠."

 "네이 네이-"

 내 말을 잘 알아듣긴 한 건지 녀석은 나의 어깨와 다리를 두 팔로 단단히 감싸고 안아들어 하늘을 날았다. 처음 맞는 하늘의 바람은 연못에서 맞던 바람보다 훨씬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늘 올려다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니. 마치 하늘을 마주하는 신이 된 기분이었다.

 "하늘을 처음 날아본 소감은 어때?"

 "...나쁘진 않네요."

 "그럴 땐 좋다, 라고 표현하는 거지~"

 "...당신은 어떤데요?"

 "나는 엄청 좋아~!"

 "그러신가요..."

 "! 나의 달과 함께 있어서 너무 행복해..."

 "..."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녀석에게 일일이 대꾸하면 왠지 내가 나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성당에 도착할 때까지 묵묵히 그 하늘을 즐기기만 했다. 언제까지고 즐길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지금을 만끽하고 싶었다.

 얼마나 만끽하고 있었을까, 녀석이 고도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 거의 다 왔나보다. 궁금해 하지 않아도 성당 근처에 도착했다는 것을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도착했어."

 "고맙습니다..."

 녀석에게서 내리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성당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처음 마주한 성당의 모습은 굉장히 거대하고 화려했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보이지도 않는 신께 기도를 드리고, 신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겠지. 어쩌면 서로가 미련했을지도. 또 어쩌면...

 "여신님."

 "?"

 "이제 강림할 시간이야."

 생각이 흩어지자 녀석이 내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망설일 이유도 명분도 없던 나는 녀석이 내민 손을 꼭 잡았다.

 

 녀석을 따라 성당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 쪽 정면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보였다. 우리는 그 곳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우리 모습은 안 보일거야."

 "그런가요?"

 ". 대신에 여신님의 힘을 조금 쓴다면 여신님은 보일지도 모르지?"

 녀석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런가. 신의 신성한 힘을 쓴다면 보일 수도 있구나. 나는 녀석과 함께 그들이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는 십자가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았다. 이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기를. 그렇게 눈을 감고 빌고 있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신님...?"

 그 목소리는 지난 밤 간절히 기도했던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아아, 누군지 알거 같아. 눈을 살며시 뜨고 바라보자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그 분.

 "신부님!"

 당신을 이곳에서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줄 몰랐다. 나는 기쁜 마음에 모았던 두 손과 두 팔을 넓게 펼쳐 신의 신성한 힘을 넓게 퍼뜨렸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내 모습이 보이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욱 큰 소리로 나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그들의 기도를 듣고자 하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주기 위해 나는 내 선택과 의지로 여기에 왔다.

 그런데 어째서 왜 아직도 기도가 들리지 않는 거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이렇게 모두가 보이는데. 나는 여전히 귀가 뚫리지 않은 것처럼, 누군가 귀를 막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기도가 잘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내 귓가에 들려오는 건.

 "아아- 즐거워라-"

 내 뒤에 서있는 악마의 목소리.

 "..."

 ", 여신님- 신의 신성한 힘을 뿌려야지 않아?"

 "그렇죠... 하지만..."

 "아아- 아직도 안 들려?"

 "그게..."

 "괜찮아. 내가 여신님 대신 기도를 들어줄게."

 "...?"

 "몰랐어? 나 여신님이랑 계약해서 여신님과 같은 힘을 쓸 수 있거든."

 녀석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하던 사이, 녀석은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나와 같은 모습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뿔과 꼬리를 숨기고 내가 입은 하얀 옷으로 바뀌자 영락없이 내 모습이었다.

  무슨 말이던 녀석을 향해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신부님을 바라보자 내게 향했던 시선이 녀석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설마 내 모습이 안 보이는 거야...? 움직이려고 하자 힘이 점점 빠져나가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녀석이 내 입과 힘을 봉인시켜 놓고, 나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서 활짝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여."

 그 입 닫아줘.

 "여신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구제해주겠노라."

 제발 그만해.

 "그러니 원하는 것은 모두 지금 말하라."

 그만 말해줘.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   *   *

 

 

여신님이 쓰러졌다. 그렇게 충격 받을 일이었나. , 신의 신성한 힘을 빌려 쓴 것에 대한 결과겠지.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여신님의 모습을 똑같이 복제했는데 여신님이 쓰러진 탓에 내가 힘을 못 받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네?

 "악마..."

 "~ 신부님!"

 내 모습이 보이자 신부님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인자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더니, 저 순진한 눈에 증오를 심고 계셨네. , 당연한 일인가?

 "지금은 보는 눈도 있고- 어차피 여신님이 쓰러져서 신부님 외에는 날 보지 못할걸? 감정 흐트러지기 전에 어서 예배부터 끝내시지?"

 그래, 아마 저 인간들 눈에는 여신이 강림했다가 사라진 걸로 보일걸? -, 하고 콧방귀를 뀌어 보이니 신부님은 다시 평정을 찾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하, 보이지 않던 신의 등장에 이렇게나 열렬해질 줄이야. 재밌네, 보기 좋아. 나는 여기서 친히 기다려줄게. 신부님께 하고 싶은 말이 좀 있어서 말이지.

 열렬했던 예배시간이 끝나니 인간들은 성당을 하나 둘 나갔다. 그렇게 텅텅 비자 신부님과 나, 그리고 아직도 쓰러져 있는 여신님 셋만 남았다.

 "신부님~"

 "악마... 여기 뭣 하러..."

 "뭐하긴! 당연히~..."

 "이곳은 네가 못 들어오는 곳인데 어떻게 들어온 것인가..."

 "..."

 그래, 나는 이곳에 못 들어왔다. 들어 오려하면 신성한 곳이란 이유로 튕겨져 나가진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나 이곳 엄청 좋아하는데! 근데 저 신부님은 날 여기 못 들어오게 막아 놓기나 하고!

 "당연히 여신님의 힘으로 들어왔지~ 믿음으로 힘을 얻는 걸 여신님 혼자 독점하는 건 이기적이쟌? 나도 힘 얻고 싶다구~"

 "말 같잖은 소리를..."

 '신의 신성한 힘' 100퍼센트 완벽한 신의 힘이 아니란 말이야! 신 혼자는 절대 못 써! 인간들의 기도와 믿음을 빙자한 간절함이 50퍼센트 정도는 있어야 신의 계급을 받은 녀석들은 다 쓸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대량의 믿음과 간절함만 받는다면 그까짓 힘은 충분히 쓸 수 있는데...!

  나 같은 악마는 인간들을 하나씩 일일이 꼬셔야 하지만, 이런 커다란 성당은 인간들이 알아서 대량의 믿음을 가져와 준다. 그래서 이렇게 커다란 성당에는 서있기만 해도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는데, 저 망할 신부님 때문에 내가...

 "하지만 말야- 내가 이곳에 이렇게 들어 올 수 있게 된 거 신부님 덕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너는 여신님의 힘으로 들어온 것이라 말하지 않았나."

 "하하- 그 도움도 있었지만- 애초에 난 원래 여신님께 다가갈 수도 없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옆에..."

 "그거, 신부님이 기도 드렸잖아."

 "...내가?"

 "- 간밤에 신부님이 기도드렸던 거. 나도 듣고 있었으니까-"

 헬쭉- 웃어보이곤 쓰러진 여신님께 다가갔다. 역시 내가 여신님의 힘을 많이 가져가서 쓰러지셨네. 지금 이곳에 믿음을 줄 인간들도 없기도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성수의 힘으로 그 분을 깨우는 건 턱없이 부족한 일이었다. 하긴 나는 성수의 힘을 무한대로 낼 수도 없을 뿐더러, 근원을 바꾼다는 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그 분을 안아들고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계속 계시면 분명 소멸당할 거니까. 더 얘기 나누고 싶다면 연못으로 와, 신부님~"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못 참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좋아서 손이 떨렸다. 아아, 죽여 버리고 싶은데 그럼 여신님께 미움을 사겠지? 신부님도 보아하니 나를 죽이고 싶나 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신부님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나약해빠진 십자가를 두 손에 꼭 쥐고 기도를 드리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에 상종할 이유 따위 없었다.

 

 여신님을 연못으로 데려가 담갔더니 저절로 잠식하였다.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처음 여신님을 만났던 것이 기억났다.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우연찮게 여신님이 계신 연못을 바라보았다. 기도를 듣고 있던 여신님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범접할 수 없는 하늘의 달과도 같았기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큰 용기 먹고 다가가면 그 멀리서도 성수의 힘이 사정없이 공격해왔다. 그래서 여신님을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정말 만족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 최대의 행복이라 생각하며 바라보기만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여신님께 다가가도 공격당하지 않을 거 같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갔다. 예상대로 성수의 힘이 나한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성수가 공격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이 내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천천히 여신님께 다가갔다.

 "안녕 여신님?"

  "...악마?"

 내가 악마란 이유로 잔뜩 경계심 받아버렸지만 어째서인지 여신님의 직접적인 공격에도 전혀 다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열심히 공격당했지만 전혀 아프지도 않았다. 결국 여신님은 날 공격하는 걸 포기하시고 내가 나타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신님~"

 "또 오셨습니까."

 "! 여신님 보고 싶어서!"

 "아무래도 당신은 텅텅 빈 것 같습니다."

 "텅텅?"

 ". 당신이 제게 올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은 신의 신성한 힘을 막을 힘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흐응..."

 여신님은 내가 공격당하지 않는 걸 '텅텅 비었다.'라고 표현하셨지만, 글쎄. 과연 나는 텅텅 비었을까. 성수가 저항하지 않는 힘. 여신님께 다가오기 전에는 분명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내 힘이 정말 전부 텅텅 빈 것일까?

 텅텅 비었다면 채워야지. 명색에 악마인데 무언가를 이루어줄 힘도 없이 누군가를 유혹하여 계약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중에 힘을 채우기에 아주 적절한 분이 내 옆에 있었다. 계약을 이용하여 그 분의 힘을 얻는다면 나는 그 분도 갖는 것이 되는 거 아닌가. 다가갈 수도 없던 시절보다야 지금이 훨씬 행복하지만, 이보다 더한 욕심이 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나의 달을 가질 수 있다는데. 이 기회를 놓치는 건 정말 멍청한 이의 짓이 아닐까.

 그래, 여신님과 계약하자. 계약해서 여신님의 영혼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자. 솔직히 여신님을 상대로 계약하는 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한 평생 누군가를 유혹하는 일을 해왔었으니 걱정은 없었다. 여신님과 계약하기, 그것을 최종 목표로 삼자 낯익은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여신님께 다가올 수 있었던 아주 결정적인 이유가 담긴 그 신부님의 기도가.

 「 나의 여신님이시여. 저는 당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넓은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감사함을 믿음으로 모아 이 한 몸 바쳐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한 줌의 흙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그 날까지도 나는 당신께 기도드릴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니 여신님이여. 부디 오래도록 이곳을 살피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라니."

 웃겼다. 그 기도가 내게도 들리던 그 날 밤, 나는 너무 웃겨서 배꼽잡고 웃었다. 난 내가 텅텅 빈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텅텅 비어있던 건 신부님이던데? 아하하- 저런 기도를 매 밤마다 하고 있었으니 내 힘이 무효화될 수밖에.

 "내 힘을 악의 힘이라고 인지하고 없앤 거잖아!"

 하하- 나를 성당으로 들이는 일은 그렇게 혐오하더니 그런 기도를 드리며 여신님 옆에 나를 두게 하였단 말이지. 그건 어리석은 신부님이 자초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걸 있는 그대로 이용해드려야죠. 나도 머리 굴릴 줄은 안단 말이지?

 

 회상에 잠겨있다 보니 누군가가 오는 것을 몰랐었나보다. 그러나 누가 왔는지는 눈감고도 알 수 있었다.

 "- 와주셨네, 신부님?"

 "...여신님은 어디계시지."

 "회복하러 가셨어. 걱정 마, 해를 끼치진 않았으니-"

 "..."

 "워워-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지으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날라 간다구?"

 "나는 대화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럼 뭐 하러 온 건데."

 "악마를 처단하러 온 것이다."

 "- 나를?"

 "이 이상으로 여신님을 흉내 내는 짓은 없어야하지 않겠나."

 "흐응-... 근데 이를 어쩌나? 나 이미 여신님이랑 계약했는데?"

 "...?"

 "뭘 그리 놀라? 내가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아까는 나 때문이라 하더니..."

 "그것도 맞고."

 "..."

 "자자, 이 몸이 친히 고해성사해 줄 테니 잘 들어. 한 번 밖에 안 말할 거니까 딴 짓하면 안돼요~"

 신부님께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의 기도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부터 내가 여신님과 계약했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여신님이 내 손을 잡았던 그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계약이 성립되었다. 아무리 내가 텅텅 비었다지만 본래 악마라서 계약정도는 눈감고도 할 수 있단 말이지. 원래는 소원 같은 걸 이루어주거나 그럴만한 힘이 필요하지만, 뭐 어때. 여신님이 원하는 소원은 그런 무지막지한 힘이 없어도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소소한 거였는걸.

 진실을 숨기고 오로지 당신만을 위하듯이 아름답게 덮어 말하자 안타깝게도 세상 물정 모르는 가여운 여신님은 나의 달콤한 꼬임에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성수의 힘을 내 안에 가득 주입해주었다. 텅텅 비었다는 걸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성수의 힘이 들어오자 확실히 속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묘한 쾌감에 기분이 아찔했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여신님이 의존할 수 있는 힘의 파장을 찾아내었다. 성수의 힘은 여신님 힘의 근원지이며 여신님의 생명줄이기도 하니까 여신님은 온전히 나한테만 의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때?"

 "무엇이..."

 "여신님이 나한테만 의존할 수 있게 되었다니까?"

 "..."

 "~? 당신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고 따르던 분이 이제 나없인 못 산다니까?"

 "그래서... 널 처단하면 안 된다는 건가..."

 "그렇지~ 이제야 말이 통하는 거야?"

 "..."

 내 이야기를 드디어 이해해준 신부님이 아득바득 이를 갈고 있는 게 보였지만 눈감고 무시했다. 하하- 이보다도 합리적인 계약이 또 어디 있을까. 신부님 덕에 힘은 사라졌지만, 잃은 것에 비해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여신님을 옆에서 볼 수 있고 여신님의 힘을 빌려 쓸 수 있고 여신님은 이제 내가 없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저 망할 신부님은 내 털끝하나 건들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여신님은 내 것이다. 그 분의 영혼까지도 모두, 내 것인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 신부님."

 "..."

 "돌아가서 지금까지처럼 여신님 믿는 인간들을 잘..."

 "여신님..."

 "...?"

 신부님이 그 분의 이름을 부르며 시선이 향하는 곳은 나보다 더 뒤 쪽이었다. 그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어느 세 여신님이 수면 위로 올라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드디어 일어나셨구나. 당신을 보고 있자니 설레는 감정이 어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여신님~ 이제 일어났어? 보고 싶었어!"

 나는 해맑게 웃어보였지만 여신님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리고 여신님의 시선조차도 내게 향하지 않았다. 나를 두고 어딜 보는 건지. 기분이 나빠져서 당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 끝에는 신부님이 있었다.

 "...여신님." "돌아가 주세요, 신부님."

 "하지만..."

 "나중에 신의 부름을 이용해 부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돌아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여신님의 말에 망부석 같았던 신부님은 끝내 발길을 돌렸다. 그제 서야 여신님의 시선이 오롯이 나에게 닿았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악마..."

 "! 여신님~"

 "저는 왜 쓰러졌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씨익 웃어 보였다.

 

 누군가의 기도가 귓가에 닿자 시선이 한 곳을 가리켰다. 눈을 천천히 옮기자 보이는 것은 한 줄기의 빛이었다. 밤인데. 다시 눈을 부벼 보았지만 간만에 빛이 보여 날개를 펄럭거리며 빛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 아름답다. 나는 까만 연못에 떠 있는 커다란 달을 보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달인건지, 금세 저 연못에 마음을 빼앗겨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마 다가갈 용기가 없었더라면 이미 어둠뿐만 있는 저 하늘로 도망가 버렸으리라.

 "좋아해, 여신님."

 신부님께 고해성사 했듯이 당신께도 지금까지의 내 모든 걸 고백했다. 당신을 처음 본 그 날부터 지금까지. 설사 미움을 받더라도 나는 눈앞에 있는 당신을 이렇게나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

 "나를 바라봐줘."

 "바라볼 수 없습니다."

 "어째서?"

 "저는 이제 당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신뢰 안 해도 돼."

 "믿음은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걸 져버리라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계약했잖아. 그런 거, 우리 사이엔 쓸모없는 걸."

 "그래도 신뢰하지 않겠습니다."

  한 없이 단호하게 굴지만 나를 내치지 못 하고 있는 여신님의 마음은 여리게 보였다. 근데 그게 더 매력적인 걸! 아아, 사랑스러워라. 당신은 내 것이 된 지금조차도 나는 당신이 내 것이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

 "왜 저를... 바라신건가요..."

 "그거야 아름다웠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였습니까.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취해 제 행세를 계속 하시지 그러셨나요."

 "~ 그거랑은 또 다른 문제지. 그건 오랜만에 얻은 힘에 취한 것이었고."

 "오랜만이요...?"

 ". 여신님이 나한테 '텅텅 비었다'고 말했었잖아. 말 그대로 난 텅텅 비어있었는데 성수로 힘을 얻었지? 근데 그건 여신님을 위한 힘이었어. 나는 오히려 성수에서 힘을 얻은 여신님의 신성한 힘을 쓸 수 있었어."

 "고작 그런 이유로..."

 "게다가 여신님은 안 들렸던 기도들, 내게는 다 들렸었으니까. 악마는 좋은 기도 나쁜 기도 안 가린다고? 그래서 여신님 대신 내가 모습 바꾼 거였다고. 신의 신성한 힘을 쓰면 모든 기도들을 들어줄 수 있잖아?"

 "...그건 함부로 쓰는 힘이 아닙니다. 간절함이 닿아야만 쓸 수 있는..."

 "여신님이라면 성당을 가도 안 들릴 건 안 들린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

 내 말에 여신님은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욕망이 앞섰다는 걸 알고도 왜 가만히만 계시는 건지. 설마 죄책감 같은 걸 느끼시는 걸까? 하하, 그건 너무 우스운데?

 "후회하고 있어도 계약을 무를 수는 없어."

 "계약은... 절대적임을 압니다."

 "! 잘 알고 있네!"

 "악마..."

 "여신님, 내 이름 오소마츠인데, 그렇게 불러주면 안될까?"

 이름 없이 계약을 한 상태는 사실 엄청 불안전한 상태이다. 이름을 알면 서로에게 각인이 되어 몸까지도 전부 갖게 되는데, 이름을 안 불렀으니 아직 여신님의 영혼만 내 것인 거다. 몸까지 한 번에 갖는 것도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손잡는 걸로 계약하는 거에 이름까지 넣었다면 바로 계약이란 거 들켰을 테니까. 다 된 밥에 재 뿌려서 계약 무르는 것보다 이름 안 부르는 게 낫지. 어차피 이름 정도는 나중에 알려도 괜찮겠지 싶었다.

 쵸로마츠. 당신에게 반한 이래 그리도 아껴 부르려고 쟁여두었던 당신의 이름.

 당신 없이 살아가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이젠 당신도 나 없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아하하, 이런 결말을 얼마나 바라왔는지! 나도 당신도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을 이 상황을!

 "...제 이름은 아시나요."

 "물론이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름인데!"

 "...어리석으시군요."

 "차마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었다고 표현해줄래?"

 "말 같잖은..."

 나는 그저 씨익 웃어 보이기만 했다. 그것이 나의 최선의 방어였으니까. 아아, 이젠 무를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어.

 "약속할게. 신뢰가 없는 일방적인 약속이지만, 여신님을 위해 약속할게. 내가 여신님에게 빌려 쓰는 이 힘은 이제 절대 나쁜 곳에 쓰지 않아."

 "믿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지켜보기는 하죠." "이제 평생 지켜봐야 하는데 무슨 걱정이람?"

 "그런가요..."

 씁쓸한 미소가 걸린 저 낯빛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 내가 역시 잘못된 걸까? 아냐, 이건 당연한 거다. 지독한 콩깍지가 쓰인 나에겐 당연한 것이다. 당신이 나를 바라본다. 아아,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 눈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부르려고 저 작은 입이 나를 위해 사랑스럽게 달싹인다.

 "오소마츠."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에 황홀감에 젖어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 사랑해 나의 쵸로마츠."

 

[오소쵸로] 사랑을 하는 너에게 감정이란 선물을.

 

 

꼬밍님의 쵸로마츠 안드로이드 썰 기반.

 

 

 

 

#1.

 

 “호에 호에- 드디어 만들었다스-!”

 데카판 박사는 자신이 만든 그것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것은 아직까지는 눈을 감고 있지만 박사는 그것을 피부며 머리카락이며 심지어 생리현상 조차도 전부 20대 남성처럼 만들어 놨다. 때문에 그것이 눈을 뜨고 사회로 나간다면, 그것이 인간이 아니란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일 것이라고 박사는 확신하고 있었다.

 “오른손 올렸다 놓을 수 있겠다스?”

 박사의 말에 그것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내려 보였다.

 “호에-, 그럼 왼발도 들었다 놓을 수 있겠다스?”

 그것을 또 박사의 말에 왼발을 천천히 들었다 내려 보였다.

 “잘했다스! 그럼 이제 눈을 떠도 좋다스!”

 그것은 박사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것은 자신의 눈 너머로 보이는 환경이 새로워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고는 자신 앞에 서있는 박사에게 초점을 맞추고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나의 연구소다스. 내가 여기서 너를 만들었다스.”

 그것은 연구소라는 곳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박사는 그것이 주변의 모습을 저장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했지만 몇 가지 실험을 더 해봐야 하기 때문에 우선 그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다스?”

 질문을 받은 그것이 두리번거리던 고개를 멈추고 다시 초점을 박사에게로 맞췄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재꼈다.

 “...제 이름은 안드로이드CR-03, 입니다.”

 

 

 

#2.

 

 데카판 박사가 안드로이드CR-03을 만든 이유는 안드로이드에게 대화를 하고 사랑을 주게 된다면, 안드로이드 자체에 없는 감정이 생기는가? 라는 그의 의문점에서 시작되었다. 애초에 안드로이드는 기계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메모리칩으로 주입된 정보만 갖고 주변을 분석하거나 말을 전달할 뿐, ‘감정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때문에 완성된 안드로이드CR-03은 그 실험을 위해 병원에 투입 되었는데, 그곳은 환자가 한명 있는 큰 1인 병실이었다.

 ‘마츠노 오소마츠.’

 안드로이드CR-03이 도착한 병실의 문 앞 팻말에는 환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드로이드CR-03은 환자의 이름을 자신의 메모리칩에 새긴 뒤 천천히 문을 열고는 그곳에 들어갔다. 안드로이드CR-03이 들어간 방안은 온통 새하얬다. 새하얀 벽에 새하얀 천장. 새하얀 바닥위에는 새하얀 침대가 있었고, 그곳엔 새하얀 소년이 문 반대편에 있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까만 머리는 눈을 덮을 정도로 길었고 자신이 들어왔는데도 아무 미동이 없어서 안드로이드CR-03은 그가 혹시 인형은 아닐까 인지했지만, 심장이 뛰는 작은 미동을 감지하고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자 이 방에 있는 환자인 마츠노 오소마츠임을 알 수 있었다.

 “마츠노 오소마츠?”

 안드로이드CR-03은 먼저 새하얀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창문을 바라보던 소년의 시선은 서서히 로봇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곳엔 자신과 꼭 닮은 얼굴의 누군가가 서있는 것에 놀라 소리 질러버리고 말았다.

 “에에엑-...!!! , 누구?”

 “제 이름은 안드로이드CR-03, 입니다. 데카판 박사님의 실험을 위해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헤에-... 안드로이드... 라고하면. 로봇?”

 “그렇습니다.”

 로봇이라기엔 너무도 사람 같았기에 오소마츠는 안드로이드CR-03에게 가까이 다가와 보라고 손짓했다. 안드로이드CR-03은 오소마츠의 손짓을 알아챈 뒤 오소마츠에게 천천히 다가가 앞에 섰다.

 “잠깐 손 좀 잡아볼 수 있을까?”

 “잡아도 괜찮습니다.”

 오소마츠는 안드로이드CR-03의 대답을 듣고 자신 앞에 서있는 로봇의 손을 잡아보았다. 차갑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은 인간의 온도 같게 느껴졌지만 확실히 인간의 손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오소마츠는 정말 안드로이드CR-03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깨닫고 안드로이드 CR-03을 빤히 바라보았다.

 “근데 왜 나한테 온 거야?”

 “데카판 박사님의 안드로이드의 감정유무 실험을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자세한 정황은 모릅니다.”

 “-... 박사인가. 그 사람은 참 이상한 박사야. 뭐 이상한만큼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이왕이면 예쁜 누나로봇을 보내주지 왜 사람 간 떨어지게 쌍둥이로 만들어 놨냐구-”

 오소마츠는 박사의 실험을 이해할 수 없어서 툴툴댔지만 그래도 도플갱어보다는 쌍둥이 형제라는 느낌이 훨씬 괜찮은 듯 했다. 지금껏 외동으로 살아왔던 오소마츠였던지라, 동생이 생긴 거 같아 기쁜 느낌도 들었고, 자신의 알맞은 단어 선택에 뿌듯해하며 그는 웃어보였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안드로이드CR-03입니다.”

 “너무 길어. 그리고 딱딱해. 차라리 내가 지어줄게.”

 “무엇으로 말입니까?”

 “‘쵸로마츠’. 너는 이제부터 마츠노 쵸로마츠인거야.”

 

 

 

 

#3.

 

 “쵸로마츠으-”

 “불렀어요, 오소마츠?”

 “- 밖에 나가고 싶어.”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부축해 일으키고 휠체어에 앉혀주었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

 “. 그럴게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끌고 문밖으로 나갔다. 이젠 익숙해서 어느 길을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휠체어를 끌고 조용한 곳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로 나갔다. 쵸로마츠에게 탑재되어있는 GPS기능은 이럴 때 굉장히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언제쯤 존댓말 내릴 건데.”

 “아무리 명령이라도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다고요. 대신 딱딱한 말투는 고쳤잖아요.”

 “에에- 그거 가지고는 안 돼! 동정티 너무 팍팍나쟎~?”

 “안드로이드에게 동정이 뭐예요. 웃기지도 않아요.”

 “웃기려고 한 소리는 아니지만 진짜 서운하다구- 내가 쵸로마츠에게 명령조로 말하면서 딱딱해지면 쵸로마츠도 서운해 할 거 아냐-”

 “서운하지는 않을 거 같은걸요. 오히려 오소마츠가 말하는 서운함을 모르겠어요. 대신 사전적 의미로 서운함이란 것은...”

 “아냐 아냐. 사전적 의미로는 서운함을 느끼지 못해. 감정은 지식으로 배우는 게 아냐. 마음으로 익히는 거지.”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에게 감정을 알려주려고 열심히 말해주지만 정작 쵸로마츠는 그것을 계속 사전적 의미로만 풀어내려고 해서 항상 쵸로마츠를 향해 툴툴거렸다. 이유는 아마 감정에 대해서 박사가 쓸데없이 지식만 넣어놓았기 때문이겠지, 오소마츠는 차라리 그 지식을 모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밖에 나오자 시원했다. 바람도 안 통하는 꽉 막힌 병실보다야 바깥이 훨씬 좋고 신선했다. 오소마츠는 바람을 맞다가 쵸로마츠를 불러 바라보았다.

 “저기 저기 쵸로마츠-,”

 “오늘은 오렌지 주스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말하기도 전에 준비해 놓았던 오렌지 주스를 꺼내 오소마츠의 볼에 살짝 가져다 대어줬다.

 “앗 차가- , 어떻게 알았어? 아직 말 안했는데...”

 “그냥 알았어요. 오소마츠가 내게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을 거라고 얘기할 거 같았거든요,”

 “헤에-, 감정은 모르면서 감은 생긴 거야? 놀랍네.”

 “감이요? 그게 뭐죠...?”

 “어라, 사전적 의미로 그건 없는 거야?”

 “있긴 한데 뜻이 너무 많아서요.”

 “아아... 느끼는 거 말이야. 그 뜻이야. 어쩌면 너에게 정말 감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오소마츠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쵸로마츠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감정이 생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로봇주제에 생각이란 계산을 하려하자 머릿속 회로 하나가 삐그덕 거리는 찌릿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쵸로마츠, 이제 갈까?”

 “, . 그러도록 해요,”

 오소마츠의 불음에 회로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병실로 오소마츠를 데리고 안전하게 돌아왔다.

 

 

 

 

#. 4

 

 “저기, 쵸로마츠.”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날이었다,

 “불렀어요?”

 어쩌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될 뻔 한 날.

 “산책 가자,”

 “, 좋아요.”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일 뻔 한 하루의 시작은 숲 속 산책길이었다.

 “쵸로마츠, 화관 만들 줄 알아?”

 “화관이라면 꽃 왕관 말하는 건가요?”

 “으응 맞아.”

 “만들진 못해요. 대신 만드는 법은 알려줄 수 있어요,”

 “왜 못 만들지만 만드는 방법은 아는데?”

 “화관 만드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대신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는 있으니까요.”

 “아아... 그럼 만드는 방법 알려줘. 나 화관 만들게.”

 어쩌면 고집이었다. 하지만 이건 대수롭지 않은 고집이었다. , 들어줄 수 있는 부탁 정도의 고집이라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으응-... ! 다 만들었어!”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무슨... 쵸로마츠가 쉽게 알려줘서 그런 거거든. 그게 아니고, 잠깐 숙여봐.”

 “? ... 이렇게요...?”

 쵸로마츠가 허리를 숙이자 오소마츠는 자신이 만든 화관을 쵸로마츠 머리에 올려주었다,

 “. 쵸로마츠 선물.”

 “... 아아, 고마워요. 기쁠 거 같아요.”

 “...그게 뭐야. 기쁘면 기쁜 거지.”

 “거짓말은 하기 싫어요, 하지만 감정이 있다면 이건 기쁨이에요.”

 “.... 틀린 건 아냐.”

 오소마츠를 보며 싱긋 웃는 쵸로마츠. 오소마츠는 그의 미소와 화관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심장이 두근, 설레고 말았다. 설레는 감정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쵸로마츠는 로봇이라며 자신을 타일러 왔지만 날이 갈수록 커지는 설렘은 멈출 수가 없었다.

 감정을 못 느끼는 안드로이드이지만 그래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말 많이 발전된 모습부터, 자신을 진심으로 챙겨주고 아껴주는 모습. 오소마츠의 그 모든 것이 쵸로마츠가 안드로이드임을 잊게 해주었다.

 “저기 쵸로마츠.”

 “?”

 “만약 감정을 갖게 된다면 어떨 거 같아?”

 “기쁠 거 같아요.”

 “그래... 응 그렀겠네. 쵸로마츠는 사랑이란 개념을 모르니까...”

 “단어의 개념은 알아요.”

 “알아 나도...”

 완벽한 날의 꺼낸 완벽한 단어, 하지만 상황이 완벽하지 않아 할 말이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에게 이런 용기가 난걸까. 아니, 시작의 발단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어쩌면 쵸로마츠가 감정이 있길 바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이 짝사랑이라는 싹틈을.

 

 

 

 

# 5.

 

 “좋아해.”

 “......”

 “좋아해. 좋아한다고.”

 “...오소마츠.”

 “알아... 네가 로봇인거. 감정 없는 안드로이드라는 거 알아.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미안해요 오소마츠...”

 “...거짓말로도 못 하는 거야...?”

 “거짓말이라니 당치 않아요. 나도 오소마츠를 참 좋아해요, 감정이 있건 없건 이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내가 말하는 좋아함이랑 오소마츠가 말하는 좋아함은 다르잖아요...”

 “그렇지만... 알아, 그렇지만... 나는...”

 “......”

 “나는... 쵸로마츠를 사랑하는 걸...”

 “...사랑이 무슨 느낌이에요...?”

 “...몰라도 돼. 사전적 의미만 알아도 상관없어. 감정이 생기길 바랐지만 죽어도 감정이 안 생긴다면 사전적으로라도 이해해서 나를 좀 좋아해줘...”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나는 알 수 없는 걸요. 분명 오소마츠가 날 사랑하면 나도 사랑을 느끼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난 그것을 모를 테고... 공감을 못하고 나는 결국 오소마츠에게 상처 입히고 말거예요...”

 “하지만...”

 “나는 오소마츠에게 상처 입히기 싫어요. 상처 입는 오소마츠의 마음조차도 공감 못할 거예요. 그러니 그 소중한 마음은 나 말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세요...”

 “그런 거 있을 리가... 싫어...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단 말야... 내겐 지금도 내 인생에서도 쵸로마츠가 전부란 말이야...”

 “...그래도 미안해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만들어준 화관을 돌려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이 화관에 닿기도 전에.

 “그럼 명령이야.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 걸, 허락해줘.”

 쵸로마츠는 화관에 손도 못 대고 오소마츠의 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알겠습니다.”

 잔인한 감정의 시작이여, ‘사랑이라는 잔혹한 명령 파일이 쵸로마츠의 머릿속에 각인 되고 말았다.

 

 

 

# 6.

 

 마음 아픈 밤이 시작되어 외로운 새벽을 맞을 때까지. 명령으로 입력된 슬픈 사랑의 원망은 결국 하룻밤의 쾌락에 몸을 맡겼다.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 필요는 없었다. ‘사랑이란 명령 하에 내려진 허락은 옳고 그름을 헤아릴 수 없었으니까.

 “신기하네 쵸로마츠-”

 “일일이 신기해...하지 좀... 말아 줄래요...”

 “하지마안- 이렇게 만지면 흥분하쟎-?”

 가짜임을 알면서도 진짜 같은 그것을 쓰다듬자 얕은 신음을 내뱉은 쵸로마츠가 신기하기만 했다. 오히려 더욱 갖고 놀고 싶은 기분이랄까.

 “감정이 없으면서 흥분은 하는 쵸로마츠가 놀라워~”

 이왕이면 감정까지 있으면 좋을텐데-, 오소마츠는 목구멍까지 넘어오던 말을 이내 삼키고 눈앞에 보이는 쾌락에 몸을 맡겼다. 말하지 않아도 알 테지, 생각정도는 계산 하리라 믿었다.

 “어디가 기분 좋아? 어떻게 하면 흥분이 돼?”

 “...모르...겠어요... ‘기분 좋다는 거...”

 “‘기분 좋다는 건 그냥 느끼는 거야. 이렇게 하면 좋쟎-?”

 오소마츠가 만질 때마다 또 다시 회로가 삐그덕 거리며 뒤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뒤엉킬 때마다 이상한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고, 가짜로 뛰는 심장이 튀어 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이상했다. 대체 왜 짐승들이 하는 교미를 하면서 이런 반응이 느껴지는 건지 쵸로마츠로선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소마츠...”

 “으응-?”

 “이거... 기분이 좋은 거예요...?”

 “물론.”

 “어째서 좋은 거죠...? 이건... ‘교미와 비슷한 거잖아요...”

 “달라. ‘교미는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만들기 위해 본능적으로 하는 것이고. 이건...”

 “이건...?”

 “내가 사랑하는 너와 하고 싶은 섹스거든.”

 쵸로마츠는 그 뜻을 알고 있다. 그리고 교미와 다른 점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할 말이 없었다.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계속 하고 싶은 그 이상한 마음을 인정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저 눈앞에 보이는 쾌락만을 치켜세울 뿐이었다.

 

 

 

# 7.

 

 그 전날 밤도 쾌락에 몸을 맡긴 뒤였다. 그래서 여느 날처럼 눈을 뜨면 옆에 오소마츠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날 아침은 이상하게 낯선 공간에 누워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이곳은...? 오소마츠는...?’

 익숙한 공간이니 만큼 오소마츠가 곁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이곳은 쵸로마츠가 처음 깨어난 연구소였으니까.

 “오소마츠...!”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 지는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오소마츠만을 찾으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병원으로 갔지만 이상하게 병실은 텅 비어있었다. 쵸로마츠는 급하게 안내 데스크를 찾아가 물었다.

 “오소마츠... 마츠노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나요!!!”

 “마츠노 오소마츠 환자요? , 이미 퇴원 수속 밟으셨습니다.”

 말도 없이 퇴원이라니, 쵸로마츠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받았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쵸로마츠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항상 같이 산책하던 곳부터 가본 적 없는 곳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곳을 뛰어다니며 오소마츠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쵸로마츠는 그래도 달렸다.

 “어디에...”

 숨이 차거나 체력이 닳지 않았다.

 “오소마츠...!”

 그래서 오소마츠를 부르며 쉬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쵸로마츠는 같은 곳을 여러 번 돈 후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몸을 멈추자 느낄 수 있었다. 호흡이 가파르고 심장이 몹시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머리에서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 내렸다. 쵸로마츠는 이 기괴한 현상을 바로 검색해 보았고, ‘초조함이란 것과 비슷한 증상임을 알게 되었다.

 “초조... 나는 초조한 건가...”

 자신이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검색 결과에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사사로운 초조함 따위는 발을 멈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오소마츠를 찾으러 가고자 하던 찰나.

 “호에-! 찾았다스-! 여기 있었다스!”

 “...박사님...?”

 쵸로마츠는 자신을 찾은 데카판 박사를 발견하자마자 다가가 그를 붙잡고 물었다.

 “박사님... 오소마츠가 사라졌어요...”

 “호에... 알고 있다스. 그것에 대해 말해줄 테니 우선 연구실로 가다스.”

 “...알겠습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아다니는 것을 멈추고 박사를 따라 연구실로 돌아갔다.

 

 

 

# 8.

 

 “호에- 여기 앉다스.”

 쵸로마츠는 박사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급하게 물었다.

 “오소마츠는 어디에...”

 “호에... 그 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기를 바란다스.”

 박사는 쵸로마츠에게 이야기를 하고자 입을 열었다. 그리고 쵸로마츠는 박사가 말한 것을 쵸로마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오소마츠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완쾌할 방법이 없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야했고 매일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지내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사는 쵸로마츠를 만들어 오소마츠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오소마츠가 가기 전까지 외로웠던 기억이 없도록.

 하지만 박사는 안드로이드에게 감정까지 심어줄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박사는 안드로이드에게 대화를 하고 사랑을 주게 된다면, 안드로이드 자체에 없는 감정이 생기는가? 라는 타이틀을 붙여 실험이라는 포장을 예쁘게 한 뒤 오소마츠에게 준 것이다.

 “...저는 그저 오래 입원하는, 곧 퇴원하는 사람일 줄 알았습니다... 왜 오소마츠는 저에게 아프다는 걸 한 번도 안 알려준 건가요.”

 그렇게 아파했는데 왜 자신의 앞에선 웃어 보였는지 쵸로마츠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안 남은 삶을 왜 숨기고 있던 것일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을 거다스.”

 “...저에겐 걱정이란 감정이 없는걸요...”

 “인간은 정이 생기면 무생물의 마음까지 헤아리기도 한다스. 그래서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스.”

 “......”

 “그래도 아픔을 숨길 수는 없었을 거다스.”

 그 말에 쵸로마츠는 언젠가 쾌락을 즐기던 밤에 오소마츠가 쿨럭 거리며 피를 토한 일이 생각났었다. 그 때 오소마츠는 그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코피 대신 입에서 피가 나온 거라며 웃어보였다. 그래도 쵸로마츠가 계속 안절부절 못하자 오히려 괜찮아, 기분 좋아. 계속해줘.’라고 말하며 쵸로마츠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미세한 움직임을 이미 간파했었고, 쾌락이 끝난 후에야 겨우 의사를 불러 안정시켰었다.

 “...아픈 건 알았지만... 심각한 줄은 몰랐습니다...”

 “안드로이드는 본래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만 믿기 때문이다스. 몸의 심각성은 알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읽지 못하지 않다스?”

 “...그렀네요... 내가 알아도 오소마츠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었고 또 나는 그걸 믿었으니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마음까지 읽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져 밀려오는 기분에 대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생각에 생각이 쌓여 울분에 괴로워하고 있다가 문득 스쳐지나간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습니까...?”

 

 

 

 

# 9.

 

 그날 밤은 그믐달이 뜬 조용한 밤이었다. 깜깜하고 고독하여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올 듯한, 폭풍전야 같은 아주 아주 조용한 새벽 밤이었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누워있던 쵸로마츠를 보고는 머리를 스윽- 쓸어주었다. 오늘도 즐거운 밤이었어, 아마 절대 잊지 못할 테야,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며시 병실 밖을 나가려 했다.

 “...오소마츠...?”

 물론 오소마츠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쵸로마츠가 문제였지만.

 “, 산책. 쵸로마츠는 날 안 보고 계속 자 줘.”

 명령하나면 모든 건 자연스레 돌아간다.

 오소마츠는 그 길로 데카판 박사를 만나러 갔다.

 “호에, 무슨 일로 이 새벽에 찾아왔다스?”

 “난 누구보다 내 병을 잘 아는 사람이야. 그래서 왔어.”

 “호에... 약이라면 처방해 줄 수 있다스...”

 “아니, 약은 지긋지긋해. 박사도 내 병을 완쾌할 수 있는 약은 못 만들었잖아.”

 “호에... 그래도-...”

 “됐고, 내 부탁이나 들어줘.”

 “무슨 부탁이다스?”

 “쵸로마츠에게 내 뇌를 이식해줘.”

 “호에-?? 어째서다스??”

 “난 정말로 쵸로마츠를 사랑해. 그런데 쵸로마츠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거쟎-? 로봇이라 감정이 없단 말이야. 나만 사랑하고 쵸로마츠는 그런 날 받아 주기만 하는 거잖아. 그런 사랑은 어딘가 꽉 차지 않고 텅 빈 거 같아 불안해. 적어도 나를 좋아하는, 나를 사랑하는 감정을 스스로가 느꼈으면 좋겠어. 그래서 생각했어. 쵸로마츠를 사랑하는 감정이 가득 담긴 내 뇌를 내가 죽은 후에 쵸로마츠에게로 이식하면, 쵸로마츠에게도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호에... 하지만 인간의 뇌를 안드로이드에게로 이식하는 건 꽤나 어렵고 힘든...”

 “그래서 해줄 거야 말거야.”

 “호에...”

 “...부탁은 거절이 가능하겠지. 그렇다면 거절 못할 부탁으로 바꾸면 되쟎-?”

 “호에...?”

 “유언이야. 박사, 내가 내 병을 직감해서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이야.”

 유언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알았다스. 최선을 다해보겠다스.”

 “그래, 고마워. 박사라면 분명 할 수 있어.”

 박사는 쵸로마츠를 데려와 주요 회로선을 끊고 긴 잠을 자게 두었다. 그렇게 쵸로마츠는 얼마나 잠을 잤는가. 일주일? 보름? 어쩌면 한 달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 긴 시간을 일일이 셀 시간은 없었다. 박사는 그저 마지막 부탁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뇌를 안드로이드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했다.

 자신의 뇌를 이식해준 인간은 숨을 거두었고 대신 인간의 뇌를 가진 안드로이드가 드디어 눈을 떴다.

 

 

 

# 10.

 

 “아아... 그렇다면...”

 모든 진실을 들은 쵸로마츠는 고개를 떨구었다.

 “오소마츠는 지금 없...”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몰려오는 감정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호에... 대신 추억은 감정과 함께 남아 있을 거다스...”

 박사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그것이 다였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감정... 오소마츠가 그렇게 원하던 감정을 느낄 수 있나요...?”

 “...이식은 성공했다스. 이제 느끼는 것은 본인 몫이다스.”

 “아아...”

 쵸로마츠는 천천히 생각했다. 눈을 뜨고 난 후부터 자신이 겪었던 모든 것을. 억장이 무너지고 초조하고 다급하고 괴로웠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이 기분들은 마치 회로가 삐그덕 거린 느낌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차고 올라와 온 몸을 헤집어 놓았다. 쵸로마츠의 느낌들은 소용돌이처럼 돌고 돌아 오소마츠와의 추억들을 낱낱이 기억나게 했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느꼈던 감정들이 파도처럼 쵸로마츠에게 휩쓸려 왔다.

 “아아...”

 당혹감. 설렘. 기쁨. 행복. 좋아함. 체념. 아픔. 괴로움. 오소마츠가 느꼈던 모든 감정을 직접 겪고 나자 쵸로마츠는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와 볼 밑으로 투둑- 떨어지고 말았다.

 “아아... ... 아악... 으아아아아...!!!!”

 그것은 오소마츠가 원하던 사랑과, 오소마츠가 없는 슬픔의 감정이었다.

[오소이치] 영화관에서

 

 

 

 “-, 뭐야 이치마츠밖에 없어?”

 “...? 무슨 일인데.”

 “있지, 이치마츠.”

 “....”

 “내일... 시간 되냐?”

 “...아마도?”

 “아 그래?? 그럼 내일 영화 보러 가자-!!!”

 “...???”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웬일로 오소마츠형이 나에게 영화를 보자고 권유를 한 날이기 때문이다.

 왜? 왜 나지? 쿠소마츠도 쵸로마츠형도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아닌 왜 나인 거지? 정말 우연히 내가 집에 있어서? 아님 일부러 내가 집에 있을 때를 기다려서?

 완전 이해가 안 되는 이 기다리는 순간은 그저 긴장의 순간이었다. 왜 집에서 같이 나오지 않고 영화관 앞으로 약속 장소를 잡아버린 걸까. 그래서 사람 많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 고립되어 버린 나는 더 긴장하고 말았다. 누군가가 날 실수로 부른다 해도 깜짝 놀라 고양이귀가 튀어나올 정도로...

 “-, 일찍 나왔네-!!”

 정말 나와 버렸다, 고양이 귀.

 “, 이치마츠? 괜찮은 거냐?”

 등장의 대사와 함께 내 어깨를 툭툭 쳐버린 형 때문에...

 “...놀랐잖아...”

 “, 횽아 때문에 우리사남 놀라버린거?? 에에, 미안 미안- 대신 형이 간식 쏠게~”

 “......”

 아무리 봐도 저 형은 정신이 나간 거 같다. 아니 나간 게 확실하다. 영화보자는 말에 이어 간식까지 쏜다니. 무슨 생각인거지.

 “자자, 들어가자고~ 곧 영화 시작해 버리니까~”

 “... 어어...”

 난 형의 밀림을 그대로 당해 엉거주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오늘의 간식은 나쵸입니다~~”

 팝콘대신 산 간식은 나쵸였다. 콜라도 큰 걸로 두 개를 사서 내게 하나를 건넸다. 어라-...

 “이거 하나 다 마셔도 돼...?”

 “물론~”

 항상 큰 걸 사면 꽂혀있던 빨대 개수는 3개였다. 주로 쥬시마츠랑 토도마츠랑 나눠 마셨는데 이번엔 이 큰 거 하나가 통째로 내꺼 라니. 이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감격할 수 있는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바람이 분거야...”

 “? 뭐가?”

 “갑자기 영화를 보자고 하지 않나... 간식을 사준다 하지 않나...”

 “-, 글쎄-!”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한 마디였다.

 “그런 거 생각 말고 영화나 보러 들어가자~ 특별히 이치마츠가 좋아하는 고양이 다큐멘터리란 말이야~ 어때 좋지?”

 “... ... 으응... 그거 좋을지도...”

 뭐, 정신이 나가도 이쪽으로 나갔으니 상관없겠지. 뭐가 됐던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니 봐주도록 한다.

 

 “......”

 뭔가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

 망할 장남이 영화를 보여 준다하고, 장남이 간식까지 사주고, 큰 콜라를 혼자서 독차지하고, 심지어 영화내용 까지도 완벽한데. ?

 “...냐옹-”

 왜 관객까지 고양이 인거지???

 “...저기, 오소마츠형...?”

 “, 중요한 장면이란 말이야...”

 물론 중요한 장면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역경을 딛고 올라서는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왜 훌쩍이는 관객 소리가 냐옹으로 들리냐 이것이지. ? 왜 이렇게 완벽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거지??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 생각하지 말자. 그럼 편하니까. 얼마나 좋은가. 영화도 보고 나쵸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고양이 영화에 관객도 고양이... 와 잠만, 여긴 천국인가? 정말 꿈같은 천국...

 잠깐.

 ...꿈같은...?

 “저기, 오소마츠형...!”

 “...아까부터 왜 불러 이치마츠...! 조용해야 하는 거 몰라?”

 “그치만... 이거 설마... 꿈이야...?”

 “? - 글쎄-!”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게 또 아까와 똑같은 애매한 대답... 난 그 대답에 진이 빠져버렸다. 꿈인가? 현실인가? 천국인가? 대체 어디인가 가늠하면서 나쵸를 바스락 깨물어 먹었을 때 쯤, 입안에서는 이유 모를 폭발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탄산이 잔뜩 들어가서 폭죽이 터져 나쵸가 혓바닥 위에서 힙하게 춤추고 있는 기분.

 그리고 느꼈다.

 

 

 “, 시발. .”

 

 

 

 

 

-----------------------------------------------------------------------------------------------------

나쵸 생일축하행애ㅐ애애ㅐ애애애애ㅐㅐ!!!!!!!!!!!!!!!!!!!!!!!!!!!!!!!1

어휴 나쵸를 까매오로 출연시키기위해 이치가 나쵸꿈을 꿨다는 이야기였어~~~~~~~~~!!~@!@!@

[오소마츠상] 장남이 결혼하는 이야기 오소마츠 이야기

 

 

 

 그것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어라? 마츠노군-?”

 때는 여느 때처럼 경마장을 가던 도중에.

 “...? 어라 너는?”

 우연히 다른 길로 가볼까-, 란 생각에 시작된 일이었다.

 “? 나 마츠노군이랑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그 시작의 질문은 아주 우연찮았고.

 “-... 네가 그 때 우리 반에 그...-?”

 또 아주 묘했으며.

 “- 맞아!”

 또 그 끝의 대답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야- 정말 간만이네- 잘 지냈어?”

 그들은.

 “물론이지- 그나저나 마츠노군은 어디 가는 길이야?”

 그 이야기를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제일 처음에 눈치를 챈 사람은 사남이었다. 물론 그는 형제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과묵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소마츠는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참으로 간단하게 나왔다. 사남은 믿지 않는것이다. 아마 맨 처음 눈치를 채서 그런 게 아닐까 가설을 세워봤다. 맨 처음에 눈치를 챘으니 자신의 말을 믿을 사람은 적었다.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사남이 그렇다 말해도 오소마츠가 아니다 말하면 오히려 내 말을 믿는 게 그의 동생들이니까.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조금은 슬퍼지는 그였지만, 뭐가 됐던 믿지 않을 것이 뻔할뿐더러 사남은 애초에 떠벌떠벌 말하고 다닐 성격이 아니었다. 때문에 오소마츠는 자신이 다니는 길 골목사이에 사남이 있어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믿어주면 고맙다는 마냥 확정된 길 하나로 그녀를 만나러 다녔다. 이쯤 되면 사남도 믿어주지 않을까? 오소마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부러 그가 산책하는 코스로 데이트를 맞추고, 들키기 쉽게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이 쯤 되면 눈치 채고도 남겠지.

 아, 오소마츠가. 여자가 생겼구나, 라고.

 이제야 확신하다니 역사 귀여운 사남-, 오소마츠는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눈치 챈 사람은 막내 육남이었다. 이유는 어느 날 오소마츠가 막내에게 와서 직접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어이- 토도마츠-”

 “? 왜 오소마츠형?”

 “너는 데이트 할 때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이야?”

 오소마츠는 싱글싱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었다. 이런 말하는 오소마츠는 처음이라 그랬나? 막내의 표정이 살짝 굳어버리고 말았다.

 “헤에- 형이 데이트 대화주제는 왜-?”

 “, 냐니- 그냥 궁금해서-”

 “...뭐 그냥... 어제 뭐 했냐는 둥, 오늘 날씨는 어떻다는 둥. 아주 평범하면서도 공통점을 끌어낼 수 있는 대화를 해. 공감형성을 해야 호감이 생기는 법이니까.”

 “호오-... 그렇군... 고마워 톳티-!”

 그 말을 끝으로 오소마츠는 외출을 하러 나갔다.

 이걸로 막내도 오소마츠가 여자가 생긴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오소마츠는 혹시 막내가 사남이랑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았긴 했지만 둘은 공통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안 좋은 사이라기 보단 그냥 친하지 않은 사이. 오소마츠가 보기엔 둘이 그랬다. 때문에 둘이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겠다 싶었다.

 “뭐야 시시하잖아-”

 이거 참 시시하네, 진짜. 언제쯤 그녀를 모두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그 날이 온다면 대부분의 동생들이 이미 눈치를 챘을 때였음 하는 것이 오소마츠의 바람이었다.

 

 다음은 누가 눈치 챘을까? 놀랍게도 오남이 다음으로 알아냈다. 눈치 챘기보단 훨씬 확실하게 알아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레... 쥬시마츠가 야구하고 있었네...?”

 그 날은 데이트를 강변에서 하고 있었다. 강 위쪽 산책길을 걷고 있었는데 강변 아래에 터에서 오남이 야구배트를 휘두르고 있던 것이다.

 “쥬시마츠라면... 오소마츠의 동생군?”

 “, 응 맞아우리 오남! 저 녀석 야구 엄청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 고등학교 야구부에서도 유명했지 아마?”

 “응 맞아-”

 또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를 꽃피우니 오소마츠는 기분이 좋아졌다. 뭐 이제, 누구한테나 말할 수 있는 오남이 보았으니 동생 대부분이 아는 건 금방이라고 생각했다.

 

 강변을 지나고 시내를 걷던 중에 오소마츠는 렌카의 라이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삼남을 만났다. 보아하니 오늘도 삼남은 렌카의 굿즈를 많이 산거처럼 보였다.

 “...오소마츠형...?”

 “, 쵸로마츠-!”

 “...? 어어...옆에 분은...?”

 “... 나중에 꼭 집에 데려가서 소개시켜 줄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좋겠는 걸-...”

 그렇게 말하며 오소마츠는 그녀와 함께 손을 잡고 사남을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봐-, 란 말은 덤이었다. 그럼 오늘만 해도 두 명에게 확실하게 걸린 걸까나- 오소마츠는 슬쩍 웃어보였다.

 그럼 이제 슬슬 인사 드리러가도 괜찮겠네, 그것이 오소마츠의 결정이었다.

 “있지-...”

 “? 왜 오소마츠?”

 “내일은 혼수 장만이나 결혼식장 같은 거, 알아볼까? 너희 부모님께도 인사드리러 가고.”

 “- 벌써? 너무 빠른 거 아냐?”

 “아니. 난 얼른 부모님께 너를 소개하고 싶어. 그렬러면 조금이라도 준비해둬야지 않겠어?”

 “그러자-”

 나이도 나이인지라 그녀에게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게 아니면 사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결혼은 당연한 거 아니냐며 흔쾌히 교제를 수락했다. 그 뒤로 평생 못 할지도 몰랐던 일을 그녀와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다. 손잡아보기, 데이트하기, 커플 사진 찍기 등등.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또 단 둘이 새로운 행복을 맞이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 마음은 맞았고, 이제 한 걸음씩 결혼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차남은 형제들 중에 가장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가 오소마츠에 대해 알게 된 건, 오소마츠가 그의 여자를 집에 데려왔을 때였다. 사실 오소마츠는 대부분의 동생들이 이미 눈치를 챘을 때 그녀를 데려오고 싶었고, 그의 예상대로 차남 빼고 모든 동생들이 그녀를 알게 되었다. 오소마츠는 차남이 눈치 채질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

 오소마츠는 부모님과 면 대 면으로 인사를 드린 후 형제들에게도 그녀를 소개시켜줬다.

 “......”

 물론 이 침묵은 차남의 침묵이었다.

 사남은 그럴 줄 알았다며 빈정거렸고 막내는 오히려 그녀에게 오소마츠의 장점이라든가 반한 부분 같은 것을 물어보고는 웃어보였다. 오남은 흥분상태였으므로 야구배트 못 휘두르게 하는 데 애먹었었고 삼남은 자신은 없고 자신의 형은 있는 것에 쓸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차남은 그저 아주 작게 웃어보였다.

 “...축하한다, 형님.”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 이런 축복이 가득 넘치는 날의 sunshine도 눈부시도록 아름답군-”

 차남은 그저 언제나처럼 허세 가득한 말을 지어내며 찬란스럽게 선글라스를 쓰고 말았다

 “, 그럼 식은 언제 올리는 건가 형님?”

 “? -... 사실... 이미 준비를 미리 많이 해두어서... 당장 내일해도 상관없을 정도랄까나-”

 미소를 지은 채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하는 오소마츠의 말에 차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남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내일 당장 식을 올리는 건 어떤가, 형님.”

 “으응...?”

 “파파와 마미도 알게 되었고 형제들에게도 이미 공개했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런가...?”

 “물론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형님은 장남이 아니라 가장이 되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는데 언제까지 우리들의 장남으로 있을 것인가?”

 그 말은 오소마츠에게 크게 와 닿았다. 그리고 오소마츠는 두 번 고민 안하고 바로 대답했다.

 “- 그럼 내일 결혼할까?”

 

 다음날, 정말로 오소마츠의 결혼이 시작되었다.

 “신랑 신부 입장.”

 부모님은 기뻐서 울고 있었다. 항상 니트들이라며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오소마츠의 이름을 많이 불러주었다. 결국 부모님의 기쁨이란 이름하에 형제들도 마지못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저기-... 형들, 오늘 기쁜 날 맞지...?”

 분명 기쁜 날인데 왜 형제들 중에선 아무도 기뻐 보이지 않는지, 막내가 저산의 형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기쁜 나아알-?? 오소마츠형 장가가는 나아알-?? , 그럼 이제 오소마츠형이랑 야구 못 하는겨?”

 “...난 몰라. 별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고...”

 “기쁜 날이라면 분명 기쁜 날이지. 드디어 장남이 장가를 가잖아. 그럼 이제 일자리로 찾을 거고... 정신도 차릴 테고...”

 “-, 오늘 같이 기쁜 날엔 축배를 들어야 하지 않겠나, Brother-! 그러고 보니 형님 말대로라면 여긴 Infinite Buffet이라구~ 하항-?”

 각자의 반응에 막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들은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소마츠가 그들을 불러 세웠고, 그들은 오소마츠와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형수님이 기다리시지 않아? 그래도 첫날밤인데...”

 “이미 양해는 다 구하고 왔단다, 걱정은 치워둬 우리 삼남~ 내가 동생들이랑 술 마시겠다는데 어떻게 막느냐고- 대신 일찍 들어오라 하더라~”

 한 잔, 또 한 잔. 그들은 한 잔씩, 또 한 잔씩 이야기꽃을 피어내고 있었다.

 “캬하-... 하하-, 저기 카라마츠-”

 “으응-? 왜 그러는가 형님?”

 “...어젠 고마웠어-”

 “무엇이 말인가?”

 “카라마츠가 그 얘길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 계속 결혼 망설였을지도...-”

 “..., 그런 것인가?”

 “으응-! 사실-... 우리 동생들 놔두고 내가 어떻게 결혼하나 생각했었거드은-... 여섯이 모여서 하나인데... 나 하나 빠지면 하나가 안 되잖아-...”

 “하항~ 형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 그런데 어제 카라마츠가 해준 말 듣고-... 그래, 내가 없어도 이제 스스로가 하나가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괜히 너희들을 쥐어 잡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형님...”

 “크으-... 이제 장남 졸업이니까 말이지- 여섯이 모여서 하나가 아니라 하나가 모여서 여섯이 돼보자- 이젠 그렇게 독립할 때도 되었잖아-...”

 “......”

 오소마츠의 말에 그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저기... 오소마츠형.”

 “으응? 왜 쵸로마츠-?”

 “... 결혼... 축하해...”

 “이제 앞으로 형... 일도 찾을 거고-... 취직도 할 테고-...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또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정말 한 가정으로서-... 정말... 열심히 살 거지...?”

 “...그럼 물론이지- 내가 누구한테 그렇게나 잔소리 들었는데에-...”

 “그렇지-...?”

 “당연하지-... 나 절대로 행복해질 테니까-...!”

 “......”

 그들의 밤은 한 잔, 또 한 잔 그렇게 기울일 때마다 어둡게 깊어만 갔다.

 

 둘이서 생활하는 첫 하루가 시작되었다. 둘이서 하는 아침 식사. 둘이서 하는 이 닦기. 둘이서 옷 갈아입기. 둘이서 점심 먹기. 둘이서 저녁 먹기. 둘이서 목욕탕 가기. 둘이서 잠자리에 들기.

 등등.

 둘이서.

 행복했다.

 정말 행복해.

 둘이서 행복해.

 결혼하길 잘했어.

 일자리도 찾아보고.

 열심히 해서 승진하고.

 정말 힘내서 아빠가 되고.

 처음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솔직히 동생들에게 안 미안하다면 거짓말이다. 항상 여섯이 모여 하나라고 외치고 다녔는데 자신이 빠져 다섯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렇지만 차남이 말해주었다.

 ‘언제까지 우리들의 장남으로 있을 것인가?’

 그 말을 기점으로 자신은 정말 멋진 말을 하게 된 첫째가 되었다.

 ‘여섯이 모여서 하나가 아니라 하나가 모여서 여섯이 돼보자.’

 그 날 말한 그 문장은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명언이라 생각했다. 그 말을 들은 동생들도 이제 더 이상 니트가 아니지 않을까란 마음이 있었다. 다시 그 때를 생각하며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퇴근 하는 길이었다.

 “여보야- 나왔어-!”

 

아닐거라고생각했다말이안돼잖아이거

왜어두워왜추워왜대답이없어왜아니

야이거아니야왜거기서자고있어왜

안일어나잘거면침대에서자지임

신하고있는사람이왜그렇게불

편하게누워있어왜이렇게바

닥이축축해왜어렴풋이비

릿한냄새가나혹시몰라

불을켜봐근데왜바닥

이이렇게빨게왜이

빨간게당신한테

서나오는거야

왜숨을안쉬

어왜심장

이안뛰

어왜

 

 

 검은색 옷을 너무 자주 입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자주 입는 건 문제가 안 되지. 그러나 문제는 이 날이 그리 행복하지 않은 날이란 것이다. 처음이라서 그렇게나 잘 해주고 싶었고, 사랑해서 오래오래 아끼고 싶었다. 그랬는데 어재서 이렇게 된 걸까.

 사인은 칼에 찔린 타살. 경찰에 신고하니 오소마츠의 집근처에 빈집털이가 자주 출몰하는데 운 나쁘게 죽음에 걸린 거 같다고. 구급차를 불렀더니 이미 출혈이 심해서 살릴 확률이 없다고. 오소마츠는 스스로가 붕괴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형님...! 괜찮은가...!”

 “! 형은? 보복이라던가, 없는 거야? 괜찮은 거야?”

 “제길...”

 “뭐여-!!! 빈집털이버어엄-?? 그 녀석 내가 만나면 배트로 홈런 쳐버릴 테니까-!!”

 “형수님... 분명 좋은데 가셨을 거야... 얼마나 예쁘고 착한 분이셨는데...”

 동생들이 와서 오소마츠를 감싸주었다.

 “얘들아...”

 그 덕분인지 오소마츠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동생들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형님... 우리에게로 와라...”

 “맞아... 지금 힘들잖아... 혼자 사는 거 무리야. 일도 잠깐 쉬고 들어와...”

 “쉬는 것도... 중요해...”

 “야구하면 다 괜찮아질 거랑께-??”

 “우린 여섯이서 하나잖아. 하나가 되어 치유하자 형.”

 정신이 나가고 속이 뒤집어 진 오소마츠에게 그들의 유혹은 마치 자신을 위한 진심의 말로 들려왔다. 그래서 오소마츠는 그에게 있어 가장 활짝 웃을 수 있는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 나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장남이 돌아왔다. 그들의 파멸의 연기를 믿고 오소마츠는 그들의 장남으로 돌아왔다. 이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사슬에 묶이고 말았다.

 여섯이 모이면 하나. 여섯이서 하나.

 항상 그렇게 외치고 다녔고, 또 그렇게 뭉쳐 다녔으며, 그렇게 그들은 하나였다. 한 명이 빠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영원히 여섯 쌍둥이라는 이름을 떨치고 다닐 것만 같았고 이제 그들은 다시 여섯 쌍둥이라는 이름을 영원히, 영원히 떨치고 다닐 것이다.

 

 

 

---------------------------------------------------------------------------------------------------------------------------------------------

 - 트위터 SAPU님의 썰 기반으로 썼습니다.

[오소마츠상] 장남이 결혼하는 이야기 형제들 이야기

 

 

 

 여섯이 모이면 하나. 여섯이서 하나.

 항상 그렇게 외치고 다녔고, 또 그렇게 뭉쳐 다녔으며, 그렇게 그들은 하나였다. 한 명이 빠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영원히 여섯 쌍둥이라는 이름을 떨치고 다닐 것만 같았다.

 여섯 명 중 장남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 전까지는...

 

 

 제일 처음에 눈치를 챈 사람은 이치마츠였다. 물론 그는 형제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과묵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치는 챘으나 아직 초기였으니 불확실한 정보를 괜히 떠벌리다 나중에 당사자가 아니라고 잡아 떼버리면 오히려 곤란해지는 건 이치마츠 쪽이었으니, 그는 자신이 손해 보는 짓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눈치를 챘느냐? 그것은 평소보다 더 잦아진 장남의 외출로 알았다. 이치마츠가 고양이를 보러 산책 나가는 쪽 몇 군데는 장남의 목적지와 같은 방향인 곳이 있었다. 예를 들면 파칭코나 경마장 또는 비디오 대여소 같은.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는 장남이 안 나타도 될 길에서 기분 좋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장남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 번 본 것은 우연이려니 싶지만 그것이 너무 여러 번 발견되니 그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미행이라든가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뭐가 됐든 금방 흥미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여섯 명의 쓰레기가 모여 하나의 쓰레기가 된다고 믿었고, 그 누구도 쓰레기에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치마츠의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장남은 더욱, 더욱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이젠 아예 대놓고 한 길로만 다녔다. 게다가 동생들에겐 경마장이니 AV니 거짓말까지 하며 일찍 나갔다가 늦게 돌아오기 까지 만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형제들은 그려러니 하고 넘긴 것 같지만, 이치마츠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모를 불안감이 자신을 덮쳐왔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평소 자신이 느끼는 부정의 느낌보다 더 한.

 이치마츠는 느꼈다. , 저 녀석. 여자가 생겼구나, 라고.

 느낌과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이치마츠는 쉬이 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그 누군가와 공감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눈치 챈 사람은 토도마츠였다. 어느 날 장남이 토도마츠에게 와서 직접 물어본 말은 그의 외출 이유를 빼도 박도 못하게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토도마츠-”

 “? 왜 오소마츠형?”

 “너는 데이트 할 때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이야?”

 싱글싱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는 장남을 본 토도마츠의 표정이 살짝 굳어버렸다. 설마 저 장남의 입에서 데이트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헤에- 형이 데이트 대화주제는 왜-?”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미끼를 던졌다. 물론 대놓고 던진 미끼를 이런 대어가 바로 물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 냐니- 그냥 궁금해서-”

 역시나 장남은 싱글싱글 웃어 보일 뿐이었다. 토도마츠는 집요하게 잡아당겨 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물을 듯 말 듯 교묘하게 피해갈 장남의 성격을 알고 있는 그였기에 관심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뭐 그냥... 어제 뭐 했냐는 둥, 오늘 날씨는 어떻다는 둥. 아주 평범하면서도 공통점을 끌어낼 수 있는 대화를 해. 공감형성을 해야 호감이 생기는 법이니까.”

 “호오-... 그렇군... 고마워 톳티-!”

 그렇게 말하고 장남은 또 외출을 하러 나갔다. 토도마츠도 장남의 잦은 외출이 조금은 신경 쓰였지만 자신도 외출을 자주하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안 그래도 자주 나가는 것을 보며 혹시...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오늘 대화로써 역시, 라는 답이 나왔다. 그래도 대놓고 데이트라는 말을 꺼낼 줄은 몰랐으니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긴 했다.

 자신과 다르게 맨 처음에 태어났지만 자신보다 덜떨어짐을 알고 있었다. 여자들에겐 저런 장남보다 자신 같은 귀여운 스타일이 훨씬 잘 먹힌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왔던 장남인데 그런 장남이 데이트 대화 주제에 대해 물어오다니. 토도마츠는 왠지 모를 감정들이 자신의 안쪽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토도마츠도 느꼈다. 저 형. 여자 생겼구나,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토도마츠는 그런 감정들을 조용히 안고 있는 채 그저 자신의 폰 안에서 대화하고 있던 여자애와 계속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다음은 누가 눈치 챘을까? 놀랍게도 쥬시마츠가 다음으로 알아냈다. 눈치 챘기보단 훨씬 확실하게 알아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치마츠형.”

 “...? 왜 쥬시마츠...?”

 “나 보고 말았슴다.”

 “...? 무엇을...?”

 “오소마츠형이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쥬시마츠가 야구연습을 하는 곳에서 우연찮게 장남이 어떤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봤다는 것이었다.

 “...헤에.”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그였던지라 이치마츠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물론, 쥬시마츠는 예상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극도로 흥분상태였다.

 “이치마츠형은 알고 있었슴까?”

 “... 어느 정도는...”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물음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느낌이 맞았다는 확신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설마 그 첫 번째 쓰레기가 여자와 함께 다닌다니.

 혹시 예전에 속았던 랜탈여친 같은 건 아닐까란 생각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이치마츠가 생각하기엔 장남은 그렇게 돈이 많지 않았고, 계속 되는 쥬시마츠의 증언에 랜탈여친의 자도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형 뿐임다.”

 그들은 토도마츠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만 알고 있다고 믿는 그것을 바탕으로 둘만의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럼 형들에게 말함까?”

 “...아니. 말하면 더 복잡해져. 그냥 조용히 기다리는 쪽이...”

 “톳티에게도?”

 “.... 걔는 스스로 알아챌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럼 조용히 있겠슴다.”

 “...”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그렇게 여자를 오랫동안 만나면서 우리에겐 한 마디도 안 하는 장남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말해주려고? 우리가 그의 데이트를 방해할까봐?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가 예상하던 모든 일의 시작?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데로 흐름이 떠내려갔다. 교묘할 거라고 생각하면 장남은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음이 생각나고, 그렇다고 단순히 연애를 즐기고 있는 것이라면 첫 번째 쓰레기가 과연 한 여자만 마음에 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하고...

 그런데 이치마츠는 그런 생각과 동시에 다른 궁금증도 들기 시작했다.

 “...저기 쥬시마츠.”

 “-?”

 “그런데 왜 나한테 말한 거야...?”

 “- 다른 형들이 집에 없어서! 톳티도 없고.”

 “... 그랬구나.”

 집에 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치마츠였다.

 

 쵸로마츠는 이치마츠만 집에 있던 그 날 마침 냐쨩의 라이브 콘서트가 있어서 밖에 나가게 되었었다. 그는 냐쨩을 응원하고, 굿즈를 사고, 최고의 하루를 보내는 것만이 그의 할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깔끔하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찰나, 쵸로마츠는 깨달았다. 아직 하루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소마츠형...?”

 쵸로마츠는 하마터면 자신이 들고 있던 굿즈들을 땅으로 떨어뜨릴 뻔했다. 그만큼 그가 본 광경은 어떤 여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는 장남의 모습이었다. 여자는 착해 보이기도 했고 예뻐 보이기도 했으며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쵸로마츠는 전혀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한 장면에 그만 정신을 놓은 것이다.

 “, 쵸로마츠-!”

 장남은 쵸로마츠를 모른 척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반갑게 쵸로마츠를 반기며 웃어보였다.

 “...? 어어...”

 걸음이 굳어버려서 움직일 수가 없던 쵸로마츠에게 장남이 다가왔다.

 “...옆에 분은...?”

 어버버거리며 옆에 있는 여자 분에 대해 물어봤더니 장남은 슬쩍 바라보고는 수줍게 얼굴을 붉혀 보였다.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도, 머릿속에 그려본 적도 없는 또 다른 장면에 쵸로마츠는 또 말을 잃고 말았다.

 “... 나중에 꼭 집에 데려가서 소개시켜 줄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좋겠는 걸-...”

 그렇게 말하며 장남은 여자와 함께 손을 잡고 쵸로마츠를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봐-, 란 장남의 말은 이미 듣지 못하고 한 동안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의 시작은 그들의 만남부터 흐름을 따라 그들의 미래와 여섯 쌍둥이의 미래. 쵸로마츠는 그 미래에 대해...

 “드디어... 저 장남이 정신 차렸나봐...!”

 활짝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곤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쵸로마츠는 단지 여자와 함께 있는 장남의 모습에 놀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일하라고 소리치던 자신이었기에, 일도 안하고 집에만 박혀 있다가 돈 쓸 궁리만 하고 있는 장남이 여자가 생겼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목표가 생겼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쵸로마츠에게 있어서는 아주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아니었다, 라고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는 이 기쁜소식을 어서 형제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알려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이미 다른 형제들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장남은 분명 나중에 집에 데려가서 소개시켜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물론, 형제들도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쵸로마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쵸로마츠도 이치마츠처럼 말을 안 하기로 했다. 이치마츠와 같은 결과를 내놓았지만 이치마츠와는 다른 이유의 결과였다. 이치마츠는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았기 때문에 말해도 대화가 안 될 것을 알고 말하지 않았지만, 쵸로마츠는 장남이 기다려달라고 했으니 때가 되면 말할 것이라 믿고 장남을 기다리려는 것이었다. 아무리 답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장남이니까 장남 나름의 생각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쵸로마츠가 장남에게 건 마지막 믿음이었다.

 

 카라마츠는 형제들 중에 가장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아서 몰랐던 거기도 하고 다른 형제들과 달리 우연찮은 만남도 없었기에 그가 장남에 대해 알게 된 건, 장남이 결국 그의 여자를 집에 데려왔을 때였다.

 “......”

 장남은 부모님과 면 대 면으로 인사를 드린 후 형제들에게 소개시켜줬다.

 “......”

 물론 이 침묵은 카라마츠의 침묵이었다.

 장남은 쑥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자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첫 만남부터 둘이 마음이 맞은 이야기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이야기, 그리고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지금 인사를 드리러 온 상황까지. 장남은 자신의 그 모든 이야기를 형제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었다.

 이치마츠는 그럴 줄 알았다며, 첫 번째 쓰레기인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신사적인 부분이 있었네-, 라며 빈정거렸고 토도마츠는 오히려 여자에게 장남의 장점이라든가 반한 부분 같은 것을 물어보고는, - 형에게 여자라니 역시 대단하네-, 라며 드라이 몬스터답게 웃어보였다. 쥬시마츠는 역시나 흥분상태였으므로 야구배트 못 휘두르게 하는 데 애먹었었고 쵸로마츠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건 믿음이 인정받은 듯 하여 혼자서 뿌듯해하면서도 자신은 없고 자신의 형은 있는 것에 쓸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카라마츠는? 자신의 시점에서 형제들을 바라보니 마치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카라마츠만 느꼈지만 정확한 사실이었고, 그는 그저 아주 작게 웃어보였다.

 “...축하한다, 형님.”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형의 행복을 축복해주고 싶었다. 비록 자신이 가장 늦게 장남에 대해 알게 됐더라도, 자신은 진심이 담긴 축복을...

 불안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왜 자신만 모르고 있었지? ? 차남인데? 그 누구보다 장남에게 가까운 차남인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 어째서? ? ?

 왜?

 그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차고 말았다. 자신이 형제들에게 무시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형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고 치부했는데 오히려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는 것이 없어서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해서 눈치도 없었다. 그렇게 형제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그의 악순환이었다.

 “-, 이런 축복이 가득 넘치는 날의 sunshine도 눈부시도록 아름답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생각은 안하고 그저 언제나처럼 허세 가득한 말을 지어내며 찬란스럽게 선글라스를 쓰고 마는 그였다. 사실은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기 싫음도 있었을 테지만, 결국 그는 물음표로 가득 찬 머리를 그저 그대로 묻어두기로 한 것이다.

 “, 그럼 식은 언제 올리는 건가 형님?”

 “? -... 사실... 이미 준비를 미리 많이 해두어서... 당장 내일해도 상관없을 정도랄까나-”

 미소를 지은 채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하는 장남의 말에 카라마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미 준비를 많이 한 두 사람,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던 형제들,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부모님. 그렇다면 자신이 한 것은 무엇이지? 생각해 보니 물음표를 달고 나오는 질문밖에 자신이 한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남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내일 당장 식을 올리는 건 어떤가, 형님.”

 “으응...?”

 “파파와 마미도 알게 되었고 형제들에게도 이미 공개했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런가...?”

 “물론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형님은 장남이 아니라 가장이 되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는데 언제까지 우리들의 장남으로 있을 것인가?”

 카라마츠의 목적은 적어도 결혼 날짜정도는 내가 정해도 되지 않을까.’였다. 물론 결정하는 건 장남의 몫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나니 이번엔 물음표를 달고 나올 감정들에 휩싸이고 말았다.

 ‘언제까지 우리들의 장남으로 있을 것인가.’

 그 말은 카라마츠와 장남뿐만 아닌 다른 형제들에게도 확실히 와 닿고 말았고, 그것은 자신들이 느끼던 알 수 없던 감정의 해답이었다. 장남이 결혼을 해버리면 더 이상 여섯이 아니었고, 여섯이 아니면 하나가 될 수 없었다. 하나가 아니면 불완전한 상태가 되어 버리고... 불완전한 상태는 불안을 불러일으키며... 그 불안은......

 “- 그럼 내일 결혼할까?”

 장남의 한마디에 그들의 생각이 멈추고 말았다. 그들의 시선은 자신의 여자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불안의 끝을 그냥 떠올리고 말았다. 그 불안의 끝은... 파멸을 이끌어 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다음날, 정말로 장남의 결혼이 시작되었다.

 친척 분 결혼식이여야만 엄마아빠 손에 이끌려 간신히 왔던 그 화려하고도 휘황찬란한 결혼식장에서 점잖게 턱시도를 입고 있는 장남의 모습에 형제들은 말을 잃었다. 역시나 평생 못 볼 광경에 평생 못 볼 분위기를 떡하니 제 눈앞에서 보고 있잖니 느낌이 심히 이상하였다. 항상 여섯이서 다 같이 입던 정장을 한 사람 빼고 다섯만 입고 있잖니 또 이상한 기분이었고, 또 우리가 아닌 저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장남을 보니 또...

 “신랑 신부 입장.”

 부모님은 기뻐서 울고 있었다. 항상 니트들이라며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장남의 이름을 많이 불러주었다. 결국 부모님의 기쁨이란 이름하에 형제들도 마지못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저기-... 형들, 오늘 기쁜 날 맞지...?”

 분명 기쁜 날인데 왜 형제들 중에선 아무도 기뻐 보이지 않는지, 토도마츠가 형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기쁜 나아알-?? 오소마츠형 장가가는 나아알-?? , 그럼 이제 오소마츠형이랑 야구 못 하는겨?”

 “...난 몰라. 별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고...”

 “기쁜 날이라면 분명 기쁜 날이지. 드디어 장남이 장가를 가잖아. 그럼 이제 일자리로 찾을 거고... 정신도 차릴 테고...”

 “-, 오늘 같이 기쁜 날엔 축배를 들어야 하지 않겠나, Brother-! 그러고 보니 형님 말대로라면 여긴 Infinite Buffet이라구~ 하항-?”

 각자의 반응에 토도마츠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장남이 본보기로 먼저 장가를 갔으니 이제 형제들도 차례차례 일자리를 얻고 가정을 얻고 독립을 하고 사회를 살아가는 일도 머지않았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애도 아니고 20살이 넘은 어엿한 청년이니 언제까지고 부모의 그늘 막 아래에서 쉴 수는 없었다.

 

 그들은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장남이 그들을 불러 세웠고, 그들은 장남과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형수님이 기다리시지 않아? 그래도 첫날밤인데...”

 “이미 양해는 다 구하고 왔단다, 걱정은 치워둬 우리 삼남~ 내가 동생들이랑 술 마시겠다는데 어떻게 막느냐고- 대신 일찍 들어오라 하더라~”

 한 잔, 또 한 잔. 그들은 한 잔씩, 또 한 잔씩 이야기꽃을 피어내고 있었다.

 “캬하-... 하하-, 저기 카라마츠-”

 “으응-? 왜 그러는가 형님?”

 “...어젠 고마웠어-”

 “무엇이 말인가?”

 “카라마츠가 그 얘길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 계속 결혼 망설였을지도...-”

 “..., 그런 것인가?”

 “으응-! 사실-... 우리 동생들 놔두고 내가 어떻게 결혼하나 생각했었거드은-... 여섯이 모여서 하나인데... 나 하나 빠지면 하나가 안 되잖아-...”

 “하항~ 형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 그런데 어제 카라마츠가 해준 말 듣고-... 그래, 내가 없어도 이제 스스로가 하나가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괜히 너희들을 쥐어 잡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형님...”

 “크으-... 이제 장남 졸업이니까 말이지- 여섯이 모여서 하나가 아니라 하나가 모여서 여섯이 돼보자- 이젠 그렇게 독립할 때도 되었잖아-...”

 “......”

 장남의 말에 그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골백번 옳은 소리 같아 인정하면서도 골백번 틀린 소리라 부정하고 싶었다.

 “저기... 오소마츠형.”

 “으응? 왜 쵸로마츠-?”

 “... 결혼... 축하해...”

 아마 다섯 명 중에서 장남의 결혼을 가장 축하해 주는 이는 쵸로마츠일 것이다.

 “이제 앞으로 형... 일도 찾을 거고-... 취직도 할 테고-...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또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정말 한 가정으로서-... 정말... 열심히 살 거지...?”

 “...그럼 물론이지- 내가 누구한테 그렇게나 잔소리 들었는데에-...”

 “그렇지-...?”

 “당연하지-... 나 절대로 행복해질 테니까-...!”

 “......”

 그들의 밤은 한 잔, 또 한 잔 그렇게 기울일 때마다 어둡게 깊어만 갔다.

 

 다섯이서 생활하는 첫 하루가 시작되었다. 다섯이서 하는 아침 식사. 다섯이서 하는 이 닦기. 다섯이서 옷 갈아입기. 다섯이서 점심 먹기. 다섯이서 집에서 뒹굴기. 다섯이서 저녁 먹기. 다섯이서 목욕탕 가기. 다섯이서 잠자리에 들기.

 다섯이서.

 그 밖에 다섯인 것은 너무 많았다. 다섯이서 세 개의 국화빵 나눠먹기. 다섯이서 커피우유 마시기. 다섯이서 카드 게임하기. 다섯이서 일자리 찾으러 가기.

 등등.

 우리는.

 다섯이서.

 다섯이었다.

 여섯이 아니다.

 다섯일 뿐이었다.

 그냥 다섯인 것이다.

 그저 여섯이 아니었다.

 지금은 다섯밖에 없었다.

 더 이상 여섯일 수가 없다.

 

 “오소마츠는 드디어 일을 얻었다는 구나-!”

 “오소마츠가 이번에 승진을 했다는 구나-!”

 “오소마츠가 이제 애 아빠가 된다하구나-!”

 “오소마츠가 용돈을 보냈다고 하는 구나-!”

 “오소마츠가 ------------------ 구나-!”

 

 날이 가면 갈수록 다섯 명의 정신 상태는 더 피폐해지고 말았다. 그들에게 있어선 마치 예전에 태어났던 카미마츠가 다시 나타난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살아가기가 어려워지는군...”

 “맞아... 일자리 찾는 것도 더 어려워지고 있고...”

 “결혼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에에- 왜 이렇게 된 거지-?”

 “왜 이렇게 된 걸까...?”

 그들은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형님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 맞아... 오소마츠형이 없어서...”

 “...혼자 결혼하고 혼자 일자리 찾아서...”

 “같이 야구도 안 해주고-...”

 “혼자 열심히 하니까 우리는 계속 묻히고...”

 다섯명의 대답은 똑같았으며, 그 결과도 똑같았다. 이들은 이미 그 기분을 한 번 느껴본 적이 있었고, 지금은 그 느낌을 행동으로 볼 차례였다.

 

 

 “지금 데리러 간다, 형님.”

 “. 우리는 여섯이서 하나니까.”

 “...데려와서 죽인다...”

 “아이아이-! 다 같이 야구하는겨-!”

 “혼자만 성공하는 거 완전 반칙이라구-?”

 

 여섯이 모이면 하나. 여섯이서 하나.

 항상 그렇게 외치고 다녔고, 또 그렇게 뭉쳐 다녔으며, 그렇게 그들은 하나였다. 한 명이 빠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영원히 여섯 쌍둥이라는 이름을 떨치고 다닐 것만 같았고 이제 그들은 다시 여섯 쌍둥이라는 이름을 떨치고 다닐 것이다.

 그들의 대답은,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메아리처럼, 서늘하게 반짝이며, 점점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트위터 SAPU님의 썰을 기반으로 썼습니다.

 

[데비메가/오소쵸로/단편] 행복이란 이름의 죄

 

 

 

 “신이라는 명분으로 내게 주워진 일은 단지,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

 

 “그럼 대체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주어진 명분을 무시한 채,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언제나 반복 적인 삶은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달라지지 않는 하루하루가 어쩌면 따분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을 자각하기 전까진 따분하단 생각은 없었다. 즐겁진 않지만 따분하지도 않던 일상.

 "당신이 연못에 떨어뜨린 물건은,"

 바뀌지 않는 대사,

 "이 강철 아수라상입니까, 아니면 젤리 아수라상입니까."

 바뀌지 않는 행동,

 "...그렇군요. 솔직한 당신에게는-,"

 그리고 바뀌지 않는,

 "당신이 떨어뜨린 이 물건을 드리겠습니다."

 흔하디흔한 일상적인 나의 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알았다. 신이라는 이름을 갖고도 내게 주어진 공간은 각진 연못이 전부였으니. 내가 가진 세상은 고작 이 정도였고, 내게 오는 세상 사람들도 고작 저 정도였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들만의 행복이었고, 그것이 내겐 전부였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누구의 손에 길러졌는지, 어쩌다 신의 내림을 받았는지, 그리고 여기에 왜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한 기억은 그 무엇도 없다. 그저 아침이 되어 눈을 떠보니 보이는 곳은 이 곳, 손을 움직여 보니 내 몸,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이름 '여신'.

 "난 남자인데 말이지..."

 그래 남자다. 분명 남자인데 그들이 날 부를 때는 항상 '여신님'이라고 부른다. , 그 소리도 수 백 년 들어 와서 익숙해져 버려 이젠 일일이 말해주기 귀찮았다. 그래서 좋으나 싫으나 산속 연못의 여신님이란 이름으로 계속 살아가는 중이다.

뭐가 됐던 신이 내게 내려준 이름은 여신’. 여신이란 이름으로 남의 행복만을 위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반복적인 날들 중 어느 날, ‘그 녀석이 날 찾아 왔었다.

 "안녕, 여신님?"

 녀석은 그저 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

 난 왜 그 모습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사람이 인사하는데 말이 없어?"

 "단 한 번도 상대방이 인사해준 적이 없어서 당황하는 중이라면 믿어줄래?"

 "헤에-... 그래-? 여신님 재미있네-."

 "하아...? 그게 무슨...“

 내 말이 체 끝내기도 전에 녀석은 팔을 뻗어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그 어떤 누구도 나의 손을 잡아준 적이 없어서 그런가, 난 녀석의 차가운 체온조차도 하나 의심하지 않았다.

 “여신님 손 따뜻해-”

 “하아...?”

 “나 이렇게 따뜻한 손 잡아본 적이 없어-!”

 “...그게 무슨...”

 “있지 여신님,”

 “......?”

 “여신님만 괜찮다면 나 여신님 보러 내일 또 와도 괜찮을까?”

 내가 본 녀석의 표정은 처음 보는 그 누구의 마음에도 들 정도의 미소로 씨익- 웃어 보이는 그저 순진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누군가와의 대화, 라는 것, 내겐 그것이 그렇게도 달콤했나 보다. 그렇게나 원했었나보고, 또 그렇게나 간절했나보다.

 “...그러던가.”

 녀석을 만나는 일이 실수란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 어떤 자각도 깨우치지 못한 체.

 

 녀석은 정말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내게로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해가 밝는 다음날이 되면 녀석은 계속 내게로 찾아와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안녕, 여신님?”

 “...아아, 안녕.”

 난 지금껏 행복이란 감정을 알지 못했다. 행복이란 건 그저 남을 위해 존재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의 행복이란 걸 알아 차라기 전까지는 그저 내 할 일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할 일에서는 행복이란 단어를 눈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수 백 년 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마음속에서 뿌듯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이미 수 백 년이란 긴 시간을 반복적으로 해왔던 일이기에, 내겐 그것은 그저 하나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녀석을 만나면서 내 할 일과 다른 일탈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고 말았다. 나는 그것을 일탈로 인해 알아챌 줄도 몰랐고, 녀석에 의해 알게 될 줄도 몰랐지만, 녀석으로부터 그것, 바로 행복이란 참뜻을 알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신님- 내 말 듣고 있어-?”

 “..., 듣고 있어.”

 “하하- 그래서 말이야-”

 내 앞에서 이렇게 즐거운 듯 이야기 하고 있는 이 녀석이 없어져 눈앞에 안 보이면 안 된다는 걸, 그리고 이 녀석이 내게 나의 행복을 알려줬다는 걸.

 “, 여신님- 손잡을까?”

 행복의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러지 뭐.”

 내 손을 처음 잡아 준 이 손이, 이 차가운 손이 날 따뜻하게 감싸줬으니까.

 “여신님-”

 “?”

 “여신님 이름 뭐야?”

 “내 이름...? 없는데...”

 “- 그럼 그냥 여신님 인거야?”

 “그렇지...”

 “그럼 내가 이름지어줘도 돼?”

 “어떤...?”

 “-... ‘쵸로마츠는 어때?”

 “쵸로마츠인데.”

 “, 누가 지어준건지- 내 이름이 오소마츠거든-? 혹시 알고 있어? 느리다 할 때 그 오소말야- 내 이름과 반대의 뜻은 어때, 여신님? 빠르다란 뜻이 있잖아, 쵸로-”

 “단지 반대란 이유로?”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다만, 난 여신님이 그 이름 써줬으면 하는데-”

 “..., 상관은 없어. 그 누구도 내게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으니까.”

 “-, 그럼 내가 여신님의 이름을 맨 처음으로 지어준거야-? 이거 매우 기분 좋네, 아아-.”

 “...기분 좋다니, 다행이네 오소마츠.”

 “...헤에-, 내 이름 불러주는 거야-?”

 “지금까지 이름, 몰라서 못 불렀으니까.”

 “헤에-, 어째서 안 물어봤어? 여신님이 원했다면 언제든 알려줬을 텐데-!”

 “...지금껏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어. 상대방의 이름 같은 거.”

 “흐응-, 그럼 지금부터 가지면 되겠네-! 어때?”

 “......”

 “내가 앞으로 여신님의 이름을 쵸로마츠로 불러줄 테니까, 앞으로 쵸로마츠는 이름에 관심을 갖는 거야!”

 “...아아, 노력할게.”

 “헤에-, 그럼 노력하는 김에 하나만 더 노력해줘.”

 “...어떤 거?”

 “나 말이야. 이 오소마츠에게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줘, 쵸로마츠-!”

 

 녀석의 밝은 웃음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맞잡아준 차가운 손. 이 손을 그렇게나 놓기 싫었다. 녀석이 주는 모든 것은 행복이라 믿었다. 지금껏 세상은 한정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녀석을 만나면서 세상은 한정 돼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정되지 않는 세상에는, ‘행복이 존재하는 줄 알았고, 이제 서야 그 행복이 내게로 온 줄 알았다.

 내가 믿고 있는 이 행복은 언제까지고 계속 될 줄 알았다.

 “쵸로마츠-”

 녀석이 날 부르면,

 “...?”

 내가 녀석을 바라볼 때까지.

 “나 말이야-.”

 녀석이 말을 하면,

 “....”

 내가 들어 줄 때까지.

 “쵸로마츠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

 “......”

 내가 녀석의 말에 말문이 막히면,

 “쵸로마츠는,”

 녀석이 되물을 때까지.

 “...?”

 내가 관심을 가지면,

 “나 어때-?”

 녀석이 씨익- 웃으며 날 바라봐 줄때까지.

 

 

 「 내 가 믿 고 있 는 행 복

 

 녀석을 만나면서, 난 나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녀석은 내게 주기만 했었기에, 나는 녀석에게 받기만 했었기에, 나도 받는 일 뿐이 아닌 주는 일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녀석에게 주고 싶었다. 주는 그것이 어떤 형태의 무엇이던 상관없었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녀석에게 유일하게 줄 수 있는 건,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를, 단지 녀석이란 존재를 위해 찾기 시작했다.

 

 「 내 가 몰 랐 던 사 실

 

 ‘를 찾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신의 명분은 단지 남을 위해 있는 줄 알았는데, 신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것은 매우 많았다. 단지 지금껏 내가 그것을 이용해 볼 시도를 안 해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숨겨졌던 과거의 경이로움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과거를 알아보고 난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넘쳐 오르던 눈물을 감추고 만 허튼 웃음. 그리고 웃음과 함께 행복이 와장창, 깨져가는 소리, 또한.

 

 「 내 게 밀 려 오 는 후 회

 

 “쵸로마츠-”

 “......”

 “나 왔어-”

 “......”

 “... 인사 안 해주는 거?”

 “...왜 왔어.”

 “...? 왜 왔냐니...? 항상 왔잖아, 그게 무슨...”

 “오면 안 되는 존재가 왜 왔냐고...!!”

 “......”

 “......”

 “...하아, 들킨 거야?”

 “......”

 “안 들킬 줄 알았는데-,”

 “...안 들킬 줄 알았다고...?”

 “- 안 들킬 줄 알았어-”

 

 「 행 복 이 란 이 름 의 죄

 

 녀석이 내게 지어주던 웃음은 이제 없다. 녀석의 순진한 소년의 모습도 이제 없다. 내 앞에 있는 건, 등에서부터는 크고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지고 머리에서는 빨간 뿔이 돋아나고 있는 인간 모습의 악마. 아아, 역시나, , 악마였구나.

 “어떻게 알았어?”

 “...내 과거를 알아봤어.”

 “헤에-, 그럴 줄 알았어. 지금까지 관심도 없던 과거 알아보니까 어때?”

 “......”

 “답이 없는 거야, 쵸로마츠-?”

 “...그 이름 부르지 마.”

 “-, 싫어? ?”

 “......”

 “‘옛 이름이 그렇게도 싫은 거야-?”

 “......”

 

 「 내 가 알 아 낸 과 거

 

 신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라기 보단 조금은 특별난 인간이었다.

 나란 존재가 얼마나 평범이상의 특별을 누렸는가 하면, 내겐 형제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 두 살 차이가 아니고 무려 몇 분 차이밖에 없는 다섯 명의 형제. 그 형제의 무리에서 난 삼남이라는 직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이름, 마츠노 쵸로마츠. 녀석이 내게 붙여줬던 그 이름이었다. 녀석이 내게 그 이름을 준 이유, 형제 중 장남이란 자릴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마츠노 오소마츠였기 때문이었다.

 

 「 내 가 잊 었 던 과 거

 

 내가 신이라는 이름을 갖기 직전의 과거, 그것은 참혹이란 단어 그 자체였다.

 그것에 대한 작은 기억의 조각, 난 그것을 들여다보았었다.

 기억 속의 나는 빨간 꽃잎을 흩뿌리며 검은 길 위를 날개도 없는 채 자유로이 날아가고 있었다. 날개도 없이 날아가니 검은 길 위에 불시착하여 엉덩방아를 찧은 듯 보였지만, 아픈 것은 이미 잊고 오래였는지 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것만 같아보였다. 이미 온 몸이 빨간 꽃잎으로 뒤덮여버려 정신이 흐릿해져도 상관없었다.

 그 속의 내가 애타게 부른 누군가. 누군가는, 나와 함께 그 위를 날았던, 그는.

 

 「 오 소 마 츠 형 ! ”

 

 “...옛 이름이 싫은 게 아니야, .”

 “...그럼?”

 “그 이름을... 그 이름을 다시 받을 자격이 없는 거야...”

 

 「 쵸 로 마 츠 . . . ”

 

 나와 똑같이 이름을 불러주던 그는, 마지막 순간 까지도 그 미소를 잃지 않았었기에, 나는.

 “나 때문에...”

 피를 흘리면서도, 나를 봐라보며 웃어줬기에, 나는.

 “형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나는.

 “...그런 모습이...”

 하얀 국화꽃에 파묻혀 더 이상 이세상의 사람이 아닐 때까지도, 나는.

 “되어 버린 거잖아......”

 나는.

 

 「 그 어 떤 자 격 도 없 는 거 야

 

 

 “...쵸로마츠는 잘못 없어.”

 “......”

 “자격이 없다니, 그것도 이상하잖아. 원래 본인 이름인데.”

 “......”

 “그리고 난 정당했어. 사랑하는 동생을, 치이기 전 그 짧은 순간, 감싸 안은 거 말이지-”

 “......”

 “난 내 행동이 자랑스러워.”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

 “왜 구한답시고 영웅처럼 날아와 감싸 안은 건데.”

 “......”

 “형은 형의 행동이 자랑스럽다고 했지? 내 대답은 아니.”

 “......”

 “형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 최소한 형은 살 수 있었어.”

 

 

 명의 길이가 달랐던 쌍둥이 형제, 같은 날 죽어버린 두 사람. 세상을 나누는 창조주는 한 사람에게만 죄를 물었고, 그 사람은 너무도 쉽게 대답하고 말았다.

 

 “혼자 떠나는 길 너무 외로울 거 같아서 함께 와줬을 뿐이야.”

 “ - ”

 “그는 잘못 한 게 없어. 오로지 내 과실이야.”

 

 혼자 모든 죄를 떠맡고 지옥이란 깊고 어두운 구렁텅이에 빠져 악마라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에 빗대어 나는 천국이란 곳에 가 과거의 모든 기억이 지워지고 아무 걱정 없는 그 무의미한 또 다른 삶 속에서, ‘여신이란 이름을 새롭게 얻어 수백 년을 살아오게 되었다.

여전히 아무 걱정 없는인생을 그렇게 수 백 년 간-......

 

 

 “힘들었다고-”

 “......”

 “너의 소문을 수 백 년 전부터 들어왔고, 너의 소식 또한 그렇게 들어왔고... 그렇게 불분명한 소식 소문만 들으며,”

 “......”

 “수 백 년 동안, 널 찾기 위해, 내 모습을 숨기고, 얼마나 힘들게 찾아 다녔는데.”

 “......”

 “그리고 이렇게 찾았고, 이렇게 마음도 전하고. 내가,”

 “......”

 “내가 얼마나, 너를 보고 싶었는데.”

 그는 나의 팔을 당겨 끌어안았다. 진심을 다한 그의 차가운 품까지도 너무 따뜻해서 난 미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날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너의 백지 같은 새로운 기억 속에 다시 날 세길 수만 있다면, 난 내가 어떻고 네가 어떻든 상관없었고 아예 중요하지도 않았어. 난 단지 네가 무의식 속에서라도 겪고 있을 너의 죄책감까지도 끌어 안아주고 싶어서, 내가 비록 이런 모습이라도, 쵸로마츠, 널 이렇게, 이렇게 안아주고 싶어서, ... ......”

 “...알았어,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어. 오소마츠형...”

 

 

 난 나의 과거를 몰랐어야만 했다.

 과거 따위 몰라왔던 지금까지의 수 백 년처럼, 난 나의 과거를 모르는 채로 또 다시 수 백 년을 더 살아가야만 했다.

 난 녀석의 진심 따위 듣지 말았어야만 했다.

 녀석의 진심을 들었을 때부터 나도 녀석에게 줘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몰랐어야만 했던 나의 과거를 파헤치려고 하지지 않았었을 것이다.

 난 이름을 받지 말았어야만 했다.

 이름을 받지 않았다면, 녀석의 진심도, 녀석의 의도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나의 풍족함에 매우 만족했었을 것이다.

 난 행복을 몰랐어야만 했다.

 행복이란 것을 깨우치지 않았더라면, 난 괴로움이라는 것도, 슬픔이라는 것도, 평생 깨닫지 않아 무의식 속에서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난 형이라는 녀석을 만나지 말았어야만 했다.

 

 “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과거... ‘이름... 그리고...”

 ‘행복

 “...그 무엇도 모른 채...”

 나의 모든 것을, 지금까지처럼,

 “있는 그대로를 모두 믿고...”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빨간 꽃잎을 흩날리며 곱게 눈 감고 있는 악마의 머리. 난 그것을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주워 안아 들었다. 그것을 들어 올려 가슴에 품자, 꽃잎은 사그락-, 나의 흰 옷을 빨갛게 적셔 주었다.

 “...무겁네.”

 확실히 무거웠지만 점점 무게는 빠져나갔다. 점점 가벼워진 머리는 이젠 깃털만큼이나 가벼워졌다. 하지만 가벼워진 만큼 무거워진 것이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시작되는 악마가 내게 주는 타락. 이런 식으로 타락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아..., 이것이 감정이란 걸 모르고 있던 내가 가져가야 하는 죄 인걸까...

 

 “아니, 틀려. 지금 내겐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고 아무런 느낌도 없어...”

 ‘아프다란 감정도, ‘기쁘다란 감정도, ‘슬프다란 감정도, ‘즐겁다란 감정도... 느껴지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아아,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행복이란 걸 알아버린... 행복이란 이름의 죄, 구나...”

 

 

 

 

--------------------------------------------------------------------------------------------------------------------------------

실친이 써달라고 했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