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원맥덕춘/조각글] 위로

 

 

 

 앉아 있는 너의 뒷모습이 보여서 다가갔어. 이번엔 무슨 일인데, 설마 그 쪼그만 몸집으로 쪼그만 개미들을 보며 일일이 인사나누고 있는걸까, 같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생각하면서 말이지.
 그런데 다가갈 수록 들려오는 소리는 훌쩍임. 왜, 뭐야, 무슨 일인데?

 " 이덕춘...! "

 내 부름에 너는 황급히 눈물 닦는 시늉을 보이며.

 "ㄴ..네..! 월직차사 이덕춘...! "

 라고 급히 일어나 나를 바라보는데. 눈물자욱과 눈물때문에 빨갛게 번진 눈은 닦여지질 않았어.

 " ...너 왜 우는 거야... "

 아, 대장이 생각없이 말하는거 하지 말랐는데.
 그래도 이미 저질러버렸어.

 " 네...? 아뇨...! 저 안 울었는데요...? "
 " ...거짓말 치지말고 좀... "
 " 아니... 아뇨.. 아닌데... 그냥 눈물이... "
 " ...됐어. 이유는 뭐, 또 어디서 슬픈 얘기 듣고 왔나보다 생각할거니까. 그래도 되지? "

 울고 싶을 땐 울어, 라는 말을 돌려서 말해버렸네. 이건 생각 안하고 말해도 될거 같았지만... 그래도 작게 끄덕이며 네, 라고 말하는 너를 보았어. 그래 그거면 됐어.
 언제나 처럼 네 어깨에 손을 올려보았어. 그렇지만 평소의 스킨십과는 조금 다른, 조금 기대도 된다는 의미로 말이지.

'신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맥강림/조각글] 연애고민상담전화 중  (0) 2018.02.07
[원맥강림/미완] 여행 첫날 밤  (0) 2018.02.07
[원맥강림/단편] 꽃  (0) 2018.02.07

[오소쵸로] 사랑을 하는 너에게 감정이란 선물을.

 

 

꼬밍님의 쵸로마츠 안드로이드 썰 기반.

 

 

 

 

#1.

 

 “호에 호에- 드디어 만들었다스-!”

 데카판 박사는 자신이 만든 그것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것은 아직까지는 눈을 감고 있지만 박사는 그것을 피부며 머리카락이며 심지어 생리현상 조차도 전부 20대 남성처럼 만들어 놨다. 때문에 그것이 눈을 뜨고 사회로 나간다면, 그것이 인간이 아니란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일 것이라고 박사는 확신하고 있었다.

 “오른손 올렸다 놓을 수 있겠다스?”

 박사의 말에 그것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내려 보였다.

 “호에-, 그럼 왼발도 들었다 놓을 수 있겠다스?”

 그것을 또 박사의 말에 왼발을 천천히 들었다 내려 보였다.

 “잘했다스! 그럼 이제 눈을 떠도 좋다스!”

 그것은 박사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것은 자신의 눈 너머로 보이는 환경이 새로워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고는 자신 앞에 서있는 박사에게 초점을 맞추고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나의 연구소다스. 내가 여기서 너를 만들었다스.”

 그것은 연구소라는 곳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박사는 그것이 주변의 모습을 저장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했지만 몇 가지 실험을 더 해봐야 하기 때문에 우선 그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다스?”

 질문을 받은 그것이 두리번거리던 고개를 멈추고 다시 초점을 박사에게로 맞췄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재꼈다.

 “...제 이름은 안드로이드CR-03, 입니다.”

 

 

 

#2.

 

 데카판 박사가 안드로이드CR-03을 만든 이유는 안드로이드에게 대화를 하고 사랑을 주게 된다면, 안드로이드 자체에 없는 감정이 생기는가? 라는 그의 의문점에서 시작되었다. 애초에 안드로이드는 기계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메모리칩으로 주입된 정보만 갖고 주변을 분석하거나 말을 전달할 뿐, ‘감정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때문에 완성된 안드로이드CR-03은 그 실험을 위해 병원에 투입 되었는데, 그곳은 환자가 한명 있는 큰 1인 병실이었다.

 ‘마츠노 오소마츠.’

 안드로이드CR-03이 도착한 병실의 문 앞 팻말에는 환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드로이드CR-03은 환자의 이름을 자신의 메모리칩에 새긴 뒤 천천히 문을 열고는 그곳에 들어갔다. 안드로이드CR-03이 들어간 방안은 온통 새하얬다. 새하얀 벽에 새하얀 천장. 새하얀 바닥위에는 새하얀 침대가 있었고, 그곳엔 새하얀 소년이 문 반대편에 있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까만 머리는 눈을 덮을 정도로 길었고 자신이 들어왔는데도 아무 미동이 없어서 안드로이드CR-03은 그가 혹시 인형은 아닐까 인지했지만, 심장이 뛰는 작은 미동을 감지하고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자 이 방에 있는 환자인 마츠노 오소마츠임을 알 수 있었다.

 “마츠노 오소마츠?”

 안드로이드CR-03은 먼저 새하얀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창문을 바라보던 소년의 시선은 서서히 로봇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곳엔 자신과 꼭 닮은 얼굴의 누군가가 서있는 것에 놀라 소리 질러버리고 말았다.

 “에에엑-...!!! , 누구?”

 “제 이름은 안드로이드CR-03, 입니다. 데카판 박사님의 실험을 위해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헤에-... 안드로이드... 라고하면. 로봇?”

 “그렇습니다.”

 로봇이라기엔 너무도 사람 같았기에 오소마츠는 안드로이드CR-03에게 가까이 다가와 보라고 손짓했다. 안드로이드CR-03은 오소마츠의 손짓을 알아챈 뒤 오소마츠에게 천천히 다가가 앞에 섰다.

 “잠깐 손 좀 잡아볼 수 있을까?”

 “잡아도 괜찮습니다.”

 오소마츠는 안드로이드CR-03의 대답을 듣고 자신 앞에 서있는 로봇의 손을 잡아보았다. 차갑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은 인간의 온도 같게 느껴졌지만 확실히 인간의 손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오소마츠는 정말 안드로이드CR-03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깨닫고 안드로이드 CR-03을 빤히 바라보았다.

 “근데 왜 나한테 온 거야?”

 “데카판 박사님의 안드로이드의 감정유무 실험을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자세한 정황은 모릅니다.”

 “-... 박사인가. 그 사람은 참 이상한 박사야. 뭐 이상한만큼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이왕이면 예쁜 누나로봇을 보내주지 왜 사람 간 떨어지게 쌍둥이로 만들어 놨냐구-”

 오소마츠는 박사의 실험을 이해할 수 없어서 툴툴댔지만 그래도 도플갱어보다는 쌍둥이 형제라는 느낌이 훨씬 괜찮은 듯 했다. 지금껏 외동으로 살아왔던 오소마츠였던지라, 동생이 생긴 거 같아 기쁜 느낌도 들었고, 자신의 알맞은 단어 선택에 뿌듯해하며 그는 웃어보였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안드로이드CR-03입니다.”

 “너무 길어. 그리고 딱딱해. 차라리 내가 지어줄게.”

 “무엇으로 말입니까?”

 “‘쵸로마츠’. 너는 이제부터 마츠노 쵸로마츠인거야.”

 

 

 

 

#3.

 

 “쵸로마츠으-”

 “불렀어요, 오소마츠?”

 “- 밖에 나가고 싶어.”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부축해 일으키고 휠체어에 앉혀주었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

 “. 그럴게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끌고 문밖으로 나갔다. 이젠 익숙해서 어느 길을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휠체어를 끌고 조용한 곳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로 나갔다. 쵸로마츠에게 탑재되어있는 GPS기능은 이럴 때 굉장히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언제쯤 존댓말 내릴 건데.”

 “아무리 명령이라도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다고요. 대신 딱딱한 말투는 고쳤잖아요.”

 “에에- 그거 가지고는 안 돼! 동정티 너무 팍팍나쟎~?”

 “안드로이드에게 동정이 뭐예요. 웃기지도 않아요.”

 “웃기려고 한 소리는 아니지만 진짜 서운하다구- 내가 쵸로마츠에게 명령조로 말하면서 딱딱해지면 쵸로마츠도 서운해 할 거 아냐-”

 “서운하지는 않을 거 같은걸요. 오히려 오소마츠가 말하는 서운함을 모르겠어요. 대신 사전적 의미로 서운함이란 것은...”

 “아냐 아냐. 사전적 의미로는 서운함을 느끼지 못해. 감정은 지식으로 배우는 게 아냐. 마음으로 익히는 거지.”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에게 감정을 알려주려고 열심히 말해주지만 정작 쵸로마츠는 그것을 계속 사전적 의미로만 풀어내려고 해서 항상 쵸로마츠를 향해 툴툴거렸다. 이유는 아마 감정에 대해서 박사가 쓸데없이 지식만 넣어놓았기 때문이겠지, 오소마츠는 차라리 그 지식을 모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밖에 나오자 시원했다. 바람도 안 통하는 꽉 막힌 병실보다야 바깥이 훨씬 좋고 신선했다. 오소마츠는 바람을 맞다가 쵸로마츠를 불러 바라보았다.

 “저기 저기 쵸로마츠-,”

 “오늘은 오렌지 주스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말하기도 전에 준비해 놓았던 오렌지 주스를 꺼내 오소마츠의 볼에 살짝 가져다 대어줬다.

 “앗 차가- , 어떻게 알았어? 아직 말 안했는데...”

 “그냥 알았어요. 오소마츠가 내게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을 거라고 얘기할 거 같았거든요,”

 “헤에-, 감정은 모르면서 감은 생긴 거야? 놀랍네.”

 “감이요? 그게 뭐죠...?”

 “어라, 사전적 의미로 그건 없는 거야?”

 “있긴 한데 뜻이 너무 많아서요.”

 “아아... 느끼는 거 말이야. 그 뜻이야. 어쩌면 너에게 정말 감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오소마츠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쵸로마츠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감정이 생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로봇주제에 생각이란 계산을 하려하자 머릿속 회로 하나가 삐그덕 거리는 찌릿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쵸로마츠, 이제 갈까?”

 “, . 그러도록 해요,”

 오소마츠의 불음에 회로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병실로 오소마츠를 데리고 안전하게 돌아왔다.

 

 

 

 

#. 4

 

 “저기, 쵸로마츠.”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날이었다,

 “불렀어요?”

 어쩌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될 뻔 한 날.

 “산책 가자,”

 “, 좋아요.”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일 뻔 한 하루의 시작은 숲 속 산책길이었다.

 “쵸로마츠, 화관 만들 줄 알아?”

 “화관이라면 꽃 왕관 말하는 건가요?”

 “으응 맞아.”

 “만들진 못해요. 대신 만드는 법은 알려줄 수 있어요,”

 “왜 못 만들지만 만드는 방법은 아는데?”

 “화관 만드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대신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는 있으니까요.”

 “아아... 그럼 만드는 방법 알려줘. 나 화관 만들게.”

 어쩌면 고집이었다. 하지만 이건 대수롭지 않은 고집이었다. , 들어줄 수 있는 부탁 정도의 고집이라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으응-... ! 다 만들었어!”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무슨... 쵸로마츠가 쉽게 알려줘서 그런 거거든. 그게 아니고, 잠깐 숙여봐.”

 “? ... 이렇게요...?”

 쵸로마츠가 허리를 숙이자 오소마츠는 자신이 만든 화관을 쵸로마츠 머리에 올려주었다,

 “. 쵸로마츠 선물.”

 “... 아아, 고마워요. 기쁠 거 같아요.”

 “...그게 뭐야. 기쁘면 기쁜 거지.”

 “거짓말은 하기 싫어요, 하지만 감정이 있다면 이건 기쁨이에요.”

 “.... 틀린 건 아냐.”

 오소마츠를 보며 싱긋 웃는 쵸로마츠. 오소마츠는 그의 미소와 화관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심장이 두근, 설레고 말았다. 설레는 감정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쵸로마츠는 로봇이라며 자신을 타일러 왔지만 날이 갈수록 커지는 설렘은 멈출 수가 없었다.

 감정을 못 느끼는 안드로이드이지만 그래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말 많이 발전된 모습부터, 자신을 진심으로 챙겨주고 아껴주는 모습. 오소마츠의 그 모든 것이 쵸로마츠가 안드로이드임을 잊게 해주었다.

 “저기 쵸로마츠.”

 “?”

 “만약 감정을 갖게 된다면 어떨 거 같아?”

 “기쁠 거 같아요.”

 “그래... 응 그렀겠네. 쵸로마츠는 사랑이란 개념을 모르니까...”

 “단어의 개념은 알아요.”

 “알아 나도...”

 완벽한 날의 꺼낸 완벽한 단어, 하지만 상황이 완벽하지 않아 할 말이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에게 이런 용기가 난걸까. 아니, 시작의 발단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어쩌면 쵸로마츠가 감정이 있길 바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이 짝사랑이라는 싹틈을.

 

 

 

 

# 5.

 

 “좋아해.”

 “......”

 “좋아해. 좋아한다고.”

 “...오소마츠.”

 “알아... 네가 로봇인거. 감정 없는 안드로이드라는 거 알아.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미안해요 오소마츠...”

 “...거짓말로도 못 하는 거야...?”

 “거짓말이라니 당치 않아요. 나도 오소마츠를 참 좋아해요, 감정이 있건 없건 이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내가 말하는 좋아함이랑 오소마츠가 말하는 좋아함은 다르잖아요...”

 “그렇지만... 알아, 그렇지만... 나는...”

 “......”

 “나는... 쵸로마츠를 사랑하는 걸...”

 “...사랑이 무슨 느낌이에요...?”

 “...몰라도 돼. 사전적 의미만 알아도 상관없어. 감정이 생기길 바랐지만 죽어도 감정이 안 생긴다면 사전적으로라도 이해해서 나를 좀 좋아해줘...”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나는 알 수 없는 걸요. 분명 오소마츠가 날 사랑하면 나도 사랑을 느끼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난 그것을 모를 테고... 공감을 못하고 나는 결국 오소마츠에게 상처 입히고 말거예요...”

 “하지만...”

 “나는 오소마츠에게 상처 입히기 싫어요. 상처 입는 오소마츠의 마음조차도 공감 못할 거예요. 그러니 그 소중한 마음은 나 말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세요...”

 “그런 거 있을 리가... 싫어...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단 말야... 내겐 지금도 내 인생에서도 쵸로마츠가 전부란 말이야...”

 “...그래도 미안해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만들어준 화관을 돌려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이 화관에 닿기도 전에.

 “그럼 명령이야.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 걸, 허락해줘.”

 쵸로마츠는 화관에 손도 못 대고 오소마츠의 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알겠습니다.”

 잔인한 감정의 시작이여, ‘사랑이라는 잔혹한 명령 파일이 쵸로마츠의 머릿속에 각인 되고 말았다.

 

 

 

# 6.

 

 마음 아픈 밤이 시작되어 외로운 새벽을 맞을 때까지. 명령으로 입력된 슬픈 사랑의 원망은 결국 하룻밤의 쾌락에 몸을 맡겼다.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 필요는 없었다. ‘사랑이란 명령 하에 내려진 허락은 옳고 그름을 헤아릴 수 없었으니까.

 “신기하네 쵸로마츠-”

 “일일이 신기해...하지 좀... 말아 줄래요...”

 “하지마안- 이렇게 만지면 흥분하쟎-?”

 가짜임을 알면서도 진짜 같은 그것을 쓰다듬자 얕은 신음을 내뱉은 쵸로마츠가 신기하기만 했다. 오히려 더욱 갖고 놀고 싶은 기분이랄까.

 “감정이 없으면서 흥분은 하는 쵸로마츠가 놀라워~”

 이왕이면 감정까지 있으면 좋을텐데-, 오소마츠는 목구멍까지 넘어오던 말을 이내 삼키고 눈앞에 보이는 쾌락에 몸을 맡겼다. 말하지 않아도 알 테지, 생각정도는 계산 하리라 믿었다.

 “어디가 기분 좋아? 어떻게 하면 흥분이 돼?”

 “...모르...겠어요... ‘기분 좋다는 거...”

 “‘기분 좋다는 건 그냥 느끼는 거야. 이렇게 하면 좋쟎-?”

 오소마츠가 만질 때마다 또 다시 회로가 삐그덕 거리며 뒤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뒤엉킬 때마다 이상한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고, 가짜로 뛰는 심장이 튀어 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이상했다. 대체 왜 짐승들이 하는 교미를 하면서 이런 반응이 느껴지는 건지 쵸로마츠로선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소마츠...”

 “으응-?”

 “이거... 기분이 좋은 거예요...?”

 “물론.”

 “어째서 좋은 거죠...? 이건... ‘교미와 비슷한 거잖아요...”

 “달라. ‘교미는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만들기 위해 본능적으로 하는 것이고. 이건...”

 “이건...?”

 “내가 사랑하는 너와 하고 싶은 섹스거든.”

 쵸로마츠는 그 뜻을 알고 있다. 그리고 교미와 다른 점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할 말이 없었다.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계속 하고 싶은 그 이상한 마음을 인정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저 눈앞에 보이는 쾌락만을 치켜세울 뿐이었다.

 

 

 

# 7.

 

 그 전날 밤도 쾌락에 몸을 맡긴 뒤였다. 그래서 여느 날처럼 눈을 뜨면 옆에 오소마츠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날 아침은 이상하게 낯선 공간에 누워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이곳은...? 오소마츠는...?’

 익숙한 공간이니 만큼 오소마츠가 곁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이곳은 쵸로마츠가 처음 깨어난 연구소였으니까.

 “오소마츠...!”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 지는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오소마츠만을 찾으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병원으로 갔지만 이상하게 병실은 텅 비어있었다. 쵸로마츠는 급하게 안내 데스크를 찾아가 물었다.

 “오소마츠... 마츠노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나요!!!”

 “마츠노 오소마츠 환자요? , 이미 퇴원 수속 밟으셨습니다.”

 말도 없이 퇴원이라니, 쵸로마츠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받았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쵸로마츠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항상 같이 산책하던 곳부터 가본 적 없는 곳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곳을 뛰어다니며 오소마츠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쵸로마츠는 그래도 달렸다.

 “어디에...”

 숨이 차거나 체력이 닳지 않았다.

 “오소마츠...!”

 그래서 오소마츠를 부르며 쉬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쵸로마츠는 같은 곳을 여러 번 돈 후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몸을 멈추자 느낄 수 있었다. 호흡이 가파르고 심장이 몹시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머리에서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 내렸다. 쵸로마츠는 이 기괴한 현상을 바로 검색해 보았고, ‘초조함이란 것과 비슷한 증상임을 알게 되었다.

 “초조... 나는 초조한 건가...”

 자신이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검색 결과에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사사로운 초조함 따위는 발을 멈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오소마츠를 찾으러 가고자 하던 찰나.

 “호에-! 찾았다스-! 여기 있었다스!”

 “...박사님...?”

 쵸로마츠는 자신을 찾은 데카판 박사를 발견하자마자 다가가 그를 붙잡고 물었다.

 “박사님... 오소마츠가 사라졌어요...”

 “호에... 알고 있다스. 그것에 대해 말해줄 테니 우선 연구실로 가다스.”

 “...알겠습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아다니는 것을 멈추고 박사를 따라 연구실로 돌아갔다.

 

 

 

# 8.

 

 “호에- 여기 앉다스.”

 쵸로마츠는 박사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급하게 물었다.

 “오소마츠는 어디에...”

 “호에... 그 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기를 바란다스.”

 박사는 쵸로마츠에게 이야기를 하고자 입을 열었다. 그리고 쵸로마츠는 박사가 말한 것을 쵸로마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오소마츠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완쾌할 방법이 없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야했고 매일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지내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사는 쵸로마츠를 만들어 오소마츠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오소마츠가 가기 전까지 외로웠던 기억이 없도록.

 하지만 박사는 안드로이드에게 감정까지 심어줄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박사는 안드로이드에게 대화를 하고 사랑을 주게 된다면, 안드로이드 자체에 없는 감정이 생기는가? 라는 타이틀을 붙여 실험이라는 포장을 예쁘게 한 뒤 오소마츠에게 준 것이다.

 “...저는 그저 오래 입원하는, 곧 퇴원하는 사람일 줄 알았습니다... 왜 오소마츠는 저에게 아프다는 걸 한 번도 안 알려준 건가요.”

 그렇게 아파했는데 왜 자신의 앞에선 웃어 보였는지 쵸로마츠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안 남은 삶을 왜 숨기고 있던 것일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을 거다스.”

 “...저에겐 걱정이란 감정이 없는걸요...”

 “인간은 정이 생기면 무생물의 마음까지 헤아리기도 한다스. 그래서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스.”

 “......”

 “그래도 아픔을 숨길 수는 없었을 거다스.”

 그 말에 쵸로마츠는 언젠가 쾌락을 즐기던 밤에 오소마츠가 쿨럭 거리며 피를 토한 일이 생각났었다. 그 때 오소마츠는 그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코피 대신 입에서 피가 나온 거라며 웃어보였다. 그래도 쵸로마츠가 계속 안절부절 못하자 오히려 괜찮아, 기분 좋아. 계속해줘.’라고 말하며 쵸로마츠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미세한 움직임을 이미 간파했었고, 쾌락이 끝난 후에야 겨우 의사를 불러 안정시켰었다.

 “...아픈 건 알았지만... 심각한 줄은 몰랐습니다...”

 “안드로이드는 본래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만 믿기 때문이다스. 몸의 심각성은 알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읽지 못하지 않다스?”

 “...그렀네요... 내가 알아도 오소마츠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었고 또 나는 그걸 믿었으니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마음까지 읽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져 밀려오는 기분에 대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생각에 생각이 쌓여 울분에 괴로워하고 있다가 문득 스쳐지나간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습니까...?”

 

 

 

 

# 9.

 

 그날 밤은 그믐달이 뜬 조용한 밤이었다. 깜깜하고 고독하여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올 듯한, 폭풍전야 같은 아주 아주 조용한 새벽 밤이었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누워있던 쵸로마츠를 보고는 머리를 스윽- 쓸어주었다. 오늘도 즐거운 밤이었어, 아마 절대 잊지 못할 테야,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며시 병실 밖을 나가려 했다.

 “...오소마츠...?”

 물론 오소마츠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쵸로마츠가 문제였지만.

 “, 산책. 쵸로마츠는 날 안 보고 계속 자 줘.”

 명령하나면 모든 건 자연스레 돌아간다.

 오소마츠는 그 길로 데카판 박사를 만나러 갔다.

 “호에, 무슨 일로 이 새벽에 찾아왔다스?”

 “난 누구보다 내 병을 잘 아는 사람이야. 그래서 왔어.”

 “호에... 약이라면 처방해 줄 수 있다스...”

 “아니, 약은 지긋지긋해. 박사도 내 병을 완쾌할 수 있는 약은 못 만들었잖아.”

 “호에... 그래도-...”

 “됐고, 내 부탁이나 들어줘.”

 “무슨 부탁이다스?”

 “쵸로마츠에게 내 뇌를 이식해줘.”

 “호에-?? 어째서다스??”

 “난 정말로 쵸로마츠를 사랑해. 그런데 쵸로마츠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거쟎-? 로봇이라 감정이 없단 말이야. 나만 사랑하고 쵸로마츠는 그런 날 받아 주기만 하는 거잖아. 그런 사랑은 어딘가 꽉 차지 않고 텅 빈 거 같아 불안해. 적어도 나를 좋아하는, 나를 사랑하는 감정을 스스로가 느꼈으면 좋겠어. 그래서 생각했어. 쵸로마츠를 사랑하는 감정이 가득 담긴 내 뇌를 내가 죽은 후에 쵸로마츠에게로 이식하면, 쵸로마츠에게도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호에... 하지만 인간의 뇌를 안드로이드에게로 이식하는 건 꽤나 어렵고 힘든...”

 “그래서 해줄 거야 말거야.”

 “호에...”

 “...부탁은 거절이 가능하겠지. 그렇다면 거절 못할 부탁으로 바꾸면 되쟎-?”

 “호에...?”

 “유언이야. 박사, 내가 내 병을 직감해서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이야.”

 유언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알았다스. 최선을 다해보겠다스.”

 “그래, 고마워. 박사라면 분명 할 수 있어.”

 박사는 쵸로마츠를 데려와 주요 회로선을 끊고 긴 잠을 자게 두었다. 그렇게 쵸로마츠는 얼마나 잠을 잤는가. 일주일? 보름? 어쩌면 한 달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 긴 시간을 일일이 셀 시간은 없었다. 박사는 그저 마지막 부탁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뇌를 안드로이드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했다.

 자신의 뇌를 이식해준 인간은 숨을 거두었고 대신 인간의 뇌를 가진 안드로이드가 드디어 눈을 떴다.

 

 

 

# 10.

 

 “아아... 그렇다면...”

 모든 진실을 들은 쵸로마츠는 고개를 떨구었다.

 “오소마츠는 지금 없...”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몰려오는 감정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호에... 대신 추억은 감정과 함께 남아 있을 거다스...”

 박사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그것이 다였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감정... 오소마츠가 그렇게 원하던 감정을 느낄 수 있나요...?”

 “...이식은 성공했다스. 이제 느끼는 것은 본인 몫이다스.”

 “아아...”

 쵸로마츠는 천천히 생각했다. 눈을 뜨고 난 후부터 자신이 겪었던 모든 것을. 억장이 무너지고 초조하고 다급하고 괴로웠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이 기분들은 마치 회로가 삐그덕 거린 느낌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차고 올라와 온 몸을 헤집어 놓았다. 쵸로마츠의 느낌들은 소용돌이처럼 돌고 돌아 오소마츠와의 추억들을 낱낱이 기억나게 했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느꼈던 감정들이 파도처럼 쵸로마츠에게 휩쓸려 왔다.

 “아아...”

 당혹감. 설렘. 기쁨. 행복. 좋아함. 체념. 아픔. 괴로움. 오소마츠가 느꼈던 모든 감정을 직접 겪고 나자 쵸로마츠는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와 볼 밑으로 투둑- 떨어지고 말았다.

 “아아... ... 아악... 으아아아아...!!!!”

 그것은 오소마츠가 원하던 사랑과, 오소마츠가 없는 슬픔의 감정이었다.

[진우] 첫사랑

 

 

 

 

 

 중간고사가 저번 주로 끝이 났다. 끝났다고 너부러지는 것들이 한심하여 혀를 차고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자 책을 폈다. 시험이 끝났다고 흐트러지면 안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큰 짐을 짊은 우리에게 선조들은 공부의 끝은 없다고 하는데 어찌 연필 들기를 마다하는가.

 ...어쩌면 마지막으로 본 시험이 고전문학이라 나도 머리가 어떻게 된 걸지도 모른다. 조금의 휴식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안 쉬고 싶어도 쉬게 될 것을 굳이 난 왜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웃음이 흘러나와 아무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렸다.

 아, 진우 보고 싶다.

 

 

 

* * *

 

 

 

 수업 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칠판에 무언가를 적으시는데, ...? ‘자습’?

 “오늘 선생님이 회의일로 바쁘니까 이 시간만 자습 좀 할게. 어차피 시험 끝났으니까 한 번 정도는 쉬게 해주려고 했고. 영화보고 싶으면 영화보고 자고 싶으면 자고 공부하고 싶으면 해도 돼. 반장은 애들 조용히 시키고.”

 저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교실을 유유히 떠나셨다.

 ‘자습’. 자습이라니. 차라리 수업을 하면 좋았을 것을 자습이란 이름으로 얼버무리게 되었다. 배운 게 있어야 복습이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으므로 예습을 하고자 다시 책을 폈다. 지금 잠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영화는 별로 보기 싫다. 내 눈앞에 있는 글자에 집중하며, 학습지도 펴서 문제도 풀어보았다.

 응, 살맛나네. 누구는 미쳤다한들 내가 살 거 같은데 그 누가 트집 잡고 늘어지는가. , 한 명 정도 있으려나.

 어쨌든 이 시간만 끝나면 점심시간이 온다. 오늘 점심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종이 치자마자 아마 볼 수 있는 얼굴에 머릿속에선 벌써 함박웃음이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자습시간에 좋은 점이 있다면 선생님이 안 계실시 종이 치기 전에 조금 일찍 반에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5분 정도는 눈 감아 주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됐달까. 그전에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나쁘지 않네.’로 생각이 바뀌었다.

 저번 주까지는 시험이라서 내 부탁으로 같이 점심 먹는 것이 금지-점심시간에도 공부해야 하는 게 이유였다.-였었다. 시험 끝나고 오늘은 꼭 점심 같이 먹자고 매달렸던 그였기에, 나도 얼굴 마주보며 밥 먹고 싶은 마음이 태산만큼이나 부풀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종이 치고 나서 지나는 시간조차도 아까워 미칠 거 같았다.

 종치기 1분 전까지는 가만히 있는 편이다. 그래도 곧 종칠 거 같을 때 쯤 일어나 살며시 교실을 나갔다.

 몇 걸음만, 몇 초만. 그렇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울리자마자 반에서 뛰쳐나온 너.

 “이쪽인데.”

 급식실과 우리 반은 완전 다른 방향에 있어서 그는 역시나 반대 반향으로 가려고 했었다. 내가 불러 세우지 않았으면 달려가고도 남았을 것을.

 “신난 얼굴이네.”

 “, 조금?”

 “왜 신났는데?”

 “.. 아까 첫사랑, 아니. 아까 수학시간에 - 첫사랑 얘기더라.”

 

 너를 만나면 꺼낼 첫말을 뭐로 해야 할지 몰라 평상시보다 더 신나 보이는 너의 표정을 주제로 잡았다. 당연히 너무 오랜만에 밥 먹는 게 너무 좋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주제 선정을 잘못한 듯하다.

 첫사랑. 첫사랑이라...

 “...누구였는데?”

 “?”

 “누구였냐고.”

 “누구긴, 수학선생님이지. 저기 계시네.”

 아아, 그래 그랬구나.

 둘이 눈을 마주치고 뭐라 뭐라 대화하는데 그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지칭하지 않은 듯.

 이미 나도 다 알고 있는 듯.

 

 “ - 또 우리 둘끼리 볼 것 같지만.”

 대화가 끝난 거 같다.

 “정우야, 가자.”

 네가 부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

 기분이 나빠졌다. 왜 기분이 나빠졌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잘 모르고 있다고. 상상이 내 마음을 저울질 하고 있다.

 “...”

 “나 선도부 회의 있어, 너 혼자 먹어.”

 있지도 않은 회의를 변명으로 꾸며대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얼굴 보면서 웃으며 같이 밥 먹는 거,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이 먼저 행동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분명히 붙잡힐 것이라는 것을.

 “정우야, 회의 공지 안 했잖아. 방송으로 너네 부르지도 않았고. 그리고 오늘은 처리할 일 없..”

 “회의 있다고.”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있지도 않은 회의가 열리는 곳으로 사라졌다.

 

 

 

* * *

 

 

 

 점심은 매점에서 사먹는 걸로 하였다. 회의 있다고 거짓말까지 쳤는데 급식실에서 마주치면 큰일 나니까, 동선이 겹치지 않은 선에서.

 생각에 잠겼다. 첫사랑이야기를 내게 한 걸까. 언제부터 첫사랑이었을까. 고등학교 들어와서 부터? 첫사랑, 왜 첫사랑이라고 지칭한 것일까.

 “신경 쓰이게 진짜...”

 그럼 첫사랑은 남겨두고 나보고 좋아한다고 저러는 거야? 좋아만 하니까 좋아한다고 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파편이 되어 머리를 긁어 어지럽히는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그러질 못하겠다. 이제 어떻게 마주보지... 어쩌면 당분간은 만나지 말던가... 아니면 정리를 하던가...

 머리가 혼란스럽다.

 

 당연한 거였을까, 그 날 점심을 먹은 후로 학교가 끝날 때까지 마주치지 않았다. 문자도 전화도. 그 무엇도.

 그냥 그렇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였다. 어딘가 허전한 등교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침 조회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은 기분전환을 해볼 겸 자리를 바꿀 거야.”

 선생님의 한 마디에 교실은 떠들썩해졌다. 기분전환 겸 자리바꾸기라. 별 의미 없는 거 같았다. 자리가 거기서 거기지...

 거기서 거기인거 취소. 넷째 줄은 칠판이 좀 안 보이네.

 어쨌건, 자리를 바꾸고 나서 지금은 점심시간 전 교시였다. 오늘 점심은 또 어떡하지. 매점에서 사먹을까. 종 치기 30분정도 남았네. 또 회의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지, 오기 전에 안 보이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되지...

 

 아마 앞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도망갈 용기가 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니?”

 활짝 열린 문에 서있는.

 “물리 선생님이 연정우 학생 찾고 계세요.”

 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물리 선생님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저 말은 분명히...

 “선생님, 저는...”

 “, 저한테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펼쳐보였다. 당당하면 오히려 의심하기 어려운 사람의 심리란, 당황스러움에 가까울지도.

 “...그래, 정우야 가봐라.”

 “....”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네가 있는 문 까지 걸어갔다. 나는 보이지 않을 불편함은 가득 담은 채로.

 

 

 

* * *

 

 

 

 교실에서 나온 뒤, 우리 둘 사이에는 그저 침묵만 흘렀다. 당연히 물리 선생님이 날 불렀다는 건 거짓말이었는지, 나는 너를 따라 복도 끝에 있는 계단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계속 침묵만을 지켰다. 무슨 말을 꺼내야하는지 몰랐고, 어떤 말이 내게 올지 몰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우야.”

 “...”

 계단에 도착해서야 들리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또 답이 없었다. 나는 너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이 상황은 지금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너 지금 장난해?”

 결국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한 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장난일리 없겠지. 그런데 장난 보다 더한 상황인 것을. 거짓말까지 치며. 너는 나를 이곳에.

 “이게 뭐하는 건데.”

 정말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나는 너에게 물었다.

 “너가 날 피하잖아.”

 “...”

 너의 말에 나는 정곡이 찔렸다. 피하려던 거 사실이니까. 네 눈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서 그런가. 더 감성에 젖어 들기 전에 네가 말을 꺼냈다.

 “정우야, 너가 날 자꾸 피하잖아. 이러면 너가 안 좋아하는 거 아는데 너가 자꾸 날 피하는 거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어. 미안해,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

 잘못한 거...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지? 너는 그저 네 생각을 말한 거고. 그거 때문에 피하려고 했던 건 나고. 그래서 오히려 잘못하고 있는 건 난데?

 “진짜 미안해. 너무 미안한데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 피하지 말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

 “너 잘못한 거 없어.”

 “...?”

 “너 잘못한 거 없다고.”

 “정우야, 그게 무슨...”

 “내가 혼자 너무 짜증이 나서 그랬어.”

 “?”

 아 그래. 나 짜증났구나. 그랬구나.

 이제 나도 몰라. 생각나는 대로 내뱉을 테야.

 “너가 수학 선생님 얘기를 하는데 내가 너무 짜증이 났다고, 그 얘기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둘이 희희덕 거려서 더 화가 났다고. 내가 왜 짜증나게 너 첫사랑 얘기에.. 이래야 하냐고...”

 “아니, 여기서 수학 선생님 얘기가 왜...”

 “너 진짜 장난해? 왜 자꾸 말 꺼내게 해, 너가 그 쌤이 첫사랑이라며. 너가 영화 얘기하길래 내가 첫사랑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그 선생님이라며!”

 

 아, 또 그 때 일 기억나 버렸어.

 나 혼자 자폭해버리고 또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마, 그 다음에 네가 다시 날 부르지 않았다면, 내가 다시 너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을 고하는 말을 했었을 지도 모른다.

 

 “정우야, 있잖아..”

 “...”

 “수학 선생님은 내 첫사랑이 아니라 그날 그 영화를 보여줬던 분이야.”

 “...?”

 “너가 누구냐고 물었었잖아, 나는 너가 영화 보여준 사람 누구냐고 묻는 줄 알았어. 근데 우리 정우가... 오해를 한 거 같네?”

 “...”

 

 오해? 내가 오해를 한 거라고...?

 나 혼자 별의별 생각을 하며 나 혼자 마음 접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 오해였다고? 아 잠깐, 잠깐만...

 “정우,”

 “말 하지 마, 너 조용히 해...”

 급격하게 밀려오는 오만가지 감정 때문에 천천히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갈 곳 없는 걸 알면서도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할 수만 있다면 달려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 결국 뒤에 있던 벽에 등이 닿았다.

 아 제기랄. 얼굴 못 보여줘. 죽어도.

 

 “정우야, 왜 등을 돌려."”

 “...오지 마.”

 “싫어, 정우야.”

 “오지 말라고...”

 

 제길. 오지 말라고 해도 뒤에서 들려오는 저벅거리는 소리가 내 앞에서 멈추었다. 오지 말라 해도 안 올 거라는 것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차라리 죽고 싶은데. 나 혼자 쪽팔리게 생각하던 거 전부 감싸 안고 여기서 자살하고 싶은데. 여긴 왜 창문이 없는 거야... 혀라도 깨물어야 하나...

 나를 보고 싶은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근데 난 보여주기 싫거든. 나는 있는 힘껏 벽에 붙었다. 마치 벽에 일부가 되고 싶기라도 하는 것처럼 달라붙었다.

 그런데 손길대신 목에 닿은 낯선 간지러움에 놀라 힘이 풀어져버렸다. 내가 풀어지자마자 놓치지 않겠다는 손의 느낌이 날 잡아챘다. 그러자 보이는 그의 얼굴.

 그리고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

 “정우야.”

 “...”

 

 내가 대답이 없자 너는 다른 물음대신 내 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다가 두 손가락으로 내 턱을 올려 시선을 마주치게끔 한 거 같지만 나는 너를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잘한 거 하나 없는데 무슨 배짱으로 어떻게 너를 바라보는가.

 “우리 정우가 혼자 오해를 했네. 그래놓고 나를 피하면 어떡해, ? 선도부 회의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얼굴이 더 가까워지자 피하던 시야 안에 네가 들어와 더 이상 다른 곳도 못 보게 되었다. 이마가 맞닿아 앞머리의 느낌이 왔다. 코끝이 닿았다. 뭐가 좋은지 계속 웃고 있는 너의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

 “...하지만 너가,”

 “쉬이...”

 뭔 말을 하려고 해도 네가 먼저 내 입을 너의 검지로 막아버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부끄러워 죽겠는데, 그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 정우야.. 미안해, 안 미안해?”

 내게서 대답을 듣고 싶은지 잠깐의 여유를 준 그였기에 나는 짧게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미안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마음은 없었다. 내가 오해를 했다는 걸 알고 나자 나도 내 잘못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 잘못을 인정하자 그의 온기가 아랫입술에 맺혔다. 그 감각은 언제나 눈이 자연스레 감기면서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다. 언제나처럼 사고가 정지되어 그저 그가 당기는 대로 움직여버린다. 따뜻함과 상냥함에 지배당하면 숨도 쉴 수가 없다. 뒷머리가 감싸져서 그대로 또 그대로.

 정말 마법 같은 그의 입맞춤은, 키스는. 내게 마약과 같은 달콤함이었다.

 

 “정우, 하아.. 정우야..”

 네가 나를 부른다. 나는 눈을 떠 너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제발 말해줘, 정우야.”

 내가 멋대로 오해하고 만 것인걸, 내 잘못에 네가 더 매달리는 이유를, 알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해, 정우야. 좋아하는 만큼 걱정이 됐어. 그러니까 제발 앞으로는 말로 해주라. 제발 나 피하지마...”

 나는 너의 말만 멍하니 듣고 있다가 너의 간절함에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의 간절함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지,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말할지를 몰라 그저 바라보기만.

 “걱정 시켰으니까 내 소원 들어줘야 돼.”

 “...어떤...”

 “종 칠 때까지 나랑 있어.”

 어차피 두고 갈 생각도 없었어.

 

 잠시 떨어졌던 입술은 5분도 채우지 못한 채 다시 맞닿았다.

 

 

 

 

 

 

----------------------------------------------------------------------------------------------------------------------

앤오님.... 저는 이제 죽으면 될거 같습니다...키히힣.... 연성이 너무 늦었네요.... 저번주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주에 또 개강이라...((사망))

감히 뭐라 할말이 없...없....(((((자살))))

글도 참....(((((죽자)))))))

쓸거 참 많은데 하하하하하하ㅏ하하하하하ㅏ하하핳하 늦어서 죄..죄...((죽음으로 사죄하자))

쿨쩍....앤오님제가마니조아해요....///하투

[1차] 여장 - 2. 바람




 "크...크...크크...크크크크크..."
 "......"
 "프흐...프흐흣...푸하하하하핫-!!!"
 "...조용히좀 웃어라 제발."
 내 앞에서 미친년처럼 웃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촌 임청아다. 아주 배를 잡고 미친듯이 웃고 있는 이유는.
 "그...그치만... 프흐... 연정우가... 크흐흐... 여장...푸하하하하하하핫-!!!"
 원래 안 말하려고 했는데 요즘 인터넷과 sns가 이리도 잘 발달해 있는 시대여서 벌써 우리학교 축제 영상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안 말해도 이미 다 들킨걸 어떡해.
 "하아-... 최고다 연정우. 어떻게 여장할 생각을 했지?"
 "하고 싶어서 한거 아냐. 떠밀려서 한거지."
 "그래그래, 그래서 일등먹었어?"
 "인정하긴 싫지만 먹었다, 일등."
 "크으-, 역시 우리 아우. 어렸을 때 그렇게 예쁘장하더니 이렇게 멋지게 커서 여장이나 하고.  일등먹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사내대장부던 임청아는 어디 남장대회 안 나가나."
 "시끄러워요 우리 아우?"
 오늘 그녀를 만난 이유는 그녀가 날 불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보고자 물었다.
 "그래서 날 보자고 한 이유는?"
 "아, 그게. 사실 부탁이 있어서."
 "무슨 부탁."
 "실은..."



*   *   *



 "너 오늘 내 동생해라."
 "......"
 "오늘 하루만 임정아해라. 어때."
 "어때고 나발이고..."
 내가 다시는 안하겠다는 여장을 왜 또 해야하는가. 내가 뭘 그리도 잘 못하여 이리 또 여장을 해야하는가. 나는 왜 그것을 허락했는가.
 "잘 어울려.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며 엄지를 들어올려보이는 여자의 얼굴을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건 처음이었다.

 그녀가 내게 소원을 썼다. 전에 빚진게 있어서 소원하나 들어주겠노라 약속했었거늘, 그게 설마 여장이 될줄은 상상이나 했겠나. 차라리 기한이라도 정해놨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을. 한 번 말로 뱉은 약속은 모두 책임지겠다는 내 안의 규칙이 처음으로 한스러워졌다.
 그래도 가발이며 화장이며 옷이며, 축제 때 했던 여장보다 훨씬 여성스러워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
 "그런데... 어째서 나한테 맞는 큰 옷이 있을 수 있는건데..."
 "그거야 빅사이즈 옷이 유행할 때 한창 사놓은거라 그렇지~"
 키는 크지만 몸매가 듬직하지 못해서 그런지 그녀의 왠만한 큰 옷은 거의 다 맞아 들어갔다. 그래서 오늘 입은 패션은 긴 치마에 얇은 나시를 입고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멋드러진 챙모자를 쓴 긴 머리 여성이라 해야하나.

 "그래서 이제 뭐 어쩌라고...?"
 "케이크가게 가는 것!"
 "......"
 "마스크는 허용해줄게. 목소리가 여자가 아니네."
 "......"
  마스크라도 허용되서 다행이다. 아무리 못 알아볼 정도라해도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보기에 얼굴은 가리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필~ 여자끼리 가면 50%할인해주는 가게를 발견해서~"
 "커플은 완전 할인해주겠네."
 "아니~ 남녀끼리가면 22%할인."
 "......"
 "그래서 여장한거라구~ 알겠어 동생아?"
 "...모르겠다. 그나저나 친구랑 같이 가면 되잖아."
 "바쁘데~"
 "......"
 친구가 없는 건 아니고? 라고 말하려던게 목구멍까지 차오르다 말았다. 이 고집쟁이를 대체 누가 말리나.

 그렇게 그녀와 케이크가게를 가고 있었다. 케이크에 그렇게 신났는지 그녀는 나보다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툭-,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에 뭔가 싶어 뒤돌아보니...
 "저기..."
 어라.
 "이거 떨어뜨리셨...는 데요..."
 내가 실수로 떨어뜨린 무언가를 주어준 사람은.
 "......"
 나를 한 순간에 어버버거리게 할 수 있는 존재.
 "그쪽 거 아니신가요...?"
 그는 내 애인, 김진우였다.

 "우와~ 손수건 주워주신 거에요? 감사해라~"
 내가 어버버거리느라 자기 뒤에 없는 걸 알았는지 그녀가 내게로 갑자기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정아야, 주워주셨잖아. '목 아프니까' 말은 말고 어서 받아."
 나는 그녀의 말에 묵묵히 그가 주워준 그것을 받았다. 그것은 언제 들어있었는지도 모를 손수건이었다.
 "제 동생이 지금 목감기에 걸린 상태라서 말을 하면 더 안 좋아진다나봐요. 무례해보여서 죄송해요~"
 생글생글 웃으며 얘기할 그녀 얼굴에 침뱉기는 아마 누구도 못할테지. 난 일부러 챙모자를 눈을 가릴만큼 내려쓰고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어차피 그는 나보다 키가 크니,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내 눈이 보이진 않을 것이다.
 "...동생분이 키가 크네요."
 "유전자 결함이겠죠~ 이래봬도 닮은 구석 많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테니 그쪽 멋진 남성분도 가실길 잘 가세요~ 임정아 가자!"
 그녀가 급하게 내 손을 잡고 갈 방향을 향해 달리듯 걸어갔다. 그렇게 걷다가 그곳에서 멀어졌다고 느껴졌을 때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아는 사람이야?"
 "어...?
 "아까 그 남자."
 "...응. 같은 학교 다니는..."
 최소한의 거짓말은 안하는 선에서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그녀가 다 알겠다는 듯 끄덕거린다.
 "아 역시나. 왠지 가만히 있더라... 나 안갔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게. 와줘서 고마워."
 도움을 받은건 사실이니까 고맙다는 말은 필수다. 얘 안왔으면 다신 안한다는 여장 들킬뻔 했으니...
 "고마우면 케이크."
 고마움 취소다.



*   *   *



 케이크를 맛있게 먹고 여장을 전부 풀어 헤치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또 가자!"
 "안 가."
 단호하게 말하자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는데, 금방 정신차리고 하는 말이.
 "22%할인도 괜찮으니까~"
 내가 또 가나 봐라. 이미 빚은 다 갚았으니 잃을 것도 없다.
 "어쨌든, 즐거웠어 내 동생~"
 "누가 동생이래."
 "우리 정아!"
 "입 다물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는 이만 헤어지자는 소리에 손을 설래설래 흔들고는 돌아갔다. 이제 나는 연정우이다.

 돌아가자 마자 그의 안김을 받고 말았다.
 "정우야..."
 애달프게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그를 다독거렸다.
 "왜, 무슨 일이야..."
 "오늘 낮에 있던 일이야..."
 그가 나를 데리고 앉히고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 산책을 나갔다가 왠 아리따운 여성분이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걸 보고 말았지."
 저거 백퍼센트 나다.
 "그래서...?"
 "그래서 친절하게 주워드렸지. 그 순간 얼굴을 본 거야."
 "......"
 온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이름도 예뻤어. 그의 언니가 방해만 안 왔더라면 더 이야기 나눴을텐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
 "몰라서 묻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그. 나는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와 대면해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시선 피하는 것뿐이라니.
 "예뻤다고."
 "......"
 "정우야, 응? 나 바라봐 줘."
 그의 말에 피했던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가까웠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왜 나한테만 안 보여주는거야?"
 "...알아챘네."
 "왜 못 알아보겠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인데. 다가려도 투시가 되서 보이는걸."
 "...오늘은 걔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언니'?"
 "...정확히는 내가 생일이 빠르긴 한데..."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그 '언니'는 어떤 관계인데."
 "사촌지간..."
 "아, 가족이 될 분이었구나."
 "......"
 "그래서, 나한테만 언제 보여줄거야?"
 
 첫번째는 뽀뽀로 넘어갔지만 두번째는 그걸로 부족하다며 절대로 여장을 봐야겠다고 말뚝박아 버렸다. 싫다고하자 남에겐 보여주고 자기 한테만 안 보여준다고 실망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이상 싫다고 하나. 다만 이번엔 꼭 자신만 봐야겠다며, 남들에게 보여지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고 자신이 보고 싶을 때까지 아껴둘거라고 그런다.
 처음부터 하지 말걸, 후회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듯 하다.




----------------------------
/...?? 나 왜 3편 제작이니? 원래 2편만 쓰고 말라켔는데.../ 3편은 앤오님 도움이 필요해요..!!
[1차] 여장 - 1. 축제





 "정우야 한 번만 부탁할게."
 "......"
 "우리들 처음하는 부탁이자 마지막 부탁이야. 제발..."
 선도부 학생들이 나에게 이렇게 애걸복걸하고 있는데도 내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그들이 내게 부탁하는 것이 바로 축제에서 열리는 '여장 콘테스트'에 출전해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부원이 나가도 되잖아..."
 "하지만 네가 아니면 임팩트가 없다니까!!!"
 "......"
 미간이 절로 짚어지는 이 상황의 또 다른 이유는 상금이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학교측 본 목적은 동아리 홍보였다. 물론 동아리 발표대회같은게 따로 있긴 하지만, 그저 단순한 재미를 위해 동아리 홍보라고 예쁘게 포장해놓고는 각 동아리에서 남자 한명을 골라 여장을 시키고 출전시키는 이벤트인것이다. 이 바보같은 이벤트에 출전하는 동아리 팀이 처음에는 많지 않아서 동아리 운영비랍시고 상금을 내걸었다고 한다. 그 상금을 타기 위해 처음보단 참여하는 동아리가 많아졌다나 뭐라나.
 "제발, 한 번만 부탁할게. 네가 나가면 상금은 우리거라니까?"
 "우리가 상금타서 뭐하게."
 "회식!"
 "......"
 사실 선도부는 따지고보면 동아리가 아니라서 콘테스트이 참여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데도 동아리이름을 걸 수 있는 이유는 콘테스트의 새로운 규칙이 생겼기 때문이다. 동아리만들때 조건인 최소 인원 다섯명이 한 그룹이 되어 일일 동아리가 되면 출전할 수 있다는 것. 다만 특정 동아리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콘테스트에 출전하지 않는 동아리 가입부원 남자만 일일 동아리가 될 수 있다. 원래 동아리 홍보가 목적이기에 콘테스트에 나가면 가명소개와 짧은 동아리 소개 그리고 어필로 나뉘는데, 그런 일일 동아리는 그냥 재미로 동아리 소개를 한다더라. 그렇게 한다면 한 층 더 즐거운 축제가 된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래서 선도부도 그런식으로 참여하자는데 하필 지목대상이 내가 된 것이다. 가장 안 그럴거 같은 사람이 그러면 인기 폭발이라고 얘기하는데 안 그렇다는건 대체 뭐가 안 그런건데.
 "연정우가 콘테스트 나간다고?"
 "아, 부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런데 저 안 나가요."
 "왜 안 나가는데? 가서 선도부의 위엄을 보여주고 오지 그래."
 "...선생님도 상금이 목적이신가요."
 "안 그래도 고3들 졸업하기 전에 한 번 회식하고 싶었어. 부족한 돈은 선생님이 채워줄테니, 어때?"
 "아직 수능도 안 끝났는데..."
 "하루정도 스트레스 푸는건 괜찮다."
 "상금 못 타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과자파티로 때워야지."
 "......"
 그냥 귀가부나 할걸. 이걸 이제와서 후회하면 어쩐단 말인가.
 "...상금 못 타도 내 책임 아니라고 약속해."
 "아? ...정말...?"
 "부장선생님이 떠밀어서 억지로 나가는 거라는 전제 깔고 상금 못 타와도 책임은 부장선생님께 있는 거라고 약속하면 하던지 말던지 할게."
 "계약 성립."
 "...좋아."
 그렇게 나는 여장 콘테스트에 참여하게 되고 말았다.



*   *   *



 때는 화수고 축제, 콘테스트 전 장기자랑을 하는 중.
 "......"
 화장을 받고 가발을 쓰고 옷은 선도부 답게 교복으로 했는데 밑에는 치마인, 나의 여장이 완성되었다.
 "미쳤다 연정우. 너 누나있냐?"
 "어쩌면 정석형이 아니라 정석누나일지도 몰라."
 "...제발 그 입들 좀 다물어..."
 "아아- 정우 정말 예뻐서 그래. 차라리 여자로 태어나지 그랬어."
 "......"
 항상 쓰고 다니던 안경을 벗고 있으니 어색하고 이상했다. 밑은 훤하지 구겨넣은 가슴살은 답답하지. 게다가 연습 중인 대사는 말하고 나면 죽어버릴 거 같았다.
 "정우야 대사 다 외웠지? 한번 해봐."
 "...'안녕, 나는 화수고 3학년 선도부 소속 연정아야. 우리 선도부는 학교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어. 학교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겐 엄벌을, 학교를 사랑하는 자에겐 칭찬을. 여러분은 선도부 연정아에게 투표를. 내가 보여줄 어필은 애교려나 찡긋.'"
 "잠깐 잠깐, 너무 국어책 읽잖아! 게다가 맨 마지막 찡긋은 왜 읽는건데."
 "써 있길래 다 외웠지."
 "다 외운건 좋은데 나가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 알지?"
 "...어쩌라고..."
 "최선을 다하란 말이다!!!"
 "......"
 최선, 최선이라. 그래 최선은 다해야겠지. 아 그냥 귀가부나 할걸.

 "여장 콘테스트 참여하실 분들 무대위로 올라와 주세요."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마냥 비장하게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들려오는 응원소리는 최대한 무시하고, 최선을 다해보고자 나는 무대 위에 섰다.



*   *   *



 무대가 끝났다. 우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네. 돼도 않는 애교와 아양을 부리니 죽을것 같았다. 계속 웃어대느라 안면근육이 하얗게 굳어버렸다. 그냥 죽자. 회식이고 뭐고 죽음이 답이다.
 "이번 축제에서 여장 콘테스트 1등은..."
 결과고 뭐고 죽고 싶다.
 "예상외의 귀여움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녹인 선도부 연정아! 축하합니다!"
 죽자.

 간신히 죽지 않고 상금을 받아 그날 저녁에 선도부는 단체 회식이 있었다. 부원들은 수고했다며 나만 챙기더라. 물론 나는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
 "왜 나한테 안 말했어..."
 "굳이 말해야하나 싶어서."
 여장 콘테스트나가는 것을 애인에게 비밀로 한 것이 문제였다. 근데 비밀이라기 보단 안 말한게 정확한 표현법인데. 일부러 안 말한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시간이 안되서 말할 타이밍을 놓친 거 뿐인데... 역시 서운하려나...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역시 마음에 안들때 짓는 표정이었다. 하긴, 이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나한테만 보여주겠다고 했잖아... 근데 왜 전교생 앞에서..."
 "이건 그거랑 다르잖아."
 "다른 거 하나도 없거든. 말도 없이 여장하고 말도 없이 애교부리고..."
 "나도 다시는 하기 싫어."
 내가 일부러 시선 피하며 이야기하는데 그게 또 싫었는지 내 볼을 감싸오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선 손이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나의 시선이 그의 시선 끝에 닿았다.
 "나만 보고 싶었는데..."
 그러면서 제 이마에 맞대어 부빗거린다. 앞머리 쓸리는 사락사락 들려온다.
 "나만 보고 싶었다고 정우야..."
 "...미안해, 너만 보여줬어야 했는데."
 나는 그가 올린 손에 손을 겹치며 사과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그것이 다였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는 내게 씨익 웃어보이며.
 "그럼 내 앞에서 여장 한번 더하자."
 간만에 벌점이나 먹일까.

 결국 손뽀뽀, 뺨뽀뽀, 입술뽀뽀로 어찌저찌 넘어갔는데,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왜 그땐 몰랐을까.





---------------------------
넘쳐나는 연성 중 하나는 여장이었답니다(찡긋)이쁜 앤캐님 캐붕내는거 제가 제일 잘함((그게아님 그냥 글을 못쓰는거)) 2편도 있어요^p^... 멋대로 연성한거 용서해주신다면 2편 보여드려야짓...

[1차/단편] 그것의 이름은 '운명'

 

 

※ 충청도 사람은 충청도 사투리밖에 몰라서 재현이 말투 어색주의

 

 

 그날은 평범하게 길을 거니던 날이었다. 수능전에는 이런 오후시간의 산책같은거 꿈도 못꿨는데 수능이 끝나니 이런 자유시간은 더이상 사치가 아니게 되었다. 마이 프리덤이랄까!
 "헉...!"
 그렇게 길을 걷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나의 운명을...

 뚜르르르르르르르-
 딸깍.
 "와 전화했나 가스나야."
 "야야 리재현이 내 말 좀 들어봐."
 "뭔디."
 "내가 아까 겁나 잘생긴 남자를 봤어...!"
 "...니 남자본거 자랑할라고 내한테 전화했나."
 "아냐, 옆에 여자도 있어. 너도 보면 반할걸??"
 "나가 와 반하는데."
 "겁나 예쁘니까."
 "이쁜지 안 이쁜지를 와 니가 판단하는데."
 "그거야... 그 남자랑 여자가 나한테 뭘 줬거든."
 "뭐 받았는데."
 "내가 사진으로 보내줄게. 한 번 봐봐."
 뚝.
 [사진 전송중]
 [전송완료]
 따르르르르르르릉-
 딸깍.
 "니 어디냐. 퍼뜩 불어라."

 운명을 만난 곳으로 그를 불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임청아...!!!"
 "넘어지겠다 천천히 좀 와."
 그래도 기어코 달려오는 그는 내 앞에 서서 헉헉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다 고개를 휙휙 돌리다가 손가락으로 누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여자가... 그 겁나 억수로 이쁜 여자가..."
 "그래 맞아. 가서 '그거' 받아와."
 "알았다... 내 받아 와주지."
 숨을 돌린 그는 내가 말한 여자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자신도 하나 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그것을 받아왔다.
 "겁나 이쁘더라..."
 "그치? 나 순간 운명 만난 줄 알았다니까."
 그는 그녀가 준 그걸 손에 꼭 쥐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갈끄가."
 "언제가 좋겠어?"
 "내는 지금 당장도 상관없는디..."
 "음...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야."
 "그럼 가자. 돈은 임청아가 내주겄지."
 "...내가 내는거야?!"
 내가 놀라서 바라보자 그가 아주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누님, 내가 이쁜짓 많이 할게요."
 그가 써버린 어색한 표준어가 너무 웃겨서 순간 웃을 뻔했다. 하지만 간신히 웃음을 참고 정색을 깔고 바라봤는데 오히려 꽃받침하고 날 바라보는게 아니었나. 표정은 비장한데 말투는 웃기고 거기에 꽃받침까지 한걸 보니 어떻게 안 웃을 수가 있었을까. 결국 나는 그의 '이쁜짓'에 지고 말았다.
 "알았다 알았어. 리재현이 예뻐예뻐. 이 누나가 졌다. 가자."

 아 맞다, 우리가 받은 운명이 뭐냐면, 바로.
 [초콜릿 뷔페카페 신규 OPNE. 50%세일 쿠폰]
 이런걸 받았는데 어떻게 운명이 아닐 수가 있을까. 이런걸 준 사람이 어떻게 못 생길 수가 있을까.
 결국 나와 그는 또 마음이 맞은 것이다.


 *   *   *


 "바로... 여기다."
 신규 오픈 초콜릿 뷔페카페에 도착했다. 벌써 여기는 우리의 성지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지, 이미 성지지. 문 앞에서 세번 돌고 절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가 날 끌고 들어가 버려서 할 틈이 없었다.
 "야야 봐라. 한시간 이용료 만원인디 쿠폰갖고 있는 사람은 오천원이라칸다."
 이벤트가 적혀있는 칠판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너무 반짝거렸다. 나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한시간으로 족하는가 리재현."
 "니는 어떤데."
 "내 지갑사정을 보아하니 세종대왕님이 두분 계신다. 그럼 어째야할까."
 "두시간 동안 이 썩도록 먹겠습니다."
 "옳지."
 내가 끄덕이자 그는 초코 디저트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자리부터 맡고 난 뒤에 진열되있는 초코 앞으로 갔다.

 와... 진짜 대박. 초코로 안 되어있는게 없었다. 초코케이크, 초코과자, 초코아이스크림, 초코볼, 초코빵, 초코푸딩... 설마 음료수로 초코탄산같은 것도 있을까 조금 두려워졌...
 "임청아 이거 좀 봐라!!!"
 "ㅇ...왜...!!! 초코탄산이 진짜 있는거야...???"
 "초코탄산? 그게 뭔디. 어쨌든 이봐라. 초코분수다!"
 초코분수.
 그 네 글자를 듣자마자 난 날아가다시피 다가가 그 실체를 확인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초코가 위에서 뿜어져 내려오며 얇은 막이 형성되는 이 분수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분수옆에 딸기와 마쉬멜로, 그걸 꽂아먹을 수 있는 꼬치가 있었다.
 "초코딸기다!"
 딸기 세개를 꽂고 초코막 사이로 돌돌 돌리니 갈빛이 딸기의 홍붉은 색 위로 사르르 흘러내렸다.
 "세상에..."
 언빌리버블. 정말. 이것은. 너무도. 환상적이잖아.
 "와 겁나 대박이다..."
 "진짜 최고아이가..."
 그렇게 우리는 초코분수에 한참 눈을 못 떼었다고 한다...

 "야야 큰일났다...! 우리 한시간 밖에 안 남았다 아이가!"
 "헐...!"
 초코분수만 바라보는데 한시간을 쓰고 말았다. 그런데 보고 보고 또 봐도 안 질리는 걸 어떡해...
 "최대한 많이 담아. 뭘 담든 전부 초코니까."
 "라져."
 우리는 10분도 안 돼서 접시에 한 가득 담고는 자리에 앉았다.
 "억수로 여는 천국아이가."
 "천국뿐이겠냐. 여기가 바로 지상의 별이지."
 "맞다 맞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초코 뷔페인 만큼 퀄리티도 대단했다. 만화나 광고에서 나오는 디저트만큼이나 예뻤고, 맛도 매우 좋았다. 초코케이크는 적당히 달았고, 초코볼은 진하게 달았고, 초코과자들은 고소하게 달았고, 초코아이스크림은 차갑게 달았다. 입 안에서 초코의 단맛이 부드럽게 녹아내려 아름다운 무도회를 자아내고 우아한 파티가 시작되는 환상적인 맛... 이건... 한 마디로...
 "녹아내릴 거 같은 맛이야..."
 "네말이 맞다... 억수로 환상적이네..."
 이 천국에서 뼈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채 안 남았었다.
 "뭐했다고 30분밖에 안 남았다카나."
 "디저트 먹느라고 그렇지... 아, 뭐 마실래? 저기 보니까 핫초코랑 아이스초코랑 커피랑 우유 등등 있던데."
 "그럼 내는 우유."
 "초코 우유도 있을텐데 우유면 괜찮겠어?"
 "초코 우유도 좋은데, 쿠키는 우유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제."
 "아, 인정."
 휘핑크림도 마음대로 올릴 수 있어서 잔뜩 올리고는 우유와 핫초코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가져와 줘서 고맙다. 자 봐라, 과자 맛있게 먹는 법."
 "오, 어떻게?"
 "과자를 비틀어 초코를 맛보고 우유에 퐁당."
 "뭐야 광고 찍어?"
 "잘 생긴만큼 제의도 많이 들어왔었는데 내 학교생활이 너무 바빠 다 거절했었다."
 "으응, 네 접시 위에 디저트 내가 다 먹어버리기 전에 헛소리 그만하고 먹기나 해."
 "네 누님."
 그렇게 꿈만같은 30분이 지나고 뱃속은 초코로 달게 물들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 나와 그는 우리의 성지에 아쉬움만을 잔뜩 남긴 채 그곳에 세종대왕 두 분을 고이 모셔드린 다음에야 문 밖으로 간신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   *   *


 "억수로 최고였다."
 "맞아. 다음에 또 올까?"
 "오면 내야 좋지. 그때도 임청아가 내는 기라믄."
 "야 리재현이, 너도 한번쯤 쏘지 그래? 내가 지금까지 쓴 돈이 얼마야!"
 "니 돈 많다아이가."
 "바닥날 지경입니다."
 "그러믄 더치페이."
 "...좋아. 더치페이 콜."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내민 그의 손을 보다가 마지못해 피식 웃으며 손을 마주쳐 줬다.
 "역시 임청아가 최고다."
 "그것도 맞는 말, 이지만 최고는 역시 초코지."
 "내도 최고라 말해줄줄 알았는디 니말 반박할게 없네. 그래 초코가 최고다."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인정인정~"
 즐겁고 달콤한 하루가 지나간다. 내일도 이런 아름다운 운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길 바라본다.

[할로윈 자캐 커플] Trick Or Treat.

 

 

 

 

 1031세상이 흑빛으로 물들어 고요할 때 한 집 두 집. 그렇게 점 같은 수많은 집들이 잭 오 랜턴으로 불을 밝히자 어두운 밤거리는 그세 다시 환하게 물들었다.

 1031일은 본래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아내는 날이지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날로, 그 의미가 점점 축제처럼 되어 지금의 할로윈을 만들게 되었다. 그들은 할로윈에 괴기하게 분장을 하며 하나의 놀이로 자리를 매웠지만, 정말 그들의 놀이에 불과한 것일까?

 

 “어쩌면, 그 기괴한 분장 속에, 정말 나 같은 기괴한 유령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깨어난 시간 치고는 굉장히 어둡고 시끄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황할 내가 아니었다. 이 날이 어떤 날인지, 무엇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잖아? 때문에 뼈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내 의상착의가 이상해 보일지라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밤에 그 유명한 ‘Trick or Treat’을 안 외치면 나의 정체가 들킬지도 모르는 흉흉한 때였기에, 본능에 가깝게 그저 근처의 아무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 머릿속 어딘가 둥둥 떠다니는 기억이 시키는 대로 그 아무 집을 손으로 크게 두드렸다. 그러자 나오는 인간은 보통 나의 눈높이보다 더 내려다 봐야 해야 했던 그저 아주 작은 남자 인간.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솔직히 랜덤으로 뽑은 집에서 작은 인간이 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그래도 당황한 척 안 하며 작은 인간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Uh... Trick or Treat-?”

 내 무릎 정도밖에 안 오는 이 작은 인간이 내 말을 알아들을지 걱정했는데 역시나, 못 알아들었다. 문을 두드렸을 때 작은인간이 나왔다는 것은 집에 부모가 없는 상황일 확률이 높다는 뜻. 게다가 이렇게 작은 인간이 나왔다는 것은 이 작은 인간은 외동이거나 이 보다 더 어린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된다. 원인이 어찌 됐건, 결론 적으로 이 작은 인간의 부모는 부재중. 게다가 이 시간 까지 안 자고 있거나 문을 두드렸을 때 서슴없이 문을 열었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미루어 짐작할 때 아마 부재중인 작은 인간의 부모일 수 있다. , 내가 문 두드렸을 때 작은 인간의 부모가 온 줄 알고 문을 열어줬지만 그의 부모가 아니고 좀 흉측하게 생긴 녀석이 이상한 말을 지껄이니, 작은 인간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잠깐...”

 물론 내가 잠깐이라고 말한다고 울음을 그칠 작은 인간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 처음이라 당황할 수밖에. 내 모자에 눈알 녀석도 처음 보는 상황에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눈만 굴리고 있었다. 작은 인간 달래는 일 따위 기억 속에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를 뒤진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물건이 하나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저기, 이거 줄 테니까 제발 그만...”

 내가 꺼낸 건 언제 샀는지 받았는지도 모를 할로윈 기념 주황색 롤-캔디였다. 작년에 샀는지 아까 산건지도 모를 것은 적어도 상한 건 아니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작은 인간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처음엔 롤-캔디의 효능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막막해졌었는데 다행히도 작은 인간은 조금씩 이것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조금씩 멈추고 몸이 경련이라도 온 듯 훌쩍이며 차차 진정되어갈 때 작은 인간은 내가 준 롤-캔디를 두 손으로 꼭 쥐어 받았다.

 “...맛있게 먹어, 작은 인간.”

 롤-캔디의 효능은 뛰어났다. 시끄럽게 울어 재끼던 작은 인간을 이렇게나 조용히 시키다니, 효능이야 다 말하고도 남은거지.

 “그나저나 내가 받으러 온 건데. 오히려 주는 상황이 돼버렸네...”

 조금 억울한 상황이 되긴 했지만 나는 천천히 롤-캔디를 핥는 작은 인간을 보며 대답했다.

 “내년에는 정말 사탕 받으러 올 테니까 제대로 준비해 두라고.”

 내 손이 작은 인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Happy Halloween.”

 

 

 잠에서 깨어보니 1년이 지나있었다. 물론 1년 동안 잤다는 느낌은 없고, 하루 자고 일어나니 1년이 되버린 느낌. 또 자면 그렇게 오래 잘 것을 알기에 1년에 한 번씩 눈 뜬 김에 기지개를 펴고 바깥세상을 보기로 했다. 내가 자기 전의 그 시간대와 똑같을 걸 알면서도 세상은 참 흥미롭고도 요란한 밤을 즐기고 있었다.

 난 어김없이 그 아무 집을 찾아갔다. 이번엔 꼭 사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작은 인간이 문을 열어 날 맞이했다.

 “Hello? Trick or Treat-?”

 싱긋 웃으며 그렇게 묻자 작은 인간은 그저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오늘도 우는 걸까 싶었는데 그저 날 바라만 보고 있는 작은 인간. 얼마나 눈 맞히기만 하던 침묵이 지났을까.

 “그거 무슨 말이야?”

 “...? 뭐가?”

 “그거 말야. ‘Trick or Treat’.”

 “... 뜻을 모르는 거야? 뭐 그냥... 사탕 안주면 장난칠 거야, 란 뜻인데.”

 “, 그럼 사탕 줘야해?”

 “결론은 그런 거지.”

 “... 근데 지금은 사탕이 없어. 다음에 오면 줄게.”

 “? 다음까지 기다려야 해?”

 “.”

 당당한 대답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1년 이란 하룻밤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듯 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사탕 대신 다른 거 줄래?”

 “다른 거? ...어떤 거...?”

 “알고 싶은 게 있으니 그걸 주면 돼.”

 “...뭔데...?”

 “바로, 네 이름.”

 작은 인간은 조금 망설이는 듯이 보였다. 뭐 그런 거 아닐까? 엄마가 일러주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 알려주는 거 아니라던가.

 “...일렌트.”

 결국 작은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말해줬다. 이름을 안다고 영혼을 빼앗아간다거나 그런 일은 없으니 나는 작게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 멋진 이름이네.”

 “너는...?”

 “? 내 이름?”

 작인 인간 일렌트는 내 질문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으니 이제 내 이름도 말해라 이 소리인가? , 내 이름. 내 이름...

 “잭이야.”

 “?”

 “. 사실 양옆으로 더 길긴 한데, 어떻게 불리든 상관은 없으니까.”

 솔직히 이름이란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그런 하찮음조차도 의미를 부여하면 가치가 있어진다는 거... 누군가 말해줬던 거 같긴 한데, 기억이 안 나는 명언 같은 문구에 갑자기 온몸이 감정으로 싸여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감정...? 내게 감정이란 게 있던가...?

 “멋진 이름이네에-”

 작은 인간 일렌트 의 말 한마디에 나는 느껴본 적이 너무 오래돼서 생각도 안 날 감정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그리고 표현한다.

 “그래? 고마워.”

 내 몸속에서 무려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 또 와. 그 땐 사탕 줄 테니까-”

 해맑게 웃는-해 맑은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 였더라-작은 아이의 미소가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미소가 꿈에도 나와 나의 하룻밤 같은 1년을 가득 채워줄 것만 같았다.

 “.... 또 올게. Happy Halloween.”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짙게 느껴졌다. 이 느낌, 만일 틀리지 않는 다면 분명 비이다. 비가 내린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셔라. 유령도 맑게 게인 하늘을 좋아한단 말이다-나 한정으로 좋아하는 거일지는 모르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소 눈 따가울 정도로 밝았던 길거리가 조금은 횅해 보이니 역시 조금 더 으스스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비를 싫어한다고 이런 분위기까지 싫어하지는 않았다. 으스스한 거리, 나 같은 유령에게 훠얼씬 잘 어울리지 않는가. 어차피 젖지도 않을 몸이니 이 으스스함은 내게 상관없었다.

 어쨌든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나는 오늘도 아무 집... 아니, 일렌트의 집을 찾아갔다. 물론 맞이하는 이는.

 “...?”

 어젯밤-물론 1년 전이다-에 본 것보다 조금 더 컸다. 정말 조금.

 “Hello? Trick or Treat-?”

 “...안 올 줄 알았는데...”

 “...?”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맨날 사탕 준비했는데 오지 않고...”

 “......”

 아아, 일렌트는 내가 1년이란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날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제길. 아쉽게도 그 기다림은 공감이 안 됐다. 난 공감이 안 될 정도로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본 적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잊혀 졌다고 믿는 감정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흐음, 우선 내 잘못인 거 같으니, 미안 사과. 하지만 너는 알아둬야 할 것이 있어. 나는 특별한 몸이라서 할로윈 데이만 움직일 수 있거든.”

 “...? 무슨 말이야?”

 “, 1년에 한 번씩만 널 보러 올 수 있다는 말씀.”

 “...어째서...?”

 “신님이 그렇게 하래. 아무래도 날 싫어하나봐-”

 일렌트는 그 작은 고개를 푹 숙여 자신이 기분 나쁘다는 것을 표현했다. 마음 속 숨기는 감정이라면 알아차리지도 못했겠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여 지면 기분 상태정도는 파악 가능하다고. 하아-... 한 숨을 한 번 내쉬고 나는 조금은 기대했다는 목소리로 톤을 바꿨다.

 “저기, 그래서 오늘은 사탕 있어?”

 난 3번째 방문이지만, 이미 3년이 지나버렸을 이곳에서 드디어 사탕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크든 작든 받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응 있어. 전부 녹아서 끈적하지만.”

 “...? ‘끈적...?”

 해명의 기회를 주기도 전에 일렌트는 집안으로 도도도도- 달려 들어가 곧 도도도도- 하고 달려 나왔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주는 정체 불명한 일명 녹아서 끈적한사탕.

 “엄마가 오늘은 비 오니까 오는 유령 없을 거라고 사탕이나 쿠키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았어, 그래서 남은 게 그거야. 내가 잭 주려고 예전부터 갖고 있던 사탕...”

 “... 그래...”

 그래도 내 전용 사탕이었다는 거네. 나는 씩 웃고는 일렌트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그리고 다음 할로윈 때도 올게. 그 땐 너무 일찍 사탕 준비해 놓지 말고 그냥 당일 날 준비해서 줘. 그러면 나 조금 더 기쁠지도-”

 “... ! 그럴게!”

 내 말에 일렌트는 어젯밤 같은 해맑은 미소를-이름 바꿔야 한다. 해맑은 말고 달맑은 으로-내게 지어주었다. , 저 미소가 나를 부른다. 이렇게 나는 또 감정이란 소용돌이를 헤쳐야만 했다.

 “그럼, Happy Halloween.”

 “. Happy Halloween-...!”

 일렌트가 준 끈적한 사탕을 입에 넣어보았다. 달았다. 달고 맛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끈적한 그 맛은 내게 다음을 기대하게 해주는 강한 무언 가였다. 어쩌면 그 옛날 누군가가 말해준 자석 같은 이끌림, 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몇 번째 만남일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은 만났다. 발가락까지 쓴다면 셀 수는 있을 정도로 만났다. 그렇게 우리는 많이 만났다. 그렇게 안 믿겨져도 이젠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일렌트가 문을 열어줄 수 있을 정도니 정말 많이 만난 것이다.

 “!”

 “워어- 아직 문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내가 피식 웃어 보이자 일렌트도 피시식 웃는다. 저 미소, 어젯밤에도 본 그 미소. 난 저 미소를 보려고 이 발걸음이 끊기지 않나 보다.

 “So-, Trick or Treat-?”

 이젠 내 눈높이까지 눈을 마주칠 수 있어서 고개를 굳이 숙이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날이 갈수록-정확히는 해가 갈수록-키가 커지는데 혹 나를 앞지르고 나보다 더 크게 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이 되곤 한다. 나보다 일렌트가 더 커진다면... , 앞으론 사탕 받으러 오지 못하는 건가.

 “잭 사탕, 없는데?”

 “? 어째서?”

 어제-일 년 전-까지만 해도 있던 사탕이 오늘 돼서 없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거지?

 “잭을 위해 300개의 사탕을 준비했는데, 잭이 올 때까지 하나씩 먹고 나니 다 사라졌어.”

 “내건데 왜 일렌트가 먹어.”

 “내가 먹으면 사라지는 걸 알고 안절부절 하다가 일찍 오지 않을까 하고.”

 순진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그렇구나 하고 말거 같나. 일 년에 딱 한 번만 맛볼 수 있는 단맛을 못 즐기는 것은 첫 만남과 두번째 만남으로 족하다고, 정말. 내가 어이없어서 킬킬 웃어보이자 일렌트는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 속에선 의기양양이란 반짝임이 쏟아져 내리는 듯 보였으니, 어찌할 바 모르는 눈알 녀석은 그저 눈동자만 도르륵 도르륵.

 “그래-... 그랬단 말이지. 그럼 사탕이 없으니 장난을 쳐야겠네. Trick or Treat- 이니까.”

 “무슨 장난...?”

 “글쎄. 장난의 종류야 많지.”

 그런데 장난을 쳐본지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 난다. 솔직히 나정도 살았으면 장난이 그냥 작은 인간들이 하는 장난이 아니게 되어버리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사고는 일렌트는 더 이상 작은 인간이 아냐.’정도로 밖에 굴러가지 않는다. 이정도로 컸으니 더 이상 작은 인간이 아닌 건 맞잖아?

 “결정했어. 내 장난은 악몽이야.”

 “...악몽이라니?”

 “어떤 악몽의 장난일지는 비밀. 하지만 장난이야. 그리고 다음에는 꼭 사탕 준비해 놔야해. 알았지?”

 “......”

 일렌트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건 다음엔 사탕을 준비해 놓지 않겠다는 건가? , 그건 좀 곤란한데. 뭐 상관없나. 어차피 내 악몽의 이름은...

 “그럼, Happy Halloween.”

 난 언제나 하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서 그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기나긴 잠을 청하기 위해 꿈나라로 쫓기듯 도망쳤다. 내가 그에게 장난치는 악몽의 이름은, There’s no next meet.

 

 

 자고 일어났지만 다시 잤다. 그리고 순식간에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물론 나는 하루 더 무리해서 잔 기분이지만, 하루 더 잤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었으니 난 상관없었다. , 나만 상관없지 세상은 2년 동안 상관 많았을지도. 어쨌든 나는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보았다. 너무 오래 잤는지 몸이 뻐근하게 느껴졌었다. 물론 느낌만. 다행히 몸은 금방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일어나서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그의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엊그제 밤이랑 다를 게 없었다. 오늘도 잭 오 랜턴은 어느 집이나 환하게 비추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많고 밝은 잭 오 랜턴 집들 사이에서 그의 집을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어두웠으니까.

 “...일렌트?”

 난 그의 집을 조심히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그러자 조금은 느린 반응으로 그가 집 문을 열어 재꼈다.

 “......?”

 문을 열어 보인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초췌해 보였다. 워어, 엊그제는 이렇게 늙어 보이진 않았는데.

 “...장난...끝났어...?”

 “? - ! 안 끝났으면 안 왔을걸.”

 그렇지. 장난이 단순히 안 만나기였으니, 안 왔으면 당연히 안 끝났겠지. 그리고 이것 보다 더 오래 잠드는 건 역시 당 부족이라서 나도 힘들고. 결국 장난 아닌 장난이 초췌란 단어로 막을 내린 거라고 해야 할까...

 “다행이다...”

 그 말을 한 일렌트는 갑자기 내게 달라 들어 나를 와락 껴안았다. ...어라?

 “또 안 올까봐... 또 오지 않을까 무서웠었어... 보고 싶었다고...”

 나에게 매달려서 하는 말들은 점점 울음소리에 묻혀서 불분명하게 들려왔다. 보고 싶었다는 소리인 거 같긴 한데. , 나는 그가 나를 왜 보고 싶어 한건 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저기 일렌트...?”

 나는 그를 잠시 떼어놓고자 그의 어깨를 붙잡고 살짝 떨어뜨렸는데 이미 눈물 범벅이가 된 그의 얼굴 이였기에 나는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어라라, 이 비슷한 기분 어디서 느껴본 거 같은데... 이런, 오늘은 사탕 없는데...!

 “작년에... 안 와서... 히끅... 올해도... 안 올까봐... 흐끅... 일부러... 잭 오 랜턴... 안 켜놓고.... 흐끅...”

 “......”

 “내가... 기다렸다고... ... 하루 하루... 기다리면서... 하루에 사탕 하나씩... 흐윽... 흐끅...”

 “......”

 “그래서... 사탕 600... 흐끅... 아 아니, 730... 많으니까... 말해줘...”

 “...어떤 거.”

 “...나 볼 때마다 하는 말...”

 “Like a... ‘Trick or Treat-?’”

 “그래 그거...”

 그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잊고 있던 기억 중에서 통보하지 않은 이별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잔인함을 악몽으로 포장하고 장난이라고 속여 선물해줬다. 그래서 장난이 그 장난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던 거 같다. 즉 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잔인하게 흔들어 놓고 장난이라고 대답한 꼴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가슴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일렌트가 왜 우는지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저 이유가 그러니 결과라고만 생각할 뿐.

 그래 단지 그것뿐.

 “So, Trick or Treat-...?”

 하지만 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와서 사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왜 또 내 몸속에서는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일까.

 

 

 “22번째, Trick or Treat!”

 “그거 내 대사라고. 멋대로 하지 말란 말이야.”

 “뭐 어때-”

 그와 만난 지 스물두 번째-내가 안 왔던 날 뒤로 그는 우리의 만남을 첫 만남부터 일일이 세고 있었다.-밤이다. 스물두 번째... 아직 한 달도 채 안된 밤인데 어느 세 그는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 세월 빠르구나.

 “오늘은 잭이랑 밖에 나가고 싶어.”

 “?”

 “한 번도 안 나갔잖아. 나 매년 잭만 기다리다가 사탕 받은 적 없다고?”

 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좀 놀라웠다. 그거 나한테 욕하는 거야 칭찬하는 거야.

 “같이 나가자.”

 결국 나는 계속 같이 나가자고 말하는 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뭐 나쁠 건 없겠지. 그것이 내 대답이었다.

 밖은 언제나처럼 다를 게 없었다. 하늘은 어두운데 거리는 휘황찬란하고. 그 거리에서는 나와 닮은 유령들이 득실거리며 어슬렁 어슬렁 배회하고 있고. 참 볼거 없는 이 밤에 일렌트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사탕 받고 싶다고 달려갔다가 말도 못 꺼내고 내게 부탁해 버리고 마는 게 벌써 열 번째이다.

 “헤헤- 잭은 정말 잘하네.”

 “항상 너에게 하는 거였는걸.”

 “그것도 그렀네-...”

 그렇게 사탕을 잔뜩 받고 난 후 적막한 공원 벤치에 앉아 우리는 조용히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 있었다. 사탕 맛있지만 일렌트가 주는 것보단 조금 못 할지도.

 “저기, .”

 “?”

 사탕을 맛있게 먹고 있던 중에 그가 나를 불렀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나도 너처럼 1년에 한 번만 깨어나서 돌아다닌다면 어떨까?”

 “...하아?”

 어이없는 질문에 나는 그저 다시 묻기만을 할 뿐이었다. 그 질문에 대답할 이유를 못 느끼겠는걸.

 “그러니까... 너랑 같이 단 하루만 깨어나서...”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거야.”

 그 질문이 어리석다는 거, 왜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묻는 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거야... 하루만 일어난다면... 잭을 매일 볼 수 있잖아...”

 “...?”

 “... 잭을 보기 위해 364일을 기다려야 해... 그런데 잭은 날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라며... 그러니까 나도 일 년에 한 번만 일어난다면, 나도 잭을 매일 볼 수 있는 거잖아...!”

 “...이론상 그렇긴 한데... 어째서?”

 “잭을 매일 보기 위해서.”

 “......”

 그의 이유는 너무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물론 대답이 된다. 1년에 한 번 깨어나는 유령이 된다, ? 일 년이란 시간의 기다림을 보내기 싫어서! 그럼 왜 일 년이란 시간의 기다림을 보내기 싫은가? 그건 하루라는 일 년을 매일같이 보내고 싶어서! 그렇다면 왜 하루라는 일 년을 매일같이 보내고 싶은가? 그건 날 보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날 보고 싶은가?

 왜 그것에 대한 대답은 못 하는가?

 “... 매일보고 싶은데?”

 “...그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하니까.”

 “...?”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

 그렇게 말한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렇게 달려갔다. 나는 그를 붙잡지도 못 한 채, 대답도 해주지 못 한 채... 그렇게 스물두 번째 만남이 끝나고 말았다.

 

 

 어쩌면 스물세 번째 만남이 되어야 하는 날 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짙게 느껴졌다. 이 느낌, 분명 비일 텐데 왜 기분이 더 찝찝하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그의 집을 가기 위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가는 그곳으로 향했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는 고백을 받으면 확실히 답해주라는 명령아가 남겨져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일 년이 넘어서야 그에게 답을 줄 수 있게 되어 참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물론 답은 정확히 결정했다. 그것이 그에게 잘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Trick or Treat-”

 그의 집을 찾아가 말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그가 아닌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사탕 받으러 온 건가요?”

 다른 사람의 상냥함에 나는 어버버 거리며 얼결에 사탕을 받아버렸다. 그러다가 내가 물어야 하는 단어를 잡아 입 밖으로 간신히 끄집어내었다.

 “저기, 일렌트는 어디에...”

 “일렌트요...? 그게 누구죠?”

 “...매년 이 집으로 사탕 받으러 왔는데... 항상 이 집에 있던...”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줘야 하는 사람.

 “-, 저희는 올해 여기로 이사 왔어요. 아무래도 작년까지 이 집에서 살던 사람을 찾나 본데, 그 집 아들이... 세상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갔어요.”

 “......”

 일렌트가 죽었다. 어째서? 내가 대답을 제대로 주지 못해서? 아니면 정말 일 년에 한번만 깨어나고 싶어서...? 나는 터덜터덜 그 집을 등 뒤로 돌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말았다.

 “나도 네가 좋지만... 그래도 인간으로 살아달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이미 죽은 목숨이라니. 이미 떠도는 유령이 되어버렸다니. 대체 유령이 된 그를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세상은 넓고 유령의 세계는 깊은데 도대체 어디에 가서 어떻게 찾으라고.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속은 왜인지 불에 데는 듯 뜨거웠다. 계속 자꾸만 뭔가가 북받쳐 오르는 것 마냥 답답했다. 또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아니, 날뛰면서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단지 그 말로 밖에 형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 머릿속과 내 뱃속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알지 못할 감정 때문에 손등에 차가운 무언가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밤공기는 차갑고 축축하고 질었으니까. 하지만 손등 위로 떨어지는 것들은 멈출 기미를 안 보였고, 나는 이미 손등 위로 떨어지는 그것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것의 이름은 바로, 눈물이었다.

 

 

 얼마나 지났나.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세보자면 겨우 2일정도. 겨우 이틀? 난 처음으로 2년이란 시간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하루가 이렇게 길지? 난 왜 이리도 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일렌트는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 날 기다린 거지...?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입이 달렸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인 것일까.

 “...보고 싶어.”

 나는 대답했다.

 “더 이상... 이렇게 기다리는 건 싫어...”

 넌 지금껏 날 얼마나 기다려 온 걸까.

 “말해주고 싶어...”

 나도 눈물을 흘렸었고.

 “대답해 주고 싶어...”

 널 이렇게 그리워 한다는 것을.

 “나도... 악몽을 꾸는 걸까.”

 내 장난이 너에게 심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잔혹하고 정말 잔인한 짓이다.

 “...이 악몽에서 얼른 벗어나게 해줘...”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이것이 답은 아니었지만, 이러면 기분이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혹시 이 손을 거두고 나면 네가 보일까란 일말의 희망인 것일까.

 “......?”

 일말의 희망...

 “일렌트...?”

 그것은 소위 기적이라 말하는...

 “잠깐...!”

 장난의 끝인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장난의 시작일까.

 “일렌트...!!!”

 나는 내 얼굴을 가리던 손 틈 사이로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내리고 그가 간 것 같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렌트...! 잠깐...!”

 그가 보인다.

 “일렌트!”

 그를 붙잡아.

 “......”

 그를 세워서.

 “일렌트...”

 그를 부른다.

 그러면 그는 날 바라볼까?

 

 “...누구세요.”

 “누구냐니...”

 “누구신데 왜 절 잡으신 거죠?”

 “...일렌트 아니야...?”

 “누군데 제 이름을 아시죠?”

 “...나 모르겠어...?”

 “...,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어째서, 라뇨.”

 “어째서 날 몰라... 네가 날 알아야 내가...”

 “......”

 “...내가 제대로 답을 해줄 수 있는데...”

 “......”

 “난 이렇게 네가 보고 싶어서 달려오고...”

 “......”

 “네가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

 “네가 보고... 싶어서...”

 “......”

 “보고 싶어서... 울고... 계속 울었는데...”

 “......”

 “...너는...”

 “...절 좋아하시는 거예요?”

 “...?”

 “절 사랑하시는 거냐고요.”

 “....”

 “......”

 “널 좋아해...”

 “......”

 “널 사랑해...”

 “......”

 처음엔 나도 네가 좋지만 너는 살아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어...“

 “......”

 “그런데... 내가 직접 기다림을 겪고 나니까...”

 “......”

 “말 그대로 악몽이야...”

 “......”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줘...”

 “......”

 “네가 비록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난...”

 “누구신데 내 마음을 훔쳐간 거예요.”

 “...?”

 “누구신데 왜 날 그렇게 기다리게 했냐고.”

 “......”

 “, 정말로 날 사랑해요?”

 “.... 정말로...”

 “날 얼마나 곁에 두고 싶은데.”

 “...이 세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러면 이 세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있어줘야겠네. 일 년을 매일같이.”

 “......”

 “매일 사탕 받으러 다니면서, 매일 데이트 하면서, 매일 같이 있어야겠네.”

 “... 맞아 그래야 해.”

 “그럼 가야지. 오늘부터 매일 해야 하니까.”

 

 그가 내밀어 준 손을 살며시 잡아 보였다. 그 손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지만 따뜻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내가 잊고 있던 감정 중 가장 중요한 감정인 그것은.

 “Trick or Love.”

[오소이치] 영화관에서

 

 

 

 “-, 뭐야 이치마츠밖에 없어?”

 “...? 무슨 일인데.”

 “있지, 이치마츠.”

 “....”

 “내일... 시간 되냐?”

 “...아마도?”

 “아 그래?? 그럼 내일 영화 보러 가자-!!!”

 “...???”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웬일로 오소마츠형이 나에게 영화를 보자고 권유를 한 날이기 때문이다.

 왜? 왜 나지? 쿠소마츠도 쵸로마츠형도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아닌 왜 나인 거지? 정말 우연히 내가 집에 있어서? 아님 일부러 내가 집에 있을 때를 기다려서?

 완전 이해가 안 되는 이 기다리는 순간은 그저 긴장의 순간이었다. 왜 집에서 같이 나오지 않고 영화관 앞으로 약속 장소를 잡아버린 걸까. 그래서 사람 많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 고립되어 버린 나는 더 긴장하고 말았다. 누군가가 날 실수로 부른다 해도 깜짝 놀라 고양이귀가 튀어나올 정도로...

 “-, 일찍 나왔네-!!”

 정말 나와 버렸다, 고양이 귀.

 “, 이치마츠? 괜찮은 거냐?”

 등장의 대사와 함께 내 어깨를 툭툭 쳐버린 형 때문에...

 “...놀랐잖아...”

 “, 횽아 때문에 우리사남 놀라버린거?? 에에, 미안 미안- 대신 형이 간식 쏠게~”

 “......”

 아무리 봐도 저 형은 정신이 나간 거 같다. 아니 나간 게 확실하다. 영화보자는 말에 이어 간식까지 쏜다니. 무슨 생각인거지.

 “자자, 들어가자고~ 곧 영화 시작해 버리니까~”

 “... 어어...”

 난 형의 밀림을 그대로 당해 엉거주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오늘의 간식은 나쵸입니다~~”

 팝콘대신 산 간식은 나쵸였다. 콜라도 큰 걸로 두 개를 사서 내게 하나를 건넸다. 어라-...

 “이거 하나 다 마셔도 돼...?”

 “물론~”

 항상 큰 걸 사면 꽂혀있던 빨대 개수는 3개였다. 주로 쥬시마츠랑 토도마츠랑 나눠 마셨는데 이번엔 이 큰 거 하나가 통째로 내꺼 라니. 이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감격할 수 있는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바람이 분거야...”

 “? 뭐가?”

 “갑자기 영화를 보자고 하지 않나... 간식을 사준다 하지 않나...”

 “-, 글쎄-!”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한 마디였다.

 “그런 거 생각 말고 영화나 보러 들어가자~ 특별히 이치마츠가 좋아하는 고양이 다큐멘터리란 말이야~ 어때 좋지?”

 “... ... 으응... 그거 좋을지도...”

 뭐, 정신이 나가도 이쪽으로 나갔으니 상관없겠지. 뭐가 됐던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니 봐주도록 한다.

 

 “......”

 뭔가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

 망할 장남이 영화를 보여 준다하고, 장남이 간식까지 사주고, 큰 콜라를 혼자서 독차지하고, 심지어 영화내용 까지도 완벽한데. ?

 “...냐옹-”

 왜 관객까지 고양이 인거지???

 “...저기, 오소마츠형...?”

 “, 중요한 장면이란 말이야...”

 물론 중요한 장면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역경을 딛고 올라서는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왜 훌쩍이는 관객 소리가 냐옹으로 들리냐 이것이지. ? 왜 이렇게 완벽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거지??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 생각하지 말자. 그럼 편하니까. 얼마나 좋은가. 영화도 보고 나쵸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고양이 영화에 관객도 고양이... 와 잠만, 여긴 천국인가? 정말 꿈같은 천국...

 잠깐.

 ...꿈같은...?

 “저기, 오소마츠형...!”

 “...아까부터 왜 불러 이치마츠...! 조용해야 하는 거 몰라?”

 “그치만... 이거 설마... 꿈이야...?”

 “? - 글쎄-!”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게 또 아까와 똑같은 애매한 대답... 난 그 대답에 진이 빠져버렸다. 꿈인가? 현실인가? 천국인가? 대체 어디인가 가늠하면서 나쵸를 바스락 깨물어 먹었을 때 쯤, 입안에서는 이유 모를 폭발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탄산이 잔뜩 들어가서 폭죽이 터져 나쵸가 혓바닥 위에서 힙하게 춤추고 있는 기분.

 그리고 느꼈다.

 

 

 “, 시발. .”

 

 

 

 

 

-----------------------------------------------------------------------------------------------------

나쵸 생일축하행애ㅐ애애ㅐ애애애애ㅐㅐ!!!!!!!!!!!!!!!!!!!!!!!!!!!!!!!1

어휴 나쵸를 까매오로 출연시키기위해 이치가 나쵸꿈을 꿨다는 이야기였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