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원맥덕춘/조각글] 위로

 

 

 

 앉아 있는 너의 뒷모습이 보여서 다가갔어. 이번엔 무슨 일인데, 설마 그 쪼그만 몸집으로 쪼그만 개미들을 보며 일일이 인사나누고 있는걸까, 같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생각하면서 말이지.
 그런데 다가갈 수록 들려오는 소리는 훌쩍임. 왜, 뭐야, 무슨 일인데?

 " 이덕춘...! "

 내 부름에 너는 황급히 눈물 닦는 시늉을 보이며.

 "ㄴ..네..! 월직차사 이덕춘...! "

 라고 급히 일어나 나를 바라보는데. 눈물자욱과 눈물때문에 빨갛게 번진 눈은 닦여지질 않았어.

 " ...너 왜 우는 거야... "

 아, 대장이 생각없이 말하는거 하지 말랐는데.
 그래도 이미 저질러버렸어.

 " 네...? 아뇨...! 저 안 울었는데요...? "
 " ...거짓말 치지말고 좀... "
 " 아니... 아뇨.. 아닌데... 그냥 눈물이... "
 " ...됐어. 이유는 뭐, 또 어디서 슬픈 얘기 듣고 왔나보다 생각할거니까. 그래도 되지? "

 울고 싶을 땐 울어, 라는 말을 돌려서 말해버렸네. 이건 생각 안하고 말해도 될거 같았지만... 그래도 작게 끄덕이며 네, 라고 말하는 너를 보았어. 그래 그거면 됐어.
 언제나 처럼 네 어깨에 손을 올려보았어. 그렇지만 평소의 스킨십과는 조금 다른, 조금 기대도 된다는 의미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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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쵸로] 사랑을 하는 너에게 감정이란 선물을.

 

 

꼬밍님의 쵸로마츠 안드로이드 썰 기반.

 

 

 

 

#1.

 

 “호에 호에- 드디어 만들었다스-!”

 데카판 박사는 자신이 만든 그것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것은 아직까지는 눈을 감고 있지만 박사는 그것을 피부며 머리카락이며 심지어 생리현상 조차도 전부 20대 남성처럼 만들어 놨다. 때문에 그것이 눈을 뜨고 사회로 나간다면, 그것이 인간이 아니란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일 것이라고 박사는 확신하고 있었다.

 “오른손 올렸다 놓을 수 있겠다스?”

 박사의 말에 그것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내려 보였다.

 “호에-, 그럼 왼발도 들었다 놓을 수 있겠다스?”

 그것을 또 박사의 말에 왼발을 천천히 들었다 내려 보였다.

 “잘했다스! 그럼 이제 눈을 떠도 좋다스!”

 그것은 박사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것은 자신의 눈 너머로 보이는 환경이 새로워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고는 자신 앞에 서있는 박사에게 초점을 맞추고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여기는 나의 연구소다스. 내가 여기서 너를 만들었다스.”

 그것은 연구소라는 곳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박사는 그것이 주변의 모습을 저장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했지만 몇 가지 실험을 더 해봐야 하기 때문에 우선 그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다스?”

 질문을 받은 그것이 두리번거리던 고개를 멈추고 다시 초점을 박사에게로 맞췄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재꼈다.

 “...제 이름은 안드로이드CR-03, 입니다.”

 

 

 

#2.

 

 데카판 박사가 안드로이드CR-03을 만든 이유는 안드로이드에게 대화를 하고 사랑을 주게 된다면, 안드로이드 자체에 없는 감정이 생기는가? 라는 그의 의문점에서 시작되었다. 애초에 안드로이드는 기계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메모리칩으로 주입된 정보만 갖고 주변을 분석하거나 말을 전달할 뿐, ‘감정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때문에 완성된 안드로이드CR-03은 그 실험을 위해 병원에 투입 되었는데, 그곳은 환자가 한명 있는 큰 1인 병실이었다.

 ‘마츠노 오소마츠.’

 안드로이드CR-03이 도착한 병실의 문 앞 팻말에는 환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드로이드CR-03은 환자의 이름을 자신의 메모리칩에 새긴 뒤 천천히 문을 열고는 그곳에 들어갔다. 안드로이드CR-03이 들어간 방안은 온통 새하얬다. 새하얀 벽에 새하얀 천장. 새하얀 바닥위에는 새하얀 침대가 있었고, 그곳엔 새하얀 소년이 문 반대편에 있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까만 머리는 눈을 덮을 정도로 길었고 자신이 들어왔는데도 아무 미동이 없어서 안드로이드CR-03은 그가 혹시 인형은 아닐까 인지했지만, 심장이 뛰는 작은 미동을 감지하고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자 이 방에 있는 환자인 마츠노 오소마츠임을 알 수 있었다.

 “마츠노 오소마츠?”

 안드로이드CR-03은 먼저 새하얀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창문을 바라보던 소년의 시선은 서서히 로봇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곳엔 자신과 꼭 닮은 얼굴의 누군가가 서있는 것에 놀라 소리 질러버리고 말았다.

 “에에엑-...!!! , 누구?”

 “제 이름은 안드로이드CR-03, 입니다. 데카판 박사님의 실험을 위해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헤에-... 안드로이드... 라고하면. 로봇?”

 “그렇습니다.”

 로봇이라기엔 너무도 사람 같았기에 오소마츠는 안드로이드CR-03에게 가까이 다가와 보라고 손짓했다. 안드로이드CR-03은 오소마츠의 손짓을 알아챈 뒤 오소마츠에게 천천히 다가가 앞에 섰다.

 “잠깐 손 좀 잡아볼 수 있을까?”

 “잡아도 괜찮습니다.”

 오소마츠는 안드로이드CR-03의 대답을 듣고 자신 앞에 서있는 로봇의 손을 잡아보았다. 차갑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은 인간의 온도 같게 느껴졌지만 확실히 인간의 손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오소마츠는 정말 안드로이드CR-03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깨닫고 안드로이드 CR-03을 빤히 바라보았다.

 “근데 왜 나한테 온 거야?”

 “데카판 박사님의 안드로이드의 감정유무 실험을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자세한 정황은 모릅니다.”

 “-... 박사인가. 그 사람은 참 이상한 박사야. 뭐 이상한만큼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이왕이면 예쁜 누나로봇을 보내주지 왜 사람 간 떨어지게 쌍둥이로 만들어 놨냐구-”

 오소마츠는 박사의 실험을 이해할 수 없어서 툴툴댔지만 그래도 도플갱어보다는 쌍둥이 형제라는 느낌이 훨씬 괜찮은 듯 했다. 지금껏 외동으로 살아왔던 오소마츠였던지라, 동생이 생긴 거 같아 기쁜 느낌도 들었고, 자신의 알맞은 단어 선택에 뿌듯해하며 그는 웃어보였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안드로이드CR-03입니다.”

 “너무 길어. 그리고 딱딱해. 차라리 내가 지어줄게.”

 “무엇으로 말입니까?”

 “‘쵸로마츠’. 너는 이제부터 마츠노 쵸로마츠인거야.”

 

 

 

 

#3.

 

 “쵸로마츠으-”

 “불렀어요, 오소마츠?”

 “- 밖에 나가고 싶어.”

 오소마츠의 말에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부축해 일으키고 휠체어에 앉혀주었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

 “우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

 “. 그럴게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끌고 문밖으로 나갔다. 이젠 익숙해서 어느 길을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휠체어를 끌고 조용한 곳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로 나갔다. 쵸로마츠에게 탑재되어있는 GPS기능은 이럴 때 굉장히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언제쯤 존댓말 내릴 건데.”

 “아무리 명령이라도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다고요. 대신 딱딱한 말투는 고쳤잖아요.”

 “에에- 그거 가지고는 안 돼! 동정티 너무 팍팍나쟎~?”

 “안드로이드에게 동정이 뭐예요. 웃기지도 않아요.”

 “웃기려고 한 소리는 아니지만 진짜 서운하다구- 내가 쵸로마츠에게 명령조로 말하면서 딱딱해지면 쵸로마츠도 서운해 할 거 아냐-”

 “서운하지는 않을 거 같은걸요. 오히려 오소마츠가 말하는 서운함을 모르겠어요. 대신 사전적 의미로 서운함이란 것은...”

 “아냐 아냐. 사전적 의미로는 서운함을 느끼지 못해. 감정은 지식으로 배우는 게 아냐. 마음으로 익히는 거지.”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에게 감정을 알려주려고 열심히 말해주지만 정작 쵸로마츠는 그것을 계속 사전적 의미로만 풀어내려고 해서 항상 쵸로마츠를 향해 툴툴거렸다. 이유는 아마 감정에 대해서 박사가 쓸데없이 지식만 넣어놓았기 때문이겠지, 오소마츠는 차라리 그 지식을 모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밖에 나오자 시원했다. 바람도 안 통하는 꽉 막힌 병실보다야 바깥이 훨씬 좋고 신선했다. 오소마츠는 바람을 맞다가 쵸로마츠를 불러 바라보았다.

 “저기 저기 쵸로마츠-,”

 “오늘은 오렌지 주스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말하기도 전에 준비해 놓았던 오렌지 주스를 꺼내 오소마츠의 볼에 살짝 가져다 대어줬다.

 “앗 차가- , 어떻게 알았어? 아직 말 안했는데...”

 “그냥 알았어요. 오소마츠가 내게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을 거라고 얘기할 거 같았거든요,”

 “헤에-, 감정은 모르면서 감은 생긴 거야? 놀랍네.”

 “감이요? 그게 뭐죠...?”

 “어라, 사전적 의미로 그건 없는 거야?”

 “있긴 한데 뜻이 너무 많아서요.”

 “아아... 느끼는 거 말이야. 그 뜻이야. 어쩌면 너에게 정말 감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오소마츠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쵸로마츠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감정이 생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로봇주제에 생각이란 계산을 하려하자 머릿속 회로 하나가 삐그덕 거리는 찌릿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쵸로마츠, 이제 갈까?”

 “, . 그러도록 해요,”

 오소마츠의 불음에 회로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병실로 오소마츠를 데리고 안전하게 돌아왔다.

 

 

 

 

#. 4

 

 “저기, 쵸로마츠.”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날이었다,

 “불렀어요?”

 어쩌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될 뻔 한 날.

 “산책 가자,”

 “, 좋아요.”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일 뻔 한 하루의 시작은 숲 속 산책길이었다.

 “쵸로마츠, 화관 만들 줄 알아?”

 “화관이라면 꽃 왕관 말하는 건가요?”

 “으응 맞아.”

 “만들진 못해요. 대신 만드는 법은 알려줄 수 있어요,”

 “왜 못 만들지만 만드는 방법은 아는데?”

 “화관 만드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대신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는 있으니까요.”

 “아아... 그럼 만드는 방법 알려줘. 나 화관 만들게.”

 어쩌면 고집이었다. 하지만 이건 대수롭지 않은 고집이었다. , 들어줄 수 있는 부탁 정도의 고집이라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으응-... ! 다 만들었어!”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무슨... 쵸로마츠가 쉽게 알려줘서 그런 거거든. 그게 아니고, 잠깐 숙여봐.”

 “? ... 이렇게요...?”

 쵸로마츠가 허리를 숙이자 오소마츠는 자신이 만든 화관을 쵸로마츠 머리에 올려주었다,

 “. 쵸로마츠 선물.”

 “... 아아, 고마워요. 기쁠 거 같아요.”

 “...그게 뭐야. 기쁘면 기쁜 거지.”

 “거짓말은 하기 싫어요, 하지만 감정이 있다면 이건 기쁨이에요.”

 “.... 틀린 건 아냐.”

 오소마츠를 보며 싱긋 웃는 쵸로마츠. 오소마츠는 그의 미소와 화관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심장이 두근, 설레고 말았다. 설레는 감정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쵸로마츠는 로봇이라며 자신을 타일러 왔지만 날이 갈수록 커지는 설렘은 멈출 수가 없었다.

 감정을 못 느끼는 안드로이드이지만 그래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말 많이 발전된 모습부터, 자신을 진심으로 챙겨주고 아껴주는 모습. 오소마츠의 그 모든 것이 쵸로마츠가 안드로이드임을 잊게 해주었다.

 “저기 쵸로마츠.”

 “?”

 “만약 감정을 갖게 된다면 어떨 거 같아?”

 “기쁠 거 같아요.”

 “그래... 응 그렀겠네. 쵸로마츠는 사랑이란 개념을 모르니까...”

 “단어의 개념은 알아요.”

 “알아 나도...”

 완벽한 날의 꺼낸 완벽한 단어, 하지만 상황이 완벽하지 않아 할 말이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에게 이런 용기가 난걸까. 아니, 시작의 발단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어쩌면 쵸로마츠가 감정이 있길 바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이 짝사랑이라는 싹틈을.

 

 

 

 

# 5.

 

 “좋아해.”

 “......”

 “좋아해. 좋아한다고.”

 “...오소마츠.”

 “알아... 네가 로봇인거. 감정 없는 안드로이드라는 거 알아.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미안해요 오소마츠...”

 “...거짓말로도 못 하는 거야...?”

 “거짓말이라니 당치 않아요. 나도 오소마츠를 참 좋아해요, 감정이 있건 없건 이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내가 말하는 좋아함이랑 오소마츠가 말하는 좋아함은 다르잖아요...”

 “그렇지만... 알아, 그렇지만... 나는...”

 “......”

 “나는... 쵸로마츠를 사랑하는 걸...”

 “...사랑이 무슨 느낌이에요...?”

 “...몰라도 돼. 사전적 의미만 알아도 상관없어. 감정이 생기길 바랐지만 죽어도 감정이 안 생긴다면 사전적으로라도 이해해서 나를 좀 좋아해줘...”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나는 알 수 없는 걸요. 분명 오소마츠가 날 사랑하면 나도 사랑을 느끼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난 그것을 모를 테고... 공감을 못하고 나는 결국 오소마츠에게 상처 입히고 말거예요...”

 “하지만...”

 “나는 오소마츠에게 상처 입히기 싫어요. 상처 입는 오소마츠의 마음조차도 공감 못할 거예요. 그러니 그 소중한 마음은 나 말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세요...”

 “그런 거 있을 리가... 싫어...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단 말야... 내겐 지금도 내 인생에서도 쵸로마츠가 전부란 말이야...”

 “...그래도 미안해요...”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만들어준 화관을 돌려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이 화관에 닿기도 전에.

 “그럼 명령이야.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 걸, 허락해줘.”

 쵸로마츠는 화관에 손도 못 대고 오소마츠의 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알겠습니다.”

 잔인한 감정의 시작이여, ‘사랑이라는 잔혹한 명령 파일이 쵸로마츠의 머릿속에 각인 되고 말았다.

 

 

 

# 6.

 

 마음 아픈 밤이 시작되어 외로운 새벽을 맞을 때까지. 명령으로 입력된 슬픈 사랑의 원망은 결국 하룻밤의 쾌락에 몸을 맡겼다.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알 필요는 없었다. ‘사랑이란 명령 하에 내려진 허락은 옳고 그름을 헤아릴 수 없었으니까.

 “신기하네 쵸로마츠-”

 “일일이 신기해...하지 좀... 말아 줄래요...”

 “하지마안- 이렇게 만지면 흥분하쟎-?”

 가짜임을 알면서도 진짜 같은 그것을 쓰다듬자 얕은 신음을 내뱉은 쵸로마츠가 신기하기만 했다. 오히려 더욱 갖고 놀고 싶은 기분이랄까.

 “감정이 없으면서 흥분은 하는 쵸로마츠가 놀라워~”

 이왕이면 감정까지 있으면 좋을텐데-, 오소마츠는 목구멍까지 넘어오던 말을 이내 삼키고 눈앞에 보이는 쾌락에 몸을 맡겼다. 말하지 않아도 알 테지, 생각정도는 계산 하리라 믿었다.

 “어디가 기분 좋아? 어떻게 하면 흥분이 돼?”

 “...모르...겠어요... ‘기분 좋다는 거...”

 “‘기분 좋다는 건 그냥 느끼는 거야. 이렇게 하면 좋쟎-?”

 오소마츠가 만질 때마다 또 다시 회로가 삐그덕 거리며 뒤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뒤엉킬 때마다 이상한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고, 가짜로 뛰는 심장이 튀어 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이상했다. 대체 왜 짐승들이 하는 교미를 하면서 이런 반응이 느껴지는 건지 쵸로마츠로선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소마츠...”

 “으응-?”

 “이거... 기분이 좋은 거예요...?”

 “물론.”

 “어째서 좋은 거죠...? 이건... ‘교미와 비슷한 거잖아요...”

 “달라. ‘교미는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만들기 위해 본능적으로 하는 것이고. 이건...”

 “이건...?”

 “내가 사랑하는 너와 하고 싶은 섹스거든.”

 쵸로마츠는 그 뜻을 알고 있다. 그리고 교미와 다른 점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할 말이 없었다.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계속 하고 싶은 그 이상한 마음을 인정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저 눈앞에 보이는 쾌락만을 치켜세울 뿐이었다.

 

 

 

# 7.

 

 그 전날 밤도 쾌락에 몸을 맡긴 뒤였다. 그래서 여느 날처럼 눈을 뜨면 옆에 오소마츠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날 아침은 이상하게 낯선 공간에 누워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이곳은...? 오소마츠는...?’

 익숙한 공간이니 만큼 오소마츠가 곁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이곳은 쵸로마츠가 처음 깨어난 연구소였으니까.

 “오소마츠...!”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 지는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오소마츠만을 찾으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병원으로 갔지만 이상하게 병실은 텅 비어있었다. 쵸로마츠는 급하게 안내 데스크를 찾아가 물었다.

 “오소마츠... 마츠노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나요!!!”

 “마츠노 오소마츠 환자요? , 이미 퇴원 수속 밟으셨습니다.”

 말도 없이 퇴원이라니, 쵸로마츠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받았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쵸로마츠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항상 같이 산책하던 곳부터 가본 적 없는 곳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곳을 뛰어다니며 오소마츠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쵸로마츠는 그래도 달렸다.

 “어디에...”

 숨이 차거나 체력이 닳지 않았다.

 “오소마츠...!”

 그래서 오소마츠를 부르며 쉬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쵸로마츠는 같은 곳을 여러 번 돈 후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몸을 멈추자 느낄 수 있었다. 호흡이 가파르고 심장이 몹시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머리에서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 내렸다. 쵸로마츠는 이 기괴한 현상을 바로 검색해 보았고, ‘초조함이란 것과 비슷한 증상임을 알게 되었다.

 “초조... 나는 초조한 건가...”

 자신이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검색 결과에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사사로운 초조함 따위는 발을 멈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오소마츠를 찾으러 가고자 하던 찰나.

 “호에-! 찾았다스-! 여기 있었다스!”

 “...박사님...?”

 쵸로마츠는 자신을 찾은 데카판 박사를 발견하자마자 다가가 그를 붙잡고 물었다.

 “박사님... 오소마츠가 사라졌어요...”

 “호에... 알고 있다스. 그것에 대해 말해줄 테니 우선 연구실로 가다스.”

 “...알겠습니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아다니는 것을 멈추고 박사를 따라 연구실로 돌아갔다.

 

 

 

# 8.

 

 “호에- 여기 앉다스.”

 쵸로마츠는 박사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급하게 물었다.

 “오소마츠는 어디에...”

 “호에... 그 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기를 바란다스.”

 박사는 쵸로마츠에게 이야기를 하고자 입을 열었다. 그리고 쵸로마츠는 박사가 말한 것을 쵸로마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오소마츠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완쾌할 방법이 없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야했고 매일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지내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사는 쵸로마츠를 만들어 오소마츠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오소마츠가 가기 전까지 외로웠던 기억이 없도록.

 하지만 박사는 안드로이드에게 감정까지 심어줄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박사는 안드로이드에게 대화를 하고 사랑을 주게 된다면, 안드로이드 자체에 없는 감정이 생기는가? 라는 타이틀을 붙여 실험이라는 포장을 예쁘게 한 뒤 오소마츠에게 준 것이다.

 “...저는 그저 오래 입원하는, 곧 퇴원하는 사람일 줄 알았습니다... 왜 오소마츠는 저에게 아프다는 걸 한 번도 안 알려준 건가요.”

 그렇게 아파했는데 왜 자신의 앞에선 웃어 보였는지 쵸로마츠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안 남은 삶을 왜 숨기고 있던 것일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을 거다스.”

 “...저에겐 걱정이란 감정이 없는걸요...”

 “인간은 정이 생기면 무생물의 마음까지 헤아리기도 한다스. 그래서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스.”

 “......”

 “그래도 아픔을 숨길 수는 없었을 거다스.”

 그 말에 쵸로마츠는 언젠가 쾌락을 즐기던 밤에 오소마츠가 쿨럭 거리며 피를 토한 일이 생각났었다. 그 때 오소마츠는 그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코피 대신 입에서 피가 나온 거라며 웃어보였다. 그래도 쵸로마츠가 계속 안절부절 못하자 오히려 괜찮아, 기분 좋아. 계속해줘.’라고 말하며 쵸로마츠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미세한 움직임을 이미 간파했었고, 쾌락이 끝난 후에야 겨우 의사를 불러 안정시켰었다.

 “...아픈 건 알았지만... 심각한 줄은 몰랐습니다...”

 “안드로이드는 본래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만 믿기 때문이다스. 몸의 심각성은 알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읽지 못하지 않다스?”

 “...그렀네요... 내가 알아도 오소마츠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었고 또 나는 그걸 믿었으니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마음까지 읽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져 밀려오는 기분에 대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생각에 생각이 쌓여 울분에 괴로워하고 있다가 문득 스쳐지나간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오소마츠는... 어디에 있습니까...?”

 

 

 

 

# 9.

 

 그날 밤은 그믐달이 뜬 조용한 밤이었다. 깜깜하고 고독하여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올 듯한, 폭풍전야 같은 아주 아주 조용한 새벽 밤이었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누워있던 쵸로마츠를 보고는 머리를 스윽- 쓸어주었다. 오늘도 즐거운 밤이었어, 아마 절대 잊지 못할 테야,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며시 병실 밖을 나가려 했다.

 “...오소마츠...?”

 물론 오소마츠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쵸로마츠가 문제였지만.

 “, 산책. 쵸로마츠는 날 안 보고 계속 자 줘.”

 명령하나면 모든 건 자연스레 돌아간다.

 오소마츠는 그 길로 데카판 박사를 만나러 갔다.

 “호에, 무슨 일로 이 새벽에 찾아왔다스?”

 “난 누구보다 내 병을 잘 아는 사람이야. 그래서 왔어.”

 “호에... 약이라면 처방해 줄 수 있다스...”

 “아니, 약은 지긋지긋해. 박사도 내 병을 완쾌할 수 있는 약은 못 만들었잖아.”

 “호에... 그래도-...”

 “됐고, 내 부탁이나 들어줘.”

 “무슨 부탁이다스?”

 “쵸로마츠에게 내 뇌를 이식해줘.”

 “호에-?? 어째서다스??”

 “난 정말로 쵸로마츠를 사랑해. 그런데 쵸로마츠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거쟎-? 로봇이라 감정이 없단 말이야. 나만 사랑하고 쵸로마츠는 그런 날 받아 주기만 하는 거잖아. 그런 사랑은 어딘가 꽉 차지 않고 텅 빈 거 같아 불안해. 적어도 나를 좋아하는, 나를 사랑하는 감정을 스스로가 느꼈으면 좋겠어. 그래서 생각했어. 쵸로마츠를 사랑하는 감정이 가득 담긴 내 뇌를 내가 죽은 후에 쵸로마츠에게로 이식하면, 쵸로마츠에게도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호에... 하지만 인간의 뇌를 안드로이드에게로 이식하는 건 꽤나 어렵고 힘든...”

 “그래서 해줄 거야 말거야.”

 “호에...”

 “...부탁은 거절이 가능하겠지. 그렇다면 거절 못할 부탁으로 바꾸면 되쟎-?”

 “호에...?”

 “유언이야. 박사, 내가 내 병을 직감해서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이야.”

 유언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알았다스. 최선을 다해보겠다스.”

 “그래, 고마워. 박사라면 분명 할 수 있어.”

 박사는 쵸로마츠를 데려와 주요 회로선을 끊고 긴 잠을 자게 두었다. 그렇게 쵸로마츠는 얼마나 잠을 잤는가. 일주일? 보름? 어쩌면 한 달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 긴 시간을 일일이 셀 시간은 없었다. 박사는 그저 마지막 부탁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뇌를 안드로이드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성공했다.

 자신의 뇌를 이식해준 인간은 숨을 거두었고 대신 인간의 뇌를 가진 안드로이드가 드디어 눈을 떴다.

 

 

 

# 10.

 

 “아아... 그렇다면...”

 모든 진실을 들은 쵸로마츠는 고개를 떨구었다.

 “오소마츠는 지금 없...”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몰려오는 감정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호에... 대신 추억은 감정과 함께 남아 있을 거다스...”

 박사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그것이 다였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감정... 오소마츠가 그렇게 원하던 감정을 느낄 수 있나요...?”

 “...이식은 성공했다스. 이제 느끼는 것은 본인 몫이다스.”

 “아아...”

 쵸로마츠는 천천히 생각했다. 눈을 뜨고 난 후부터 자신이 겪었던 모든 것을. 억장이 무너지고 초조하고 다급하고 괴로웠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이 기분들은 마치 회로가 삐그덕 거린 느낌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차고 올라와 온 몸을 헤집어 놓았다. 쵸로마츠의 느낌들은 소용돌이처럼 돌고 돌아 오소마츠와의 추억들을 낱낱이 기억나게 했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느꼈던 감정들이 파도처럼 쵸로마츠에게 휩쓸려 왔다.

 “아아...”

 당혹감. 설렘. 기쁨. 행복. 좋아함. 체념. 아픔. 괴로움. 오소마츠가 느꼈던 모든 감정을 직접 겪고 나자 쵸로마츠는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와 볼 밑으로 투둑- 떨어지고 말았다.

 “아아... ... 아악... 으아아아아...!!!!”

 그것은 오소마츠가 원하던 사랑과, 오소마츠가 없는 슬픔의 감정이었다.

[진우] 첫사랑

 

 

 

 

 

 중간고사가 저번 주로 끝이 났다. 끝났다고 너부러지는 것들이 한심하여 혀를 차고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자 책을 폈다. 시험이 끝났다고 흐트러지면 안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큰 짐을 짊은 우리에게 선조들은 공부의 끝은 없다고 하는데 어찌 연필 들기를 마다하는가.

 ...어쩌면 마지막으로 본 시험이 고전문학이라 나도 머리가 어떻게 된 걸지도 모른다. 조금의 휴식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안 쉬고 싶어도 쉬게 될 것을 굳이 난 왜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웃음이 흘러나와 아무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렸다.

 아, 진우 보고 싶다.

 

 

 

* * *

 

 

 

 수업 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칠판에 무언가를 적으시는데, ...? ‘자습’?

 “오늘 선생님이 회의일로 바쁘니까 이 시간만 자습 좀 할게. 어차피 시험 끝났으니까 한 번 정도는 쉬게 해주려고 했고. 영화보고 싶으면 영화보고 자고 싶으면 자고 공부하고 싶으면 해도 돼. 반장은 애들 조용히 시키고.”

 저 말을 끝으로 선생님은 교실을 유유히 떠나셨다.

 ‘자습’. 자습이라니. 차라리 수업을 하면 좋았을 것을 자습이란 이름으로 얼버무리게 되었다. 배운 게 있어야 복습이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으므로 예습을 하고자 다시 책을 폈다. 지금 잠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영화는 별로 보기 싫다. 내 눈앞에 있는 글자에 집중하며, 학습지도 펴서 문제도 풀어보았다.

 응, 살맛나네. 누구는 미쳤다한들 내가 살 거 같은데 그 누가 트집 잡고 늘어지는가. , 한 명 정도 있으려나.

 어쨌든 이 시간만 끝나면 점심시간이 온다. 오늘 점심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종이 치자마자 아마 볼 수 있는 얼굴에 머릿속에선 벌써 함박웃음이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자습시간에 좋은 점이 있다면 선생님이 안 계실시 종이 치기 전에 조금 일찍 반에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5분 정도는 눈 감아 주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됐달까. 그전에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나쁘지 않네.’로 생각이 바뀌었다.

 저번 주까지는 시험이라서 내 부탁으로 같이 점심 먹는 것이 금지-점심시간에도 공부해야 하는 게 이유였다.-였었다. 시험 끝나고 오늘은 꼭 점심 같이 먹자고 매달렸던 그였기에, 나도 얼굴 마주보며 밥 먹고 싶은 마음이 태산만큼이나 부풀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종이 치고 나서 지나는 시간조차도 아까워 미칠 거 같았다.

 종치기 1분 전까지는 가만히 있는 편이다. 그래도 곧 종칠 거 같을 때 쯤 일어나 살며시 교실을 나갔다.

 몇 걸음만, 몇 초만. 그렇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울리자마자 반에서 뛰쳐나온 너.

 “이쪽인데.”

 급식실과 우리 반은 완전 다른 방향에 있어서 그는 역시나 반대 반향으로 가려고 했었다. 내가 불러 세우지 않았으면 달려가고도 남았을 것을.

 “신난 얼굴이네.”

 “, 조금?”

 “왜 신났는데?”

 “.. 아까 첫사랑, 아니. 아까 수학시간에 - 첫사랑 얘기더라.”

 

 너를 만나면 꺼낼 첫말을 뭐로 해야 할지 몰라 평상시보다 더 신나 보이는 너의 표정을 주제로 잡았다. 당연히 너무 오랜만에 밥 먹는 게 너무 좋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주제 선정을 잘못한 듯하다.

 첫사랑. 첫사랑이라...

 “...누구였는데?”

 “?”

 “누구였냐고.”

 “누구긴, 수학선생님이지. 저기 계시네.”

 아아, 그래 그랬구나.

 둘이 눈을 마주치고 뭐라 뭐라 대화하는데 그 무엇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지칭하지 않은 듯.

 이미 나도 다 알고 있는 듯.

 

 “ - 또 우리 둘끼리 볼 것 같지만.”

 대화가 끝난 거 같다.

 “정우야, 가자.”

 네가 부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

 기분이 나빠졌다. 왜 기분이 나빠졌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잘 모르고 있다고. 상상이 내 마음을 저울질 하고 있다.

 “...”

 “나 선도부 회의 있어, 너 혼자 먹어.”

 있지도 않은 회의를 변명으로 꾸며대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얼굴 보면서 웃으며 같이 밥 먹는 거,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이 먼저 행동했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분명히 붙잡힐 것이라는 것을.

 “정우야, 회의 공지 안 했잖아. 방송으로 너네 부르지도 않았고. 그리고 오늘은 처리할 일 없..”

 “회의 있다고.”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있지도 않은 회의가 열리는 곳으로 사라졌다.

 

 

 

* * *

 

 

 

 점심은 매점에서 사먹는 걸로 하였다. 회의 있다고 거짓말까지 쳤는데 급식실에서 마주치면 큰일 나니까, 동선이 겹치지 않은 선에서.

 생각에 잠겼다. 첫사랑이야기를 내게 한 걸까. 언제부터 첫사랑이었을까. 고등학교 들어와서 부터? 첫사랑, 왜 첫사랑이라고 지칭한 것일까.

 “신경 쓰이게 진짜...”

 그럼 첫사랑은 남겨두고 나보고 좋아한다고 저러는 거야? 좋아만 하니까 좋아한다고 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파편이 되어 머리를 긁어 어지럽히는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그러질 못하겠다. 이제 어떻게 마주보지... 어쩌면 당분간은 만나지 말던가... 아니면 정리를 하던가...

 머리가 혼란스럽다.

 

 당연한 거였을까, 그 날 점심을 먹은 후로 학교가 끝날 때까지 마주치지 않았다. 문자도 전화도. 그 무엇도.

 그냥 그렇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였다. 어딘가 허전한 등교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침 조회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은 기분전환을 해볼 겸 자리를 바꿀 거야.”

 선생님의 한 마디에 교실은 떠들썩해졌다. 기분전환 겸 자리바꾸기라. 별 의미 없는 거 같았다. 자리가 거기서 거기지...

 거기서 거기인거 취소. 넷째 줄은 칠판이 좀 안 보이네.

 어쨌건, 자리를 바꾸고 나서 지금은 점심시간 전 교시였다. 오늘 점심은 또 어떡하지. 매점에서 사먹을까. 종 치기 30분정도 남았네. 또 회의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지, 오기 전에 안 보이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되지...

 

 아마 앞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도망갈 용기가 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니?”

 활짝 열린 문에 서있는.

 “물리 선생님이 연정우 학생 찾고 계세요.”

 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물리 선생님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저 말은 분명히...

 “선생님, 저는...”

 “, 저한테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펼쳐보였다. 당당하면 오히려 의심하기 어려운 사람의 심리란, 당황스러움에 가까울지도.

 “...그래, 정우야 가봐라.”

 “....”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네가 있는 문 까지 걸어갔다. 나는 보이지 않을 불편함은 가득 담은 채로.

 

 

 

* * *

 

 

 

 교실에서 나온 뒤, 우리 둘 사이에는 그저 침묵만 흘렀다. 당연히 물리 선생님이 날 불렀다는 건 거짓말이었는지, 나는 너를 따라 복도 끝에 있는 계단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계속 침묵만을 지켰다. 무슨 말을 꺼내야하는지 몰랐고, 어떤 말이 내게 올지 몰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우야.”

 “...”

 계단에 도착해서야 들리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또 답이 없었다. 나는 너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이 상황은 지금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너 지금 장난해?”

 결국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한 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장난일리 없겠지. 그런데 장난 보다 더한 상황인 것을. 거짓말까지 치며. 너는 나를 이곳에.

 “이게 뭐하는 건데.”

 정말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나는 너에게 물었다.

 “너가 날 피하잖아.”

 “...”

 너의 말에 나는 정곡이 찔렸다. 피하려던 거 사실이니까. 네 눈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서 그런가. 더 감성에 젖어 들기 전에 네가 말을 꺼냈다.

 “정우야, 너가 날 자꾸 피하잖아. 이러면 너가 안 좋아하는 거 아는데 너가 자꾸 날 피하는 거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어. 미안해,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

 잘못한 거...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지? 너는 그저 네 생각을 말한 거고. 그거 때문에 피하려고 했던 건 나고. 그래서 오히려 잘못하고 있는 건 난데?

 “진짜 미안해. 너무 미안한데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 피하지 말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

 “너 잘못한 거 없어.”

 “...?”

 “너 잘못한 거 없다고.”

 “정우야, 그게 무슨...”

 “내가 혼자 너무 짜증이 나서 그랬어.”

 “?”

 아 그래. 나 짜증났구나. 그랬구나.

 이제 나도 몰라. 생각나는 대로 내뱉을 테야.

 “너가 수학 선생님 얘기를 하는데 내가 너무 짜증이 났다고, 그 얘기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둘이 희희덕 거려서 더 화가 났다고. 내가 왜 짜증나게 너 첫사랑 얘기에.. 이래야 하냐고...”

 “아니, 여기서 수학 선생님 얘기가 왜...”

 “너 진짜 장난해? 왜 자꾸 말 꺼내게 해, 너가 그 쌤이 첫사랑이라며. 너가 영화 얘기하길래 내가 첫사랑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그 선생님이라며!”

 

 아, 또 그 때 일 기억나 버렸어.

 나 혼자 자폭해버리고 또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마, 그 다음에 네가 다시 날 부르지 않았다면, 내가 다시 너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을 고하는 말을 했었을 지도 모른다.

 

 “정우야, 있잖아..”

 “...”

 “수학 선생님은 내 첫사랑이 아니라 그날 그 영화를 보여줬던 분이야.”

 “...?”

 “너가 누구냐고 물었었잖아, 나는 너가 영화 보여준 사람 누구냐고 묻는 줄 알았어. 근데 우리 정우가... 오해를 한 거 같네?”

 “...”

 

 오해? 내가 오해를 한 거라고...?

 나 혼자 별의별 생각을 하며 나 혼자 마음 접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 오해였다고? 아 잠깐, 잠깐만...

 “정우,”

 “말 하지 마, 너 조용히 해...”

 급격하게 밀려오는 오만가지 감정 때문에 천천히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갈 곳 없는 걸 알면서도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할 수만 있다면 달려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 결국 뒤에 있던 벽에 등이 닿았다.

 아 제기랄. 얼굴 못 보여줘. 죽어도.

 

 “정우야, 왜 등을 돌려."”

 “...오지 마.”

 “싫어, 정우야.”

 “오지 말라고...”

 

 제길. 오지 말라고 해도 뒤에서 들려오는 저벅거리는 소리가 내 앞에서 멈추었다. 오지 말라 해도 안 올 거라는 것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차라리 죽고 싶은데. 나 혼자 쪽팔리게 생각하던 거 전부 감싸 안고 여기서 자살하고 싶은데. 여긴 왜 창문이 없는 거야... 혀라도 깨물어야 하나...

 나를 보고 싶은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근데 난 보여주기 싫거든. 나는 있는 힘껏 벽에 붙었다. 마치 벽에 일부가 되고 싶기라도 하는 것처럼 달라붙었다.

 그런데 손길대신 목에 닿은 낯선 간지러움에 놀라 힘이 풀어져버렸다. 내가 풀어지자마자 놓치지 않겠다는 손의 느낌이 날 잡아챘다. 그러자 보이는 그의 얼굴.

 그리고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

 “정우야.”

 “...”

 

 내가 대답이 없자 너는 다른 물음대신 내 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다가 두 손가락으로 내 턱을 올려 시선을 마주치게끔 한 거 같지만 나는 너를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잘한 거 하나 없는데 무슨 배짱으로 어떻게 너를 바라보는가.

 “우리 정우가 혼자 오해를 했네. 그래놓고 나를 피하면 어떡해, ? 선도부 회의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얼굴이 더 가까워지자 피하던 시야 안에 네가 들어와 더 이상 다른 곳도 못 보게 되었다. 이마가 맞닿아 앞머리의 느낌이 왔다. 코끝이 닿았다. 뭐가 좋은지 계속 웃고 있는 너의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

 “...하지만 너가,”

 “쉬이...”

 뭔 말을 하려고 해도 네가 먼저 내 입을 너의 검지로 막아버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부끄러워 죽겠는데, 그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 정우야.. 미안해, 안 미안해?”

 내게서 대답을 듣고 싶은지 잠깐의 여유를 준 그였기에 나는 짧게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미안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마음은 없었다. 내가 오해를 했다는 걸 알고 나자 나도 내 잘못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 잘못을 인정하자 그의 온기가 아랫입술에 맺혔다. 그 감각은 언제나 눈이 자연스레 감기면서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다. 언제나처럼 사고가 정지되어 그저 그가 당기는 대로 움직여버린다. 따뜻함과 상냥함에 지배당하면 숨도 쉴 수가 없다. 뒷머리가 감싸져서 그대로 또 그대로.

 정말 마법 같은 그의 입맞춤은, 키스는. 내게 마약과 같은 달콤함이었다.

 

 “정우, 하아.. 정우야..”

 네가 나를 부른다. 나는 눈을 떠 너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제발 말해줘, 정우야.”

 내가 멋대로 오해하고 만 것인걸, 내 잘못에 네가 더 매달리는 이유를, 알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해, 정우야. 좋아하는 만큼 걱정이 됐어. 그러니까 제발 앞으로는 말로 해주라. 제발 나 피하지마...”

 나는 너의 말만 멍하니 듣고 있다가 너의 간절함에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의 간절함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지,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말할지를 몰라 그저 바라보기만.

 “걱정 시켰으니까 내 소원 들어줘야 돼.”

 “...어떤...”

 “종 칠 때까지 나랑 있어.”

 어차피 두고 갈 생각도 없었어.

 

 잠시 떨어졌던 입술은 5분도 채우지 못한 채 다시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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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오님.... 저는 이제 죽으면 될거 같습니다...키히힣.... 연성이 너무 늦었네요.... 저번주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주에 또 개강이라...((사망))

감히 뭐라 할말이 없...없....(((((자살))))

글도 참....(((((죽자)))))))

쓸거 참 많은데 하하하하하하ㅏ하하하하하ㅏ하하핳하 늦어서 죄..죄...((죽음으로 사죄하자))

쿨쩍....앤오님제가마니조아해요....///하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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