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단편] 그것의 이름은 '운명'

 

 

※ 충청도 사람은 충청도 사투리밖에 몰라서 재현이 말투 어색주의

 

 

 그날은 평범하게 길을 거니던 날이었다. 수능전에는 이런 오후시간의 산책같은거 꿈도 못꿨는데 수능이 끝나니 이런 자유시간은 더이상 사치가 아니게 되었다. 마이 프리덤이랄까!
 "헉...!"
 그렇게 길을 걷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나의 운명을...

 뚜르르르르르르르-
 딸깍.
 "와 전화했나 가스나야."
 "야야 리재현이 내 말 좀 들어봐."
 "뭔디."
 "내가 아까 겁나 잘생긴 남자를 봤어...!"
 "...니 남자본거 자랑할라고 내한테 전화했나."
 "아냐, 옆에 여자도 있어. 너도 보면 반할걸??"
 "나가 와 반하는데."
 "겁나 예쁘니까."
 "이쁜지 안 이쁜지를 와 니가 판단하는데."
 "그거야... 그 남자랑 여자가 나한테 뭘 줬거든."
 "뭐 받았는데."
 "내가 사진으로 보내줄게. 한 번 봐봐."
 뚝.
 [사진 전송중]
 [전송완료]
 따르르르르르르릉-
 딸깍.
 "니 어디냐. 퍼뜩 불어라."

 운명을 만난 곳으로 그를 불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임청아...!!!"
 "넘어지겠다 천천히 좀 와."
 그래도 기어코 달려오는 그는 내 앞에 서서 헉헉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다 고개를 휙휙 돌리다가 손가락으로 누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여자가... 그 겁나 억수로 이쁜 여자가..."
 "그래 맞아. 가서 '그거' 받아와."
 "알았다... 내 받아 와주지."
 숨을 돌린 그는 내가 말한 여자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자신도 하나 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그것을 받아왔다.
 "겁나 이쁘더라..."
 "그치? 나 순간 운명 만난 줄 알았다니까."
 그는 그녀가 준 그걸 손에 꼭 쥐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갈끄가."
 "언제가 좋겠어?"
 "내는 지금 당장도 상관없는디..."
 "음...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야."
 "그럼 가자. 돈은 임청아가 내주겄지."
 "...내가 내는거야?!"
 내가 놀라서 바라보자 그가 아주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누님, 내가 이쁜짓 많이 할게요."
 그가 써버린 어색한 표준어가 너무 웃겨서 순간 웃을 뻔했다. 하지만 간신히 웃음을 참고 정색을 깔고 바라봤는데 오히려 꽃받침하고 날 바라보는게 아니었나. 표정은 비장한데 말투는 웃기고 거기에 꽃받침까지 한걸 보니 어떻게 안 웃을 수가 있었을까. 결국 나는 그의 '이쁜짓'에 지고 말았다.
 "알았다 알았어. 리재현이 예뻐예뻐. 이 누나가 졌다. 가자."

 아 맞다, 우리가 받은 운명이 뭐냐면, 바로.
 [초콜릿 뷔페카페 신규 OPNE. 50%세일 쿠폰]
 이런걸 받았는데 어떻게 운명이 아닐 수가 있을까. 이런걸 준 사람이 어떻게 못 생길 수가 있을까.
 결국 나와 그는 또 마음이 맞은 것이다.


 *   *   *


 "바로... 여기다."
 신규 오픈 초콜릿 뷔페카페에 도착했다. 벌써 여기는 우리의 성지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지, 이미 성지지. 문 앞에서 세번 돌고 절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가 날 끌고 들어가 버려서 할 틈이 없었다.
 "야야 봐라. 한시간 이용료 만원인디 쿠폰갖고 있는 사람은 오천원이라칸다."
 이벤트가 적혀있는 칠판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너무 반짝거렸다. 나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한시간으로 족하는가 리재현."
 "니는 어떤데."
 "내 지갑사정을 보아하니 세종대왕님이 두분 계신다. 그럼 어째야할까."
 "두시간 동안 이 썩도록 먹겠습니다."
 "옳지."
 내가 끄덕이자 그는 초코 디저트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자리부터 맡고 난 뒤에 진열되있는 초코 앞으로 갔다.

 와... 진짜 대박. 초코로 안 되어있는게 없었다. 초코케이크, 초코과자, 초코아이스크림, 초코볼, 초코빵, 초코푸딩... 설마 음료수로 초코탄산같은 것도 있을까 조금 두려워졌...
 "임청아 이거 좀 봐라!!!"
 "ㅇ...왜...!!! 초코탄산이 진짜 있는거야...???"
 "초코탄산? 그게 뭔디. 어쨌든 이봐라. 초코분수다!"
 초코분수.
 그 네 글자를 듣자마자 난 날아가다시피 다가가 그 실체를 확인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초코가 위에서 뿜어져 내려오며 얇은 막이 형성되는 이 분수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분수옆에 딸기와 마쉬멜로, 그걸 꽂아먹을 수 있는 꼬치가 있었다.
 "초코딸기다!"
 딸기 세개를 꽂고 초코막 사이로 돌돌 돌리니 갈빛이 딸기의 홍붉은 색 위로 사르르 흘러내렸다.
 "세상에..."
 언빌리버블. 정말. 이것은. 너무도. 환상적이잖아.
 "와 겁나 대박이다..."
 "진짜 최고아이가..."
 그렇게 우리는 초코분수에 한참 눈을 못 떼었다고 한다...

 "야야 큰일났다...! 우리 한시간 밖에 안 남았다 아이가!"
 "헐...!"
 초코분수만 바라보는데 한시간을 쓰고 말았다. 그런데 보고 보고 또 봐도 안 질리는 걸 어떡해...
 "최대한 많이 담아. 뭘 담든 전부 초코니까."
 "라져."
 우리는 10분도 안 돼서 접시에 한 가득 담고는 자리에 앉았다.
 "억수로 여는 천국아이가."
 "천국뿐이겠냐. 여기가 바로 지상의 별이지."
 "맞다 맞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초코 뷔페인 만큼 퀄리티도 대단했다. 만화나 광고에서 나오는 디저트만큼이나 예뻤고, 맛도 매우 좋았다. 초코케이크는 적당히 달았고, 초코볼은 진하게 달았고, 초코과자들은 고소하게 달았고, 초코아이스크림은 차갑게 달았다. 입 안에서 초코의 단맛이 부드럽게 녹아내려 아름다운 무도회를 자아내고 우아한 파티가 시작되는 환상적인 맛... 이건... 한 마디로...
 "녹아내릴 거 같은 맛이야..."
 "네말이 맞다... 억수로 환상적이네..."
 이 천국에서 뼈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채 안 남았었다.
 "뭐했다고 30분밖에 안 남았다카나."
 "디저트 먹느라고 그렇지... 아, 뭐 마실래? 저기 보니까 핫초코랑 아이스초코랑 커피랑 우유 등등 있던데."
 "그럼 내는 우유."
 "초코 우유도 있을텐데 우유면 괜찮겠어?"
 "초코 우유도 좋은데, 쿠키는 우유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제."
 "아, 인정."
 휘핑크림도 마음대로 올릴 수 있어서 잔뜩 올리고는 우유와 핫초코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가져와 줘서 고맙다. 자 봐라, 과자 맛있게 먹는 법."
 "오, 어떻게?"
 "과자를 비틀어 초코를 맛보고 우유에 퐁당."
 "뭐야 광고 찍어?"
 "잘 생긴만큼 제의도 많이 들어왔었는데 내 학교생활이 너무 바빠 다 거절했었다."
 "으응, 네 접시 위에 디저트 내가 다 먹어버리기 전에 헛소리 그만하고 먹기나 해."
 "네 누님."
 그렇게 꿈만같은 30분이 지나고 뱃속은 초코로 달게 물들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 나와 그는 우리의 성지에 아쉬움만을 잔뜩 남긴 채 그곳에 세종대왕 두 분을 고이 모셔드린 다음에야 문 밖으로 간신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   *   *


 "억수로 최고였다."
 "맞아. 다음에 또 올까?"
 "오면 내야 좋지. 그때도 임청아가 내는 기라믄."
 "야 리재현이, 너도 한번쯤 쏘지 그래? 내가 지금까지 쓴 돈이 얼마야!"
 "니 돈 많다아이가."
 "바닥날 지경입니다."
 "그러믄 더치페이."
 "...좋아. 더치페이 콜."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내민 그의 손을 보다가 마지못해 피식 웃으며 손을 마주쳐 줬다.
 "역시 임청아가 최고다."
 "그것도 맞는 말, 이지만 최고는 역시 초코지."
 "내도 최고라 말해줄줄 알았는디 니말 반박할게 없네. 그래 초코가 최고다."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인정인정~"
 즐겁고 달콤한 하루가 지나간다. 내일도 이런 아름다운 운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길 바라본다.

[할로윈 자캐 커플] Trick Or Treat.

 

 

 

 

 1031세상이 흑빛으로 물들어 고요할 때 한 집 두 집. 그렇게 점 같은 수많은 집들이 잭 오 랜턴으로 불을 밝히자 어두운 밤거리는 그세 다시 환하게 물들었다.

 1031일은 본래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아내는 날이지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날로, 그 의미가 점점 축제처럼 되어 지금의 할로윈을 만들게 되었다. 그들은 할로윈에 괴기하게 분장을 하며 하나의 놀이로 자리를 매웠지만, 정말 그들의 놀이에 불과한 것일까?

 

 “어쩌면, 그 기괴한 분장 속에, 정말 나 같은 기괴한 유령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깨어난 시간 치고는 굉장히 어둡고 시끄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황할 내가 아니었다. 이 날이 어떤 날인지, 무엇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잖아? 때문에 뼈가 도드라지게 보이는 내 의상착의가 이상해 보일지라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밤에 그 유명한 ‘Trick or Treat’을 안 외치면 나의 정체가 들킬지도 모르는 흉흉한 때였기에, 본능에 가깝게 그저 근처의 아무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 머릿속 어딘가 둥둥 떠다니는 기억이 시키는 대로 그 아무 집을 손으로 크게 두드렸다. 그러자 나오는 인간은 보통 나의 눈높이보다 더 내려다 봐야 해야 했던 그저 아주 작은 남자 인간.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솔직히 랜덤으로 뽑은 집에서 작은 인간이 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그래도 당황한 척 안 하며 작은 인간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Uh... Trick or Treat-?”

 내 무릎 정도밖에 안 오는 이 작은 인간이 내 말을 알아들을지 걱정했는데 역시나, 못 알아들었다. 문을 두드렸을 때 작은인간이 나왔다는 것은 집에 부모가 없는 상황일 확률이 높다는 뜻. 게다가 이렇게 작은 인간이 나왔다는 것은 이 작은 인간은 외동이거나 이 보다 더 어린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된다. 원인이 어찌 됐건, 결론 적으로 이 작은 인간의 부모는 부재중. 게다가 이 시간 까지 안 자고 있거나 문을 두드렸을 때 서슴없이 문을 열었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미루어 짐작할 때 아마 부재중인 작은 인간의 부모일 수 있다. , 내가 문 두드렸을 때 작은 인간의 부모가 온 줄 알고 문을 열어줬지만 그의 부모가 아니고 좀 흉측하게 생긴 녀석이 이상한 말을 지껄이니, 작은 인간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잠깐...”

 물론 내가 잠깐이라고 말한다고 울음을 그칠 작은 인간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 처음이라 당황할 수밖에. 내 모자에 눈알 녀석도 처음 보는 상황에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눈만 굴리고 있었다. 작은 인간 달래는 일 따위 기억 속에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를 뒤진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물건이 하나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저기, 이거 줄 테니까 제발 그만...”

 내가 꺼낸 건 언제 샀는지 받았는지도 모를 할로윈 기념 주황색 롤-캔디였다. 작년에 샀는지 아까 산건지도 모를 것은 적어도 상한 건 아니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작은 인간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처음엔 롤-캔디의 효능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막막해졌었는데 다행히도 작은 인간은 조금씩 이것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조금씩 멈추고 몸이 경련이라도 온 듯 훌쩍이며 차차 진정되어갈 때 작은 인간은 내가 준 롤-캔디를 두 손으로 꼭 쥐어 받았다.

 “...맛있게 먹어, 작은 인간.”

 롤-캔디의 효능은 뛰어났다. 시끄럽게 울어 재끼던 작은 인간을 이렇게나 조용히 시키다니, 효능이야 다 말하고도 남은거지.

 “그나저나 내가 받으러 온 건데. 오히려 주는 상황이 돼버렸네...”

 조금 억울한 상황이 되긴 했지만 나는 천천히 롤-캔디를 핥는 작은 인간을 보며 대답했다.

 “내년에는 정말 사탕 받으러 올 테니까 제대로 준비해 두라고.”

 내 손이 작은 인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Happy Halloween.”

 

 

 잠에서 깨어보니 1년이 지나있었다. 물론 1년 동안 잤다는 느낌은 없고, 하루 자고 일어나니 1년이 되버린 느낌. 또 자면 그렇게 오래 잘 것을 알기에 1년에 한 번씩 눈 뜬 김에 기지개를 펴고 바깥세상을 보기로 했다. 내가 자기 전의 그 시간대와 똑같을 걸 알면서도 세상은 참 흥미롭고도 요란한 밤을 즐기고 있었다.

 난 어김없이 그 아무 집을 찾아갔다. 이번엔 꼭 사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작은 인간이 문을 열어 날 맞이했다.

 “Hello? Trick or Treat-?”

 싱긋 웃으며 그렇게 묻자 작은 인간은 그저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오늘도 우는 걸까 싶었는데 그저 날 바라만 보고 있는 작은 인간. 얼마나 눈 맞히기만 하던 침묵이 지났을까.

 “그거 무슨 말이야?”

 “...? 뭐가?”

 “그거 말야. ‘Trick or Treat’.”

 “... 뜻을 모르는 거야? 뭐 그냥... 사탕 안주면 장난칠 거야, 란 뜻인데.”

 “, 그럼 사탕 줘야해?”

 “결론은 그런 거지.”

 “... 근데 지금은 사탕이 없어. 다음에 오면 줄게.”

 “? 다음까지 기다려야 해?”

 “.”

 당당한 대답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1년 이란 하룻밤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듯 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사탕 대신 다른 거 줄래?”

 “다른 거? ...어떤 거...?”

 “알고 싶은 게 있으니 그걸 주면 돼.”

 “...뭔데...?”

 “바로, 네 이름.”

 작은 인간은 조금 망설이는 듯이 보였다. 뭐 그런 거 아닐까? 엄마가 일러주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 알려주는 거 아니라던가.

 “...일렌트.”

 결국 작은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말해줬다. 이름을 안다고 영혼을 빼앗아간다거나 그런 일은 없으니 나는 작게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 멋진 이름이네.”

 “너는...?”

 “? 내 이름?”

 작인 인간 일렌트는 내 질문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으니 이제 내 이름도 말해라 이 소리인가? , 내 이름. 내 이름...

 “잭이야.”

 “?”

 “. 사실 양옆으로 더 길긴 한데, 어떻게 불리든 상관은 없으니까.”

 솔직히 이름이란 것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그런 하찮음조차도 의미를 부여하면 가치가 있어진다는 거... 누군가 말해줬던 거 같긴 한데, 기억이 안 나는 명언 같은 문구에 갑자기 온몸이 감정으로 싸여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감정...? 내게 감정이란 게 있던가...?

 “멋진 이름이네에-”

 작은 인간 일렌트 의 말 한마디에 나는 느껴본 적이 너무 오래돼서 생각도 안 날 감정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그리고 표현한다.

 “그래? 고마워.”

 내 몸속에서 무려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 또 와. 그 땐 사탕 줄 테니까-”

 해맑게 웃는-해 맑은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 였더라-작은 아이의 미소가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미소가 꿈에도 나와 나의 하룻밤 같은 1년을 가득 채워줄 것만 같았다.

 “.... 또 올게. Happy Halloween.”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짙게 느껴졌다. 이 느낌, 만일 틀리지 않는 다면 분명 비이다. 비가 내린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셔라. 유령도 맑게 게인 하늘을 좋아한단 말이다-나 한정으로 좋아하는 거일지는 모르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소 눈 따가울 정도로 밝았던 길거리가 조금은 횅해 보이니 역시 조금 더 으스스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비를 싫어한다고 이런 분위기까지 싫어하지는 않았다. 으스스한 거리, 나 같은 유령에게 훠얼씬 잘 어울리지 않는가. 어차피 젖지도 않을 몸이니 이 으스스함은 내게 상관없었다.

 어쨌든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나는 오늘도 아무 집... 아니, 일렌트의 집을 찾아갔다. 물론 맞이하는 이는.

 “...?”

 어젯밤-물론 1년 전이다-에 본 것보다 조금 더 컸다. 정말 조금.

 “Hello? Trick or Treat-?”

 “...안 올 줄 알았는데...”

 “...?”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맨날 사탕 준비했는데 오지 않고...”

 “......”

 아아, 일렌트는 내가 1년이란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날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제길. 아쉽게도 그 기다림은 공감이 안 됐다. 난 공감이 안 될 정도로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본 적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잊혀 졌다고 믿는 감정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흐음, 우선 내 잘못인 거 같으니, 미안 사과. 하지만 너는 알아둬야 할 것이 있어. 나는 특별한 몸이라서 할로윈 데이만 움직일 수 있거든.”

 “...? 무슨 말이야?”

 “, 1년에 한 번씩만 널 보러 올 수 있다는 말씀.”

 “...어째서...?”

 “신님이 그렇게 하래. 아무래도 날 싫어하나봐-”

 일렌트는 그 작은 고개를 푹 숙여 자신이 기분 나쁘다는 것을 표현했다. 마음 속 숨기는 감정이라면 알아차리지도 못했겠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여 지면 기분 상태정도는 파악 가능하다고. 하아-... 한 숨을 한 번 내쉬고 나는 조금은 기대했다는 목소리로 톤을 바꿨다.

 “저기, 그래서 오늘은 사탕 있어?”

 난 3번째 방문이지만, 이미 3년이 지나버렸을 이곳에서 드디어 사탕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크든 작든 받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응 있어. 전부 녹아서 끈적하지만.”

 “...? ‘끈적...?”

 해명의 기회를 주기도 전에 일렌트는 집안으로 도도도도- 달려 들어가 곧 도도도도- 하고 달려 나왔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주는 정체 불명한 일명 녹아서 끈적한사탕.

 “엄마가 오늘은 비 오니까 오는 유령 없을 거라고 사탕이나 쿠키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았어, 그래서 남은 게 그거야. 내가 잭 주려고 예전부터 갖고 있던 사탕...”

 “... 그래...”

 그래도 내 전용 사탕이었다는 거네. 나는 씩 웃고는 일렌트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그리고 다음 할로윈 때도 올게. 그 땐 너무 일찍 사탕 준비해 놓지 말고 그냥 당일 날 준비해서 줘. 그러면 나 조금 더 기쁠지도-”

 “... ! 그럴게!”

 내 말에 일렌트는 어젯밤 같은 해맑은 미소를-이름 바꿔야 한다. 해맑은 말고 달맑은 으로-내게 지어주었다. , 저 미소가 나를 부른다. 이렇게 나는 또 감정이란 소용돌이를 헤쳐야만 했다.

 “그럼, Happy Halloween.”

 “. Happy Halloween-...!”

 일렌트가 준 끈적한 사탕을 입에 넣어보았다. 달았다. 달고 맛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끈적한 그 맛은 내게 다음을 기대하게 해주는 강한 무언 가였다. 어쩌면 그 옛날 누군가가 말해준 자석 같은 이끌림, 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몇 번째 만남일지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은 만났다. 발가락까지 쓴다면 셀 수는 있을 정도로 만났다. 그렇게 우리는 많이 만났다. 그렇게 안 믿겨져도 이젠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일렌트가 문을 열어줄 수 있을 정도니 정말 많이 만난 것이다.

 “!”

 “워어- 아직 문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내가 피식 웃어 보이자 일렌트도 피시식 웃는다. 저 미소, 어젯밤에도 본 그 미소. 난 저 미소를 보려고 이 발걸음이 끊기지 않나 보다.

 “So-, Trick or Treat-?”

 이젠 내 눈높이까지 눈을 마주칠 수 있어서 고개를 굳이 숙이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날이 갈수록-정확히는 해가 갈수록-키가 커지는데 혹 나를 앞지르고 나보다 더 크게 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이 되곤 한다. 나보다 일렌트가 더 커진다면... , 앞으론 사탕 받으러 오지 못하는 건가.

 “잭 사탕, 없는데?”

 “? 어째서?”

 어제-일 년 전-까지만 해도 있던 사탕이 오늘 돼서 없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거지?

 “잭을 위해 300개의 사탕을 준비했는데, 잭이 올 때까지 하나씩 먹고 나니 다 사라졌어.”

 “내건데 왜 일렌트가 먹어.”

 “내가 먹으면 사라지는 걸 알고 안절부절 하다가 일찍 오지 않을까 하고.”

 순진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그렇구나 하고 말거 같나. 일 년에 딱 한 번만 맛볼 수 있는 단맛을 못 즐기는 것은 첫 만남과 두번째 만남으로 족하다고, 정말. 내가 어이없어서 킬킬 웃어보이자 일렌트는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 속에선 의기양양이란 반짝임이 쏟아져 내리는 듯 보였으니, 어찌할 바 모르는 눈알 녀석은 그저 눈동자만 도르륵 도르륵.

 “그래-... 그랬단 말이지. 그럼 사탕이 없으니 장난을 쳐야겠네. Trick or Treat- 이니까.”

 “무슨 장난...?”

 “글쎄. 장난의 종류야 많지.”

 그런데 장난을 쳐본지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안 난다. 솔직히 나정도 살았으면 장난이 그냥 작은 인간들이 하는 장난이 아니게 되어버리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사고는 일렌트는 더 이상 작은 인간이 아냐.’정도로 밖에 굴러가지 않는다. 이정도로 컸으니 더 이상 작은 인간이 아닌 건 맞잖아?

 “결정했어. 내 장난은 악몽이야.”

 “...악몽이라니?”

 “어떤 악몽의 장난일지는 비밀. 하지만 장난이야. 그리고 다음에는 꼭 사탕 준비해 놔야해. 알았지?”

 “......”

 일렌트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건 다음엔 사탕을 준비해 놓지 않겠다는 건가? , 그건 좀 곤란한데. 뭐 상관없나. 어차피 내 악몽의 이름은...

 “그럼, Happy Halloween.”

 난 언제나 하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서 그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기나긴 잠을 청하기 위해 꿈나라로 쫓기듯 도망쳤다. 내가 그에게 장난치는 악몽의 이름은, There’s no next meet.

 

 

 자고 일어났지만 다시 잤다. 그리고 순식간에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물론 나는 하루 더 무리해서 잔 기분이지만, 하루 더 잤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었으니 난 상관없었다. , 나만 상관없지 세상은 2년 동안 상관 많았을지도. 어쨌든 나는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보았다. 너무 오래 잤는지 몸이 뻐근하게 느껴졌었다. 물론 느낌만. 다행히 몸은 금방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일어나서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그의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엊그제 밤이랑 다를 게 없었다. 오늘도 잭 오 랜턴은 어느 집이나 환하게 비추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많고 밝은 잭 오 랜턴 집들 사이에서 그의 집을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어두웠으니까.

 “...일렌트?”

 난 그의 집을 조심히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그러자 조금은 느린 반응으로 그가 집 문을 열어 재꼈다.

 “......?”

 문을 열어 보인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초췌해 보였다. 워어, 엊그제는 이렇게 늙어 보이진 않았는데.

 “...장난...끝났어...?”

 “? - ! 안 끝났으면 안 왔을걸.”

 그렇지. 장난이 단순히 안 만나기였으니, 안 왔으면 당연히 안 끝났겠지. 그리고 이것 보다 더 오래 잠드는 건 역시 당 부족이라서 나도 힘들고. 결국 장난 아닌 장난이 초췌란 단어로 막을 내린 거라고 해야 할까...

 “다행이다...”

 그 말을 한 일렌트는 갑자기 내게 달라 들어 나를 와락 껴안았다. ...어라?

 “또 안 올까봐... 또 오지 않을까 무서웠었어... 보고 싶었다고...”

 나에게 매달려서 하는 말들은 점점 울음소리에 묻혀서 불분명하게 들려왔다. 보고 싶었다는 소리인 거 같긴 한데. , 나는 그가 나를 왜 보고 싶어 한건 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저기 일렌트...?”

 나는 그를 잠시 떼어놓고자 그의 어깨를 붙잡고 살짝 떨어뜨렸는데 이미 눈물 범벅이가 된 그의 얼굴 이였기에 나는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어라라, 이 비슷한 기분 어디서 느껴본 거 같은데... 이런, 오늘은 사탕 없는데...!

 “작년에... 안 와서... 히끅... 올해도... 안 올까봐... 흐끅... 일부러... 잭 오 랜턴... 안 켜놓고.... 흐끅...”

 “......”

 “내가... 기다렸다고... ... 하루 하루... 기다리면서... 하루에 사탕 하나씩... 흐윽... 흐끅...”

 “......”

 “그래서... 사탕 600... 흐끅... 아 아니, 730... 많으니까... 말해줘...”

 “...어떤 거.”

 “...나 볼 때마다 하는 말...”

 “Like a... ‘Trick or Treat-?’”

 “그래 그거...”

 그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잊고 있던 기억 중에서 통보하지 않은 이별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잔인함을 악몽으로 포장하고 장난이라고 속여 선물해줬다. 그래서 장난이 그 장난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던 거 같다. 즉 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잔인하게 흔들어 놓고 장난이라고 대답한 꼴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가슴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일렌트가 왜 우는지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저 이유가 그러니 결과라고만 생각할 뿐.

 그래 단지 그것뿐.

 “So, Trick or Treat-...?”

 하지만 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와서 사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왜 또 내 몸속에서는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일까.

 

 

 “22번째, Trick or Treat!”

 “그거 내 대사라고. 멋대로 하지 말란 말이야.”

 “뭐 어때-”

 그와 만난 지 스물두 번째-내가 안 왔던 날 뒤로 그는 우리의 만남을 첫 만남부터 일일이 세고 있었다.-밤이다. 스물두 번째... 아직 한 달도 채 안된 밤인데 어느 세 그는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 세월 빠르구나.

 “오늘은 잭이랑 밖에 나가고 싶어.”

 “?”

 “한 번도 안 나갔잖아. 나 매년 잭만 기다리다가 사탕 받은 적 없다고?”

 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좀 놀라웠다. 그거 나한테 욕하는 거야 칭찬하는 거야.

 “같이 나가자.”

 결국 나는 계속 같이 나가자고 말하는 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뭐 나쁠 건 없겠지. 그것이 내 대답이었다.

 밖은 언제나처럼 다를 게 없었다. 하늘은 어두운데 거리는 휘황찬란하고. 그 거리에서는 나와 닮은 유령들이 득실거리며 어슬렁 어슬렁 배회하고 있고. 참 볼거 없는 이 밤에 일렌트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사탕 받고 싶다고 달려갔다가 말도 못 꺼내고 내게 부탁해 버리고 마는 게 벌써 열 번째이다.

 “헤헤- 잭은 정말 잘하네.”

 “항상 너에게 하는 거였는걸.”

 “그것도 그렀네-...”

 그렇게 사탕을 잔뜩 받고 난 후 적막한 공원 벤치에 앉아 우리는 조용히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 있었다. 사탕 맛있지만 일렌트가 주는 것보단 조금 못 할지도.

 “저기, .”

 “?”

 사탕을 맛있게 먹고 있던 중에 그가 나를 불렀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나도 너처럼 1년에 한 번만 깨어나서 돌아다닌다면 어떨까?”

 “...하아?”

 어이없는 질문에 나는 그저 다시 묻기만을 할 뿐이었다. 그 질문에 대답할 이유를 못 느끼겠는걸.

 “그러니까... 너랑 같이 단 하루만 깨어나서...”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거야.”

 그 질문이 어리석다는 거, 왜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묻는 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거야... 하루만 일어난다면... 잭을 매일 볼 수 있잖아...”

 “...?”

 “... 잭을 보기 위해 364일을 기다려야 해... 그런데 잭은 날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라며... 그러니까 나도 일 년에 한 번만 일어난다면, 나도 잭을 매일 볼 수 있는 거잖아...!”

 “...이론상 그렇긴 한데... 어째서?”

 “잭을 매일 보기 위해서.”

 “......”

 그의 이유는 너무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물론 대답이 된다. 1년에 한 번 깨어나는 유령이 된다, ? 일 년이란 시간의 기다림을 보내기 싫어서! 그럼 왜 일 년이란 시간의 기다림을 보내기 싫은가? 그건 하루라는 일 년을 매일같이 보내고 싶어서! 그렇다면 왜 하루라는 일 년을 매일같이 보내고 싶은가? 그건 날 보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날 보고 싶은가?

 왜 그것에 대한 대답은 못 하는가?

 “... 매일보고 싶은데?”

 “...그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하니까.”

 “...?”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

 그렇게 말한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렇게 달려갔다. 나는 그를 붙잡지도 못 한 채, 대답도 해주지 못 한 채... 그렇게 스물두 번째 만남이 끝나고 말았다.

 

 

 어쩌면 스물세 번째 만남이 되어야 하는 날 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짙게 느껴졌다. 이 느낌, 분명 비일 텐데 왜 기분이 더 찝찝하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그의 집을 가기 위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가는 그곳으로 향했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는 고백을 받으면 확실히 답해주라는 명령아가 남겨져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일 년이 넘어서야 그에게 답을 줄 수 있게 되어 참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물론 답은 정확히 결정했다. 그것이 그에게 잘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Trick or Treat-”

 그의 집을 찾아가 말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그가 아닌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사탕 받으러 온 건가요?”

 다른 사람의 상냥함에 나는 어버버 거리며 얼결에 사탕을 받아버렸다. 그러다가 내가 물어야 하는 단어를 잡아 입 밖으로 간신히 끄집어내었다.

 “저기, 일렌트는 어디에...”

 “일렌트요...? 그게 누구죠?”

 “...매년 이 집으로 사탕 받으러 왔는데... 항상 이 집에 있던...”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줘야 하는 사람.

 “-, 저희는 올해 여기로 이사 왔어요. 아무래도 작년까지 이 집에서 살던 사람을 찾나 본데, 그 집 아들이... 세상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갔어요.”

 “......”

 일렌트가 죽었다. 어째서? 내가 대답을 제대로 주지 못해서? 아니면 정말 일 년에 한번만 깨어나고 싶어서...? 나는 터덜터덜 그 집을 등 뒤로 돌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말았다.

 “나도 네가 좋지만... 그래도 인간으로 살아달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이미 죽은 목숨이라니. 이미 떠도는 유령이 되어버렸다니. 대체 유령이 된 그를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세상은 넓고 유령의 세계는 깊은데 도대체 어디에 가서 어떻게 찾으라고.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속은 왜인지 불에 데는 듯 뜨거웠다. 계속 자꾸만 뭔가가 북받쳐 오르는 것 마냥 답답했다. 또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아니, 날뛰면서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단지 그 말로 밖에 형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 머릿속과 내 뱃속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알지 못할 감정 때문에 손등에 차가운 무언가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밤공기는 차갑고 축축하고 질었으니까. 하지만 손등 위로 떨어지는 것들은 멈출 기미를 안 보였고, 나는 이미 손등 위로 떨어지는 그것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것의 이름은 바로, 눈물이었다.

 

 

 얼마나 지났나.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세보자면 겨우 2일정도. 겨우 이틀? 난 처음으로 2년이란 시간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하루가 이렇게 길지? 난 왜 이리도 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일렌트는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 날 기다린 거지...?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입이 달렸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인 것일까.

 “...보고 싶어.”

 나는 대답했다.

 “더 이상... 이렇게 기다리는 건 싫어...”

 넌 지금껏 날 얼마나 기다려 온 걸까.

 “말해주고 싶어...”

 나도 눈물을 흘렸었고.

 “대답해 주고 싶어...”

 널 이렇게 그리워 한다는 것을.

 “나도... 악몽을 꾸는 걸까.”

 내 장난이 너에게 심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잔혹하고 정말 잔인한 짓이다.

 “...이 악몽에서 얼른 벗어나게 해줘...”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이것이 답은 아니었지만, 이러면 기분이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혹시 이 손을 거두고 나면 네가 보일까란 일말의 희망인 것일까.

 “......?”

 일말의 희망...

 “일렌트...?”

 그것은 소위 기적이라 말하는...

 “잠깐...!”

 장난의 끝인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장난의 시작일까.

 “일렌트...!!!”

 나는 내 얼굴을 가리던 손 틈 사이로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내리고 그가 간 것 같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렌트...! 잠깐...!”

 그가 보인다.

 “일렌트!”

 그를 붙잡아.

 “......”

 그를 세워서.

 “일렌트...”

 그를 부른다.

 그러면 그는 날 바라볼까?

 

 “...누구세요.”

 “누구냐니...”

 “누구신데 왜 절 잡으신 거죠?”

 “...일렌트 아니야...?”

 “누군데 제 이름을 아시죠?”

 “...나 모르겠어...?”

 “...,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어째서, 라뇨.”

 “어째서 날 몰라... 네가 날 알아야 내가...”

 “......”

 “...내가 제대로 답을 해줄 수 있는데...”

 “......”

 “난 이렇게 네가 보고 싶어서 달려오고...”

 “......”

 “네가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

 “네가 보고... 싶어서...”

 “......”

 “보고 싶어서... 울고... 계속 울었는데...”

 “......”

 “...너는...”

 “...절 좋아하시는 거예요?”

 “...?”

 “절 사랑하시는 거냐고요.”

 “....”

 “......”

 “널 좋아해...”

 “......”

 “널 사랑해...”

 “......”

 처음엔 나도 네가 좋지만 너는 살아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어...“

 “......”

 “그런데... 내가 직접 기다림을 겪고 나니까...”

 “......”

 “말 그대로 악몽이야...”

 “......”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줘...”

 “......”

 “네가 비록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난...”

 “누구신데 내 마음을 훔쳐간 거예요.”

 “...?”

 “누구신데 왜 날 그렇게 기다리게 했냐고.”

 “......”

 “, 정말로 날 사랑해요?”

 “.... 정말로...”

 “날 얼마나 곁에 두고 싶은데.”

 “...이 세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러면 이 세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있어줘야겠네. 일 년을 매일같이.”

 “......”

 “매일 사탕 받으러 다니면서, 매일 데이트 하면서, 매일 같이 있어야겠네.”

 “... 맞아 그래야 해.”

 “그럼 가야지. 오늘부터 매일 해야 하니까.”

 

 그가 내밀어 준 손을 살며시 잡아 보였다. 그 손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지만 따뜻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내가 잊고 있던 감정 중 가장 중요한 감정인 그것은.

 “Trick or Love.”

[오소이치] 영화관에서

 

 

 

 “-, 뭐야 이치마츠밖에 없어?”

 “...? 무슨 일인데.”

 “있지, 이치마츠.”

 “....”

 “내일... 시간 되냐?”

 “...아마도?”

 “아 그래?? 그럼 내일 영화 보러 가자-!!!”

 “...???”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웬일로 오소마츠형이 나에게 영화를 보자고 권유를 한 날이기 때문이다.

 왜? 왜 나지? 쿠소마츠도 쵸로마츠형도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아닌 왜 나인 거지? 정말 우연히 내가 집에 있어서? 아님 일부러 내가 집에 있을 때를 기다려서?

 완전 이해가 안 되는 이 기다리는 순간은 그저 긴장의 순간이었다. 왜 집에서 같이 나오지 않고 영화관 앞으로 약속 장소를 잡아버린 걸까. 그래서 사람 많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 고립되어 버린 나는 더 긴장하고 말았다. 누군가가 날 실수로 부른다 해도 깜짝 놀라 고양이귀가 튀어나올 정도로...

 “-, 일찍 나왔네-!!”

 정말 나와 버렸다, 고양이 귀.

 “, 이치마츠? 괜찮은 거냐?”

 등장의 대사와 함께 내 어깨를 툭툭 쳐버린 형 때문에...

 “...놀랐잖아...”

 “, 횽아 때문에 우리사남 놀라버린거?? 에에, 미안 미안- 대신 형이 간식 쏠게~”

 “......”

 아무리 봐도 저 형은 정신이 나간 거 같다. 아니 나간 게 확실하다. 영화보자는 말에 이어 간식까지 쏜다니. 무슨 생각인거지.

 “자자, 들어가자고~ 곧 영화 시작해 버리니까~”

 “... 어어...”

 난 형의 밀림을 그대로 당해 엉거주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오늘의 간식은 나쵸입니다~~”

 팝콘대신 산 간식은 나쵸였다. 콜라도 큰 걸로 두 개를 사서 내게 하나를 건넸다. 어라-...

 “이거 하나 다 마셔도 돼...?”

 “물론~”

 항상 큰 걸 사면 꽂혀있던 빨대 개수는 3개였다. 주로 쥬시마츠랑 토도마츠랑 나눠 마셨는데 이번엔 이 큰 거 하나가 통째로 내꺼 라니. 이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감격할 수 있는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바람이 분거야...”

 “? 뭐가?”

 “갑자기 영화를 보자고 하지 않나... 간식을 사준다 하지 않나...”

 “-, 글쎄-!”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한 마디였다.

 “그런 거 생각 말고 영화나 보러 들어가자~ 특별히 이치마츠가 좋아하는 고양이 다큐멘터리란 말이야~ 어때 좋지?”

 “... ... 으응... 그거 좋을지도...”

 뭐, 정신이 나가도 이쪽으로 나갔으니 상관없겠지. 뭐가 됐던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니 봐주도록 한다.

 

 “......”

 뭔가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

 망할 장남이 영화를 보여 준다하고, 장남이 간식까지 사주고, 큰 콜라를 혼자서 독차지하고, 심지어 영화내용 까지도 완벽한데. ?

 “...냐옹-”

 왜 관객까지 고양이 인거지???

 “...저기, 오소마츠형...?”

 “, 중요한 장면이란 말이야...”

 물론 중요한 장면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역경을 딛고 올라서는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왜 훌쩍이는 관객 소리가 냐옹으로 들리냐 이것이지. ? 왜 이렇게 완벽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거지??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 생각하지 말자. 그럼 편하니까. 얼마나 좋은가. 영화도 보고 나쵸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고양이 영화에 관객도 고양이... 와 잠만, 여긴 천국인가? 정말 꿈같은 천국...

 잠깐.

 ...꿈같은...?

 “저기, 오소마츠형...!”

 “...아까부터 왜 불러 이치마츠...! 조용해야 하는 거 몰라?”

 “그치만... 이거 설마... 꿈이야...?”

 “? - 글쎄-!”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게 또 아까와 똑같은 애매한 대답... 난 그 대답에 진이 빠져버렸다. 꿈인가? 현실인가? 천국인가? 대체 어디인가 가늠하면서 나쵸를 바스락 깨물어 먹었을 때 쯤, 입안에서는 이유 모를 폭발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탄산이 잔뜩 들어가서 폭죽이 터져 나쵸가 혓바닥 위에서 힙하게 춤추고 있는 기분.

 그리고 느꼈다.

 

 

 “, 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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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쵸 생일축하행애ㅐ애애ㅐ애애애애ㅐㅐ!!!!!!!!!!!!!!!!!!!!!!!!!!!!!!!1

어휴 나쵸를 까매오로 출연시키기위해 이치가 나쵸꿈을 꿨다는 이야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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