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비메가/오소쵸로/단편] 행복이란 이름의 죄
“신이라는 명분으로 내게 주워진 일은 단지,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
“그럼 대체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주어진 명분을 무시한 채,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언제나 반복 적인 삶은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달라지지 않는 하루하루가 어쩌면 따분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을 자각하기 전까진 따분하단 생각은 없었다. 즐겁진 않지만 따분하지도 않던 일상.
"당신이 연못에 떨어뜨린 물건은,"
바뀌지 않는 대사,
"이 강철 아수라상입니까, 아니면 젤리 아수라상입니까."
바뀌지 않는 행동,
"...그렇군요. 솔직한 당신에게는-,"
그리고 바뀌지 않는,
"당신이 떨어뜨린 이 물건을 드리겠습니다."
흔하디흔한 일상적인 나의 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알았다. 신이라는 이름을 갖고도 내게 주어진 공간은 각진 연못이 전부였으니. 내가 가진 세상은 고작 이 정도였고, 내게 오는 세상 사람들도 고작 저 정도였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들만의 행복이었고, 그것이 내겐 전부였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누구의 손에 길러졌는지, 어쩌다 신의 내림을 받았는지, 그리고 여기에 왜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한 기억은 그 무엇도 없다. 그저 아침이 되어 눈을 떠보니 보이는 곳은 이 곳, 손을 움직여 보니 내 몸,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이름 '여신'.
"난 남자인데 말이지..."
그래 남자다. 분명 남자인데 그들이 날 부를 때는 항상 '여신님'이라고 부른다. 뭐, 그 소리도 수 백 년 들어 와서 익숙해져 버려 이젠 일일이 말해주기 귀찮았다. 그래서 좋으나 싫으나 산속 연못의 여신님이란 이름으로 계속 살아가는 중이다.
뭐가 됐던 신이 내게 내려준 이름은 ‘여신’. 여신이란 이름으로 남의 행복만을 위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반복적인 날들 중 어느 날, ‘그 녀석’이 날 찾아 왔었다.
"안녕, 여신님?"
녀석은 그저 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
난 왜 그 모습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사람이 인사하는데 말이 없어?"
"단 한 번도 상대방이 인사해준 적이 없어서 당황하는 중이라면 믿어줄래?"
"헤에-... 그래-? 여신님 재미있네-."
"하아...? 그게 무슨...“
내 말이 체 끝내기도 전에 녀석은 팔을 뻗어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그 어떤 누구도 나의 손을 잡아준 적이 없어서 그런가, 난 녀석의 차가운 체온조차도 하나 의심하지 않았다.
“여신님 손 따뜻해-”
“하아...?”
“나 이렇게 따뜻한 손 잡아본 적이 없어-!”
“...그게 무슨...”
“있지 여신님,”
“...어...?”
“여신님만 괜찮다면 나 여신님 보러 내일 또 와도 괜찮을까?”
내가 본 녀석의 표정은 처음 보는 그 누구의 마음에도 들 정도의 미소로 씨익- 웃어 보이는 그저 순진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누군가와의 대화, 라는 것, 내겐 그것이 그렇게도 달콤했나 보다. 그렇게나 원했었나보고, 또 그렇게나 간절했나보다.
“...그러던가.”
녀석을 만나는 일이 실수란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 어떤 자각도 깨우치지 못한 체.
녀석은 정말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내게로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해가 밝는 다음날이 되면 녀석은 계속 내게로 찾아와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안녕, 여신님?”
“...아아, 안녕.”
난 지금껏 ‘행복’이란 감정을 알지 못했다. 행복이란 건 그저 남을 위해 존재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의 행복’이란 걸 알아 차라기 전까지는 그저 내 할 일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할 일에서는 ‘행복’이란 단어를 눈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수 백 년 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마음속에서 뿌듯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이미 수 백 년이란 긴 시간을 반복적으로 해왔던 일이기에, 내겐 그것은 그저 하나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녀석을 만나면서 내 할 일과 다른 ‘일탈’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고 말았다. 나는 그것을 일탈로 인해 알아챌 줄도 몰랐고, 녀석에 의해 알게 될 줄도 몰랐지만, 녀석으로부터 그것, 바로 행복이란 참뜻을 알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신님- 내 말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하하- 그래서 말이야-”
내 앞에서 이렇게 즐거운 듯 이야기 하고 있는 이 녀석이 없어져 눈앞에 안 보이면 안 된다는 걸, 그리고 이 녀석이 내게 ‘나의 행복’을 알려줬다는 걸.
“아, 여신님- 손잡을까?”
행복의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러지 뭐.”
내 손을 처음 잡아 준 이 손이, 이 차가운 손이 날 따뜻하게 감싸줬으니까.
“여신님-”
“응?”
“여신님 이름 뭐야?”
“내 이름...? 없는데...”
“엑- 그럼 그냥 여신님 인거야?”
“그렇지...”
“그럼 내가 이름지어줘도 돼?”
“어떤...?”
“음-... ‘쵸로마츠’는 어때?”
“왜 ‘쵸로마츠’인데.”
“아, 누가 지어준건지- 내 이름이 오소마츠거든-? 혹시 알고 있어? 느리다 할 때 그 오소말야- 내 이름과 반대의 뜻은 어때, 여신님? 빠르다란 뜻이 있잖아, 쵸로-”
“단지 반대란 이유로?”
“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다만, 난 여신님이 그 이름 써줬으면 하는데-”
“...뭐, 상관은 없어. 그 누구도 내게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으니까.”
“헤-, 그럼 내가 여신님의 이름을 맨 처음으로 지어준거야-? 이거 매우 기분 좋네, 아아-.”
“...기분 좋다니, 다행이네 오소마츠.”
“...헤에-, 내 이름 불러주는 거야-?”
“지금까지 이름, 몰라서 못 불렀으니까.”
“헤에-, 어째서 안 물어봤어? 여신님이 원했다면 언제든 알려줬을 텐데-!”
“...지금껏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어. 상대방의 이름 같은 거.”
“흐응-, 그럼 지금부터 가지면 되겠네-! 어때?”
“......”
“내가 앞으로 여신님의 이름을 쵸로마츠로 불러줄 테니까, 앞으로 쵸로마츠는 이름에 관심을 갖는 거야!”
“...아아, 노력할게.”
“헤에-, 그럼 노력하는 김에 하나만 더 노력해줘.”
“...어떤 거?”
“나 말이야. 이 오소마츠에게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줘, 쵸로마츠-!”
녀석의 밝은 웃음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맞잡아준 차가운 손. 이 손을 그렇게나 놓기 싫었다. 녀석이 주는 모든 것은 행복이라 믿었다. 지금껏 세상은 한정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녀석을 만나면서 세상은 한정 돼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정되지 않는 세상에는, ‘행복’이 존재하는 줄 알았고, 이제 서야 그 행복이 내게로 온 줄 알았다.
내가 믿고 있는 이 행복은 언제까지고 계속 될 줄 알았다.
“쵸로마츠-”
녀석이 날 부르면,
“응...?”
내가 녀석을 바라볼 때까지.
“나 말이야-.”
녀석이 말을 하면,
“...응.”
내가 들어 줄 때까지.
“쵸로마츠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
“......”
내가 녀석의 말에 말문이 막히면,
“쵸로마츠는,”
녀석이 되물을 때까지.
“...응?”
내가 관심을 가지면,
“나 어때-?”
녀석이 씨익- 웃으며 날 바라봐 줄때까지.
「 내 가 믿 고 있 는 행 복 」
녀석을 만나면서, 난 나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녀석은 내게 주기만 했었기에, 나는 녀석에게 받기만 했었기에, 나도 받는 일 뿐이 아닌 주는 일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녀석에게 주고 싶었다. 주는 그것이 어떤 형태의 무엇이던 상관없었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녀석에게 유일하게 줄 수 있는 건,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를, 단지 녀석이란 존재를 위해 찾기 시작했다.
「 내 가 몰 랐 던 사 실 」
‘나’를 찾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신의 명분은 단지 남을 위해 있는 줄 알았는데, 신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것은 매우 많았다. 단지 지금껏 내가 그것을 이용해 볼 시도를 안 해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숨겨졌던 과거의 경이로움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과거를 알아보고 난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넘쳐 오르던 눈물을 감추고 만 허튼 웃음. 그리고 웃음과 함께 행복이 와장창, 깨져가는 소리, 또한.
「 내 게 밀 려 오 는 후 회 」
“쵸로마츠-”
“......”
“나 왔어-”
“......”
“에... 인사 안 해주는 거?”
“...왜 왔어.”
“에...? 왜 왔냐니...? 항상 왔잖아, 그게 무슨...”
“오면 안 되는 존재가 왜 왔냐고...!!”
“......”
“......”
“...하아, 들킨 거야?”
“......”
“안 들킬 줄 알았는데-,”
“...안 들킬 줄 알았다고...?”
“응- 안 들킬 줄 알았어-”
「 행 복 이 란 이 름 의 죄 」
녀석이 내게 지어주던 웃음은 이제 없다. 녀석의 순진한 소년의 모습도 이제 없다. 내 앞에 있는 건, 등에서부터는 크고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지고 머리에서는 빨간 뿔이 돋아나고 있는 인간 모습의 악마. 아아, 역시나, 넌, 악마였구나.
“어떻게 알았어?”
“...내 과거를 알아봤어.”
“헤에-, 그럴 줄 알았어. 지금까지 관심도 없던 과거 알아보니까 어때?”
“......”
“답이 없는 거야, 쵸로마츠-?”
“...그 이름 부르지 마.”
“헤-, 싫어? 왜?”
“......”
“‘옛 이름’이 그렇게도 싫은 거야-?”
“......”
「 내 가 알 아 낸 과 거 」
신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라기 보단 조금은 특별난 인간이었다.
나란 존재가 얼마나 평범이상의 특별을 누렸는가 하면, 내겐 형제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두 살 차이가 아니고 무려 몇 분 차이밖에 없는 다섯 명의 형제. 그 형제의 무리에서 난 삼남이라는 직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이름, 마츠노 쵸로마츠. 녀석이 내게 붙여줬던 그 이름이었다. 녀석이 내게 그 이름을 준 이유, 형제 중 장남이란 자릴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마츠노 오소마츠였기 때문이었다.
「 내 가 잊 었 던 과 거 」
내가 신이라는 이름을 갖기 직전의 과거, 그것은 참혹이란 단어 그 자체였다.
그것에 대한 작은 기억의 조각, 난 그것을 들여다보았었다.
기억 속의 나는 빨간 꽃잎을 흩뿌리며 검은 길 위를 날개도 없는 채 자유로이 날아가고 있었다. 날개도 없이 날아가니 검은 길 위에 불시착하여 엉덩방아를 찧은 듯 보였지만, 아픈 것은 이미 잊고 오래였는지 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것만 같아보였다. 이미 온 몸이 빨간 꽃잎으로 뒤덮여버려 정신이 흐릿해져도 상관없었다.
그 속의 내가 애타게 부른 누군가. 누군가는, 나와 함께 그 위를 날았던, 그는.
「 “ 오 소 마 츠 형 ! ” 」
“...옛 이름이 싫은 게 아니야, 형.”
“...그럼?”
“그 이름을... 그 이름을 다시 받을 자격이 없는 거야...”
「 “ 쵸 로 마 츠 . . . ” 」
나와 똑같이 이름을 불러주던 그는, 마지막 순간 까지도 그 미소를 잃지 않았었기에, 나는.
“나 때문에...”
피를 흘리면서도, 나를 봐라보며 웃어줬기에, 나는.
“형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나는.
“...그런 모습이...”
하얀 국화꽃에 파묻혀 더 이상 이세상의 사람이 아닐 때까지도, 나는.
“되어 버린 거잖아......”
나는.
「 그 어 떤 자 격 도 없 는 거 야 」
“...쵸로마츠는 잘못 없어.”
“......”
“자격이 없다니, 그것도 이상하잖아. 원래 본인 이름인데.”
“......”
“그리고 난 정당했어. 사랑하는 동생을, 치이기 전 그 짧은 순간, 감싸 안은 거 말이지-”
“......”
“난 내 행동이 자랑스러워.”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
“왜 구한답시고 영웅처럼 날아와 감싸 안은 건데.”
“......”
“형은 형의 행동이 자랑스럽다고 했지? 내 대답은 아니.”
“......”
“형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 최소한 형은 살 수 있었어.”
명의 길이가 달랐던 쌍둥이 형제, 같은 날 죽어버린 두 사람. 세상을 나누는 창조주는 한 사람에게만 죄를 물었고, 그 사람은 너무도 쉽게 대답하고 말았다.
“혼자 떠나는 길 너무 외로울 거 같아서 함께 와줬을 뿐이야.”
“ - ”
“그는 잘못 한 게 없어. 오로지 내 과실이야.”
혼자 모든 죄를 떠맡고 지옥이란 깊고 어두운 구렁텅이에 빠져 ‘악마’라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에 빗대어 나는 천국이란 곳에 가 과거의 모든 기억이 지워지고 아무 걱정 없는 그 무의미한 또 다른 삶 속에서, ‘여신’이란 이름을 새롭게 얻어 수백 년을 살아오게 되었다.
여전히 ‘아무 걱정 없는’ 인생을 그렇게 수 백 년 간-......
“힘들었다고-”
“......”
“너의 소문을 수 백 년 전부터 들어왔고, 너의 소식 또한 그렇게 들어왔고... 그렇게 불분명한 소식 소문만 들으며,”
“......”
“수 백 년 동안, 널 찾기 위해, 내 모습을 숨기고, 얼마나 힘들게 찾아 다녔는데.”
“......”
“그리고 이렇게 찾았고, 이렇게 마음도 전하고. 내가,”
“......”
“내가 얼마나, 너를 보고 싶었는데.”
그는 나의 팔을 당겨 끌어안았다. 진심을 다한 그의 차가운 품까지도 너무 따뜻해서 난 미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날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너의 백지 같은 새로운 기억 속에 다시 날 세길 수만 있다면, 난 내가 어떻고 네가 어떻든 상관없었고 아예 중요하지도 않았어. 난 단지 네가 무의식 속에서라도 겪고 있을 너의 죄책감까지도 끌어 안아주고 싶어서, 내가 비록 이런 모습이라도, 쵸로마츠, 널 이렇게, 이렇게 안아주고 싶어서, 난... 난......”
“...알았어,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어. 오소마츠형...”
난 나의 과거를 몰랐어야만 했다.
과거 따위 몰라왔던 지금까지의 수 백 년처럼, 난 나의 과거를 모르는 채로 또 다시 수 백 년을 더 살아가야만 했다.
난 녀석의 진심 따위 듣지 말았어야만 했다.
녀석의 진심을 들었을 때부터 나도 녀석에게 줘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몰랐어야만 했던 나의 과거를 파헤치려고 하지지 않았었을 것이다.
난 이름을 받지 말았어야만 했다.
이름을 받지 않았다면, 녀석의 진심도, 녀석의 의도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나의 풍족함에 매우 만족했었을 것이다.
난 행복을 몰랐어야만 했다.
행복이란 것을 깨우치지 않았더라면, 난 괴로움이라는 것도, 슬픔이라는 것도, 평생 깨닫지 않아 무의식 속에서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난 형이라는 녀석을 만나지 말았어야만 했다.
“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과거’도... ‘이름’도... 그리고...”
‘행복’도
“...그 무엇도 모른 채...”
나의 모든 것을, 지금까지처럼,
“있는 그대로를 모두 믿고...”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빨간 꽃잎을 흩날리며 곱게 눈 감고 있는 악마의 머리. 난 그것을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주워 안아 들었다. 그것을 들어 올려 가슴에 품자, 꽃잎은 사그락-, 나의 흰 옷을 빨갛게 적셔 주었다.
“...무겁네.”
확실히 무거웠지만 점점 무게는 빠져나갔다. 점점 가벼워진 머리는 이젠 깃털만큼이나 가벼워졌다. 하지만 가벼워진 만큼 무거워진 것이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시작되는 악마가 내게 주는 타락. 이런 식으로 타락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아..., 이것이 감정이란 걸 모르고 있던 내가 가져가야 하는 죄 인걸까...
“아니, 틀려. 지금 내겐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고 아무런 느낌도 없어...”
‘아프다’란 감정도, ‘기쁘다’란 감정도, ‘슬프다’란 감정도, ‘즐겁다’란 감정도... 느껴지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아아,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행복’이란 걸 알아버린... 행복이란 이름의 죄,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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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친이 써달라고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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